숙종실록26권, 숙종 20년 4월 26일 계사 2/3 기사 / 1694년 청 강희(康熙) 33년
국청 죄인 김인·윤희·성호빈의 공초 내용
국역
이때 국청(鞫廳)에서 김인(金寅)·윤희(尹憘)·성호빈(成虎彬)에게 물으니, 김인이 말하기를,
"변서(變書) 가운데에 ‘김인이 이익화(李益華)·이양중(李養中)과 피를 마시고 동맹(同盟)하고 윤희를 시켜 민암(閔黯)·이의징(李義徵)·장희재(張希載)에게 고하게 하였다.’ 하였으나, 사실은 피를 마시고 동맹한 일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대개 윤희가 이의징에게서 와서 이성기(李成虁)와 함께 글을 불러 주어 그 아들 윤대남(尹大男)을 시켜 썼으니, 거기에 ‘금영(禁營)에 불을 놓고 먼저 민상(閔相)·장장(張將)을 제거하며, 돈을 흩어 주어 인심을 얻는다.’ 한 것은 다 윤희와 이성기가 날조한 말입니다. 김해성(金海成)은 최숙원(崔淑媛)의 내구(內舅)129) 의 사위로서 늘 윤희와 비밀히 말하기를, ‘숙원이 벗어나게 되면 처모(妻母)를 보내어 대궐 안에 들어가서 꾀하는 것이 있게 할 것이다.’ 하였는데, 왕자(王子)가 탄생하게 되니 윤희가 크게 놀랐습니다. 김해성이 말하기를, ‘뒤에도 어찌 기회가 없겠느냐?’ 하고, 또 숙원의 생일에 음식에 독을 넣으려 하였으나 마침내 수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윤희가 또 말하기를, ‘장희재가 김해성에게 돈 50냥을 주고 참봉(參奉) 이삼달(李三達)이 오시복에게서 꾀하여 돈 50냥을 얻어서 기다린다.’ 하였습니다. 이삼달이 윤희에게 스스로 훈련 대장(訓鍊大將)·병조 판서(兵曹判書)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였다 합니다. 윤희가 신천(信川)에서 김원섭(金元燮)·민장도(閔章道)·성호빈(成虎彬)에게 보낸 글 가운데에서 이의징과 비밀히 의논하고 깊이 생각하여 후회를 가져오지 말게 하였습니다."
하였는데, 그 밖의 말에도 음흉한 것이 지극히 많았고, 윤희는 말하기를,
"김인이 피를 마시고 맹세한 일을 상변(上變)하려고 나를 시켜 장희재 및 민암·이의징에게 묻게 하였는데, 이의징이 김인이 스스로 써 가지고 오게 하매, 김인이 이의징에게 은(銀)을 꾸어 주기를 청하였으나, 이의징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김해성이 왕자가 탄생한 뒤에 음식을 장만한다는 핑계로 돈 수십 냥을 얻기를 바라므로 내가 과연 주었으나, 어찌 독을 쓸 리가 있겠습니까? 신천에 있을 때에 김인이 와서 김원섭과 민장도의 말을 전하기를, ‘김인이 충청도의 유생이 은을 모은 문서를 얻어 장차 고변(告變)하려 한다.’ 하기에, 내가 드디어 김원섭·민장도에게 보낸 글에 훈련 대장과 상의하라고 하고, 또 성호빈에게 의논하게 하였고, 이어서 성호빈에게도 글을 보냈는데, 대개 김인의 말에 놀라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하였는데, 김인과 윤희·성호빈이 서로 대변(對辨)하게 되어서는 윤희의 말이 많이 어그러졌다. 드디어 윤희를 일곱 차례나 형신(刑訊)하였으나, 승복하지 않았다. 김인이 또 말하기를,
"성호빈이 나를 제 집에 두고 이의징의 말에 따른 것이라 하며 은전(銀錢)·쌀·베를 이어 주고 또 은 1백 냥을 주며 ‘이것도 이의징이 준 것이다.’ 하였고, 또 나에게 첩리(貼裏)130) 【무사(武士)의 윗옷 이름이다.】 를 주고서 나를 데리고 국청(局廳) 【대궐 안에 있는 국별장(局別將)의 직소(直所)이다.】 에 들어가 함께 잤는데, 무릇 이렇게 근밀한 데에 교통한 것은 대개 서인(西人)의 일을 염탐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성호빈이 또 말하기를, ‘일이 성취되지 않으면 영숙문(永肅門)을 거쳐서 대궐에 침범하려 하는데, 훈련 대장 【이의징을 가리킨다.】 이 선구(先驅)하고 내가 국출신(局出身) 【국별장에게 속한 자이다.】 을 거느리고 들어가면 누가 감히 막겠는가?’ 하고, 이어서 나에게 금낭(錦囊)을 주고 또 임금을 폐출한다는 따위 말을 하였고, 또 박귀근(朴貴根)에게 은을 주어 꾀하여 이수언(李秀彦) 및 서인의 모역(謀逆)한 서찰(書札)을 얻으려 하였습니다."
하였고, 성호빈은 말하기를,
"윤희의 집에서 김인의 흉서(凶書)를 보고 윤희와 김인을 꾸짖으니, 김인이 노하여 파하였습니다. 내가 드디어 이의징에게 말하기를, ‘이는 희망하는 무리에 지나지 않는다.’하니, 이의징이 옳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의징의 말을 따라 성호빈에게 말하여 김인을 쫓아보냈는데, 이튿날 김인이 와서 친족의 교분이 있음을 말하고 이어서 머무르겠다고 청하므로, 내가 가엾이 여겨 바지를 벗어 주고 또 쌀을 주었으나, 이때부터는 투숙한 때가 있기는 하나 다시는 준 것이 없습니다. 김인이 전에 요금문(曜金門)으로부터 국청에 들어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여기는 바깥 사람이 올 곳이 아니다.’ 하고 재촉하여 보냈는데, 어찌 같이 모의한 일이 있겠습니까?"
하였는데, 성호빈과 김인·윤희가 서로 대변하게 되어서는 모순되는 말이 많았으며, 성호빈이 김인을 쫓아보내게 하고 나서 또 와서 머무르는 것을 용납하였다는 것이 곧 그 한 가지이다. 김인의 변서(變書)가 또 성호빈의 상자 안에 있었고, 그 밖의 문서에도 의심스러운 것이 많았다. 또 그 가운데에 있던 소지(所志) 【우리 나라에서 장소(狀訴)를 소지라고 속칭한다.】 는 남의 불궤(不軌)한 말을 고하는 것이었는데, 성호빈이 ‘김인이 내 첩을 간음한 것을 분개하였다.’는 핑계로 바야흐로 관가에 정소(呈訴)하려고 드디어 김인이 전에 말한 것을 모두 열거한 것은 내승(內乘) 장만춘(張萬春)이 써서 반드시 정소하도록 권한 것이었다. 또 훈련랑(訓鍊郞) 이당(李簹)·기패관(旗牌官) 신영원(申英元)에게 물었더니, 훈국(訓局)에서 은전(銀錢)·쌀·베를 김인에게 준 수가 김인이 고한 것과 모두 같았다. 드디어 성호빈을 일곱 차례 형신하였으나, 승복하려 하지 않았다. 김인이 끌어댄 이무득(李武得)·실(實) 【실은 인명(人名)인데 그 성을 잊었다.】 은 다 피를 마시고 동맹하였다는 것이 거짓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모두 놓아 보냈는데, 대개 이무득·실은 처음부터 닭을 산 것이라고 증거를 보였기 때문이다. 국청의 신하들이 청대(請對)하여, 영의정(領議政) 남구만(南九萬)이 말하기를,
"이무득 등은 이미 놓아 보냈으나, 이성기는 윤희와 함께 글을 불러 주어 변서를 만들었고, 또 김인이 말하기를, ‘상변할 때에 이성기가 김인을 꾀어 제 집으로 오게 하여 해치려 하였다.’ 하였으니, 이것은 본디 물어야 할 것입니다."
