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실록9권, 효종 3년 11월 21일 기축 4/5 기사 / 1652년 청 순치(順治) 9년
집의 조한영이 인피하는 상소
국역
집의 조한영(曺漢英)이 인피하기를,
"아, 지금이 어떠한 때입니까. 위로는 인애(仁愛)한 하늘이 위엄을 부려 전에 없던 재앙이 날마다 일어나며, 민심은 이산(離散)되는 조짐이 있고 진신(搢紳)은 시새고 의심하는 자취가 있어 국가의 위망이 조석에 닥쳐 있으니, 조정 신하들이 마음과 힘을 같이하여 국가를 앞세우고 사정(私情)을 뒤로 하더라도 위험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생각건대 일개 이상진(李象震)의 알성 여부가 국가에 무슨 큰 관계가 있기에 이제 갑자기 말썽을 만들고 풍랑을 일으켜 양사의 많은 관원이 이 때문에 다 비게 합니까. 국가의 기상이 날로 잘못되어 가는데, 혹 조금이라도 군신의 의리와 경중의 분별을 안다면 이러한 때에 어찌 차마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슬픔과 탄식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 일에는 대개 허다한 곡절이 있는데 전후 여러 관원이 인피한 사연이 혹 소략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치우치기도 하였으니, 아마 성명께서도 그 전말을 통촉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신이 어쩔 수 없이 시위에 먹인 화살을 쏘는 것이지 어찌 즐겨서 이 두려운 말을 하겠습니까.
지난번 문과 신은(新恩)의 알성 때에 반중(泮中)의 많은 선비들이 이상진은 연전에 소를 올려 선현을 모욕했으므로 사문(斯文)에 죄를 얻었다 하여 들어가 뵙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상진에게 잘못이 있었더라도 이미 학궁의 벌을 행하였는데, 이제 또 출신한 뒤에 제기하여 그가 선(善)을 향해 가려는 길을 막았으니, 유생들의 논의도 너무 과격하고 중도를 잃어 매우 한탄스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전에 없던 일을 새로 꾸며 낸 것이 아닙니다. 신이 일찍이 선왕조에서 신은으로 알성할 때에 유생들이 그 방중(榜中)에 채진후(蔡振後)의 상소에 참여한 자가 있다 하여 끝내 그 사람의 알성을 허가하지 않았는데, 그 밖의 열 사람은 들어가 배알하고 물러갔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소두(疏頭)와 그 소에 참여한 사람간에는 또한 차별이 있고 그때의 사론에는 더욱 잘못이 있었으나, 조정에서는 끝내 알지도 못했고 별도로 장무관(掌務官)의 추고를 청한 논의가 없었습니다. 오직 그 사람이 【정창주(鄭昌胄)이다.】 출신한 뒤에 재주가 쓸 만하고, 젊었을 때의 잘못은 추후에 허물할 것이 없으므로 탕척하고 현직에 등용하여 대성(臺省)에 출입하도록 하였으니, 국가가 진정시키고 조정하는 도리로서는 또한 이렇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이상진이 전일의 잘못을 뉘우치고 씻어버려 스스로 새로워졌다면, 조정에서 사람을 쓸 때에 그 재주를 볼 것이니 알성하지 못하는 것이 어찌 흠이 되기까지 하겠습니까. 그런데 알성할 때에 이상진의 무리 약간 명이 팔을 휘두르며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이상진이 허가받지 못하면 우리들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하며 유생을 협박할 생각을 하다가 끝내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자 서로 따라서 나왔습니다. 성묘(聖廟)의 지척에서 스스로 판단하여 들어가지 않고 뒤질세라 이상진을 따랐으니, 어찌 붕당을 감싸는 것만 중히 여기고 성묘에 배알하는 것은 가벼이 여김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거조가 이미 매우 해괴한데도 도리어 알성한 다른 사람을 미워하여 ‘화톳불을 피우고 예를 행한 것이 버릇없고 불경하다.’