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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22권, 숙종 16년 10월 22일 기묘 1번째기사 1690년 청 강희(康熙) 29년

희빈 장씨를 왕비로 책봉하다

희빈(禧嬪) 장씨(張氏)를 왕비로 책봉하였다. 지난해에 이 명이 있었으나, 장렬 왕후(莊烈王后)의 상제(祥祭)·담제(禫祭)를 지내지 않았으므로 책례(冊禮)를 치르지 않았는데,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도감(都監)을 두어 거행하였다. 그 옥책문(玉冊文)에 이르기를,

"왕은 이르노라. 하늘과 땅의 덕이 모여서 만물이 힘입어 비로소 살듯이 부부의 윤리가 이루어지고, 낮과 밤이 나뉘어 해와 달이 번갈아 밝히듯이 안팎의 교화가 갖추어지므로, 임금의 다스림은 반드시 왕비의 어짊을 힘입어야 한다. 후궁에서 세자를 기르매 노경(魯經)178) 에는 귀하게 된 어머니의 표상을 전하였고, 왕실(王室)에 효순(孝順)하매 주아(周雅)179) 에는 잘 다스린 신하의 아름다움을 실었다. 이제 다행히 궁 안에서 덕이 있는 사람을 가리매 자나깨나 구하던 짝에 합당하니, 아름다운 위호(位號)를 바루고 절차를 갖춘 의례(儀禮)를 거행한다.

아! 너 장씨는 일찍부터 아름다운 자태를 타고나고 훌륭한 가르침을 베풀었다. 상서(祥瑞)가 몽일(夢日)180) 에서 조짐을 보이매 요옹(姚翁)은 천하(天下)의 귀인(貴人)이라 감탄하고, 사책(史冊)에 사록(沙麓)이 무너진 것이 적혀 있으매 건공(建公)은 원성(元城)의 성녀(聖女)를 점쳤다.181) 오직 그 의도(儀度)가 법칙에 맞으므로 명성이 향기를 드날리니, 계명(鷄鳴)182) 에서 경계(儆戒)를 더욱 밝히면 이보다 덕(德)이 더 나타남이 없고, 인지(麟趾)183) 에서 풍악을 울리면 하늘에서 녹(祿)을 받을 것이다.

왕비의 자리가 겨우 비게 된 이때에 큰 명(命)이 허락됨을 보니, 귀장(龜章)184) ·적불(翟茀)185) ·상복(象服)186) 이 빛나고, 일진이 좋은 때에 대례(大禮)는 거행된다. 이에 의정부 영의정(議政府領議政) 권대운(權大運)·행 병조 판서(行兵曹判書) 민암(閔黯)을 보내어 절(節)을 가지고 가서 예를 갖추어 왕비로 책명(冊命)한다. 아아, 자손이 백세(百世)에 번영하고 교화가 사방에 터잡으려면 교만하고 사치한 것을 염려하여야 하니, 늘 쉽게 발생하는 것을 경계하여야 한다. 절검(節儉)이 아니면 어찌 충만함을 유지하겠는가? 숭고(崇高)에 처할수록 겸외(謙畏)를 더하여 자신의 수양을 삼가고, 종묘(宗廟)를 받들어 제수(祭需)를 주관하여 내 효리(孝理)를 도와, 임금을 돕는 큰 길상(吉祥)을 힘써 보전하고, 동관(彤管)의 칭예(稱譽)를 길이 끼치라, 그러므로 교시(敎示)하니, 잘 알아야 한다."

