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실록4권, 인조 2년 1월 25일 경진 5/14 기사 / 1624년 명 천계(天啓) 4년
기자헌에게 사약을 내리고 성철·성효량 등을 참수하다
국역
기자헌(奇自獻)에게 사약을 내리고, 성철(成哲)·성효량(成孝良)·한욱(韓頊)·이시언(李時言)·윤수겸(尹守謙)·성백구(成伯耉)·성준길(成俊吉)·한준철(韓濬哲)·신영남(申永男)·신경남(申慶男)·신종남(申從男)·신승남(申承男)·이담(李澹)·이항(李沆)·유공량(柳公亮)·이양(李洋)·이형(李泂)·권이균(權以均)·권필균(權必均)·성대익(成大翼)·이용진(李用晉)·전회(全晦)·한인(韓認)·이성(李𢜫)·오문갑(吳門甲)·기순격(奇順格)·전유형(全有亨)·정석필(丁碩弼)·남건(南楗)·윤창(尹謁)·현즙(玄楫)·유위(柳韡)·한명철(韓明哲)·민유장(閔有章)·허익(許䄩)·윤상철(尹商哲)·남염(南濂) 등 37인을 참(斬)하였다. 이때 갇혀 있는 죄인은 혹 공초하고 그대로 갇혀 있기도 하고 혹 형신(刑訊)을 받아도 승복하지 않아 미처 구명하지 못하였는데, 역적 이괄의 반서(反書)가 갑자기 이르자 인심이 어수선하였다. 좌찬성 이귀(李貴)는 국문하여 사실을 밝힌 뒤에 논죄하여 죽이고 귀양보내려 하였으나, 판의금(判義禁) 김류(金瑬)는 ‘역적 이괄이 군사를 일으켰는데 안팎이 체결하여 헤아릴 수 없는 변란이 서울에서 일어난다면 장차 어찌하겠는가. 그리고 대신·추관이 날마다 국청(鞫廳)에 나아가 참여하면 방어하는 방책을 어느 겨를에 규획(規劃)하겠는가. 곧 죽여 없애야 한다.’ 하였는데, 대개 신경진(申景禛)·심명세(沈命世) 등이 힘껏 권하고 문사랑(問事郞) 등 여러 사람도 대부분 도왔기 때문이다. 김류가 드디어 들어가 상에게 청하였는데 삼공(三公)도 이론이 없으므로, 상이 드디어 따른 것이다.
원문
○賜奇自獻死, 斬成哲、成孝良、韓頊、李時言、尹守謙、成伯耉、成俊吉、韓濬哲、申永男、申慶男、申從男、申承男、李澹、李沆、柳公亮、李洋、李泂、權以均、權必均、成大翼、李用晋、全晦、韓認、李𢜫、吳門甲、奇順格、全有亨、丁碩弼、南楗、尹謁、玄楫、柳韡、韓明哲、閔有章、許䄩、尹商哲、南㾾等三十七人。 時在囚罪人, 或供招仍囚, 或受刑不服, 未及究竟, 而适賊反書猝至, 人心恟懼。 左贊成李貴猶欲鞫問覈實, 然後論罪誅竄, 而判義禁金瑬以爲: "賊适稱兵, 內外締結, 若有不測之變, 起於輦轂, 則將若之何? 且大臣推官, 逐日進參於鞫廳, 則防禦之策, 何暇規畫? 宜卽誅剪。" 蓋申景禛、沈命世等力勸之, 問事郞諸人, 亦多贊助故也。 瑬遂入請于上, 而三公無異辭, 上遂從之。
인조 2년 (1624) 1월 25일
- 김상헌·이시백·이시방 등의 기복을 명하다
- 병조에서 무인·무사들을 군사에 기용하는 것에 대해 아뢰다
- 간원이 황해 병사·부원수 등을 시급히 파견해야 한다고 아뢰다
- 이수일·이해·이중로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기자헌에게 사약을 내리고 성철·성효량 등을 참수하다
- 이우·문회·권진 등을 방면하다
- 양사가 원상과 왕자·훈신로 하여금 숙위하게 할 것을 청하다
- 삼공이 입직을 청하다
- 이경석·이식·이목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자전을 강도에 피신시키는 대책을 논의하다
- 장유가 자전을 강도에 피신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아뢰다
- 도원수에게 정충신을 용서할 것과 몸소 정벌하겠다는 뜻을 하유하다
- 장만이 신경원과 권반이 군사를 후원하는 상황을 보고하다
- 이시백으로 하여금 군사를 불러모으게 하다