고 말하였습니다. 밤중에 알성하는 것은 본디 미안한 일입니다마는, 그날을 놓치면 대례(大禮)를 폐하게 될 것이므로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결과였으니, 끝내 예를 거행하지 않는 것보다 오히려 낫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대개 극도로 의기소침한 나머지 억지로 이런 말을 해서 이기려 했으나 마침내 이길 수 없자 기필코 대관을 시켜 관계없는 관관(館官)의 추고를 청하기까지 하여 한때의 시비를 거짓으로 정하려 한 것일 것이니, 그 마음쓴 것이 수치스러워 신은 죄다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홍무적이 당초에 거론하려 하지 않은 것은 선조의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니, 대개 진정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최욱(崔煜)처럼 자립하지 못하고 남에게 부림을 당한 자는 또 하나의 신홍망(申弘望)일 뿐이니, 본디 무슨 책망할 것이 있겠습니까. 목행선(睦行善)으로 말하면, 신은 평소 그 사람이 매우 침착하여 경박한 말을 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일가의 사정(私情)에 끌림을 면하지 못하여 먼저 들은 말을 위주로 인피한다고 핑계하고는 도리어 시비를 늘어놓았는데, 그 장황한 변설(辯說)이 관례에 따른 조치에서 벗어났으니, 한낱 ‘사(私)’ 자가 사람의 심술을 무너뜨림이 심합니다. 신이 목행선을 위하여 아깝게 여겼으므로, 일찍이 목행선을 만났을 때에 면대하여 그 잘못을 말하였습니다. 물의가 오는 것은 본디 당연한 것이니, 받아들여 잘못으로 여기는 것이 어찌 군자의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도리어 이리 막고 저리 가리며, 임금에게 숨김없이 고한 것이라고 꾸미고, 책망하는 말이 같지 않다고 배척하였습니다. 말해야 하는데 말하지 않고 말하지 말아야 하는데 말하였으니, 그 책망하는 방도가 어찌 다르지 않을 수 있겠으며, 임금에게 숨김없이 고한다는 것이 어찌 사의(私意)를 가지고 마음대로 억측하는 것을 말하겠습니까.
정계주(鄭繼胄)가 논한 것은 조금도 잘못이 없는데 터무니없다는 말씀이 문득 뜻밖에 내려졌으므로, 신이 오늘 동료와 상의하여 하나는 체차하고 하나는 출사시키는 것으로 처치하였습니다. 그러나 동료의 소견이 매우 상반되어 혐의를 피하지 않은 목행선은 출사해야 하고 산만하게 말을 만든 정계주는 갈아야 한다 하므로 반복해서 상의하였으나 끝내 의논이 통일되지 못하였습니다. 모두가 신이 믿음을 받지 못한 탓인데 마침내 뭇사람을 따라 번잡하게 한 책임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간찰(簡札)을 소매에 담고 대청(臺廳)에 나아가기도 부끄러운데 어찌 감히 뻔뻔스럽게 그대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의 벼슬을 갈아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시경》에 ‘다들 자기를 지혜롭다 하지만 까마귀의 암수를 누가 알겠는가.’ 한 것이 참으로 너희들을 말한 것이다.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정익 등이 모두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52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590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원문
