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국이 오랑캐와의 국교가 불투명하니 팔도에 교서를 내리자고 하여 내린 교서
비국이 아뢰기를,
"국가가 오랑캐와 적당히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백성을 위한 계책입니다. 지금 이리같이 한없는 욕심을 부려 온갖 방법으로 구색하여, 두 차례 보낸 물건이 모두 퇴박을 맞았으며, 우리에게 폐백을 더 내라고 협박하였는데, 그 수량이 10배 정도가 아니어서 전국의 재력을 다하여도 그 욕심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글을 보내 이를 데 없이 업신여기고 무례하였으니, 그 하나는 중국의 사신처럼 대접해 달라는 것이며 또 하나는 군사를 빌려 주고 전함을 지원해 달라는 것으로 정말 신자로서 차마 들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대의와 관계되어 다른 일은 돌아볼 겨를이 없기 때문에 성상께서 드디어 큰 계책을 정하여 사람을 보내 힐책하고 절교를 고하였습니다. 만약 이 오랑캐가 조금이라도 사람의 마음이 있어서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을 알아 자세를 낮추었더라면 오히려 스스로 새롭게 노력함을 인정해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짐승같은 성질을 가진 저들에게 의리로 책망할 수 없게 되고 보니, 변방의 싸움이 이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수천 리 지역에다 인민도 매우 많고, 조종의 은택이 몸에 배어 있으니, 진실로 각각 충의를 가다듬어 나라와 함께 그 원수에 대항한다면 이 적을 두려워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문신으로 하여금 이 뜻을 왕의 말씀으로 대신 엮어서 팔도에 효유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그 교서(敎書)는 다음과 같다.
"국가가 불행하여 강한 오랑캐와 가까운 이웃을 삼았다. 그들은 오로지 속임수와 폭력을 능사로 삼아 천지 순역(天地順逆)의 자연 도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있어서 인도(人道)로 책망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즉위한 이래 일찍이 한 차례 사개(使介)도 왕래시키지 않았다. 그러자 정묘년 봄에 그들 적이 군사를 일으켜 우리 나라 변방에 기습하였다. 뜻밖에 발생한 일이어서 열진(列鎭)이 와해되어 1순 내에 갑자기 문정까지 박도하였다. 이에 나는 종사와 생령의 대계를 생각하고 잠시 관계를 맺기로 허용하여 화를 늦추는 소지로 삼았다. 그런데 지금 노적(虜賊)이 이리처럼 한없는 욕심을 품고 온갖 방법으로 구색하다 우리가 보낸 폐물을 되돌려 보내면서 우리에게 폐물을 더 내라고 협박하였다. 심지어는 글을 보내 업신여기고 방자하여 무례하기 그지없었다. 그 첫째는 중국의 사신처럼 대접해 달라는 것이며, 둘째는 배를 빌려 주고 군사를 지원해 달라는 것이었으니, 이는 신자로서 차마 들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대의에 관계되어 다른 일은 돌아볼 겨를이 없는 것이기에 사람을 보내 절교를 고하고 맹약을 어긴 데 대해 힐책하였다. 그러나 짐승같은 마음이라 끝내 의리로 회유할 수 없으니 변방의 싸움이 이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불쌍한 우리 백성들은 여러 차례의 변란을 겪고 수재와 한재에 기근까지 겹쳤으니 1년 간이라도 휴식한 적이 있었는가. 말이 여기에 이르고 보니 매우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조종이 백성을 기른 은택이 살과 뼈에 배어서 수족이 머리를 보호하는 듯한 그 정성이 본성에서 우러나고 있다. 진실로 각각 충의를 가다듬어 상하가 함께 원수에 대항한다면 천리의 강토로 남을 두려워할 것이 있겠는가. 이 뜻을 잘 알아 두었다가 후일의 하명을 기다리라."
- 【태백산사고본】 28책 28권 4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512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備局啓曰: "國家之與虜羈縻, 爲生靈計也。 今者狼心無厭, 求索百端, 兩度送物, 竝被却還, 脅我增幣, 不啻十倍, 竭一國之力, 無以充其慾。 甚至貽書侮慢, 無所不至, 一則 曰待以華使, 一則曰借兵助船, 誠非臣子所忍聞。 大義所在, 他不暇顧, 故自上遂定大計, 遣人致詰而告絶。 若使此虜, 稍有性情, 自知愧屈, 猶可許其自新, 而犬羊之性, 難責以義理, 則邊上之釁, 自此始矣。 我國地方數千里, 人民甚衆, 祖宗休澤, 淪浹肌髓, 苟能各勵忠義, 與國同仇, 則何此賊之足畏哉? 令詞臣將此意, 代撰王言, 告諭八方。" 上從之。 其敎書曰:
國家不幸, 與强虜爲近隣。 專以詐力爲能事, 不有天地逆順之理, 不可以人道責也。 故予卽位以來, 未嘗有一介之來往。 丁卯之春, 賊乃興兵, 潛襲我邊鄙。 事出不意, 列鎭瓦解, 一旬之內, 遽迫門庭。 予惟宗社、生靈之大計, 姑許羈縻, 以爲緩禍之地。 今賊狼心無厭, 求索百端, 還我送物, 脅我增幣。 甚至貽書侮慢, 極其無禮。 一則曰待以華使, 二則曰借船、助兵, 此非臣子所可忍聞。 大義所在, 他不可顧。 玆乃差人告絶, 詰以渝盟。 犬羊之心, 終不得諭以義理, 則邊釁自此始矣。 哀我赤子, 屢經變亂, 仍之以水旱、飢饉, 何嘗有一年休息哉? 興言及此, 愍然疚懷。 然而祖宗休養之澤, 浹於肌髓, 頭目捍衛之誠, 出於倫彝。 苟能各勵忠義, 上下同仇, 則豈可以千里, 畏人哉? 宜悉此意, 以待後命。
- 【태백산사고본】 28책 28권 4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512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