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실록1권, 인조 1년 3월 20일 경술 6/8 기사 / 1623년 명 천계(天啓) 3년
대장 김류·이귀 등을 인견하여 폐군의 정배·모군의 해산 등을 논의하다
국역
상이 대장 김류·이귀, 종사관 김자점, 동래 부사 김치(金緻)를 서별당에서 인견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이거하실 날이 임박하였으니 폐주를 먼저 처치해야 합니다. 폐주는 강화(江華)로, 폐동궁은 교동(喬桐)에 위리 안치할 것을 금부가 이미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본 결과, 강화는 지형이 몹시 견고하나 교동은 삼면이 모두 큰 바다라 하나도 막고 가린 데가 없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중국의 배가 왕래하여 사세가 전과 다릅니다. 일을 생각할 때는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모두 강화에 안치함이 온당 할 것 같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 곳에 안치함이 편리한 것 같기는 하나 내 마음대로 처리할 일이 아니니 자전께 여쭈어 처리하겠다."
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지금 저자에 변동이 없고 인심도 크게 안정되었으나, 사부(士夫)의 노속과 역졸들이 모두 모군(募軍)에 억지로 배정되었습니다. 그래서 호소가 분분하여 폐단이 많다고 합니다. 신이 처음에는 장유(張維)와 최명길(崔鳴吉)을 종사관이라 칭하였으나 지금은 벌써 파하였습니다. 원수(元帥)와 장령(將領)이 아니면 무슨 종사할 일이 있겠습니까. 유생 무리가 아직도 종사관의 호칭을 띠고 기치를 세우고 군사를 거느리고 성중에 횡행하니, 모양이 아름답지 못합니다. 지금 즉시 파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모군을 해산해 돌려보내라고 전에 이미 하교하였는데 어찌 지금까지 돌려보내지 않았는가?"
하였다. 이귀가 대답하기를,
"정두원(鄭斗源)이 모집한 5백여 명은 이미 파하여 돌려보냈고, 이괄(李适)과 이서(李曙)는 지금 시위(侍衛)하고 있는데, 이미 파하였는지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옛말에 ‘실타래를 풀면서 도리어 헝큰다.’고 하더니 이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김자점과 심기원 외에는 속히 종사관을 파하는 것이 가합니다."
하였다. 이귀가 아뢰기를,
"유희분은 죄악이 있으나 유희량(柳希亮)은 사류로 자처하였습니다. 유효립(柳孝立) 등 여러 사람에 있어서도 모두 구속되었는데, 이들에게 무슨 범죄가 있습니까."
하고, 또 아뢰기를,
"내노비(內奴婢)는 대부분 폐조 때 주인을 배반하고 투탁(投托)한 자들이라 그 주인이 지금에 와서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 그대로 속오군(束伍軍)을 만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주인을 배반한 종을 그 주인이 죽인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경의 말이 잘못이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폐주 때 사노(私奴)로서 내사(內司)에 투탁한 자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투탁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위세를 믿고 본주인을 모해하기까지 하는 자가 비일비재하였다. 시골 사람들은 꼼짝 못하고 탈취당하면서 오직 화를 면하는 것만을 다행으로 여겼다. 온 나라가 그 분노를 쌓아온 지 오래다. 주인을 배반한 종은 저절로 거기에 해당하는 율이 있으니, 반정 초기에 있어 의당 법으로 다스려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 어찌 그들을 용서하여 병졸로 만들 수 있겠는가. 이귀의 이 말은 너무도 생각지 않은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내사에 투탁한 사노는 모두 본주에게 돌려주라는 하명이 간곡하므로, 원방 사람들이 모두 기뻐뛰며 양식을 싸 가지고 상경하였는데, 갑자기 상고한 후에 돌려주라는 하명이 있어 모두들 신용을 잃었다고 하며 실망하였다. 이처럼 새로운 정치에 누를 끼치는 일이 없지 않으니, 참으로 애석하다.
