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개수실록27권, 현종 14년 10월 1일 정유 1/1 기사 / 1673년 청 강희(康熙) 12년
김수흥이 재궁을 여는 것이 사체상 중대함을 아뢰다
국역
상이 흥정당(興政堂)에 나아가 총호사(總護使) 김수흥(金壽興)을 인견하였는데, 판서 조형(趙珩)과 대사헌 장선징(張善瀓)도 청대하여 입시하였다. 수흥이 아뢰기를,
"재궁(梓宮)과 광중(壙中)의 상태가 일단 정상이니, 그 다행스러움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사방의 돌을 파낼 때에는 꽤 습기가 있었습니다만 다시 3척을 파 보니 흙 색깔이 건조하여 조금도 습기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 겹의 구의(柩衣)도 모두 금단(錦段)의 본 색깔 그대로인 데다가 굳게 묶여져 있었으며 재궁의 칠 색깔도 정상이었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재궁을 바꾸는 한 조목에 대해서는 다시 거론할 것이 없겠는데, 재궁을 여는 일에는 역시 불편한 일이 많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재궁을 여는 것이 사체상 중대한 일이라는 것을 물론 알고 있다만, 혹시라도 뜻밖의 일이 있다면 장차 어떻게 하겠는가."
하였다. 승지 이원정(李元禎)이 아뢰기를,
"의대(衣襨)가 혹 조금 줄어들었을지라도 줄어든 부분이 고작 상면 사방에 불과할 것이고 보면 반드시 바싹 가까이 달라붙어 있을 것입니다. 어찌 흔들릴 근심이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이 일리가 있다."
하였다. 수흥이 아뢰기를,
"송(宋) 판부사의 뜻은 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상이 능 밑 도로변에 있기에 신이 올 때 찾아가 보니 그도 열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두 신하에게 물어서 의논하라고 이미 분부를 내리셨으니, 재궁을 여는 조목에 대해서는 회계(回啓)를 기다려서 정해야 합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우상 이 이미 두 신하와 상의하고 온 이상 회계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열지 않는 것으로 정하라."
하였다. 장선징이 나아가 아뢰기를,
"재궁에 설혹 일이 있다 하더라도 성상의 몸이 편찮으시면 쉽게 거둥하시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재궁도 아무 일이 없고 현재 성상의 건강도 불편하신 중에 계십니다. 꺼려야 할 질병이 성안에 가득 돌고 있으니, 이런 때 어가(御駕)를 움직이시는 것이야말로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원하옵건대 명백하게 분부를 내리시어 구릉(舊陵) 행차를 속히 정지시키소서."
하고, 김수흥 등이 모두 강력히 청하니, 상이 이르기를,
"애통하고 망극한 정으로 볼 때 재궁을 성알(省謁)하는 예를 차마 폐하지 못하겠기에 약방이 누차 아뢰었어도 따르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병세가 줄어들지 않고 경들이 또 이렇게까지 간곡히 말하니 서서히 날씨가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신릉(新陵)에 가서 전알(展謁)할 수밖에 없다."
하였다.
원문
○朔日丁酉/上御興政堂, 引見摠護使金壽興, 禮曹判書趙珩、大司憲張善澂亦請對入侍。 壽興曰: "梓宮壙中, 旣得平安, 慶幸何可勝言? 四方石掘出之際, 頗有濕氣, 而復掘三尺, 則土色乾燥, 少無濕氣。 柩衣三重, 皆有錦段本色, 且甚堅紉。 梓宮漆色如常, 今則改梓宮一款, 不須復論, 而啓梓宮之擧, 亦多難便之節矣。" 上曰: "啓梓宮, 固知事體之重大, 而倘有意外之事, 則將奈何?" 承旨李元楨曰: "衣襨雖或少縮, 所縮只在上面四旁, 則必襯貼, 寧有動搖之患乎?" 上曰: "此言有理矣。" 壽興曰: "宋判府事之意以爲不可啓。 領相在陵底路邊, 臣來時歷見, 則亦以爲決不可。 而兩臣處旣有問議之敎, 啓梓宮一款, 當待其回啓而定之耶?" 上曰: "右相旣與兩臣相議而來, 不須待其回啓, 以不啓定之。" 善澂進曰: "梓宮設或有事, 聖體未寧, 則決難勞動。 況今梓宮無事, 而玉候方在違豫中, 且拘忌之疾, 遍熾城中, 此時動駕, 極是危道。 願下明白之敎, 亟停舊陵之行。" 壽興等皆力請, 上曰: "哀慟罔極之情, 不忍廢梓宮省謁之禮, 藥房累啓而不從矣。 今病勢無減, 而卿等之懇至此, 徐待日氣和暖, 當往展謁新陵耳。"
현종 14년 (1673) 10월 1일
현종개수실록27권, 현종 14년 10월 1일 정유 1/1 기사 / 1673년 청 강희(康熙) 12년
김수흥이 재궁을 여는 것이 사체상 중대함을 아뢰다
국역
상이 흥정당(興政堂)에 나아가 총호사(總護使) 김수흥(金壽興)을 인견하였는데, 판서 조형(趙珩)과 대사헌 장선징(張善瀓)도 청대하여 입시하였다. 수흥이 아뢰기를,
"재궁(梓宮)과 광중(壙中)의 상태가 일단 정상이니, 그 다행스러움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사방의 돌을 파낼 때에는 꽤 습기가 있었습니다만 다시 3척을 파 보니 흙 색깔이 건조하여 조금도 습기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 겹의 구의(柩衣)도 모두 금단(錦段)의 본 색깔 그대로인 데다가 굳게 묶여져 있었으며 재궁의 칠 색깔도 정상이었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재궁을 바꾸는 한 조목에 대해서는 다시 거론할 것이 없겠는데, 재궁을 여는 일에는 역시 불편한 일이 많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재궁을 여는 것이 사체상 중대한 일이라는 것을 물론 알고 있다만, 혹시라도 뜻밖의 일이 있다면 장차 어떻게 하겠는가."
