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14권, 숙종 9년 6월 20일 신묘 1/1 기사 / 1683년 청 강희(康熙) 22년
해조로 하여금 봉사인의 집을 속히 완성하라고 전교하다
국역
전교(傳敎)하기를,
"인빈(仁嬪)의 사우(祠宇)가 비록 공역(工役)은 끝이 났다 하나, 봉사인(奉祀人)의 집이 아직 지어지지 않아 봉안(奉安)할 수가 없으니, 해조(該曹)로 하여금 미포(米布)를 넉넉하게 제급(題給)하게 하여 속히 완성시키도록 하라."
하였다. 인빈은 선조(宣祖)의 후궁(後宮)으로 원종(元宗)을 낳았다. 역적 정(楨)이 일찍이 그 제사(祭祀)를 맡았었는데, 정(楨)이 주살(誅殺)됨에 이르러, 숭선군(崇善君) 징(澂)이 그 제사를 받들게 되었으므로 이러한 명이 있었던 것이었다.
원문
숙종 9년 (1683) 6월 20일
숙종실록14권, 숙종 9년 6월 20일 신묘 1/1 기사 / 1683년 청 강희(康熙) 22년
해조로 하여금 봉사인의 집을 속히 완성하라고 전교하다
국역
전교(傳敎)하기를,
"인빈(仁嬪)의 사우(祠宇)가 비록 공역(工役)은 끝이 났다 하나, 봉사인(奉祀人)의 집이 아직 지어지지 않아 봉안(奉安)할 수가 없으니, 해조(該曹)로 하여금 미포(米布)를 넉넉하게 제급(題給)하게 하여 속히 완성시키도록 하라."
하였다. 인빈은 선조(宣祖)의 후궁(後宮)으로 원종(元宗)을 낳았다. 역적 정(楨)이 일찍이 그 제사(祭祀)를 맡았었는데, 정(楨)이 주살(誅殺)됨에 이르러, 숭선군(崇善君) 징(澂)이 그 제사를 받들게 되었으므로 이러한 명이 있었던 것이었다.
원문
원본
숙종 9년 (1683) 6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