하고, 판의금(判義禁) 신여철(申汝哲) 등도 이것을 말하였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윤희·성호빈은 일곱 차례 고문하여도 승복하지 않았으나, 다시 형신하면 지레 죽을 것이고, 지레 죽으면 옥사(獄辭)가 끊어질 것인데, 이것을 장차 어떻게 처치하여야 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윤희·성호빈은 우선 형신을 멈추고 이성기만을 형신하도록 하라."
하였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김해성이 김인을 위하여 고한 것은 같이 국문(鞫問)하여야 하겠으나, 무릇 신하가 모역하는 것은 인정(人情)·천리(天理)에 벗어나는 것이므로, 정리(情理)로 미룰 수는 없으나, 그 사이에 또한 반드시 사세가 그러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듣건대, 김해성의 처모(妻母)는 후궁(後宮)의 숙모(叔母)인데, 장희재가 돈 50냥을 주어 독을 넣게 하였다 하는데, 지친(至親) 사이에 정리가 어떠하다는 것은 물론하고 사세로 헤아려도 이런 일은 반드시 없을 듯하니, 윤희가 자복(自服)하기를 기다려서 처치하려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독을 넣는다는 것은 인정을 벗어난 일일 듯하다."
하였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김인의 변서 가운데에 있는 사람들 중에 나래(拿來)하지 않은 자가 아직 많은데, 이제 분부를 받아서 정하려 합니다. 김인이, 윤희가 김원섭·민장도·성호빈 세 사람에게 보낸 글을 모역이라 하는데, 그 사연을 보면 ‘김생(金生)을 통하여 서울 소식을 듣고 몹시 놀라고 한심하였다. 깊이 생각하고 비밀히 꾀하여 잘 처리하여야 한다.’ 하였으며, 세 글의 대의가 서로 같습니다. 그 말이 음비(陰秘)한 데에 관계되기는 하나, 그 어맥(語脈)을 따져 보면 김인이 윤희에게 서인이 판국을 뒤집으려 꾀한다고 고하고, 윤희가 세 사람을 시켜 고변하게 한 것이니, 스스로 세 사람과 모역한 것이 아닌 듯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 글에 혹 깊이 생각하고 비밀히 꾀하라고도 하고, 일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고도 하였으니, 어의(語意)가 주모(綢繆)하다."
하였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김인이 윤희의 글을 얻어 곧바로 상변하였으므로, 세 사람은 다 답하지 않았습니다. 윤희·성호빈은 이미 다른 일로 먼저 국문하였으나, 김원섭·민장도는 윤희·성호빈이 승복하기를 기다리려 하므로 아직 나래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윤희·성호빈이 죽으면 의거하여 물을 길이 없어질 것인데, 김·민 두 사람을 먼저 나래하여 묻는 것은 옥사의 체모에 있어서 어떠하겠는가?"
하였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옥사를 국문하는 일은 중대하므로 감히 아래에서 가감할 수 없으니, 성상께서 재결하시기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다만, 윤희·성호빈이 스스로 서인을 무함할 생각을 한 것이고 모역한 것이 아니라 하는데, 대저 서인을 무함한 것은 이미 국문하는 본의가 아닙니다. 이제 이 일로 안핵(按覈)하면 더욱 윤희·성호빈이 스스로 변명하는 증거가 될 뿐이고, 중한 것을 버려두고 경한 것을 묻는 것도 옥사의 체모에 어그러집니다. 영숙문(永肅門)의 일로 말하면, 위에서는 권위가 떨어지고 아래에서는 능멸하며 명분이 아주 없어진 세상을 당하였다면 혹 있을 수 있겠으나, 지금은 국가에 변고가 많기는 하나 군신(君臣)·상하의 분별이 오히려 엄한데, 국출신 수십인이 대궐 문을 돌입한다는 것은 흉역(兇逆)한 사람이라도 갑자기 마음먹기 어려우니, 모역이라 생각한다면 이 일이 가장 관계가 긴요하므로, 이미 성호빈을 국문하였습니다. 윤희가 김원섭 등 세 사람에게 보낸 글은 윤희 등이 이미 스스로 승복하였을 뿐더러 문적(文籍)도 고증(考證)할 수 있고 김인도 아직 있으니, 뒤에 물을 수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독을 넣는다는 것과 대궐을 침범한다는 것은 다른 증좌와 문서가 없고 김인의 입에서 나왔을 뿐입니다. 이 때문에 윤희·성호빈의 말에 관련된 사람들도 윤희·성호빈이 승복하기를 기다려서 나래하려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리하라."
하였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성호빈의 상자 가운데에 있던 문서 중에 포도청(捕盜廳)에 정소(呈訴)하려는 서장(書狀)과 은을 모은 성책(成冊) 【벌여 적은 문서를 말하는 것이다.】 이 있었는데, 다 서인을 무함하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을 성호빈에게 물었더니, ‘이 책과 이 말은 다 김인이 나에게 전한 것인데, 그 뒤에 김인이 내 첩을 간음하였으므로 김인의 죄를 다스리고자 포도청에 정소하려 한 것이고, 장만춘(張萬春) 소지를 실서(實書)하였다.’ 하고, 김인에게 물었더니, ‘이 책과 이 말은 내가 성빈에게 전한 적이 없는데, 내가 그 첩과 간음하였으므로 내 죄를 찾으려고 이런 말을 만든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으로나 저것으로나 다 거짓으로 돌아가므로 장만춘에게는 별로 물을 만한 것이 없으나, 어떤 사람은 장만춘을 나래하여야 한다고 말하니, 장차 어떻게 처치하여야 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래하지 말라."
하였다. 이때 금부에서 장희재에게 물었으나 스스로 승복하려 하지 않았는데, 임금이 판비(判批)하여 엄히 형신하여 실정을 알아내라고 명하였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장희재의 죄는 그 율(律)의 경중이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이미 위에서 아시는 것인데, 도리어 어찌하여 반드시 다시 그 실정을 알아내야 하겠습니까? 장희재는 왕세자의 지친(至親)이니, 팔의(八議)131) 의 법으로 논한다면, 문득 형신하는 것은 매우 미안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신의 말이 이러하니, 죄를 감정(勘定)하게 하라."