하였다. 승지 이원정(李元禎)이 아뢰기를,
"의대(衣襨)가 혹 조금 줄어들었을지라도 줄어든 부분이 고작 상면 사방에 불과할 것이고 보면 반드시 바싹 가까이 달라붙어 있을 것입니다. 어찌 흔들릴 근심이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이 일리가 있다."
하였다. 수흥이 아뢰기를,
"송(宋) 판부사의 뜻은 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상이 능 밑 도로변에 있기에 신이 올 때 찾아가 보니 그도 열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두 신하에게 물어서 의논하라고 이미 분부를 내리셨으니, 재궁을 여는 조목에 대해서는 회계(回啓)를 기다려서 정해야 합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우상 이 이미 두 신하와 상의하고 온 이상 회계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열지 않는 것으로 정하라."
하였다. 장선징이 나아가 아뢰기를,
"재궁에 설혹 일이 있다 하더라도 성상의 몸이 편찮으시면 쉽게 거둥하시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재궁도 아무 일이 없고 현재 성상의 건강도 불편하신 중에 계십니다. 꺼려야 할 질병이 성안에 가득 돌고 있으니, 이런 때 어가(御駕)를 움직이시는 것이야말로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원하옵건대 명백하게 분부를 내리시어 구릉(舊陵) 행차를 속히 정지시키소서."
하고, 김수흥 등이 모두 강력히 청하니, 상이 이르기를,
"애통하고 망극한 정으로 볼 때 재궁을 성알(省謁)하는 예를 차마 폐하지 못하겠기에 약방이 누차 아뢰었어도 따르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병세가 줄어들지 않고 경들이 또 이렇게까지 간곡히 말하니 서서히 날씨가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신릉(新陵)에 가서 전알(展謁)할 수밖에 없다."
하였다.
원문
○朔日丁酉/上御興政堂, 引見摠護使金壽興, 禮曹判書趙珩、大司憲張善澂亦請對入侍。 壽興曰: "梓宮壙中, 旣得平安, 慶幸何可勝言? 四方石掘出之際, 頗有濕氣, 而復掘三尺, 則土色乾燥, 少無濕氣。 柩衣三重, 皆有錦段本色, 且甚堅紉。 梓宮漆色如常, 今則改梓宮一款, 不須復論, 而啓梓宮之擧, 亦多難便之節矣。" 上曰: "啓梓宮, 固知事體之重大, 而倘有意外之事, 則將奈何?" 承旨李元楨曰: "衣襨雖或少縮, 所縮只在上面四旁, 則必襯貼, 寧有動搖之患乎?" 上曰: "此言有理矣。" 壽興曰: "宋判府事之意以爲不可啓。 領相在陵底路邊, 臣來時歷見, 則亦以爲決不可。 而兩臣處旣有問議之敎, 啓梓宮一款, 當待其回啓而定之耶?" 上曰: "右相旣與兩臣相議而來, 不須待其回啓, 以不啓定之。" 善澂進曰: "梓宮設或有事, 聖體未寧, 則決難勞動。 況今梓宮無事, 而玉候方在違豫中, 且拘忌之疾, 遍熾城中, 此時動駕, 極是危道。 願下明白之敎, 亟停舊陵之行。" 壽興等皆力請, 上曰: "哀慟罔極之情, 不忍廢梓宮省謁之禮, 藥房累啓而不從矣。 今病勢無減, 而卿等之懇至此, 徐待日氣和暖, 當往展謁新陵耳。"
원본
현종 14년 (1673) 10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