하였다. 【대제학(大提學) 민암(閔黯)이 지어 바쳤다.】 교명문(敎命文)에 이르기를,

"임금은 이르노라, 대궐에서 원자(元子)를 길러 세자를 책봉하는 전례(典禮)를 치르자, 중궁의 위호(位號)를 밝혀 왕비를 세우는 의례(儀禮)를 거행하니, 음공(陰功)을 도우려면 참으로 교화에 근본하여야 한다. 아! 너 장씨는 늘 내칙(內則)을 따라서 덕이 후궁 중에서 으뜸이니, 성품이 그윽하고 고요하여 주(周) 문왕(文王)의 후비(后妃)와 아름다움을 짝할 만하고, 몸소 문안하여 대비(大妃)를 섬기게 되더니, 어찌 다행히도 시중들던 끝에 과연 이처럼 단장을 마치는 경사가 있게 되었는가? 중대한 종사(宗社)를 부탁할 데가 있게 되는 것은 하늘이 나라를 돕는 것이고, 《춘추(春秋)》의 의리에서 상고할 것은 어머니가 아들 때문에 귀하여지는 것인데, 마침 중궁 자리가 비었을 때에 존귀한 중전 자리에 합당하다. 생각하면 성종(成宗) 때의 옛 일이 있어서 징험할 만하고, 상 고종(商高宗)이 상제(喪制)가 끝나기를 기다린 일187) 에 비추어도 예(禮)에 있어서 당연하므로, 10월의 좋은 날을 가려서 중궁의 자리를 바룬다.

이에 의정부 영의정(議政府領議政) 권대운(權大運)·행 병조 판서(行兵曹判書) 민암(閔黯)을 보내어 절(節)을 가지고 가서 예를 갖추어 왕비로 책명(冊命)하게 하니, 귀장(龜章)·적불(翟茀)은 전책(典冊)에 갖추어서 빛을 내고, 옥갑(玉匣)·주유(珠襦)는 물채(物采)를 융성히 하여 더욱 환하다. 아! 자리를 지키되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경계하며, 다스림을 돕되 능히 검소하고 능히 부지런하라. 인지(麟趾)와 같이 자손을 번성하게 하면 나라의 형세가 반석처럼 튼튼할 것이고, 계명(鷄鳴)과 같이 경계를 아뢰면 궁에 들어갔을 때에 간언(諫言)은 듣게 될 것이니, 태임(太姙)·태사(太姒)의 아름다운 명성을 떨어뜨리지 말고 조종(祖宗)의 훌륭한 공열(功烈)을 길이 이어받으라. 그러므로 교시(敎示)하니, 잘 알아야 한다."

하였다. 【홍문 제학(弘文提學) 유명천(柳命天)이 지어 바쳤다.】 대사(大赦)하고, 백관(百官)이 진하(陳賀)하였다. 팔방에 교서(敎書)를 반포하였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임금은 이르노라, 천도(天道)가 지극히 크나 땅이 아니면 만물을 생성하는 공이 없으며, 인륜이 터잡고서 집으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교화를 가져오니, 이 성대한 의례를 마치매 온 백성과 함께 기쁨을 같이하여야 마땅하다. 돌이켜보면 내가 기업(基業)을 이어받은 이래로 중궁이 중간에 자리를 비우니, 성녀(聖女)를 구하여 얻어서 자나 깨나 찾는 생각에 응하지 못하면 어찌 공경히 제사를 받들어 종묘(宗廟)의 일을 주관하게 할 수 있으랴마는, 다행히 하늘의 돌봄을 힘입어 후궁에서 원자(元子)를 얻는 상서를 크게 열었다. 덕을 숭상하는 것은 태임·태사의 아름다운 명성을 이어받아 으레 법도를 따르고, 귀한 것으로는 《춘추》의 대의(大義)에 맞아 원량(元良)을 길렀으니, 상복을 벗은 때에 맨 먼저 길일을 가려서 위호를 바룬다.

생각하건대, 예전에 내조(內助)의 보탬은 처음을 삼가서 마지막까지 꾀하려는 것이려니와, 그래서 임헌(臨軒)하는 옛 법을 강구하여 의물(儀物)을 갖춘 성대한 전례(典禮)를 거행하여 장씨를 왕비로 책봉하니, 완염(琬琰)188) 이 빛나고 적불(翟茀)이 빛났다. 경계는 계명(鷄鳴)에 두매 밤낮으로 삼가는 아름다움이요, 경사는 인지(麟趾)에 맞으매 참으로 종사(宗社)와 백성의 복이니, 큰 은혜가 두루 미치게 하는 뜻에 붙여 대명(大命)을 선포하여 사유(赦宥)한다. 이달 22일 매상(昧爽) 이전부터 사죄(死罪) 이하의 잡범(雜犯)을 모두 용서한다. 벼슬에 있는 자는 각각 한 자급(資級)을 올리되 자궁(資窮)인 자는 대가(代加)한다. 아아, 십란(十亂)189) 에 의지하여 후손을 길이 넉넉하게 하기를 바라거니와, 일월(日月)이 함께 밝으매 신인(神人)이 모두 기뻐함을 보았고, 뇌우(雷雨)가 일어나서 풀어 주니 백성이 다 새로워지기를 기대한다. 그러므로 교시(敎示)하니, 잘 알아야 한다."