김류가 아뢰기를,
"지금 의거 유생으로서 공이 있는 자가 아직 상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전관(銓官) 또한 감히 함부로 제수하지 못하니, 상께서 특별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고, 이귀가 아뢰기를,
"옛날에 유생에서 재상으로 발탁된 자가 있거니와, 심기원(沈器遠) 같으면 병판(兵判)이나 체찰(體察)의 직임을 맡긴다 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 역시 그가 쓸 만한 인재임을 아는데 양전(兩銓)의 관원이 이미 다른 사람을 가려 맡겼다. 나는 사의를 용납지 않고자 하여 모든 주의(注擬)에 있어서 모두 수망(首望)에 낙점하였다."
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현재 옥송(獄訟)이 많이 적체되어 있으니 판결사 및 형조 판서를 빨리 엄선하여 임명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의 말이 옳다. 이 밖에 미진한 것에 대해 경들은 일에 따라 계달하라. 또 계달할 때에는 꼭 문서로 할 필요가 없다. 하룻동안에 여러 번 청대(請對)하여도 무방하다."
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기강이 해이해지는 폐단은 실로 사사로움을 따르고 당파를 옹호하는 소치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현재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는 책임은 대신과 헌장(憲長)에 적임자를 얻는데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 이후 만약 당파를 비호하는 일이 있을 경우 심한 자는 참형으로 다스릴 것이다. 경들에 있어서도 또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가 지당합니다. 어찌 감히 각별히 봉행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예로부터 국가의 위기는 붕당의 환난으로 말미암지 않은 적이 없다. 더구나 지금 반정 초기에 있어 더욱 깊이 경계하여 통렬히 개혁하는 데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인데, 주의(注擬)할 즈음에 오히려 사심을 따르는 기미가 있어 조정에 날로 분열의 조짐이 나타나니, 어떻게 동심 협력의 효과를 기대하겠는가.
상이 김치(金緻)를 앞에 불러놓고 이르기를,
"동래(東萊)는 나라의 남문(南門)이라 선택하여 보내는 것이니, 민생을 힘써 구휼하고 왜인을 잘 접대하여 나의 뜻에 부응하라."
하니, 김치가 대답하기를,
"신이 오랫동안 버려져 있다가 지금 성은을 입어 외람되이 중임을 맡았습니다. 성상의 하교가 이에 이르니 천리 밖인들 어찌 대궐 앞뜰과 다르겠습니까. 어찌 감히 심력을 다하여 우러러 성은에 보답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원문
○上引見大將金瑬ㆍ李貴、從事官金自點、東萊府使金緻于西別堂。 瑬曰: "移御之日臨迫, 廢主當先處置矣。 廢主則江華, 廢東宮則喬桐, 圍籬事, 禁府已爲定奪, 而更思之, 江華地刑甚固, 喬桐則三面大海, 無一蔽遮。 況今唐舡往來, 事勢異前, 慮事不可不愼密。 皆置於江華, 似爲便宜矣。" 上曰: "同置一處, 似爲便宜。 然非予所處之事, 當稟慈殿以處矣。" 瑬曰: "今市肆不易, 人心大定, 而士夫奴子及驛卒, 皆勒定募軍, 以此告訴紛紜, 多有弊端云。 臣則初以張維、崔鳴吉, 稱以從事官, 今已罷矣。 非元帥將領, 則有何從事, 而儒生輩, 尙帶從事之號, 建旗領軍, 橫行城中, 氣象不美, 宜趁今日罷之。" 上曰: "罷遣募軍, 前已下敎, 而何至今不罷耶?" 貴對曰: "鄭斗源所募五百餘名, 旣已罷之。 李适、李曙則方在侍衛, 未知其已罷否也。" 瑬曰: "古語云: ‘治絲而棼之。’ 此之謂也。 金自點、沈器遠外, 速罷從事官可也。" 貴曰: "柳希奮雖有罪惡, 柳希亮則以士類自處, 至於柳孝立諸人, 亦皆被囚, 此輩有何罪犯乎?" 又曰: "內奴婢, 率多廢朝時叛主投托者。 厥主今必殺之, 仍作束伍爲軍兵可矣。" 上曰: "叛主之奴, 厥主殺之何妨! 卿言非矣。"
