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실록15권, 인조 5년 2월 15일 임자 12/14 기사 / 1627년 명 천계(天啓) 7년
비국이 청 군대를 앞뒤에서 공격할 것을 청하다
국역
비국이 아뢰기를,
"신들이 한 시대에 죄를 얻고 만세에 기롱을 남긴 것은 족히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지금 이후부터는 장차 국가를 어느 땅에 두시렵니까? 지금 제도(諸道)의 군사들이 강도(江都)에 호종한 군사를 제외하고 대략 합계가 3만∼4만 명인데, 길을 나누어서 군사를 몰래 전진시켜 기일을 정하여 평양·중화(中和) 등처에 모이기로 했으니 그들이 패강(浿江)을 절반쯤 건널 때를 이용하여 뒤에서 추격하고 김기종(金起宗)의 본도(本道) 병사가 남북(南北)의 여러 군사와 더불어 앞에서 차단하면, 이는 충사도(种師道)가 당시에 말한 계책이어서 혹 시험하여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 적이 퇴각하더라도 오래 주둔할 계책이 없지 않은데 뒤를 추격하는 군사가 없으면 누가 그들이 맹약을 저버리는 것을 책망할 수 있겠습니까. 두 체신(體臣)으로 하여금 상의해서 약속하여 그 기회를 놓치지 말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계사에 이른바 앞을 차단하고 뒤를 추격한다는 것은 실지가 없는 호언 장담에 가까운데, 아마 유소(儒疏)에 동요되어 이렇게 운운하는 것은 아닌가. 그 뜻을 모르겠다. 뒤를 추격하겠다는 일은 체신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조처하도록 하라."
하였다.
원문
○備局啓曰: "臣等之得罪一時, 貽譏萬世, 有不足言, 而自今以往, 將置國於何地也? 目今諸道之軍, 除扈衛江都之外, 略計三四萬。 分道潛師, 期會平壤、中和等處, 乘其半渡浿江, 躡之於後, 金起宗本道之兵與南北諸軍, 扼之於前, 則种師道當日之策, 或可試用矣。 況此賊雖退, 不無久駐之計, 如無躡後之軍, 誰能責其渝盟乎? 請令兩體臣, 通議約束, 無失其機。" 答曰: "啓辭中所謂扼前躡後之說, 似乎無實大言。 無乃動於儒疏, 而有此云云耶? 未曉其意也。 躡後一事, 令體臣議處。"
인조 5년 (1627) 2월 15일
- 강도에 있었다
- 유해가 어제의 일을 사과하므로 예물을 주어 답하다
- 원창군 이구·이홍망을 불러 보다
- 원창군 이구를 인질로 보내고, 요구한 재물은 다 못 보낸다는 내용의 국서
- 합사하여 윤훤·정호서를 효시할 것을 연계하다
- 헌부가 가족을 내보낸 달성위 서경주의 파직을 청하다
- 이민환을 종사관으로 차출하지 말 것을 청하다
- 비국이 공주 목사 한여직을 체직하고 이정신으로 교체하도록 청하다
- 목면·면주·백저포·호피·녹비·왜도·안구마 등을 청에 보내다
- 유해가 연미정에서 조선과 화친하였음을 서약하다
- 사간 윤황이 지금의 화친은 항복이니 화친하지 말 것을 상소하다
- 비국이 청 군대를 앞뒤에서 공격할 것을 청하다
- 경기 감사 이명이 인천 부사 성시헌을 파직시킬 것을 청하다
- 현재의 일을 명에 알리기 위해 갈 사신과 문서를 정하도록 하다
인조실록15권, 인조 5년 2월 15일 임자 12/14 기사 / 1627년 명 천계(天啓) 7년
비국이 청 군대를 앞뒤에서 공격할 것을 청하다
국역
비국이 아뢰기를,
"신들이 한 시대에 죄를 얻고 만세에 기롱을 남긴 것은 족히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지금 이후부터는 장차 국가를 어느 땅에 두시렵니까? 지금 제도(諸道)의 군사들이 강도(江都)에 호종한 군사를 제외하고 대략 합계가 3만∼4만 명인데, 길을 나누어서 군사를 몰래 전진시켜 기일을 정하여 평양·중화(中和) 등처에 모이기로 했으니 그들이 패강(浿江)을 절반쯤 건널 때를 이용하여 뒤에서 추격하고 김기종(金起宗)의 본도(本道) 병사가 남북(南北)의 여러 군사와 더불어 앞에서 차단하면, 이는 충사도(种師道)가 당시에 말한 계책이어서 혹 시험하여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 적이 퇴각하더라도 오래 주둔할 계책이 없지 않은데 뒤를 추격하는 군사가 없으면 누가 그들이 맹약을 저버리는 것을 책망할 수 있겠습니까. 두 체신(體臣)으로 하여금 상의해서 약속하여 그 기회를 놓치지 말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계사에 이른바 앞을 차단하고 뒤를 추격한다는 것은 실지가 없는 호언 장담에 가까운데, 아마 유소(儒疏)에 동요되어 이렇게 운운하는 것은 아닌가. 그 뜻을 모르겠다. 뒤를 추격하겠다는 일은 체신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조처하도록 하라."
하였다.
원문
○備局啓曰: "臣等之得罪一時, 貽譏萬世, 有不足言, 而自今以往, 將置國於何地也? 目今諸道之軍, 除扈衛江都之外, 略計三四萬。 分道潛師, 期會平壤、中和等處, 乘其半渡浿江, 躡之於後, 金起宗本道之兵與南北諸軍, 扼之於前, 則种師道當日之策, 或可試用矣。 況此賊雖退, 不無久駐之計, 如無躡後之軍, 誰能責其渝盟乎? 請令兩體臣, 通議約束, 無失其機。" 答曰: "啓辭中所謂扼前躡後之說, 似乎無實大言。 無乃動於儒疏, 而有此云云耶? 未曉其意也。 躡後一事, 令體臣議處。"
원본
인조 5년 (1627) 2월 15일
- 강도에 있었다
- 유해가 어제의 일을 사과하므로 예물을 주어 답하다
- 원창군 이구·이홍망을 불러 보다
- 원창군 이구를 인질로 보내고, 요구한 재물은 다 못 보낸다는 내용의 국서
- 합사하여 윤훤·정호서를 효시할 것을 연계하다
- 헌부가 가족을 내보낸 달성위 서경주의 파직을 청하다
- 이민환을 종사관으로 차출하지 말 것을 청하다
- 비국이 공주 목사 한여직을 체직하고 이정신으로 교체하도록 청하다
- 목면·면주·백저포·호피·녹비·왜도·안구마 등을 청에 보내다
- 유해가 연미정에서 조선과 화친하였음을 서약하다
- 사간 윤황이 지금의 화친은 항복이니 화친하지 말 것을 상소하다
- 비국이 청 군대를 앞뒤에서 공격할 것을 청하다
- 경기 감사 이명이 인천 부사 성시헌을 파직시킬 것을 청하다
- 현재의 일을 명에 알리기 위해 갈 사신과 문서를 정하도록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