하였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장희재의 일은 민암과 서로 관련되었는데, 민암은 이미 대신이 되었고, 대신에게는 욕보이는 일이 없다는 것과 가의(賈誼)의 소(疏)에서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법문(法文)에 ‘나이가 여든이면 고신(拷訊)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늙은 것을 의논하거나 귀한 것을 의논하거나 달리하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 증거로 그 죄를 정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卿)의 말에 소견이 없지 않으니, 형신하지 말라."
하였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국가가 불행하여 수십 년 이래로 네 번 조정이 바뀌었는데, 바뀔 때에는 주륙(誅戮)이 으레 행하여졌으므로, 사람마다 두려워서 스스로 위태로와하고, 한 나라가 반으로 갈려서 서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신(臣)이 외람되게 큰 은혜를 입어 자리를 다시 더럽히므로, 세상이 다 뒷날 죽일 사람이라고 지목하니, 장차 어떻게 인심을 진정하여 나라의 일을 하겠습니까? 지금의 생각으로는 전일의 한 일은 모두 돌이키지 않아서는 안되겠는데, 법을 집행하는 신하는 번번이 모두 다스리자는 논의를 고집하니, 어제의 대계(臺啓)는 지나치지 않겠습니까? 기사년의 일은 신하들이 혼자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처분에서 나온 것이니, 대간(臺諫)의 말이 이러하더라도 위에서는 ‘이것은 내 허물이다. 어찌 신하들의 죄가 될 뿐이겠느냐?’고 말하셔야 합니다. 이어서 그 죄를 너그러이 줄이게 하신다면, 인심이 감동하고 후세에서 흠앙(欽仰)함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아름답게 여겨 받아들였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개기(改紀)하는 처음에는 죄를 입은 신하들을 본디 모두 사유(赦宥)하여야 마땅하겠으나, 자주 위에 아뢰는 것은 사체(事體)에 있어서 옳지 않으니, 해조(該曹)를 시켜 초서(抄書)하여 들여서 우러러 품재(稟裁)에 갖추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윤허하였다. 사간(司諫) 박세준(朴世𤎱)이 아뢰기를,
"송시열(宋時烈)이 죄를 입을 때에 입시(入侍)한 대신(大臣) 권대운(權大運)·목내선(睦來善)·김덕원(金德遠), 판의금(判義禁) 민암(閔黯)과 맨 먼저 대론(臺論)을 일으킨 김주(金澍)·심벌(沈橃)·조식(趙湜)·이원령(李元齡)은 이미 다른 죄로 바야흐로 귀양가거나 갇혀 있는 중이므로 이제 반드시 논할 것 없으나, 그 나머지 대관(臺官) 권해(權瑎)·이현기(李玄紀)·이수징(李壽徵)·이만원(李萬元)은 모두 멀리 귀양보내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이들의 정원(政院)에서 전에 살펴 낸 자들이다.
- [註 129] 내구(內舅) : 외삼촌.
- [註 130] 첩리(貼裏) : 철릭.
- [註 131] 팔의(八議) : 죄를 감면받을 대상이 되는 여덟 부류의 사람들. 곧 의친(議親:임금의 동성(同姓)인 8·9촌 이내, 임금의 할머니·어머니의 사마(緦麻) 이내, 왕비의 소공(小功) 이내, 세자비의 대공(大功) 이내의 친족)·의고(議故:왕실과 예전부터 친분이 두터워 여러 해 동안 특별히 은덕(恩德)을 받아온 사람)·의공(議功:나라에 큰 공이 있어 훈적(勳籍)에 오른 사람)·의현(議賢:큰 덕행(德行)이 있어 그 언행(言行)이 일국의 모범이 될 만한 어진 사람)·의능(議能:큰 재능이 있어 군려(軍旅)·정사(政事)를 잘 닦아서 임금을 보좌하고 인륜(人倫)의 규범이 되는 사람)·의근(議勤:관리로서 부지런히 봉공(奉公)하고 사신으로서 어려움을 겪어 큰 공로가 있는 사람)·의귀(議貴:관작이 1품이거나 직사(職事)가 3품 이상이거나 산관(散官) 2품 이상인 사람)·의빈(議賓:전조(前朝)의 자손으로서 선조의 제사를 받들므로 국빈(國賓)으로 예우(禮遇)받는 사람).
원문
○時鞫廳問金寅、尹憘、成虎彬, 寅曰: "變書中謂寅與李益華、李養中, 歃血同盟, 使憘告于閔黯、李義徵、張希載, 而其實則歃血同盟, 初無是事, 蓋憘自義徵所來, 與李成夔呼文, 使其子大男書之, 其曰: ‘放火禁營’, 先除閔相張將, 散金得人心者’, 皆憘與成夔捏造之辭也。 金海成以崔淑媛內舅之女壻, 常與憘密言, 要及淑媛解脕, 遣其妻母入闕中, 有所謀及, 王子誕生, 憘大驚。 海成曰: ‘後豈無其會乎。’ 又欲於淑媛生日, 置毒于饌而竟不果。 憘又謂張希載與海成錢五十兩, 李參奉三達, 從吳始復圖得錢五十兩, 以待之, 聞三達與憘言, 自期以訓將兵判。 憘在信川, 所遺金元燮、閔章道、成虎彬書中, 使與義徵密議深思, 無致後悔, 其他辭說, 極多陰兇。" 憘則曰: "寅欲以歃血事上變, 而使俺問于張希載及閔黯、李義徵, 義徵使寅自書以來, 寅請貸銀于義徵, 義徵不許。 金海成於王子誕生後, 托以辦膳, 願得錢數十兩, 俺果與之, 然豈有鴆害之理? 在信川時, 寅來傳金元燮及章道之言曰: ‘寅得忠淸道儒生聚銀文書, 將告變。’ 俺遂與元燮ㆍ章道書有曰: ‘與訓將相議, 且使議于虎彬。’ 仍亦抵書于虎彬, 蓋驚動於寅之言也。" 及寅與憘ㆍ虎彬交辦, 憘辭多屈, 遂刑訊憘, 至七次不服。 寅又言: "虎彬置俺于其家, 稱以義徵言, 續給銀錢米布, 又給銀一百兩曰: ‘是亦義徵所與也。’ 又與俺以貼裏, 【武士上服之名。】 率俺入局廳。 【闕中局別將直所。】 與之同宿。 凡此交密者, 蓋欲詗知西人之事也。" 