【史臣曰: 廢主時, 私奴之投托內司者何限! 非特投托而已, 至於藉其威勢, 謀害本主者, 比比有之。 鄕曲之人, 斂手被奪, 唯以免禍爲幸, 擧國之積憤久矣。 叛主之奴, 自有其律, 更始之初, 繩之以法, 以振頹綱可也。 豈宜容庇而作兵乎? 貴之此言, 可謂不思之甚也。 但私奴之投入內司者, 還給本主之敎, 不啻丁寧。 遠方之人, 莫不踴躍, 裹糧上來, 旋有憑考還給之命, 皆以爲失信而缺望, 不免貽累於新政, 可勝惜哉!】
瑬曰: "今者擧義儒生有功者, 時未蒙賞, 銓官亦不敢擅自除拜, 自上似當有別樣擧措矣。" 貴曰: "古有自儒生擢爲宰相者, 如沈器遠, 雖處之兵判體察之任, 可以當之。" 上曰: "予亦知其可用, 而兩銓之官, 旣已擇任, 予欲不容私意, 凡於注擬, 皆以首望落點矣。" 瑬曰: "目今獄訟多滯, 判決事及刑判, 宜極擇差除。" 上曰: "卿言是矣。 此外未盡思者, 卿等隨事啓達, 不必以文書啓之。 雖一日之內, 屢度請對, 無妨矣。" 瑬曰: "紀綱解弛之弊, 實由於循私護黨之致。 目今振肅頹綱之責, 在於大臣憲長之得其人耳。" 上曰: "然矣。 此後若復有護黨之事, 甚者當斬, 雖卿等, 亦不饒貸矣。" 瑬曰: "聖敎允當,敢不惕念奉行乎!"
【史臣曰: 自古國家危亂, 莫不由於朋黨之患。 況今更始之日, 尤當深戒痛革之不暇, 而注擬之際, 尙有循私之跡。 朝廷之上, 日著携貳之漸, 其可望同寅協恭之效乎!】
上進金緻於前曰: "東萊, 國之南門, 選擇而送之, 勤恤民生, 善待倭人, 以副予意。" 緻對曰: "臣久廢之中, 得蒙聖恩, 叨受重寄, 聖敎至此, 千里之外, 何異堂陛! 敢不竭盡心力, 仰答聖恩!"
인조실록1권, 인조 1년 3월 20일 경술 6/8 기사 / 1623년 명 천계(天啓) 3년
대장 김류·이귀 등을 인견하여 폐군의 정배·모군의 해산 등을 논의하다
국역
상이 대장 김류·이귀, 종사관 김자점, 동래 부사 김치(金緻)를 서별당에서 인견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이거하실 날이 임박하였으니 폐주를 먼저 처치해야 합니다. 폐주는 강화(江華)로, 폐동궁은 교동(喬桐)에 위리 안치할 것을 금부가 이미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본 결과, 강화는 지형이 몹시 견고하나 교동은 삼면이 모두 큰 바다라 하나도 막고 가린 데가 없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중국의 배가 왕래하여 사세가 전과 다릅니다. 일을 생각할 때는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모두 강화에 안치함이 온당 할 것 같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 곳에 안치함이 편리한 것 같기는 하나 내 마음대로 처리할 일이 아니니 자전께 여쭈어 처리하겠다."
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지금 저자에 변동이 없고 인심도 크게 안정되었으나, 사부(士夫)의 노속과 역졸들이 모두 모군(募軍)에 억지로 배정되었습니다. 그래서 호소가 분분하여 폐단이 많다고 합니다. 신이 처음에는 장유(張維)와 최명길(崔鳴吉)을 종사관이라 칭하였으나 지금은 벌써 파하였습니다. 원수(元帥)와 장령(將領)이 아니면 무슨 종사할 일이 있겠습니까. 유생 무리가 아직도 종사관의 호칭을 띠고 기치를 세우고 군사를 거느리고 성중에 횡행하니, 모양이 아름답지 못합니다. 지금 즉시 파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모군을 해산해 돌려보내라고 전에 이미 하교하였는데 어찌 지금까지 돌려보내지 않았는가?"
하였다. 이귀가 대답하기를,
"정두원(鄭斗源)이 모집한 5백여 명은 이미 파하여 돌려보냈고, 이괄(李适)과 이서(李曙)는 지금 시위(侍衛)하고 있는데, 이미 파하였는지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옛말에 ‘실타래를 풀면서 도리어 헝큰다.’고 하더니 이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김자점과 심기원 외에는 속히 종사관을 파하는 것이 가합니다."