○執義曺漢英引避曰: "嗚呼, 此何等時耶? 仁愛之天, 疾威於上, 無前之災, 式日斯生, 民心有離散之漸, 搢紳有猜疑之迹, 國家危亡, 迫在朝夕, 雖使在廷之臣, 竱心一力, 先國後私, 猶懼不出於險。 顧此一象震之謁聖與否, 有何大關於國家, 而今忽別生閙端, 鼓揚風浪, 使兩司多官, 因此一空? 朝家氣象, 日益不佳, 如或少知君臣之義、輕重之分, 當此之時, 豈忍爲此哉? 臣不勝慨然歎息也。 此事蓋有許多曲折, 而前後多官引避之辭, 或失之踈略、或陷於一偏, 竊想聖明, 亦未能洞燭其顚末。 臣不得不發弦上之矢, 夫豈樂爲此嘵嘵乎? 頃日文科新恩之謁聖也, 泮中多士, 以象震年前投疏, 侮辱先賢, 得罪斯文, 不許入謁。 其時象震, 雖有所失, 而旣行學宮之罰, 今又提起於出身之後, 以絶其向善之路, 則諸生之論, 固亦傷於激, 而失其中, 甚可歎也, 然此亦非創搆無前之事也。 臣曾在先朝, 以新恩謁聖時, 儒生輩以其榜中有參蔡振後之疏者, 終不許其人謁聖, 而其他十人則入謁而退矣。 到今思之, 則疏頭與參疏, 亦有差別, 其時士論, 尤有過焉, 而朝廷終不與知, 別無掌務官請推之論, 而惟其人, 【鄭昌胄也。】 出身之後, 才華可用, 少年之失, 不必追咎, 故蕩滌顯用, 出入臺省, 在朝家鎭定調劑之道, 顧不當如是耶? 今使象震悔其前非, 澡雪自新, 則朝廷用人, 當視其才, 不得謁聖, 何至爲累? 而當其謁聖時, 象震一隊若干人, 揚臂齊聲皆言, 象震不見許, 則吾等亦不入, 以爲脅勒儒生之計, 而及其終不許入, 則相率而出。 聖廟咫尺, 自劃不入, 尾隨象震, 唯恐或後, 豈護黨爲重, 而謁聖反不重耶? 似此擧措, 已極可駭, 而反嫉他人之謁聖者, 乃以設燎行禮, 褺慢不敬爲言。 夜謁廟庭, 固是未安, 而若失其日, 將廢大禮, 其亦出於不得已, 而不猶愈於終不行禮者乎? 此蓋無聊之極, 强爲此言, 以求勝而卒不可勝, 故必至指嗾臺官, 請推不干之館官, 乃欲僞定一時之是非, 其設心之可愧, 不欲盡言也。 洪茂績之初不欲提論者, 必是曾識先朝之事, 蓋欲鎭定之也。 如崔煜之不能自立, 爲役於人者, 亦一申弘望耳, 固何足責? 至於睦行善, 則臣素知其人, 深沈不爲浮薄之論, 而到今未免牽於一家之私, 主其先入之說, 托以引嫌, 而乃反論列是非, 其張皇辨說, 不止循例處置, 甚矣一箇私字之壞人心術也。 臣竊爲行善惜之, 故曾遇行善, 面言其非。 物議之來, 固所當然, 受以爲過, 豈非君子之美事, 而乃反左遮右掩, 文之以告君無隱, 斥之以責有異同。 當言而不言, 不當言而言, 其所以責之者, 安得以不異, 告君無隱, 豈挾私逞臆之謂乎? 鄭繼胄之所論, 小無所失, 而無據之敎, 遽下意外, 故臣於今日, 與同僚相議處置, 一遞一出, 而同僚所見, 不啻楚、越, 睦行善之不避嫌疑, 則謂之當出; 鄭繼胄之措語支蔓, 則謂之當遞, 反覆商確, 終未歸一。 無非臣不能見信之致, 而終未免隨衆瀆擾之歸, 袖簡詣臺, 有靦乎面, 何敢仍冒? 請遞臣職。" 答曰: "《詩》云: ‘具曰予聖, 誰知烏之雌雄?’ 誠爾等之謂也。 勿辭。" 榏等竝退待物論。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52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590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효종실록9권, 효종 3년 11월 21일 기축 4/5 기사 / 1652년 청 순치(順治) 9년
집의 조한영이 인피하는 상소
국역
집의 조한영(曺漢英)이 인피하기를,
"아, 지금이 어떠한 때입니까. 위로는 인애(仁愛)한 하늘이 위엄을 부려 전에 없던 재앙이 날마다 일어나며, 민심은 이산(離散)되는 조짐이 있고 진신(搢紳)은 시새고 의심하는 자취가 있어 국가의 위망이 조석에 닥쳐 있으니, 조정 신하들이 마음과 힘을 같이하여 국가를 앞세우고 사정(私情)을 뒤로 하더라도 위험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생각건대 일개 이상진(李象震)의 알성 여부가 국가에 무슨 큰 관계가 있기에 이제 갑자기 말썽을 만들고 풍랑을 일으켜 양사의 많은 관원이 이 때문에 다 비게 합니까. 국가의 기상이 날로 잘못되어 가는데, 혹 조금이라도 군신의 의리와 경중의 분별을 안다면 이러한 때에 어찌 차마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슬픔과 탄식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 일에는 대개 허다한 곡절이 있는데 전후 여러 관원이 인피한 사연이 혹 소략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치우치기도 하였으니, 아마 성명께서도 그 전말을 통촉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신이 어쩔 수 없이 시위에 먹인 화살을 쏘는 것이지 어찌 즐겨서 이 두려운 말을 하겠습니까.