하였다. 【대제학(大提學) 민암(閔黯)이 지어 바쳤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22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231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인사-관리(管理) / 사법-행형(行刑) / 어문학-문학(文學)

  • [註 178]
    노경(魯經) : 《춘추(春秋)》.
  • [註 179]
    주아(周雅) : 《시경(詩經)》의 소아(小雅)와 대아(大雅).
  • [註 180]
    몽일(夢日) : 해가 가슴으로 들어오는 꿈.
  • [註 181]
    사책(史冊)에 사록(沙麓)이 무너진 것이 적혀 있으매 건공(建公)은 원성(元城)의 성녀(聖女)를 점쳤다. :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왕하(王賀)가 위군 원성(元城)으로 이사해 와서 살았는데, 한 늙은이가 말하기를, "춘추(春秋) 때 사록(沙麓:진(晋)나라에 있던 토산(土山)의 이름)이 무너졌는데, 일관(日官)이 점치기를, ‘음(陰)이 양웅(陽雄)이 되어 토(土)와 화(火)가 상승(相乘)하므로, 무너졌으니, 645년 뒤에 성녀(聖女)가 있어 흥(興)할 것이다.’ 하였으니, 그것이 제(祭)나라의 전씨(田氏:왕하는 전씨의 후손임)일 것이다. 이제 왕옹유(王翁孺:옹유는 왕하의 자(字)임)가 바로 그 땅으로 이사해 왔고 햇수도 맞으니, 80년 뒤에 귀한 여인이 있어 천하를 흥하게 할 것이다." 하였음. 이후 과연 왕하의 손녀가 18세에 궁궐에 들어가서 황후가 되고, 애제(哀帝)가 죽은 뒤에 섭정(攝政)하였는데, 그 해가 바로 사록이 무너진 지 645년에 해당되었다는 고사(故事).
  • [註 182]
    계명(鷄鳴) : 《시경(詩經)》 제풍(齊風)의 편명으로, 왕비(王妃)가 아침 닭 울음 소리를 듣고 임금에게 정청(政廳)에 나아가 정사(政事)를 보도록 권고하는 내용으로 된 시(詩)임.
  • [註 183]
    인지(麟趾) : 《시경(詩經)》 주남(周南)의 편명으로, 왕비가 임금의 자손을 번창하게 하는 것을 말함.
  • [註 184]
    귀장(龜章) : 거북 모양으로 만든 황금 패물.
  • [註 185]
    적불(翟茀) : 꿩의 깃털로 장식한 수레 포장.
  • [註 186]
    상복(象服) : 요적(褕翟). 꿩의 깃털을 수놓은 왕후의 옷.
  • [註 187]
    상 고종(商高宗)이 상제(喪制)가 끝나기를 기다린 일 : 《서경(書經)》 상서(商書) 열명(說明) 상에 보면, "고종(高宗)이 거상(居喪)하여 3년 동안 움막에서 지냈는데, 이미 상(喪)을 면하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王宅憂 亮陰三祀 旣免喪 其惟弗言]" 한 데에서 나온 말로, 장렬 왕후(莊烈王后)의 부묘례(祔廟禮) 때문에 왕비의 책봉(冊封)이 늦어진 것을 비유한 말임.
  • [註 188]
    완염(琬琰) : 아름다운 옥(玉).
  • [註 189]
    십란(十亂) : 주(周)나라 무왕(武王) 때 나라를 잘 다스린 신하 10인, 곧 주공단(周公旦)·소공석(召公奭)·태공망(太公望)·필공(畢公)·영공(榮公)·태전(太顚)·굉요(閎夭)·산의생(散宜生)·남궁괄(南宮适)·문모(文母:太任)임.

