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20권, 숙종 15년 4월 26일 임진 1/5 기사 / 1689년 청 강희(康熙) 28년
인정문에서 친국을 파하고 환궁하다 박태보에게 1차 형신을 가하다
국역
임금이 인정문(仁政門)에서 친국(親鞫)을 파하고 환궁(還宮)하였다. 이어 영의정(領議政) 권대운(權大運) 등에게 내병조(內兵曹)에다 정국(庭鞫)을 설치하라고 명하였다. 그리하여 박태보(朴泰輔)에게 또 1차 형신(刑訊)을 가하였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박태보가 낙형(烙刑)을 받은 끝에 또 중형(重刑)을 받아 그 참혹함이 말할 수 없는 정도여서 목숨이 끊길 지경이 되었다.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고문을 당할 적에 우러러 엄한 하문에 대답하면서 착오를 면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이 없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내가 정국(庭鞫)에서 더욱 혹독함을 당한 데에는 목상(睦相)271) 과 심랑(沈郞)의 【곧 심벌(沈橃)이다.】 작용이 컸다.’ 하였다.
- [註 271] 목상(睦相) : 이름은 내선(來善)임.
원문
숙종실록20권, 숙종 15년 4월 26일 임진 1/5 기사 / 1689년 청 강희(康熙) 28년
인정문에서 친국을 파하고 환궁하다 박태보에게 1차 형신을 가하다
국역
임금이 인정문(仁政門)에서 친국(親鞫)을 파하고 환궁(還宮)하였다. 이어 영의정(領議政) 권대운(權大運) 등에게 내병조(內兵曹)에다 정국(庭鞫)을 설치하라고 명하였다. 그리하여 박태보(朴泰輔)에게 또 1차 형신(刑訊)을 가하였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박태보가 낙형(烙刑)을 받은 끝에 또 중형(重刑)을 받아 그 참혹함이 말할 수 없는 정도여서 목숨이 끊길 지경이 되었다.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고문을 당할 적에 우러러 엄한 하문에 대답하면서 착오를 면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이 없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내가 정국(庭鞫)에서 더욱 혹독함을 당한 데에는 목상(睦相)271) 과 심랑(沈郞)의 【곧 심벌(沈橃)이다.】 작용이 컸다.’ 하였다.
- [註 271] 목상(睦相) : 이름은 내선(來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