지난번 문과 신은(新恩)의 알성 때에 반중(泮中)의 많은 선비들이 이상진은 연전에 소를 올려 선현을 모욕했으므로 사문(斯文)에 죄를 얻었다 하여 들어가 뵙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상진에게 잘못이 있었더라도 이미 학궁의 벌을 행하였는데, 이제 또 출신한 뒤에 제기하여 그가 선(善)을 향해 가려는 길을 막았으니, 유생들의 논의도 너무 과격하고 중도를 잃어 매우 한탄스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전에 없던 일을 새로 꾸며 낸 것이 아닙니다. 신이 일찍이 선왕조에서 신은으로 알성할 때에 유생들이 그 방중(榜中)에 채진후(蔡振後)의 상소에 참여한 자가 있다 하여 끝내 그 사람의 알성을 허가하지 않았는데, 그 밖의 열 사람은 들어가 배알하고 물러갔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소두(疏頭)와 그 소에 참여한 사람간에는 또한 차별이 있고 그때의 사론에는 더욱 잘못이 있었으나, 조정에서는 끝내 알지도 못했고 별도로 장무관(掌務官)의 추고를 청한 논의가 없었습니다. 오직 그 사람이 【정창주(鄭昌胄)이다.】 출신한 뒤에 재주가 쓸 만하고, 젊었을 때의 잘못은 추후에 허물할 것이 없으므로 탕척하고 현직에 등용하여 대성(臺省)에 출입하도록 하였으니, 국가가 진정시키고 조정하는 도리로서는 또한 이렇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이상진이 전일의 잘못을 뉘우치고 씻어버려 스스로 새로워졌다면, 조정에서 사람을 쓸 때에 그 재주를 볼 것이니 알성하지 못하는 것이 어찌 흠이 되기까지 하겠습니까. 그런데 알성할 때에 이상진의 무리 약간 명이 팔을 휘두르며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이상진이 허가받지 못하면 우리들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하며 유생을 협박할 생각을 하다가 끝내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자 서로 따라서 나왔습니다. 성묘(聖廟)의 지척에서 스스로 판단하여 들어가지 않고 뒤질세라 이상진을 따랐으니, 어찌 붕당을 감싸는 것만 중히 여기고 성묘에 배알하는 것은 가벼이 여김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거조가 이미 매우 해괴한데도 도리어 알성한 다른 사람을 미워하여 ‘화톳불을 피우고 예를 행한 것이 버릇없고 불경하다.’고 말하였습니다. 밤중에 알성하는 것은 본디 미안한 일입니다마는, 그날을 놓치면 대례(大禮)를 폐하게 될 것이므로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결과였으니, 끝내 예를 거행하지 않는 것보다 오히려 낫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대개 극도로 의기소침한 나머지 억지로 이런 말을 해서 이기려 했으나 마침내 이길 수 없자 기필코 대관을 시켜 관계없는 관관(館官)의 추고를 청하기까지 하여 한때의 시비를 거짓으로 정하려 한 것일 것이니, 그 마음쓴 것이 수치스러워 신은 죄다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홍무적이 당초에 거론하려 하지 않은 것은 선조의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니, 대개 진정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최욱(崔煜)처럼 자립하지 못하고 남에게 부림을 당한 자는 또 하나의 신홍망(申弘望)일 뿐이니, 본디 무슨 책망할 것이 있겠습니까. 목행선(睦行善)으로 말하면, 신은 평소 그 사람이 매우 침착하여 경박한 말을 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일가의 사정(私情)에 끌림을 면하지 못하여 먼저 들은 말을 위주로 인피한다고 핑계하고는 도리어 시비를 늘어놓았는데, 그 장황한 변설(辯說)이 관례에 따른 조치에서 벗어났으니, 한낱 ‘사(私)’ 자가 사람의 심술을 무너뜨림이 심합니다. 신이 목행선을 위하여 아깝게 여겼으므로, 일찍이 목행선을 만났을 때에 면대하여 그 잘못을 말하였습니다. 물의가 오는 것은 본디 당연한 것이니, 받아들여 잘못으로 여기는 것이 어찌 군자의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도리어 이리 막고 저리 가리며, 임금에게 숨김없이 고한 것이라고 꾸미고, 책망하는 말이 같지 않다고 배척하였습니다. 말해야 하는데 말하지 않고 말하지 말아야 하는데 말하였으니, 그 책망하는 방도가 어찌 다르지 않을 수 있겠으며, 임금에게 숨김없이 고한다는 것이 어찌 사의(私意)를 가지고 마음대로 억측하는 것을 말하겠습니까.
