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실록19권, 현종 12년 2월 29일 신해 5/5 기사 / 1671년 청 강희(康熙) 10년
팔도에 기아와 여역과 마마가 심하다
국역
팔도에 기아와 여역과 마마로 죽은 백성을 이루다 기록할 수 없는 정도였는데, 삼남(三南)이 더욱 심하였다. 그리고 물에 빠지고 불에 타서 죽고 범에게 물려 죽은 자도 많았다. 늙은이들의 말로는 이런 상황은 태어난 뒤로 보거나 들어본 적이 없는 것으로서 참혹한 죽음이 임진년의 병화보다도 더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수령이 보고한 것은 죽을 쑤어 먹이는 곳에서 죽은 자만 거론하였을 뿐이고 촌락에서 굶어 죽고 도로에서 굶어 죽은 자는 대부분 기록하지 않았다. 심한 자는 진구를 잘하였다는 이름을 얻으려고 서로가 경쟁하여 덮어 두고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았으므로 계문한 숫자는 겨우 열에 한둘이었다.
원문
현종실록19권, 현종 12년 2월 29일 신해 5/5 기사 / 1671년 청 강희(康熙) 10년
팔도에 기아와 여역과 마마가 심하다
국역
팔도에 기아와 여역과 마마로 죽은 백성을 이루다 기록할 수 없는 정도였는데, 삼남(三南)이 더욱 심하였다. 그리고 물에 빠지고 불에 타서 죽고 범에게 물려 죽은 자도 많았다. 늙은이들의 말로는 이런 상황은 태어난 뒤로 보거나 들어본 적이 없는 것으로서 참혹한 죽음이 임진년의 병화보다도 더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수령이 보고한 것은 죽을 쑤어 먹이는 곳에서 죽은 자만 거론하였을 뿐이고 촌락에서 굶어 죽고 도로에서 굶어 죽은 자는 대부분 기록하지 않았다. 심한 자는 진구를 잘하였다는 이름을 얻으려고 서로가 경쟁하여 덮어 두고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았으므로 계문한 숫자는 겨우 열에 한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