虎彬又言: "事若不成, 則欲由永肅門犯闕, 訓將 【指義徵。】 先驅, 吾率局出身 【屬于局別將者。】 以入, 則誰敢當之? 仍與俺以錦囊, 而又有廢君等語, 又與銀于朴貴根, 欲圖得李秀彦及西人謀逆之札矣。" 虎彬則曰: "見寅凶書於憘家, 責憘及寅, 寅怒而罷, 俺遂言于義徵曰: ‘是不過希望之輩耳。’ 義徵然之, 乃以義徵言, 言于虎彬, 使逐寅, 翌日, 寅來言, 有族誼, 仍請留, 俺憐之, 脫袴而與之, 且與以米。 自此雖有投宿之時, 更無所與者耳。 寅嘗自曜金門, 入局廳, 俺曰: ‘此非外人所至也。’ 趣遣之, 豈有同謀之事哉?" 及虎彬與寅 憘交辨, 語多矛盾, 虎彬旣使逐寅, 又容其來留, 卽其一也。 寅變書, 又在虎彬箱中, 其他文書, 多可疑。 又其中, 有所志。 【國俗, 以狀訢爲所志。】 是告人不軌之語, 而虎彬諉以憤寅淫吾妾, 方欲訴于官, 遂竝擧寅所嘗言者。 是內乘張萬春所書, 而勸之必呈者也。 且問于訓鍊郞李簹旗牌官申英元, 則自訓局, 與寅以銀錢米布之數, 一如寅所告者, 遂刑訊虎彬, 至七次不肯服, 寅所引李武得。 實, 【實人名, 失其姓。】 皆以歃血同盟, 自歸虛罔, 竝放之。 蓋武得。 實, 初以買雞見證故耳。 鞫廳諸臣請對, 領議政南九萬曰: "李武得等已放。 而李成夔則與憘呼文成變書, 且金寅言上變時, 成夔誘寅, 至其家欲害之, 此固可問。" 判義禁申汝哲等亦言之。 九萬曰: "憘ㆍ虎彬栲問七次, 猶不服, 更訊則必徑斃, 徑斃則獄辭絶, 此將何以處之?" 上曰: "憘ㆍ虎彬姑停刑訊, 只訊李成夔可也。" 九萬曰: "金海成爲寅所告, 當同鞫。 凡人臣謀逆, 乃人情天理之外, 雖不可以情理推之, 然於其間, 亦必有事勢之或然與不然。 今聞海成妻母, 乃後宮叔母, 而張希載與錢五十兩, 使之置毒云。 至親之間, 勿論情理如何, 揆以事勢, 似是必無者, 欲得憘自服而處之。" 上曰: "置毒, 似是人情之外耳。" 九萬曰: "寅變書中諸人不拿者尙多, 今欲取旨以定, 寅以尹憘與金元燮ㆍ閔章道ㆍ成虎彬三人書, 爲謀逆, 而觀其辭, 有曰: ‘因金生聞京報。 骨驚心寒。 須深思密謀善處之云。’ 三書大旨相似, 其言雖涉陰秘, 而尋其語脈, 是寅告憘以西人謀翻局, 憘使三人者告變, 似非自與三人謀逆也。" 上曰: "其書或曰: ‘深思密謀。’ 或曰: ‘事必成矣。’ 語意綢繆矣。" 九萬曰: "寅得憘書, 直上變故, 三人皆無答。 憘、虎彬旣以他事先鞫, 而元燮、章道則欲待憘、虎彬就服, 故時未拿, 何以處之?" 上曰: "憘、虎彬若死, 無可憑問之路, 金ㆍ閔兩人, 先拿以問, 在獄體何如?" 九萬曰: "鞫獄事重, 不敢自下低昻, 惟在聖上裁之耳。 但憘 虎彬, 自謂爲誣陷西人之計, 而非爲謀逆。 夫誣陷西人, 旣非鞫問本旨。 今以此事按覈, 秪益爲憘ㆍ虎彬自明之證, 舍重問輕, 亦違獄體。 至於永肅門事, 若當上下陵替, 名分都喪之世, 則容或有之, 卽今國家雖多變故, 君臣上下之分猶嚴, 以局出身數十人, 突入闕門, 雖凶逆之人, 猝難生意。 若謂謀逆, 則此事最關緊, 故已鞫虎彬矣。 憘與元燮等三人書, 非但憘等已自服, 文籍亦可考證。 寅又尙在, 可從後問之。" 上然之。 九萬曰: "置毒與犯闕, 無他證左與文書, 只出於寅口耳。 以此憘ㆍ虎彬辭連諸人等, 亦欲待憘ㆍ虎彬就服, 拿之。" 上曰唯。 九萬曰: "虎彬箱中文書, 有欲呈捕盜廳狀子及聚銀成冊。 【列錄文書之稱。】 而皆是訣陷西人之語也。 以此問于虎彬則曰: ‘此冊此說, 皆寅所傳於吾, 而厥後寅淫吾妾, 故欲治寅罪, 將呈捕盜廳, 而張萬春實書所志。’ 問於寅則曰: ‘此冊此說, 吾未嘗傳於虎彬, 而吾與其妾淫, 故欲求吾之罪而作此言耳。’ 然則以此以彼, 皆歸於虛, 張萬春別無可問, 而或言萬春當拿, 將何以處之?" 上曰: "其勿拿。" 時禁府問張希載, 不肯自服。 上判批, 命嚴刑得情。 九萬曰: "張希載之罪, 未知其律輕重如何, 而旣是自上所已知者, 顧何必更得其情也? 希載是王世子至親, 論以八議之法, 遽加刑訊, 殊甚未安。" 上曰: "大臣言如此, 其使勘罪。" 九萬曰: "希載事, 與閔黯相連, 而黯旣爲大臣, 大臣無戮辱, 觀於賈誼疏而可知。 法文年八十不加栲訊, 則議老議貴, 宜無異同, 乞以衆證定其罪。" 上曰: "卿言不無意見, 其勿刑訊。" 九萬曰: "國家不幸, 自十數年來, 四易朝廷。 當其易也, 誅戮輒行, 人人懍懍自危, 一國中分, 相爲讎敵, 臣猥蒙洪造, 復站位著, 世皆目以他日誅戮之人, 將何以鎭人心而做國事乎? 爲今之計, 不可不一反前日所爲, 而執法之臣, 每持一截之論, 昨日臺啓, 亡以過乎? 己巳之事, 非諸臣獨自爲之者也, 乃出於國家處分, 則臺言雖若是, 自上宜曰: ‘是予之過也。’ 豈但爲諸臣者罪? 仍使寬減其罪, 則人心之感動, 後世之欽仰, 爲如何哉?" 上嘉納之。 九萬曰: "改紀之初, 被罪諸臣, 固當竝宥之, 而數白于上, 於事體不可, 請使該曹, 抄書以入, 仰備稟裁。" 上可之。 司諫朴世𤎱啓言: "宋時烈被罪時入侍大臣權大運、睦來善、金德遠, 判義禁閔黯及首發臺論金澍、沈橃、趙湜、李元齡, 旣以他罪, 方在竄逐囚繫之中, 今不必論。 其餘臺官權瑎、李玄紀、李壽徵、李萬元, 請竝遠竄。" 上從之。 是政院曾所考出者也。
숙종 20년 (1694) 4월 26일
숙종실록26권, 숙종 20년 4월 26일 계사 2/3 기사 / 1694년 청 강희(康熙) 33년
국청 죄인 김인·윤희·성호빈의 공초 내용
국역
이때 국청(鞫廳)에서 김인(金寅)·윤희(尹憘)·성호빈(成虎彬)에게 물으니, 김인이 말하기를,
