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1권, 숙종 즉위년 12월 1일 경인 2/3 기사 / 1674년 청 강희(康熙) 13년
장령 윤휴가 올린 상소에 대하여 허적과 논의하다
국역
장령(掌令) 윤휴(尹鑴)가 상소(上疏)하고 밀봉(密封)한 책자(冊子)를 올려 복수(復讎)와 설치(雪恥)할 뜻을 진달하였는데, 그 말이 종횡(縱橫)으로 패합(捭闔)205) 하여 책사(策士)의 설(說)과 유사하였다. 임금이 소사(疏辭)는 이미 보았으며, 책자는 궁중에 남겨두겠다고 하였다. 다음날 인견(引見)할 때에 임금이 이르기를,
"윤휴의 상소는 곧 화(禍)를 도발하는 말이다."
하니, 허적(許積)이 아뢰기를,
"그 뜻은 군신(君臣) 상하(上下)가 잊을 수 없는 것이지만, 지금의 사세와 힘으로는 미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다만 마음 속에 둘 따름입니다. 만약 전파(傳播)하게 된다면 말할 수가 없습니다. 윤휴는 선조(先祖)에서도 일찍이 이러한 상소를 올린 일이 있어서 정지화(鄭知和)가 통렬히 배척하여 정원(政院)에서 받아들인 것이 잘못이라고 했는데, 신(臣)은 이러한 의논이 없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선조에서 받지 말라는 명이 있었다면, 지금도 영갑(令甲)을 밝혀 받지 말게 하는 것이 옳겠다."
하니, 허적이 아뢰기를,
"일체(一切)로 받지 말게 하면 다만 의리(義理)가 꽉 막힐 뿐만 아니라, 여러 번 올리고 물리치는 동안에 더욱 번거롭고 시끄럽게만 될 것입니다."
하매, 임금이 이르기를,
"그렇다."
하였다. 권대운(權大運)이 이르기를,
"형세(形勢)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큰소리 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매우 옳지 아니합니다."
하였다.
- [註 205] 패합(捭闔) : 개폐(開閉)의 뜻으로서, 변론술의 일종.
원문
숙종 즉위년 (1674) 12월 1일
숙종실록1권, 숙종 즉위년 12월 1일 경인 2/3 기사 / 1674년 청 강희(康熙) 13년
장령 윤휴가 올린 상소에 대하여 허적과 논의하다
국역
장령(掌令) 윤휴(尹鑴)가 상소(上疏)하고 밀봉(密封)한 책자(冊子)를 올려 복수(復讎)와 설치(雪恥)할 뜻을 진달하였는데, 그 말이 종횡(縱橫)으로 패합(捭闔)205) 하여 책사(策士)의 설(說)과 유사하였다. 임금이 소사(疏辭)는 이미 보았으며, 책자는 궁중에 남겨두겠다고 하였다. 다음날 인견(引見)할 때에 임금이 이르기를,
"윤휴의 상소는 곧 화(禍)를 도발하는 말이다."
하니, 허적(許積)이 아뢰기를,
"그 뜻은 군신(君臣) 상하(上下)가 잊을 수 없는 것이지만, 지금의 사세와 힘으로는 미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다만 마음 속에 둘 따름입니다. 만약 전파(傳播)하게 된다면 말할 수가 없습니다. 윤휴는 선조(先祖)에서도 일찍이 이러한 상소를 올린 일이 있어서 정지화(鄭知和)가 통렬히 배척하여 정원(政院)에서 받아들인 것이 잘못이라고 했는데, 신(臣)은 이러한 의논이 없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선조에서 받지 말라는 명이 있었다면, 지금도 영갑(令甲)을 밝혀 받지 말게 하는 것이 옳겠다."
하니, 허적이 아뢰기를,
"일체(一切)로 받지 말게 하면 다만 의리(義理)가 꽉 막힐 뿐만 아니라, 여러 번 올리고 물리치는 동안에 더욱 번거롭고 시끄럽게만 될 것입니다."
하매, 임금이 이르기를,
"그렇다."
하였다. 권대운(權大運)이 이르기를,
"형세(形勢)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큰소리 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매우 옳지 아니합니다."
하였다.
- [註 205] 패합(捭闔) : 개폐(開閉)의 뜻으로서, 변론술의 일종.
원문
원본
숙종 즉위년 (1674) 12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