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일기[정초본]174권, 광해 14년 2월 26일 임진 4/5 기사 / 1622년 명 천계(天啓) 2년
궁터 안에 아문을 조성하는 문제에 대해 논하다
국역
‘삼가 듣건대, 경복궁 터 안에 각 아문을 조성하는 일에 대하여 서울과 외방에서 모두들 「또 이 궁을 지어 요망한 말을 선동한다.」 고 한다 하니, 각 아문을 이 궁의 터 안에 지어 사람들의 의혹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인경궁(仁慶宮) 남문 밖 빈 대지에 3, 4아문을 지을 만하니, 남쪽 담장을 물려서 쌓게 된들 어떻겠는가. 내사복(內司僕)의 경우는 사직천(社稷川)의 물을 끌어다 쓸 수 있고, 승문원(承文院)은 총부(摠府) 근처에 조성할 수 있으니, 빨리 상의하여 미리 터를 닦기 시작하여 초석을 놓고서 재목을 올려 온 후에 즉시 기둥을 세워 짓도록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경복궁에 각 아문을 짓지 말라는 전교는 실로 뜬말을 진정시키려는 성상의 뜻에서 나온 것이니, 인경궁의 남쪽 담장을 물려서 쌓도록 하겠습니다. 물려서 쌓을 터는 반드시 도제조 이하가 회동하여 살펴서 정한 후에야 미진하지 않을 수 있으니, 무고한 날 빨리 다같이 모여 중사(中使)와 함께 살펴 정하여 계하한 후에 물려 쌓게 하소서. "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인가가 또 들어가게 되면 남쪽 담장 밖 내자시의 터에 아무 아문만 지어서 인가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라. 내사복은 경복궁 터 안에, 승문원과 상의원은 이 궁의 아무 곳에 조성할 일을 빨리 의논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또 아뢰기를,
"인경궁 안의 지세가 원래 좁은 것은 아니지만 서북쪽 담장 근처는 응당 금원(禁苑)에 들어가기 때문에 다섯 아문을 지을 만한 곳이 없어서 부득이 경복궁 안에 다섯 아문을 지으라는 하교를 내리신 것인데 이 하교가 한번 내려짐에 유언 비어가 선동하였으니, 어찌 너무도 상서롭지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성상께서 이것을 염려하여, 남쪽 담장을 물려 쌓고서 네 아문을 아울러 지으라는 명령을 내리시고 경복궁의 공사는 없던 것으로 하라고 하셨으니, 이 말을 보고 들은 자들 가운데 누가 기뻐하지 않았겠습니까. 사람들의 의혹이 이로부터 진정되게 되었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남쪽 담장 밖 내자시의 빈 땅에는 세 아문을 들일 수 있고, 사복시의 물줄기를 끌어들이는 곳의 경우는 여염의 집을 헐어야 하는 폐단이 없지 않습니다. 또 옛 재상의 유기(遺基)와 내관의 집도 그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신 박홍도(朴弘道)의 생각으로는, 감군이 서울에 도착하게 되면 영선(營繕)하기가 불편하니 여러 공사를 아울러 끝마치는 것이 하루가 급하며 경복궁의 침역(寢役)은 오늘날의 막대한 거조이니 여염집이 헐리는 것과 같은 사소한 문제는 따질 것이 없다고 합니다. 신이 진실로 이 말을 하면 원망의 소리가 모여들 줄 압니다만 중요한 바가 여기에 있으므로 감히 진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인가가 들어오지 않게 하고서 네 아문을 짓는다면 남쪽 담장을 물려 쌓아도 될 것이다. 상세히 살펴 잘 처리하라."
하였다.
원문
○傳曰: "竊聞以景福宮基內各衙門造成事, 中外以爲又營此宮, 煽動妖言云, 不必造各衙門於此宮基內, 惹起人心之疑惑也。 仁慶宮南門外空代, 可造三四衙門, 南墻退築, 何關也? 至如內司僕, 則社稷川水可以引用, 承文院則摠府近處, 可以造成也, 急急詳議, 預爲開基定礎, 材木上來後, 卽爲立柱以造。 都監回啓曰: "景福宮內各衙門勿造之敎, 實出於鎭浮言之盛意, 仁慶宮南墻, 將爲退築矣。 退築基址, 必須都提調以下, 會同審定然後, 可无未盡, 請無故日, 急速齊會, 中使眼同審定啓下後, 退築。" 傳曰: "依啓。 人家又入, 則南墻外內資基址, 只造某衙門, 而勿入人家。 內司僕則景福宮基內, 承文院、尙衣院, 則此宮內某處造成事, 急速議處。" 又啓曰: "仁慶宮內, 地勢无非狹窄, 而西北墻近處則應入禁苑, 故五衙門, 无可造之處, 不得已景福宮內, 五衙門造成之敎一下, 則訛言煽動, 豈非不祥之甚乎? 聖上爲是之慮, 特下退築南墻, 竝設四衙門之命, 而除却景福之役, 瞻聆所及, 孰不歡忭? 人心疑惑, 自此可定。 第念南墻外內資空地, 可容三衙門, 而至於司僕引流之處, 則不無閭閻毁撤之弊。 舊相遺基、內官第宅, 亦在其中。 臣弘道愚妄之意, 監軍到京, 營繕難便, 倂工完役, 一日爲急, 且景福宮寢役, 爲今日莫大之擧, 則些少閭家之毁撤, 有不足計也。 臣固知言發怨集, 而所重在此, 不敢不達。" 傳曰: "知道。 勿入人家而造設四衙門, 則南墻退築可矣。 詳察善處。"
