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일기[중초본]175권, 광해 14년 3월 7일 계묘 1/1 기사 / 1622년 명 천계(天啓) 2년
통제사 정기룡이 죽자 관곽을 내려주다
국역
통제사 정기룡(鄭起龍)이 임소(任所)에서 죽었다. 전교하기를,
"또 어진 장수를 잃으니, 매우 놀랍고 측은하다. 주사(舟師)에 대해 잘 알고 익숙한 사람을 빨리 골라 보내고, 해조와 해도에 명하여 관곽(棺槨)을 내려주도록 하고 일로에서 호송해 주도록 하라."
하였다. 【〈기룡은 선조(先朝)의 숙장(宿將)으로 누차 전공을 세웠다. 이때에 이르러 궁첩과 결탁하여 뇌물을 바치고 잘 섬긴 결과로 임금의 총애를 받았는데 진지에서 죽었다.〉 】 【기룡은 용감한 장수였다. 임진란에 힘써 싸워 공로가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내간(內間)과 결탁하여 사사로이 바치기를 끊임없이 하여 심지어 나전 팔첩 대병(螺鈿八貼大屛)을 만들어 올리기까지 하였으니, 죽어서도 남는 죄가 있었다.】
원문
광해 14년 (1622) 3월 7일
광해군일기[중초본]175권, 광해 14년 3월 7일 계묘 1/1 기사 / 1622년 명 천계(天啓) 2년
통제사 정기룡이 죽자 관곽을 내려주다
국역
통제사 정기룡(鄭起龍)이 임소(任所)에서 죽었다. 전교하기를,
"또 어진 장수를 잃으니, 매우 놀랍고 측은하다. 주사(舟師)에 대해 잘 알고 익숙한 사람을 빨리 골라 보내고, 해조와 해도에 명하여 관곽(棺槨)을 내려주도록 하고 일로에서 호송해 주도록 하라."
하였다. 【〈기룡은 선조(先朝)의 숙장(宿將)으로 누차 전공을 세웠다. 이때에 이르러 궁첩과 결탁하여 뇌물을 바치고 잘 섬긴 결과로 임금의 총애를 받았는데 진지에서 죽었다.〉 】 【기룡은 용감한 장수였다. 임진란에 힘써 싸워 공로가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내간(內間)과 결탁하여 사사로이 바치기를 끊임없이 하여 심지어 나전 팔첩 대병(螺鈿八貼大屛)을 만들어 올리기까지 하였으니, 죽어서도 남는 죄가 있었다.】
원문
원본
광해 14년 (1622) 3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