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실록19권, 효종 8년 9월 21일 경신 3/4 기사 / 1657년 청 순치(順治) 14년
《실록》 수정청이 인조·선조조 《실록》의 세초(洗草)에 대해 아뢰다
국역
실록 수정청(實錄修正廳)이 아뢰기를,
"지난 기사년099) 에 인조조의 실록을 세초(洗草)할 때 초초(初草)와 중초(中草) 및 사관이 적은 시정기(時政記) 모두가 세초 속에 포함됐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시정기까지 세초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증거할 만한 전례는 없으나 일의 형세로 헤아려 본다면 역대 조정의 역사 기록을 두 종류로 전할 수 없습니다. 이로 인해 일찍이 사국에서 일한 신료들에게 널리 자문해 보라는 명이 계셨습니다. 그리하여 일찍이 사국에서 일했던 옛날 신료인 김신국(金藎國)·민형남(閔馨男)·심액(沈詻)에게 물어보았더니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면서 ‘감히 갑작스럽게 단정할 수 없으니 잠시 창고 속에 깊이 보관해 두고 차근히 의논해 처리하자.’고 말하였기 때문에 그때에 시정기를 감히 함께 세초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보관해 두고 있습니다. 이는 두 종류가 같이 전해질 것이니 참으로 온당치 못합니다.
삼가 선조조(宣祖朝)의 실록을 보건대, 병오년100) 에 역대 실록을 인출해 낼 때 간혹 글자가 흐려 사용하지 못할 책의 숫자가 무려 60여 책에 이르렀습니다. 본청이 세초하는 예대로 아울러 처리할 것을 품계하니, 답하기를 ‘전에 들으니 세초할 때에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거행하지 않아 사초가 그대로 창고 속에 있다고 하였다. 지금 다시 옛날 습관을 답습해서는 안될 것이니 하나하나 불태우는 것이 옳을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이 하교로 본다면 두 종류를 같이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증거할 만한 분명한 예입니다. 전일에 보관해 둔 시정기를 이번 세초 때에 불사를 필요 없이 아울러 세초 속에 포함시켜 선조(宣祖)의 분명한 전교를 받드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이미 결정된 명을 받들어 이행할 바에는 이번에도 불태우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15면
- 【분류】역사-편사(編史)
원문
○實錄修正廳啓曰: "往在癸巳年, 《仁祖朝實錄》洗草時, 初草中草及史官時政記, 竝皆應入於洗草之中。 或以爲時政記, 則不可竝洗云。 無前例可據, 而揆以事勢, 則累朝史記, 不可以兩件流傳, 有廣詢於曾經史局之臣之命。 問于曾經史局舊臣金藎國、閔馨男、沈詻, 則皆不記憶, 以爲不敢遽爾斷定, 姑爲密藏庫中, 徐議處置爲言, 故其時時政記, 不敢竝洗, 至今藏置。 此則兩件將竝流傳, 誠極未妥。 臣等於今番修正時, 伏見宣祖朝實錄, 則丙午年累朝實錄印出時, 或有濃墨不用之數, 多至於六十餘卷。 本廳以竝依洗草例處之稟啓, 則答曰: ‘前聞洗草時, 慢不擧行, 史草仍在庫中, 今不可復踵前習, 一一焚之可也。’ 以此下敎觀之, 則兩件不可竝行, 明是可據之例。 前日藏置時政記, 今番洗草時, 不必焚之, 竝入於洗之之中, 奉行宣祖之明敎爲當。" 答曰: "旣已奉行成命, 則今亦焚之。"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15면
- 【분류】역사-편사(編史)
효종 8년 (1657) 9월 21일
효종실록19권, 효종 8년 9월 21일 경신 3/4 기사 / 1657년 청 순치(順治) 14년
《실록》 수정청이 인조·선조조 《실록》의 세초(洗草)에 대해 아뢰다
국역
실록 수정청(實錄修正廳)이 아뢰기를,
"지난 기사년099) 에 인조조의 실록을 세초(洗草)할 때 초초(初草)와 중초(中草) 및 사관이 적은 시정기(時政記) 모두가 세초 속에 포함됐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시정기까지 세초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증거할 만한 전례는 없으나 일의 형세로 헤아려 본다면 역대 조정의 역사 기록을 두 종류로 전할 수 없습니다. 이로 인해 일찍이 사국에서 일한 신료들에게 널리 자문해 보라는 명이 계셨습니다. 그리하여 일찍이 사국에서 일했던 옛날 신료인 김신국(金藎國)·민형남(閔馨男)·심액(沈詻)에게 물어보았더니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면서 ‘감히 갑작스럽게 단정할 수 없으니 잠시 창고 속에 깊이 보관해 두고 차근히 의논해 처리하자.’고 말하였기 때문에 그때에 시정기를 감히 함께 세초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보관해 두고 있습니다. 이는 두 종류가 같이 전해질 것이니 참으로 온당치 못합니다.
삼가 선조조(宣祖朝)의 실록을 보건대, 병오년100) 에 역대 실록을 인출해 낼 때 간혹 글자가 흐려 사용하지 못할 책의 숫자가 무려 60여 책에 이르렀습니다. 본청이 세초하는 예대로 아울러 처리할 것을 품계하니, 답하기를 ‘전에 들으니 세초할 때에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거행하지 않아 사초가 그대로 창고 속에 있다고 하였다. 지금 다시 옛날 습관을 답습해서는 안될 것이니 하나하나 불태우는 것이 옳을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이 하교로 본다면 두 종류를 같이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증거할 만한 분명한 예입니다. 전일에 보관해 둔 시정기를 이번 세초 때에 불사를 필요 없이 아울러 세초 속에 포함시켜 선조(宣祖)의 분명한 전교를 받드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이미 결정된 명을 받들어 이행할 바에는 이번에도 불태우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15면
- 【분류】역사-편사(編史)
원문
○實錄修正廳啓曰: "往在癸巳年, 《仁祖朝實錄》洗草時, 初草中草及史官時政記, 竝皆應入於洗草之中。 或以爲時政記, 則不可竝洗云。 無前例可據, 而揆以事勢, 則累朝史記, 不可以兩件流傳, 有廣詢於曾經史局之臣之命。 問于曾經史局舊臣金藎國、閔馨男、沈詻, 則皆不記憶, 以爲不敢遽爾斷定, 姑爲密藏庫中, 徐議處置爲言, 故其時時政記, 不敢竝洗, 至今藏置。 此則兩件將竝流傳, 誠極未妥。 臣等於今番修正時, 伏見宣祖朝實錄, 則丙午年累朝實錄印出時, 或有濃墨不用之數, 多至於六十餘卷。 本廳以竝依洗草例處之稟啓, 則答曰: ‘前聞洗草時, 慢不擧行, 史草仍在庫中, 今不可復踵前習, 一一焚之可也。’ 以此下敎觀之, 則兩件不可竝行, 明是可據之例。 前日藏置時政記, 今番洗草時, 不必焚之, 竝入於洗之之中, 奉行宣祖之明敎爲當。" 答曰: "旣已奉行成命, 則今亦焚之。"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15면
- 【분류】역사-편사(編史)
원본
효종 8년 (1657) 9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