하였다. 이귀가 아뢰기를,
"유희분은 죄악이 있으나 유희량(柳希亮)은 사류로 자처하였습니다. 유효립(柳孝立) 등 여러 사람에 있어서도 모두 구속되었는데, 이들에게 무슨 범죄가 있습니까."
하고, 또 아뢰기를,
"내노비(內奴婢)는 대부분 폐조 때 주인을 배반하고 투탁(投托)한 자들이라 그 주인이 지금에 와서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 그대로 속오군(束伍軍)을 만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주인을 배반한 종을 그 주인이 죽인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경의 말이 잘못이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폐주 때 사노(私奴)로서 내사(內司)에 투탁한 자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투탁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위세를 믿고 본주인을 모해하기까지 하는 자가 비일비재하였다. 시골 사람들은 꼼짝 못하고 탈취당하면서 오직 화를 면하는 것만을 다행으로 여겼다. 온 나라가 그 분노를 쌓아온 지 오래다. 주인을 배반한 종은 저절로 거기에 해당하는 율이 있으니, 반정 초기에 있어 의당 법으로 다스려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 어찌 그들을 용서하여 병졸로 만들 수 있겠는가. 이귀의 이 말은 너무도 생각지 않은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내사에 투탁한 사노는 모두 본주에게 돌려주라는 하명이 간곡하므로, 원방 사람들이 모두 기뻐뛰며 양식을 싸 가지고 상경하였는데, 갑자기 상고한 후에 돌려주라는 하명이 있어 모두들 신용을 잃었다고 하며 실망하였다. 이처럼 새로운 정치에 누를 끼치는 일이 없지 않으니, 참으로 애석하다.
김류가 아뢰기를,
"지금 의거 유생으로서 공이 있는 자가 아직 상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전관(銓官) 또한 감히 함부로 제수하지 못하니, 상께서 특별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고, 이귀가 아뢰기를,
"옛날에 유생에서 재상으로 발탁된 자가 있거니와, 심기원(沈器遠) 같으면 병판(兵判)이나 체찰(體察)의 직임을 맡긴다 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 역시 그가 쓸 만한 인재임을 아는데 양전(兩銓)의 관원이 이미 다른 사람을 가려 맡겼다. 나는 사의를 용납지 않고자 하여 모든 주의(注擬)에 있어서 모두 수망(首望)에 낙점하였다."
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현재 옥송(獄訟)이 많이 적체되어 있으니 판결사 및 형조 판서를 빨리 엄선하여 임명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의 말이 옳다. 이 밖에 미진한 것에 대해 경들은 일에 따라 계달하라. 또 계달할 때에는 꼭 문서로 할 필요가 없다. 하룻동안에 여러 번 청대(請對)하여도 무방하다."
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기강이 해이해지는 폐단은 실로 사사로움을 따르고 당파를 옹호하는 소치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현재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는 책임은 대신과 헌장(憲長)에 적임자를 얻는데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 이후 만약 당파를 비호하는 일이 있을 경우 심한 자는 참형으로 다스릴 것이다. 경들에 있어서도 또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가 지당합니다. 어찌 감히 각별히 봉행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예로부터 국가의 위기는 붕당의 환난으로 말미암지 않은 적이 없다. 더구나 지금 반정 초기에 있어 더욱 깊이 경계하여 통렬히 개혁하는 데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인데, 주의(注擬)할 즈음에 오히려 사심을 따르는 기미가 있어 조정에 날로 분열의 조짐이 나타나니, 어떻게 동심 협력의 효과를 기대하겠는가.
상이 김치(金緻)를 앞에 불러놓고 이르기를,
"동래(東萊)는 나라의 남문(南門)이라 선택하여 보내는 것이니, 민생을 힘써 구휼하고 왜인을 잘 접대하여 나의 뜻에 부응하라."