인조실록4권, 인조 2년 1월 25일 경진 5/14 기사 / 1624년 명 천계(天啓) 4년
기자헌에게 사약을 내리고 성철·성효량 등을 참수하다
국역
기자헌(奇自獻)에게 사약을 내리고, 성철(成哲)·성효량(成孝良)·한욱(韓頊)·이시언(李時言)·윤수겸(尹守謙)·성백구(成伯耉)·성준길(成俊吉)·한준철(韓濬哲)·신영남(申永男)·신경남(申慶男)·신종남(申從男)·신승남(申承男)·이담(李澹)·이항(李沆)·유공량(柳公亮)·이양(李洋)·이형(李泂)·권이균(權以均)·권필균(權必均)·성대익(成大翼)·이용진(李用晉)·전회(全晦)·한인(韓認)·이성(李𢜫)·오문갑(吳門甲)·기순격(奇順格)·전유형(全有亨)·정석필(丁碩弼)·남건(南楗)·윤창(尹謁)·현즙(玄楫)·유위(柳韡)·한명철(韓明哲)·민유장(閔有章)·허익(許䄩)·윤상철(尹商哲)·남염(南濂) 등 37인을 참(斬)하였다. 이때 갇혀 있는 죄인은 혹 공초하고 그대로 갇혀 있기도 하고 혹 형신(刑訊)을 받아도 승복하지 않아 미처 구명하지 못하였는데, 역적 이괄의 반서(反書)가 갑자기 이르자 인심이 어수선하였다. 좌찬성 이귀(李貴)는 국문하여 사실을 밝힌 뒤에 논죄하여 죽이고 귀양보내려 하였으나, 판의금(判義禁) 김류(金瑬)는 ‘역적 이괄이 군사를 일으켰는데 안팎이 체결하여 헤아릴 수 없는 변란이 서울에서 일어난다면 장차 어찌하겠는가. 그리고 대신·추관이 날마다 국청(鞫廳)에 나아가 참여하면 방어하는 방책을 어느 겨를에 규획(規劃)하겠는가. 곧 죽여 없애야 한다.’ 하였는데, 대개 신경진(申景禛)·심명세(沈命世) 등이 힘껏 권하고 문사랑(問事郞) 등 여러 사람도 대부분 도왔기 때문이다. 김류가 드디어 들어가 상에게 청하였는데 삼공(三公)도 이론이 없으므로, 상이 드디어 따른 것이다.
원문
○賜奇自獻死, 斬成哲、成孝良、韓頊、李時言、尹守謙、成伯耉、成俊吉、韓濬哲、申永男、申慶男、申從男、申承男、李澹、李沆、柳公亮、李洋、李泂、權以均、權必均、成大翼、李用晋、全晦、韓認、李𢜫、吳門甲、奇順格、全有亨、丁碩弼、南楗、尹謁、玄楫、柳韡、韓明哲、閔有章、許䄩、尹商哲、南㾾等三十七人。 時在囚罪人, 或供招仍囚, 或受刑不服, 未及究竟, 而适賊反書猝至, 人心恟懼。 左贊成李貴猶欲鞫問覈實, 然後論罪誅竄, 而判義禁金瑬以爲: "賊适稱兵, 內外締結, 若有不測之變, 起於輦轂, 則將若之何? 且大臣推官, 逐日進參於鞫廳, 則防禦之策, 何暇規畫? 宜卽誅剪。" 蓋申景禛、沈命世等力勸之, 問事郞諸人, 亦多贊助故也。 瑬遂入請于上, 而三公無異辭, 上遂從之。
원본
인조 2년 (1624) 1월 25일
- 김상헌·이시백·이시방 등의 기복을 명하다
- 병조에서 무인·무사들을 군사에 기용하는 것에 대해 아뢰다
- 간원이 황해 병사·부원수 등을 시급히 파견해야 한다고 아뢰다
- 이수일·이해·이중로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기자헌에게 사약을 내리고 성철·성효량 등을 참수하다
- 이우·문회·권진 등을 방면하다
- 양사가 원상과 왕자·훈신로 하여금 숙위하게 할 것을 청하다
- 삼공이 입직을 청하다
- 이경석·이식·이목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자전을 강도에 피신시키는 대책을 논의하다
- 장유가 자전을 강도에 피신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아뢰다
- 도원수에게 정충신을 용서할 것과 몸소 정벌하겠다는 뜻을 하유하다
- 장만이 신경원과 권반이 군사를 후원하는 상황을 보고하다
- 이시백으로 하여금 군사를 불러모으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