정계주(鄭繼胄)가 논한 것은 조금도 잘못이 없는데 터무니없다는 말씀이 문득 뜻밖에 내려졌으므로, 신이 오늘 동료와 상의하여 하나는 체차하고 하나는 출사시키는 것으로 처치하였습니다. 그러나 동료의 소견이 매우 상반되어 혐의를 피하지 않은 목행선은 출사해야 하고 산만하게 말을 만든 정계주는 갈아야 한다 하므로 반복해서 상의하였으나 끝내 의논이 통일되지 못하였습니다. 모두가 신이 믿음을 받지 못한 탓인데 마침내 뭇사람을 따라 번잡하게 한 책임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간찰(簡札)을 소매에 담고 대청(臺廳)에 나아가기도 부끄러운데 어찌 감히 뻔뻔스럽게 그대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의 벼슬을 갈아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시경》에 ‘다들 자기를 지혜롭다 하지만 까마귀의 암수를 누가 알겠는가.’ 한 것이 참으로 너희들을 말한 것이다.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정익 등이 모두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52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590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원문
○執義曺漢英引避曰: "嗚呼, 此何等時耶? 仁愛之天, 疾威於上, 無前之災, 式日斯生, 民心有離散之漸, 搢紳有猜疑之迹, 國家危亡, 迫在朝夕, 雖使在廷之臣, 竱心一力, 先國後私, 猶懼不出於險。 顧此一象震之謁聖與否, 有何大關於國家, 而今忽別生閙端, 鼓揚風浪, 使兩司多官, 因此一空? 朝家氣象, 日益不佳, 如或少知君臣之義、輕重之分, 當此之時, 豈忍爲此哉? 臣不勝慨然歎息也。 此事蓋有許多曲折, 而前後多官引避之辭, 或失之踈略、或陷於一偏, 竊想聖明, 亦未能洞燭其顚末。 臣不得不發弦上之矢, 夫豈樂爲此嘵嘵乎? 頃日文科新恩之謁聖也, 泮中多士, 以象震年前投疏, 侮辱先賢, 得罪斯文, 不許入謁。 其時象震, 雖有所失, 而旣行學宮之罰, 今又提起於出身之後, 以絶其向善之路, 則諸生之論, 固亦傷於激, 而失其中, 甚可歎也, 然此亦非創搆無前之事也。 臣曾在先朝, 以新恩謁聖時, 儒生輩以其榜中有參蔡振後之疏者, 終不許其人謁聖, 而其他十人則入謁而退矣。 到今思之, 則疏頭與參疏, 亦有差別, 其時士論, 尤有過焉, 而朝廷終不與知, 別無掌務官請推之論, 而惟其人, 【鄭昌胄也。】 出身之後, 才華可用, 少年之失, 不必追咎, 故蕩滌顯用, 出入臺省, 在朝家鎭定調劑之道, 顧不當如是耶? 今使象震悔其前非, 澡雪自新, 則朝廷用人, 當視其才, 不得謁聖, 何至爲累? 而當其謁聖時, 象震一隊若干人, 揚臂齊聲皆言, 象震不見許, 則吾等亦不入, 以爲脅勒儒生之計, 而及其終不許入, 則相率而出。 聖廟咫尺, 自劃不入, 尾隨象震, 唯恐或後, 豈護黨爲重, 而謁聖反不重耶? 似此擧措, 已極可駭, 而反嫉他人之謁聖者, 乃以設燎行禮, 褺慢不敬爲言。 夜謁廟庭, 固是未安, 而若失其日, 將廢大禮, 其亦出於不得已, 而不猶愈於終不行禮者乎? 此蓋無聊之極, 强爲此言, 以求勝而卒不可勝, 故必至指嗾臺官, 請推不干之館官, 乃欲僞定一時之是非, 其設心之可愧, 不欲盡言也。 洪茂績之初不欲提論者, 必是曾識先朝之事, 蓋欲鎭定之也。 如崔煜之不能自立, 爲役於人者, 亦一申弘望耳, 固何足責? 至於睦行善, 則臣素知其人, 深沈不爲浮薄之論, 而到今未免牽於一家之私, 主其先入之說, 托以引嫌, 而乃反論列是非, 其張皇辨說, 不止循例處置, 甚矣一箇私字之壞人心術也。 臣竊爲行善惜之, 故曾遇行善, 面言其非。 物議之來, 固所當然, 受以爲過, 豈非君子之美事, 而乃反左遮右掩, 文之以告君無隱, 斥之以責有異同。 當言而不言, 不當言而言, 其所以責之者, 安得以不異, 告君無隱, 豈挾私逞臆之謂乎? 鄭繼胄之所論, 小無所失, 而無據之敎, 遽下意外, 故臣於今日, 與同僚相議處置, 一遞一出, 而同僚所見, 不啻楚、越, 睦行善之不避嫌疑, 則謂之當出; 鄭繼胄之措語支蔓, 則謂之當遞, 反覆商確, 終未歸一。 無非臣不能見信之致, 而終未免隨衆瀆擾之歸, 袖簡詣臺, 有靦乎面, 何敢仍冒? 請遞臣職。" 答曰: "《詩》云: ‘具曰予聖, 誰知烏之雌雄?’ 誠爾等之謂也。 勿辭。" 榏等竝退待物論。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52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590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