하니, 김치가 대답하기를,
"신이 오랫동안 버려져 있다가 지금 성은을 입어 외람되이 중임을 맡았습니다. 성상의 하교가 이에 이르니 천리 밖인들 어찌 대궐 앞뜰과 다르겠습니까. 어찌 감히 심력을 다하여 우러러 성은에 보답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원문
○上引見大將金瑬ㆍ李貴、從事官金自點、東萊府使金緻于西別堂。 瑬曰: "移御之日臨迫, 廢主當先處置矣。 廢主則江華, 廢東宮則喬桐, 圍籬事, 禁府已爲定奪, 而更思之, 江華地刑甚固, 喬桐則三面大海, 無一蔽遮。 況今唐舡往來, 事勢異前, 慮事不可不愼密。 皆置於江華, 似爲便宜矣。" 上曰: "同置一處, 似爲便宜。 然非予所處之事, 當稟慈殿以處矣。" 瑬曰: "今市肆不易, 人心大定, 而士夫奴子及驛卒, 皆勒定募軍, 以此告訴紛紜, 多有弊端云。 臣則初以張維、崔鳴吉, 稱以從事官, 今已罷矣。 非元帥將領, 則有何從事, 而儒生輩, 尙帶從事之號, 建旗領軍, 橫行城中, 氣象不美, 宜趁今日罷之。" 上曰: "罷遣募軍, 前已下敎, 而何至今不罷耶?" 貴對曰: "鄭斗源所募五百餘名, 旣已罷之。 李适、李曙則方在侍衛, 未知其已罷否也。" 瑬曰: "古語云: ‘治絲而棼之。’ 此之謂也。 金自點、沈器遠外, 速罷從事官可也。" 貴曰: "柳希奮雖有罪惡, 柳希亮則以士類自處, 至於柳孝立諸人, 亦皆被囚, 此輩有何罪犯乎?" 又曰: "內奴婢, 率多廢朝時叛主投托者。 厥主今必殺之, 仍作束伍爲軍兵可矣。" 上曰: "叛主之奴, 厥主殺之何妨! 卿言非矣。"
【史臣曰: 廢主時, 私奴之投托內司者何限! 非特投托而已, 至於藉其威勢, 謀害本主者, 比比有之。 鄕曲之人, 斂手被奪, 唯以免禍爲幸, 擧國之積憤久矣。 叛主之奴, 自有其律, 更始之初, 繩之以法, 以振頹綱可也。 豈宜容庇而作兵乎? 貴之此言, 可謂不思之甚也。 但私奴之投入內司者, 還給本主之敎, 不啻丁寧。 遠方之人, 莫不踴躍, 裹糧上來, 旋有憑考還給之命, 皆以爲失信而缺望, 不免貽累於新政, 可勝惜哉!】
瑬曰: "今者擧義儒生有功者, 時未蒙賞, 銓官亦不敢擅自除拜, 自上似當有別樣擧措矣。" 貴曰: "古有自儒生擢爲宰相者, 如沈器遠, 雖處之兵判體察之任, 可以當之。" 上曰: "予亦知其可用, 而兩銓之官, 旣已擇任, 予欲不容私意, 凡於注擬, 皆以首望落點矣。" 瑬曰: "目今獄訟多滯, 判決事及刑判, 宜極擇差除。" 上曰: "卿言是矣。 此外未盡思者, 卿等隨事啓達, 不必以文書啓之。 雖一日之內, 屢度請對, 無妨矣。" 瑬曰: "紀綱解弛之弊, 實由於循私護黨之致。 目今振肅頹綱之責, 在於大臣憲長之得其人耳。" 上曰: "然矣。 此後若復有護黨之事, 甚者當斬, 雖卿等, 亦不饒貸矣。" 瑬曰: "聖敎允當,敢不惕念奉行乎!"
【史臣曰: 自古國家危亂, 莫不由於朋黨之患。 況今更始之日, 尤當深戒痛革之不暇, 而注擬之際, 尙有循私之跡。 朝廷之上, 日著携貳之漸, 其可望同寅協恭之效乎!】
上進金緻於前曰: "東萊, 國之南門, 選擇而送之, 勤恤民生, 善待倭人, 以副予意。" 緻對曰: "臣久廢之中, 得蒙聖恩, 叨受重寄, 聖敎至此, 千里之外, 何異堂陛! 敢不竭盡心力, 仰答聖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