"변서(變書) 가운데에 ‘김인이 이익화(李益華)·이양중(李養中)과 피를 마시고 동맹(同盟)하고 윤희를 시켜 민암(閔黯)·이의징(李義徵)·장희재(張希載)에게 고하게 하였다.’ 하였으나, 사실은 피를 마시고 동맹한 일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대개 윤희가 이의징에게서 와서 이성기(李成虁)와 함께 글을 불러 주어 그 아들 윤대남(尹大男)을 시켜 썼으니, 거기에 ‘금영(禁營)에 불을 놓고 먼저 민상(閔相)·장장(張將)을 제거하며, 돈을 흩어 주어 인심을 얻는다.’ 한 것은 다 윤희와 이성기가 날조한 말입니다. 김해성(金海成)은 최숙원(崔淑媛)의 내구(內舅)129) 의 사위로서 늘 윤희와 비밀히 말하기를, ‘숙원이 벗어나게 되면 처모(妻母)를 보내어 대궐 안에 들어가서 꾀하는 것이 있게 할 것이다.’ 하였는데, 왕자(王子)가 탄생하게 되니 윤희가 크게 놀랐습니다. 김해성이 말하기를, ‘뒤에도 어찌 기회가 없겠느냐?’ 하고, 또 숙원의 생일에 음식에 독을 넣으려 하였으나 마침내 수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윤희가 또 말하기를, ‘장희재가 김해성에게 돈 50냥을 주고 참봉(參奉) 이삼달(李三達)이 오시복에게서 꾀하여 돈 50냥을 얻어서 기다린다.’ 하였습니다. 이삼달이 윤희에게 스스로 훈련 대장(訓鍊大將)·병조 판서(兵曹判書)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였다 합니다. 윤희가 신천(信川)에서 김원섭(金元燮)·민장도(閔章道)·성호빈(成虎彬)에게 보낸 글 가운데에서 이의징과 비밀히 의논하고 깊이 생각하여 후회를 가져오지 말게 하였습니다."
하였는데, 그 밖의 말에도 음흉한 것이 지극히 많았고, 윤희는 말하기를,
"김인이 피를 마시고 맹세한 일을 상변(上變)하려고 나를 시켜 장희재 및 민암·이의징에게 묻게 하였는데, 이의징이 김인이 스스로 써 가지고 오게 하매, 김인이 이의징에게 은(銀)을 꾸어 주기를 청하였으나, 이의징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김해성이 왕자가 탄생한 뒤에 음식을 장만한다는 핑계로 돈 수십 냥을 얻기를 바라므로 내가 과연 주었으나, 어찌 독을 쓸 리가 있겠습니까? 신천에 있을 때에 김인이 와서 김원섭과 민장도의 말을 전하기를, ‘김인이 충청도의 유생이 은을 모은 문서를 얻어 장차 고변(告變)하려 한다.’ 하기에, 내가 드디어 김원섭·민장도에게 보낸 글에 훈련 대장과 상의하라고 하고, 또 성호빈에게 의논하게 하였고, 이어서 성호빈에게도 글을 보냈는데, 대개 김인의 말에 놀라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하였는데, 김인과 윤희·성호빈이 서로 대변(對辨)하게 되어서는 윤희의 말이 많이 어그러졌다. 드디어 윤희를 일곱 차례나 형신(刑訊)하였으나, 승복하지 않았다. 김인이 또 말하기를,
"성호빈이 나를 제 집에 두고 이의징의 말에 따른 것이라 하며 은전(銀錢)·쌀·베를 이어 주고 또 은 1백 냥을 주며 ‘이것도 이의징이 준 것이다.’ 하였고, 또 나에게 첩리(貼裏)130) 【무사(武士)의 윗옷 이름이다.】 를 주고서 나를 데리고 국청(局廳) 【대궐 안에 있는 국별장(局別將)의 직소(直所)이다.】 에 들어가 함께 잤는데, 무릇 이렇게 근밀한 데에 교통한 것은 대개 서인(西人)의 일을 염탐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성호빈이 또 말하기를, ‘일이 성취되지 않으면 영숙문(永肅門)을 거쳐서 대궐에 침범하려 하는데, 훈련 대장 【이의징을 가리킨다.】 이 선구(先驅)하고 내가 국출신(局出身) 【국별장에게 속한 자이다.】 을 거느리고 들어가면 누가 감히 막겠는가?’ 하고, 이어서 나에게 금낭(錦囊)을 주고 또 임금을 폐출한다는 따위 말을 하였고, 또 박귀근(朴貴根)에게 은을 주어 꾀하여 이수언(李秀彦) 및 서인의 모역(謀逆)한 서찰(書札)을 얻으려 하였습니다."
하였고, 성호빈은 말하기를,
"윤희의 집에서 김인의 흉서(凶書)를 보고 윤희와 김인을 꾸짖으니, 김인이 노하여 파하였습니다. 내가 드디어 이의징에게 말하기를, ‘이는 희망하는 무리에 지나지 않는다.’하니, 이의징이 옳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의징의 말을 따라 성호빈에게 말하여 김인을 쫓아보냈는데, 이튿날 김인이 와서 친족의 교분이 있음을 말하고 이어서 머무르겠다고 청하므로, 내가 가엾이 여겨 바지를 벗어 주고 또 쌀을 주었으나, 이때부터는 투숙한 때가 있기는 하나 다시는 준 것이 없습니다. 김인이 전에 요금문(曜金門)으로부터 국청에 들어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여기는 바깥 사람이 올 곳이 아니다.’ 하고 재촉하여 보냈는데, 어찌 같이 모의한 일이 있겠습니까?"
하였는데, 성호빈과 김인·윤희가 서로 대변하게 되어서는 모순되는 말이 많았으며, 성호빈이 김인을 쫓아보내게 하고 나서 또 와서 머무르는 것을 용납하였다는 것이 곧 그 한 가지이다. 김인의 변서(變書)가 또 성호빈의 상자 안에 있었고, 그 밖의 문서에도 의심스러운 것이 많았다. 또 그 가운데에 있던 소지(所志) 【우리 나라에서 장소(狀訴)를 소지라고 속칭한다.】 는 남의 불궤(不軌)한 말을 고하는 것이었는데, 성호빈이 ‘김인이 내 첩을 간음한 것을 분개하였다.’는 핑계로 바야흐로 관가에 정소(呈訴)하려고 드디어 김인이 전에 말한 것을 모두 열거한 것은 내승(內乘) 장만춘(張萬春)이 써서 반드시 정소하도록 권한 것이었다. 또 훈련랑(訓鍊郞) 이당(李簹)·기패관(旗牌官) 신영원(申英元)에게 물었더니, 훈국(訓局)에서 은전(銀錢)·쌀·베를 김인에게 준 수가 김인이 고한 것과 모두 같았다. 드디어 성호빈을 일곱 차례 형신하였으나, 승복하려 하지 않았다. 김인이 끌어댄 이무득(李武得)·실(實) 【실은 인명(人名)인데 그 성을 잊었다.】 은 다 피를 마시고 동맹하였다는 것이 거짓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모두 놓아 보냈는데, 대개 이무득·실은 처음부터 닭을 산 것이라고 증거를 보였기 때문이다. 국청의 신하들이 청대(請對)하여, 영의정(領議政) 남구만(南九萬)이 말하기를,
"이무득 등은 이미 놓아 보냈으나, 이성기는 윤희와 함께 글을 불러 주어 변서를 만들었고, 또 김인이 말하기를, ‘상변할 때에 이성기가 김인을 꾀어 제 집으로 오게 하여 해치려 하였다.’ 하였으니, 이것은 본디 물어야 할 것입니다."
