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3권, 숙종 1년 3월 12일 경오 3/3 기사 / 1675년 청 강희(康熙) 14년
나인과 교통한 복창군 이정과 복평군 이연의 나문을 명하다
국역
전지(傳旨)하기를,
"복창군(福昌君) 이정(李楨)·복평군(福平君) 이연(李㮒)은 금중(禁中)에 출입하며 나인과 교통하여 자식까지 갖게 되었으므로 일이 매우 해괴하니, 그 나인과 아울러 나문(拿問)하여 처치하라."
하였다. 그래서 의금부(義禁府)에서 정·연과 나인을 잡아 가두었는데, 나인이란 군기시(軍器寺)의 서원(書員) 김이선(金以善)의 딸 상업(常業)과 내수사(內需司)의 종 귀례(貴禮)이었다. 의금부에서 귀례를 찾다가 못 찾았는데, 대개 이때에 자전(慈殿)이 바야흐로 안에서 장신(杖訊)하였으므로 미처 내수사에 내보내지 못한 것이라 한다. 전교(傳敎)하기를,
"청풍(淸風)의 차자(箚子)에 아뢴 일은 이미 대신(大臣)과 의논하여 처치하였으므로, 원차(原箚)는 유중(留中)하니, 정원(政院)은 그리 알라."
하였다.
원문
숙종실록3권, 숙종 1년 3월 12일 경오 3/3 기사 / 1675년 청 강희(康熙) 14년
나인과 교통한 복창군 이정과 복평군 이연의 나문을 명하다
국역
전지(傳旨)하기를,
"복창군(福昌君) 이정(李楨)·복평군(福平君) 이연(李㮒)은 금중(禁中)에 출입하며 나인과 교통하여 자식까지 갖게 되었으므로 일이 매우 해괴하니, 그 나인과 아울러 나문(拿問)하여 처치하라."
하였다. 그래서 의금부(義禁府)에서 정·연과 나인을 잡아 가두었는데, 나인이란 군기시(軍器寺)의 서원(書員) 김이선(金以善)의 딸 상업(常業)과 내수사(內需司)의 종 귀례(貴禮)이었다. 의금부에서 귀례를 찾다가 못 찾았는데, 대개 이때에 자전(慈殿)이 바야흐로 안에서 장신(杖訊)하였으므로 미처 내수사에 내보내지 못한 것이라 한다. 전교(傳敎)하기를,
"청풍(淸風)의 차자(箚子)에 아뢴 일은 이미 대신(大臣)과 의논하여 처치하였으므로, 원차(原箚)는 유중(留中)하니, 정원(政院)은 그리 알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