○己卯/冊禧嬪 張氏爲王妃, 前年有是命。 而因未經莊烈王后祥禫, 故未行冊禮。 至是始設都監而行之。 其玉冊文曰:

王若曰: ‘天地合而萬物資始, 夫婦之倫成。 宵晝分而二曜迭明, 內外之敎備。 玆故帝王之治, 必賴后妃之賢。 毓慶堯門, 魯經垂貴母之象。 思媚京室, 周雅著亂臣之休。 今幸選德於宮闈, 克叶求配於寤寐。 肆正顯號, 誕擧縟儀。 咨! 爾張氏, 夙稟令姿。 早擒芳訓, 祥徵夢日。 姚翁歎天下之貴人, 史記崩沙。 建公卜元城之聖女, 惟其儀度之中矩。 是以惠問之揚芬, 申儆戒於鷄鳴。 不顯惟德, 播聲詩於麟趾。 受祿于天, 値此壼位之纔虛。 聿見景命之允屬, 龜章翟茀。 象服斯煌, 日吉辰良。 大禮乃擧, 玆遣臣議政府領議政權大運、行兵曺判書閔黯, 持節備禮, 冊命爲王妃。 於戲! 衍本支於百世, 基風化於四方。 念驕侈常戒於易生, 非節儉則奚以持滿? 處崇高而愈謙畏, 愼厥身修。 承宗祧而主蘋蘩, 裨我孝理。 勉保黃裳之吉, 永貽彤管之譽。 故玆敎示, 想宜知悉。 【大提學閔黯製進。】

敎命文曰:

王若曰: ‘震宮毓祥, 纔行冊儲之典。 坤極宣號, 肆擧建妃之儀。 欲資陰功, 寔本風化。 咨! 爾張氏, 動遵內則。 德冠後宮, 性稟幽閑。 足儷美於南國, 躬候溫凊。 曾逮事於東朝, 何幸奉櫛之餘。 果有完釵之慶, 宗社之重有托。 天佑家邦, 春秋之義可稽。 母以子貴, 適當中饋之曠。 允叶內壼之尊, 念成廟故事之猶存。 有足徵者, 待商宗喪制之旣免。 在禮當然, 玆涓孟冬之辰。 爰正長秋之位, 玆遣臣議政府領議政權大運、行兵曺判書閔黯, 持節備禮, 冊命爲王妃。 龜章翟茀, 備典冊而生耀。 玉匣珠襦, 隆物采而增煥。 於戲! 守位而必敬必戒, 助治而克儉克勤。 麟趾播休, 國勢可固於磐石。 鷄鳴進警, 諫言佇聞於入宮。 毋替姙姒之徽音, 永膺祖宗之休烈。 故玆敎示, 想宜知悉。 【弘文提學柳命天製進。】

大赦。 百官陳賀, 頒敎八方, 其文曰:

王若曰: ‘乾道至大, 匪坤則乏成物之功。 人倫肇基, 自家而致御邦之化。 値此隆禮之告訖, 宜與率土而同歡。 顧寡昧丕承以來, 而壼職中曠厥位。 苟不能求得聖女, 用副寤寐之思。 則何以祗奉明禋, 俾主宗廟之事? 幸賴穹昊之眷, 光啓堯門之祥。 尙德則嗣姙姒之徽音, 動遵規度。 以責則合春秋之大義, 誕育元良。 當衣裳外除之辰, 首先涓吉而正號。 念古昔內助之益, 蓋將謹始而圖終。 用講臨軒之舊章, 聿擧備物之縟典。 冊封張氏爲王妃, 琬琰載耀。 翟茀斯煌, 戒存鷄鳴。 卽夙夜箴儆之美, 慶叶麟趾。 實宗社生靈之休, 屬景貺之潛周。 布大命而肆宥, 自本月二十二日昧爽以前, 雜犯死罪以下, 咸宥除之。 在官者各加一資, 資窮者代加。 於戲! 尙資十亂, 永裕後昆。 日月竝明, 巳覩神人之胥悅。 雷雨作解, 佇期品物之俱新。 故玆敎示, 想宜知悉。 【大提學閔黯製進。】


  • 【태백산사고본】 24책 22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231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인사-관리(管理) / 사법-행형(行刑)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