하고, 판의금(判義禁) 신여철(申汝哲) 등도 이것을 말하였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윤희·성호빈은 일곱 차례 고문하여도 승복하지 않았으나, 다시 형신하면 지레 죽을 것이고, 지레 죽으면 옥사(獄辭)가 끊어질 것인데, 이것을 장차 어떻게 처치하여야 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윤희·성호빈은 우선 형신을 멈추고 이성기만을 형신하도록 하라."
하였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김해성이 김인을 위하여 고한 것은 같이 국문(鞫問)하여야 하겠으나, 무릇 신하가 모역하는 것은 인정(人情)·천리(天理)에 벗어나는 것이므로, 정리(情理)로 미룰 수는 없으나, 그 사이에 또한 반드시 사세가 그러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듣건대, 김해성의 처모(妻母)는 후궁(後宮)의 숙모(叔母)인데, 장희재가 돈 50냥을 주어 독을 넣게 하였다 하는데, 지친(至親) 사이에 정리가 어떠하다는 것은 물론하고 사세로 헤아려도 이런 일은 반드시 없을 듯하니, 윤희가 자복(自服)하기를 기다려서 처치하려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독을 넣는다는 것은 인정을 벗어난 일일 듯하다."
하였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김인의 변서 가운데에 있는 사람들 중에 나래(拿來)하지 않은 자가 아직 많은데, 이제 분부를 받아서 정하려 합니다. 김인이, 윤희가 김원섭·민장도·성호빈 세 사람에게 보낸 글을 모역이라 하는데, 그 사연을 보면 ‘김생(金生)을 통하여 서울 소식을 듣고 몹시 놀라고 한심하였다. 깊이 생각하고 비밀히 꾀하여 잘 처리하여야 한다.’ 하였으며, 세 글의 대의가 서로 같습니다. 그 말이 음비(陰秘)한 데에 관계되기는 하나, 그 어맥(語脈)을 따져 보면 김인이 윤희에게 서인이 판국을 뒤집으려 꾀한다고 고하고, 윤희가 세 사람을 시켜 고변하게 한 것이니, 스스로 세 사람과 모역한 것이 아닌 듯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 글에 혹 깊이 생각하고 비밀히 꾀하라고도 하고, 일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고도 하였으니, 어의(語意)가 주모(綢繆)하다."
하였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김인이 윤희의 글을 얻어 곧바로 상변하였으므로, 세 사람은 다 답하지 않았습니다. 윤희·성호빈은 이미 다른 일로 먼저 국문하였으나, 김원섭·민장도는 윤희·성호빈이 승복하기를 기다리려 하므로 아직 나래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윤희·성호빈이 죽으면 의거하여 물을 길이 없어질 것인데, 김·민 두 사람을 먼저 나래하여 묻는 것은 옥사의 체모에 있어서 어떠하겠는가?"
하였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옥사를 국문하는 일은 중대하므로 감히 아래에서 가감할 수 없으니, 성상께서 재결하시기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다만, 윤희·성호빈이 스스로 서인을 무함할 생각을 한 것이고 모역한 것이 아니라 하는데, 대저 서인을 무함한 것은 이미 국문하는 본의가 아닙니다. 이제 이 일로 안핵(按覈)하면 더욱 윤희·성호빈이 스스로 변명하는 증거가 될 뿐이고, 중한 것을 버려두고 경한 것을 묻는 것도 옥사의 체모에 어그러집니다. 영숙문(永肅門)의 일로 말하면, 위에서는 권위가 떨어지고 아래에서는 능멸하며 명분이 아주 없어진 세상을 당하였다면 혹 있을 수 있겠으나, 지금은 국가에 변고가 많기는 하나 군신(君臣)·상하의 분별이 오히려 엄한데, 국출신 수십인이 대궐 문을 돌입한다는 것은 흉역(兇逆)한 사람이라도 갑자기 마음먹기 어려우니, 모역이라 생각한다면 이 일이 가장 관계가 긴요하므로, 이미 성호빈을 국문하였습니다. 윤희가 김원섭 등 세 사람에게 보낸 글은 윤희 등이 이미 스스로 승복하였을 뿐더러 문적(文籍)도 고증(考證)할 수 있고 김인도 아직 있으니, 뒤에 물을 수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독을 넣는다는 것과 대궐을 침범한다는 것은 다른 증좌와 문서가 없고 김인의 입에서 나왔을 뿐입니다. 이 때문에 윤희·성호빈의 말에 관련된 사람들도 윤희·성호빈이 승복하기를 기다려서 나래하려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리하라."
하였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성호빈의 상자 가운데에 있던 문서 중에 포도청(捕盜廳)에 정소(呈訴)하려는 서장(書狀)과 은을 모은 성책(成冊) 【벌여 적은 문서를 말하는 것이다.】 이 있었는데, 다 서인을 무함하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을 성호빈에게 물었더니, ‘이 책과 이 말은 다 김인이 나에게 전한 것인데, 그 뒤에 김인이 내 첩을 간음하였으므로 김인의 죄를 다스리고자 포도청에 정소하려 한 것이고, 장만춘(張萬春) 소지를 실서(實書)하였다.’ 하고, 김인에게 물었더니, ‘이 책과 이 말은 내가 성빈에게 전한 적이 없는데, 내가 그 첩과 간음하였으므로 내 죄를 찾으려고 이런 말을 만든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으로나 저것으로나 다 거짓으로 돌아가므로 장만춘에게는 별로 물을 만한 것이 없으나, 어떤 사람은 장만춘을 나래하여야 한다고 말하니, 장차 어떻게 처치하여야 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래하지 말라."
하였다. 이때 금부에서 장희재에게 물었으나 스스로 승복하려 하지 않았는데, 임금이 판비(判批)하여 엄히 형신하여 실정을 알아내라고 명하였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장희재의 죄는 그 율(律)의 경중이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이미 위에서 아시는 것인데, 도리어 어찌하여 반드시 다시 그 실정을 알아내야 하겠습니까? 장희재는 왕세자의 지친(至親)이니, 팔의(八議)131) 의 법으로 논한다면, 문득 형신하는 것은 매우 미안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신의 말이 이러하니, 죄를 감정(勘定)하게 하라."
