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일기[정초본]73권, 광해 5년 12월 3일 병술 7/8 기사 / 1613년 명 만력(萬曆) 41년
평안 감사가 성천부 관사의 실화에 대해 장계하다
국역
평안 감사가 성천부(成川府) 관사(官舍)의 실화에 대해 장계하니, 왕이 묻기를,
"여기에 말한 관사는 임진년에 상께서 머무르시던 곳인가? 다시 살펴서 아뢰라. 만약 그렇다면 그 고을을 지키는 관리가 엄하게 신칙하여 수호했어야 마땅한 것인데 이 화재를 당하게 만들었으니 부사 이사경(李士慶)을 먼저 파직하고 뒤에 추고하라. 그리고 불 낸 사람을 핵실하여 치죄하라."
하였다. 【관사는 바로 강선루(降仙樓)이다. 왕이 왜적을 피할 적에 우거하던 곳으로 항상 그 누각이 넓고 아름답다고 애호했는데, 그곳이 불에 탔다는 말을 듣고 매우 애석하게 여겼다. 이미 박엽(朴燁)을 보내어 부사로 삼고 매우 넓고 크게 중건을 하였고, 그 뒤로 인경궁(仁慶宮)에 물을 끌어다 궁 둘레를 빙둘러 흐르게 하고, 그 형상을 본떠 누각을 세우려고 목재와 돌을 갖추어 놓았으나 이루지 못했다.】
원문
광해군일기[정초본]73권, 광해 5년 12월 3일 병술 7/8 기사 / 1613년 명 만력(萬曆) 41년
평안 감사가 성천부 관사의 실화에 대해 장계하다
국역
평안 감사가 성천부(成川府) 관사(官舍)의 실화에 대해 장계하니, 왕이 묻기를,
"여기에 말한 관사는 임진년에 상께서 머무르시던 곳인가? 다시 살펴서 아뢰라. 만약 그렇다면 그 고을을 지키는 관리가 엄하게 신칙하여 수호했어야 마땅한 것인데 이 화재를 당하게 만들었으니 부사 이사경(李士慶)을 먼저 파직하고 뒤에 추고하라. 그리고 불 낸 사람을 핵실하여 치죄하라."
하였다. 【관사는 바로 강선루(降仙樓)이다. 왕이 왜적을 피할 적에 우거하던 곳으로 항상 그 누각이 넓고 아름답다고 애호했는데, 그곳이 불에 탔다는 말을 듣고 매우 애석하게 여겼다. 이미 박엽(朴燁)을 보내어 부사로 삼고 매우 넓고 크게 중건을 하였고, 그 뒤로 인경궁(仁慶宮)에 물을 끌어다 궁 둘레를 빙둘러 흐르게 하고, 그 형상을 본떠 누각을 세우려고 목재와 돌을 갖추어 놓았으나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