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개수실록16권, 현종 8년 2월 26일 신미 4/4 기사 / 1667년 청 강희(康熙) 6년
수찬 김석주를 왜인의 접위관으로 보내다
국역
수찬 김석주를 접위관(接慰官)으로 차출해 보냈다. 일찍이 갑오년에 남만인(南蠻人)의 배가 표류해 대정(大靜)의 해변에 도착하였는데, 그들의 탄 배가 죄다 파손되어 돌아갈 수가 없었다. 제주 목사가 치계하여 여쭙자 그들을 그냥 그곳에 머물러 있게 하였다. 병오년 가을에 그중 8명이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가 표류해 일본 오도(五島)에 도착하였다. 오도에서 이들을 붙잡아 장기(長碕)로 보내니 장기 태수가 그들의 거주지를 물어보았는데 아란타(阿蘭陀)의 사람들이었다. 아란타는 곧 일본에 속한 군(郡)이었다. 그 사람들을 강호(江戶)로 들여보냈는데 관백(關白)이 대마 도주(對馬島主)로 하여금 우리 나라에 묻기를,
"해변에 왕래하는 야소종문(耶蘇宗門)의 잔당들을 일일이 기찰하여 통보해 주기로 일찍이 귀국과 약조를 했었다. 그런데 아란타 사람들이 표류해 귀국에 도착했을 때 귀국이 통보하지 않았다. 표류해 돌아온 8명은 비록 아란타 사람이지마는 그 나머지 귀국에 머물러 있는 자들은 필시 야소의 잔당일 것이다."
하면서 여러모로 공갈하였다. 대개 야소는 즉 서양에 있는 별도의 종자인데 요술이 있어서 어리석은 사람을 미혹할 수 있었다. 그들이 일찍이 일본과 상통하였는데 뒤에 틈이 생겨 관백이 매우 미워하였으므로 매양 우리 나라에게 붙잡아 보내주라고 요청하였다. 이번에 아란타 사람들이 표류해 일본에 도착했을 때 관백이 우리 나라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 야소가 아닌 줄을 알고도 이를 트집잡아 권현당(權現堂)에 쓸 향화(香火)를 요구할 구실거리로 삼은 것이다. 그리하여 차왜(差倭)가 나와 관(館)에 40일을 머물러 있었으나 조정에서 일부러 응하지 않았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석주를 접위관으로 차출하여 보낸 것이다.
원문
○以修撰金錫冑差接慰官以遣。 曾在甲午年間, 有蠻船漂到大靜海邊, 其所乘船, 盡爲毁破, 不得還歸。 濟州牧使馳啓以稟, 使之仍留其地。 丙午秋, 其中八人, 以漁採出海, 漂到日本 五島。 五島捉送長碕, 長碕太守, 問其根因, 乃阿蘭陁人也。 阿蘭陁卽日本屬郡也。 以其人入送江戶, 闕白使對馬島主, 問於我國曰: "耶蘇宗門餘黨之往來海邊者, 曾約貴國, 一一譏察以通矣。 阿蘭陁之漂到貴國也, 貴國不爲通知。 漂還八人, 則雖是阿蘭陁人, 其餘留在貴國者, 必是耶蘇餘黨。" 多般恐喝。 蓋耶蘇卽西洋海外別種, 而有妖術, 能誑惑愚民。 曾與日本相通, 後有釁隙, 關白甚嫉之, 每請我國譏捕以送。 今此阿蘭陁之漂到日本也, 關白知留在我國者非耶蘇, 而執此爲言, 以爲求索權現堂香火之資。 差倭出來, 留館四十日, 朝廷故不應, 至是以錫冑差接慰官以送。
현종 8년 (1667) 2월 26일
현종개수실록16권, 현종 8년 2월 26일 신미 4/4 기사 / 1667년 청 강희(康熙) 6년
수찬 김석주를 왜인의 접위관으로 보내다
국역
수찬 김석주를 접위관(接慰官)으로 차출해 보냈다. 일찍이 갑오년에 남만인(南蠻人)의 배가 표류해 대정(大靜)의 해변에 도착하였는데, 그들의 탄 배가 죄다 파손되어 돌아갈 수가 없었다. 제주 목사가 치계하여 여쭙자 그들을 그냥 그곳에 머물러 있게 하였다. 병오년 가을에 그중 8명이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가 표류해 일본 오도(五島)에 도착하였다. 오도에서 이들을 붙잡아 장기(長碕)로 보내니 장기 태수가 그들의 거주지를 물어보았는데 아란타(阿蘭陀)의 사람들이었다. 아란타는 곧 일본에 속한 군(郡)이었다. 그 사람들을 강호(江戶)로 들여보냈는데 관백(關白)이 대마 도주(對馬島主)로 하여금 우리 나라에 묻기를,
"해변에 왕래하는 야소종문(耶蘇宗門)의 잔당들을 일일이 기찰하여 통보해 주기로 일찍이 귀국과 약조를 했었다. 그런데 아란타 사람들이 표류해 귀국에 도착했을 때 귀국이 통보하지 않았다. 표류해 돌아온 8명은 비록 아란타 사람이지마는 그 나머지 귀국에 머물러 있는 자들은 필시 야소의 잔당일 것이다."
하면서 여러모로 공갈하였다. 대개 야소는 즉 서양에 있는 별도의 종자인데 요술이 있어서 어리석은 사람을 미혹할 수 있었다. 그들이 일찍이 일본과 상통하였는데 뒤에 틈이 생겨 관백이 매우 미워하였으므로 매양 우리 나라에게 붙잡아 보내주라고 요청하였다. 이번에 아란타 사람들이 표류해 일본에 도착했을 때 관백이 우리 나라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 야소가 아닌 줄을 알고도 이를 트집잡아 권현당(權現堂)에 쓸 향화(香火)를 요구할 구실거리로 삼은 것이다. 그리하여 차왜(差倭)가 나와 관(館)에 40일을 머물러 있었으나 조정에서 일부러 응하지 않았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석주를 접위관으로 차출하여 보낸 것이다.
원문
○以修撰金錫冑差接慰官以遣。 曾在甲午年間, 有蠻船漂到大靜海邊, 其所乘船, 盡爲毁破, 不得還歸。 濟州牧使馳啓以稟, 使之仍留其地。 丙午秋, 其中八人, 以漁採出海, 漂到日本 五島。 五島捉送長碕, 長碕太守, 問其根因, 乃阿蘭陁人也。 阿蘭陁卽日本屬郡也。 以其人入送江戶, 闕白使對馬島主, 問於我國曰: "耶蘇宗門餘黨之往來海邊者, 曾約貴國, 一一譏察以通矣。 阿蘭陁之漂到貴國也, 貴國不爲通知。 漂還八人, 則雖是阿蘭陁人, 其餘留在貴國者, 必是耶蘇餘黨。" 多般恐喝。 蓋耶蘇卽西洋海外別種, 而有妖術, 能誑惑愚民。 曾與日本相通, 後有釁隙, 關白甚嫉之, 每請我國譏捕以送。 今此阿蘭陁之漂到日本也, 關白知留在我國者非耶蘇, 而執此爲言, 以爲求索權現堂香火之資。 差倭出來, 留館四十日, 朝廷故不應, 至是以錫冑差接慰官以送。
원본
현종 8년 (1667) 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