광해군일기[정초본]174권, 광해 14년 2월 26일 임진 4/5 기사 / 1622년 명 천계(天啓) 2년
궁터 안에 아문을 조성하는 문제에 대해 논하다
국역
‘삼가 듣건대, 경복궁 터 안에 각 아문을 조성하는 일에 대하여 서울과 외방에서 모두들 「또 이 궁을 지어 요망한 말을 선동한다.」 고 한다 하니, 각 아문을 이 궁의 터 안에 지어 사람들의 의혹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인경궁(仁慶宮) 남문 밖 빈 대지에 3, 4아문을 지을 만하니, 남쪽 담장을 물려서 쌓게 된들 어떻겠는가. 내사복(內司僕)의 경우는 사직천(社稷川)의 물을 끌어다 쓸 수 있고, 승문원(承文院)은 총부(摠府) 근처에 조성할 수 있으니, 빨리 상의하여 미리 터를 닦기 시작하여 초석을 놓고서 재목을 올려 온 후에 즉시 기둥을 세워 짓도록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경복궁에 각 아문을 짓지 말라는 전교는 실로 뜬말을 진정시키려는 성상의 뜻에서 나온 것이니, 인경궁의 남쪽 담장을 물려서 쌓도록 하겠습니다. 물려서 쌓을 터는 반드시 도제조 이하가 회동하여 살펴서 정한 후에야 미진하지 않을 수 있으니, 무고한 날 빨리 다같이 모여 중사(中使)와 함께 살펴 정하여 계하한 후에 물려 쌓게 하소서. "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인가가 또 들어가게 되면 남쪽 담장 밖 내자시의 터에 아무 아문만 지어서 인가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라. 내사복은 경복궁 터 안에, 승문원과 상의원은 이 궁의 아무 곳에 조성할 일을 빨리 의논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또 아뢰기를,
"인경궁 안의 지세가 원래 좁은 것은 아니지만 서북쪽 담장 근처는 응당 금원(禁苑)에 들어가기 때문에 다섯 아문을 지을 만한 곳이 없어서 부득이 경복궁 안에 다섯 아문을 지으라는 하교를 내리신 것인데 이 하교가 한번 내려짐에 유언 비어가 선동하였으니, 어찌 너무도 상서롭지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성상께서 이것을 염려하여, 남쪽 담장을 물려 쌓고서 네 아문을 아울러 지으라는 명령을 내리시고 경복궁의 공사는 없던 것으로 하라고 하셨으니, 이 말을 보고 들은 자들 가운데 누가 기뻐하지 않았겠습니까. 사람들의 의혹이 이로부터 진정되게 되었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남쪽 담장 밖 내자시의 빈 땅에는 세 아문을 들일 수 있고, 사복시의 물줄기를 끌어들이는 곳의 경우는 여염의 집을 헐어야 하는 폐단이 없지 않습니다. 또 옛 재상의 유기(遺基)와 내관의 집도 그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신 박홍도(朴弘道)의 생각으로는, 감군이 서울에 도착하게 되면 영선(營繕)하기가 불편하니 여러 공사를 아울러 끝마치는 것이 하루가 급하며 경복궁의 침역(寢役)은 오늘날의 막대한 거조이니 여염집이 헐리는 것과 같은 사소한 문제는 따질 것이 없다고 합니다. 신이 진실로 이 말을 하면 원망의 소리가 모여들 줄 압니다만 중요한 바가 여기에 있으므로 감히 진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인가가 들어오지 않게 하고서 네 아문을 짓는다면 남쪽 담장을 물려 쌓아도 될 것이다. 상세히 살펴 잘 처리하라."
하였다.
원문
○傳曰: "竊聞以景福宮基內各衙門造成事, 中外以爲又營此宮, 煽動妖言云, 不必造各衙門於此宮基內, 惹起人心之疑惑也。 仁慶宮南門外空代, 可造三四衙門, 南墻退築, 何關也? 至如內司僕, 則社稷川水可以引用, 承文院則摠府近處, 可以造成也, 急急詳議, 預爲開基定礎, 材木上來後, 卽爲立柱以造。 都監回啓曰: "景福宮內各衙門勿造之敎, 實出於鎭浮言之盛意, 仁慶宮南墻, 將爲退築矣。 退築基址, 必須都提調以下, 會同審定然後, 可无未盡, 請無故日, 急速齊會, 中使眼同審定啓下後, 退築。" 傳曰: "依啓。 人家又入, 則南墻外內資基址, 只造某衙門, 而勿入人家。 內司僕則景福宮基內, 承文院、尙衣院, 則此宮內某處造成事, 急速議處。" 又啓曰: "仁慶宮內, 地勢无非狹窄, 而西北墻近處則應入禁苑, 故五衙門, 无可造之處, 不得已景福宮內, 五衙門造成之敎一下, 則訛言煽動, 豈非不祥之甚乎? 聖上爲是之慮, 特下退築南墻, 竝設四衙門之命, 而除却景福之役, 瞻聆所及, 孰不歡忭? 人心疑惑, 自此可定。 第念南墻外內資空地, 可容三衙門, 而至於司僕引流之處, 則不無閭閻毁撤之弊。 舊相遺基、內官第宅, 亦在其中。 臣弘道愚妄之意, 監軍到京, 營繕難便, 倂工完役, 一日爲急, 且景福宮寢役, 爲今日莫大之擧, 則些少閭家之毁撤, 有不足計也。 臣固知言發怨集, 而所重在此, 不敢不達。" 傳曰: "知道。 勿入人家而造設四衙門, 則南墻退築可矣。 詳察善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