하였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장희재의 일은 민암과 서로 관련되었는데, 민암은 이미 대신이 되었고, 대신에게는 욕보이는 일이 없다는 것과 가의(賈誼)의 소(疏)에서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법문(法文)에 ‘나이가 여든이면 고신(拷訊)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늙은 것을 의논하거나 귀한 것을 의논하거나 달리하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 증거로 그 죄를 정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卿)의 말에 소견이 없지 않으니, 형신하지 말라."
하였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국가가 불행하여 수십 년 이래로 네 번 조정이 바뀌었는데, 바뀔 때에는 주륙(誅戮)이 으레 행하여졌으므로, 사람마다 두려워서 스스로 위태로와하고, 한 나라가 반으로 갈려서 서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신(臣)이 외람되게 큰 은혜를 입어 자리를 다시 더럽히므로, 세상이 다 뒷날 죽일 사람이라고 지목하니, 장차 어떻게 인심을 진정하여 나라의 일을 하겠습니까? 지금의 생각으로는 전일의 한 일은 모두 돌이키지 않아서는 안되겠는데, 법을 집행하는 신하는 번번이 모두 다스리자는 논의를 고집하니, 어제의 대계(臺啓)는 지나치지 않겠습니까? 기사년의 일은 신하들이 혼자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처분에서 나온 것이니, 대간(臺諫)의 말이 이러하더라도 위에서는 ‘이것은 내 허물이다. 어찌 신하들의 죄가 될 뿐이겠느냐?’고 말하셔야 합니다. 이어서 그 죄를 너그러이 줄이게 하신다면, 인심이 감동하고 후세에서 흠앙(欽仰)함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아름답게 여겨 받아들였다. 남구만이 말하기를,
"개기(改紀)하는 처음에는 죄를 입은 신하들을 본디 모두 사유(赦宥)하여야 마땅하겠으나, 자주 위에 아뢰는 것은 사체(事體)에 있어서 옳지 않으니, 해조(該曹)를 시켜 초서(抄書)하여 들여서 우러러 품재(稟裁)에 갖추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윤허하였다. 사간(司諫) 박세준(朴世𤎱)이 아뢰기를,
"송시열(宋時烈)이 죄를 입을 때에 입시(入侍)한 대신(大臣) 권대운(權大運)·목내선(睦來善)·김덕원(金德遠), 판의금(判義禁) 민암(閔黯)과 맨 먼저 대론(臺論)을 일으킨 김주(金澍)·심벌(沈橃)·조식(趙湜)·이원령(李元齡)은 이미 다른 죄로 바야흐로 귀양가거나 갇혀 있는 중이므로 이제 반드시 논할 것 없으나, 그 나머지 대관(臺官) 권해(權瑎)·이현기(李玄紀)·이수징(李壽徵)·이만원(李萬元)은 모두 멀리 귀양보내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이들의 정원(政院)에서 전에 살펴 낸 자들이다.
- [註 129] 내구(內舅) : 외삼촌.
- [註 130] 첩리(貼裏) : 철릭.
- [註 131] 팔의(八議) : 죄를 감면받을 대상이 되는 여덟 부류의 사람들. 곧 의친(議親:임금의 동성(同姓)인 8·9촌 이내, 임금의 할머니·어머니의 사마(緦麻) 이내, 왕비의 소공(小功) 이내, 세자비의 대공(大功) 이내의 친족)·의고(議故:왕실과 예전부터 친분이 두터워 여러 해 동안 특별히 은덕(恩德)을 받아온 사람)·의공(議功:나라에 큰 공이 있어 훈적(勳籍)에 오른 사람)·의현(議賢:큰 덕행(德行)이 있어 그 언행(言行)이 일국의 모범이 될 만한 어진 사람)·의능(議能:큰 재능이 있어 군려(軍旅)·정사(政事)를 잘 닦아서 임금을 보좌하고 인륜(人倫)의 규범이 되는 사람)·의근(議勤:관리로서 부지런히 봉공(奉公)하고 사신으로서 어려움을 겪어 큰 공로가 있는 사람)·의귀(議貴:관작이 1품이거나 직사(職事)가 3품 이상이거나 산관(散官) 2품 이상인 사람)·의빈(議賓:전조(前朝)의 자손으로서 선조의 제사를 받들므로 국빈(國賓)으로 예우(禮遇)받는 사람).
원문
○時鞫廳問金寅、尹憘、成虎彬, 寅曰: "變書中謂寅與李益華、李養中, 歃血同盟, 使憘告于閔黯、李義徵、張希載, 而其實則歃血同盟, 初無是事, 蓋憘自義徵所來, 與李成夔呼文, 使其子大男書之, 其曰: ‘放火禁營’, 先除閔相張將, 散金得人心者’, 皆憘與成夔捏造之辭也。 金海成以崔淑媛內舅之女壻, 常與憘密言, 要及淑媛解脕, 遣其妻母入闕中, 有所謀及, 王子誕生, 憘大驚。 海成曰: ‘後豈無其會乎。’ 又欲於淑媛生日, 置毒于饌而竟不果。 憘又謂張希載與海成錢五十兩, 李參奉三達, 從吳始復圖得錢五十兩, 以待之, 聞三達與憘言, 自期以訓將兵判。 憘在信川, 所遺金元燮、閔章道、成虎彬書中, 使與義徵密議深思, 無致後悔, 其他辭說, 極多陰兇。" 憘則曰: "寅欲以歃血事上變, 而使俺問于張希載及閔黯、李義徵, 義徵使寅自書以來, 寅請貸銀于義徵, 義徵不許。 金海成於王子誕生後, 托以辦膳, 願得錢數十兩, 俺果與之, 然豈有鴆害之理? 