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실록34권, 인조 15년 3월 2일 신축 3/3 기사 / 1637년 명 숭정(崇禎) 10년
병조 참판 이시백이 수원 군병의 포로 문제와 명에 대한 파병 문제를 아뢰다
국역
병조 참판 이시백(李時白)이 뵙기를 청하므로 상이 소견하였다. 이시백이 아뢰기를,
"파병(罷兵) 때 수원의 군병 태반이 포로가 되었으니, 매우 참통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성첩을 수비하는 사졸은 노고도 많았는데, 또 이러한 환란을 만나다니 당시의 파병을 너무 서둘렀던 것은 아닌가?"
하고, 이어 한숨쉬며 탄식하기를,
"이서(李曙)의 공로를 어찌 잊겠는가. 국가가 이렇게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산성 때문이었는데, 이서만은 미처 보지 못하고 죽었으니, 나는 그것을 매우 슬퍼한다. 산성에서 내려올 때 한번 찾아가 통곡을 하려고 하였는데 경황이 없어서 실행하지 못하였으니, 심히 한스럽다."
하였다. 이시백이 아뢰기를,
"저들의 약속 조항에 군병을 조발하여 명나라를 침범한다는 설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약속 조항은 아니고 국서(國書) 중에 있었다."
하였다. 이시백이 아뢰기를,
"저들이 만일 사람을 보내 파병을 독촉한다면 매우 난처합니다. 심양에 들어간 대신에게 자세히 알리고 힘써 다투게 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군병을 조발하여 명나라를 공격하는 일을 어찌 차마 하겠는가. 경의 말이 옳다."
하였다.
원문
인조 15년 (1637) 3월 2일
인조실록34권, 인조 15년 3월 2일 신축 3/3 기사 / 1637년 명 숭정(崇禎) 10년
병조 참판 이시백이 수원 군병의 포로 문제와 명에 대한 파병 문제를 아뢰다
국역
병조 참판 이시백(李時白)이 뵙기를 청하므로 상이 소견하였다. 이시백이 아뢰기를,
"파병(罷兵) 때 수원의 군병 태반이 포로가 되었으니, 매우 참통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성첩을 수비하는 사졸은 노고도 많았는데, 또 이러한 환란을 만나다니 당시의 파병을 너무 서둘렀던 것은 아닌가?"
하고, 이어 한숨쉬며 탄식하기를,
"이서(李曙)의 공로를 어찌 잊겠는가. 국가가 이렇게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산성 때문이었는데, 이서만은 미처 보지 못하고 죽었으니, 나는 그것을 매우 슬퍼한다. 산성에서 내려올 때 한번 찾아가 통곡을 하려고 하였는데 경황이 없어서 실행하지 못하였으니, 심히 한스럽다."
하였다. 이시백이 아뢰기를,
"저들의 약속 조항에 군병을 조발하여 명나라를 침범한다는 설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약속 조항은 아니고 국서(國書) 중에 있었다."
하였다. 이시백이 아뢰기를,
"저들이 만일 사람을 보내 파병을 독촉한다면 매우 난처합니다. 심양에 들어간 대신에게 자세히 알리고 힘써 다투게 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군병을 조발하여 명나라를 공격하는 일을 어찌 차마 하겠는가. 경의 말이 옳다."
하였다.
원문
원본
인조 15년 (1637) 3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