在信川時, 寅來傳金元燮及章道之言曰: ‘寅得忠淸道儒生聚銀文書, 將告變。’ 俺遂與元燮ㆍ章道書有曰: ‘與訓將相議, 且使議于虎彬。’ 仍亦抵書于虎彬, 蓋驚動於寅之言也。" 及寅與憘ㆍ虎彬交辦, 憘辭多屈, 遂刑訊憘, 至七次不服。 寅又言: "虎彬置俺于其家, 稱以義徵言, 續給銀錢米布, 又給銀一百兩曰: ‘是亦義徵所與也。’ 又與俺以貼裏, 【武士上服之名。】 率俺入局廳。 【闕中局別將直所。】 與之同宿。 凡此交密者, 蓋欲詗知西人之事也。" 虎彬又言: "事若不成, 則欲由永肅門犯闕, 訓將 【指義徵。】 先驅, 吾率局出身 【屬于局別將者。】 以入, 則誰敢當之? 仍與俺以錦囊, 而又有廢君等語, 又與銀于朴貴根, 欲圖得李秀彦及西人謀逆之札矣。" 虎彬則曰: "見寅凶書於憘家, 責憘及寅, 寅怒而罷, 俺遂言于義徵曰: ‘是不過希望之輩耳。’ 義徵然之, 乃以義徵言, 言于虎彬, 使逐寅, 翌日, 寅來言, 有族誼, 仍請留, 俺憐之, 脫袴而與之, 且與以米。 自此雖有投宿之時, 更無所與者耳。 寅嘗自曜金門, 入局廳, 俺曰: ‘此非外人所至也。’ 趣遣之, 豈有同謀之事哉?" 及虎彬與寅 憘交辨, 語多矛盾, 虎彬旣使逐寅, 又容其來留, 卽其一也。 寅變書, 又在虎彬箱中, 其他文書, 多可疑。 又其中, 有所志。 【國俗, 以狀訢爲所志。】 是告人不軌之語, 而虎彬諉以憤寅淫吾妾, 方欲訴于官, 遂竝擧寅所嘗言者。 是內乘張萬春所書, 而勸之必呈者也。 且問于訓鍊郞李簹旗牌官申英元, 則自訓局, 與寅以銀錢米布之數, 一如寅所告者, 遂刑訊虎彬, 至七次不肯服, 寅所引李武得。 實, 【實人名, 失其姓。】 皆以歃血同盟, 自歸虛罔, 竝放之。 蓋武得。 實, 初以買雞見證故耳。 鞫廳諸臣請對, 領議政南九萬曰: "李武得等已放。 而李成夔則與憘呼文成變書, 且金寅言上變時, 成夔誘寅, 至其家欲害之, 此固可問。" 判義禁申汝哲等亦言之。 九萬曰: "憘ㆍ虎彬栲問七次, 猶不服, 更訊則必徑斃, 徑斃則獄辭絶, 此將何以處之?" 上曰: "憘ㆍ虎彬姑停刑訊, 只訊李成夔可也。" 九萬曰: "金海成爲寅所告, 當同鞫。 凡人臣謀逆, 乃人情天理之外, 雖不可以情理推之, 然於其間, 亦必有事勢之或然與不然。 今聞海成妻母, 乃後宮叔母, 而張希載與錢五十兩, 使之置毒云。 至親之間, 勿論情理如何, 揆以事勢, 似是必無者, 欲得憘自服而處之。" 上曰: "置毒, 似是人情之外耳。" 九萬曰: "寅變書中諸人不拿者尙多, 今欲取旨以定, 寅以尹憘與金元燮ㆍ閔章道ㆍ成虎彬三人書, 爲謀逆, 而觀其辭, 有曰: ‘因金生聞京報。 骨驚心寒。 須深思密謀善處之云。’ 三書大旨相似, 其言雖涉陰秘, 而尋其語脈, 是寅告憘以西人謀翻局, 憘使三人者告變, 似非自與三人謀逆也。" 上曰: "其書或曰: ‘深思密謀。’ 或曰: ‘事必成矣。’ 語意綢繆矣。" 九萬曰: "寅得憘書, 直上變故, 三人皆無答。 憘、虎彬旣以他事先鞫, 而元燮、章道則欲待憘、虎彬就服, 故時未拿, 何以處之?" 上曰: "憘、虎彬若死, 無可憑問之路, 金ㆍ閔兩人, 先拿以問, 在獄體何如?" 九萬曰: "鞫獄事重, 不敢自下低昻, 惟在聖上裁之耳。 但憘 虎彬, 自謂爲誣陷西人之計, 而非爲謀逆。 夫誣陷西人, 旣非鞫問本旨。 今以此事按覈, 秪益爲憘ㆍ虎彬自明之證, 舍重問輕, 亦違獄體。 至於永肅門事, 若當上下陵替, 名分都喪之世, 則容或有之, 卽今國家雖多變故, 君臣上下之分猶嚴, 以局出身數十人, 突入闕門, 雖凶逆之人, 猝難生意。 若謂謀逆, 則此事最關緊, 故已鞫虎彬矣。 憘與元燮等三人書, 非但憘等已自服, 文籍亦可考證。 寅又尙在, 可從後問之。" 上然之。 九萬曰: "置毒與犯闕, 無他證左與文書, 只出於寅口耳。 以此憘ㆍ虎彬辭連諸人等, 亦欲待憘ㆍ虎彬就服, 拿之。" 上曰唯。 九萬曰: "虎彬箱中文書, 有欲呈捕盜廳狀子及聚銀成冊。 【列錄文書之稱。】 而皆是訣陷西人之語也。 以此問于虎彬則曰: ‘此冊此說, 皆寅所傳於吾, 而厥後寅淫吾妾, 故欲治寅罪, 將呈捕盜廳, 而張萬春實書所志。’ 問於寅則曰: ‘此冊此說, 吾未嘗傳於虎彬, 而吾與其妾淫, 故欲求吾之罪而作此言耳。’ 然則以此以彼, 皆歸於虛, 張萬春別無可問, 而或言萬春當拿, 將何以處之?" 上曰: "其勿拿。" 時禁府問張希載, 不肯自服。 上判批, 命嚴刑得情。 九萬曰: "張希載之罪, 未知其律輕重如何, 而旣是自上所已知者, 顧何必更得其情也? 希載是王世子至親, 論以八議之法, 遽加刑訊, 殊甚未安。" 上曰: "大臣言如此, 其使勘罪。" 九萬曰: "希載事, 與閔黯相連, 而黯旣爲大臣, 大臣無戮辱, 觀於賈誼疏而可知。 法文年八十不加栲訊, 則議老議貴, 宜無異同, 乞以衆證定其罪。" 上曰: "卿言不無意見, 其勿刑訊。" 九萬曰: "國家不幸, 自十數年來, 四易朝廷。 當其易也, 誅戮輒行, 人人懍懍自危, 一國中分, 相爲讎敵, 臣猥蒙洪造, 復站位著, 世皆目以他日誅戮之人, 將何以鎭人心而做國事乎? 爲今之計, 不可不一反前日所爲, 而執法之臣, 每持一截之論, 昨日臺啓, 亡以過乎? 己巳之事, 非諸臣獨自爲之者也, 乃出於國家處分, 則臺言雖若是, 自上宜曰: ‘是予之過也。’ 豈但爲諸臣者罪? 仍使寬減其罪, 則人心之感動, 後世之欽仰, 爲如何哉?" 上嘉納之。 九萬曰: "改紀之初, 被罪諸臣, 固當竝宥之, 而數白于上, 於事體不可, 請使該曹, 抄書以入, 仰備稟裁。" 上可之。 司諫朴世𤎱啓言: "宋時烈被罪時入侍大臣權大運、睦來善、金德遠, 判義禁閔黯及首發臺論金澍、沈橃、趙湜、李元齡, 旣以他罪, 方在竄逐囚繫之中, 今不必論。 其餘臺官權瑎、李玄紀、李壽徵、李萬元, 請竝遠竄。" 上從之。 是政院曾所考出者也。
원본
숙종 20년 (1694) 4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