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일기[중초본]28권, 광해 2년 4월 23일 무술 1/4 기사 / 1610년 명 만력(萬曆) 38년
영의정 이덕형을 인견하다
국역
상이 시사청에 나아가 영의정 이덕형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이 오래도록 정고(呈告) 중에 있어 한 번도 만나지 못하였는데, 이제 근친(覲親) 때문에 떠나니 섭섭하기 그지없다."
하니, 덕형이 【사례하고 이어】 아뢰기를,
"〈소신이 지난번 사정이 절박하여 부득이 정고함으로 해서 상께서 경연을 여셨어도 한 번도 입시하지 못하였습니다. 죄를 지고 물러나니 몸둘 곳이 없습니다. 늙은 아비의 병은 고질이 되어 의원이 ‘약으로는 치료가 어렵고 침구(針灸)를 시술해야 한다.’고 하므로, 이번에 의원을 데리고 내려가고자 죽음을 무릅쓰고 진달하였습니다. 어제 하교를 들으니 더욱 황공합니다.〉 근래 큰 예가 거듭 있어 절목이 번거로워 상의 노고가 매우 많으신데, 옥체의 기후가 어떠십니까?"
하니, 왕이 이르기를,
"어려서부터 본래 열이 많아 이것이 쌓여 화증(火症)에 걸렸으니 이는 조석간에 생긴 병이 아니다. 대단한 지경은 아니지만 항시 울열증(鬱熱症)을 앓아 이 때문에 자주 경연을 열지 못한 것이다."
하니, 덕형이 아뢰기를,
"지금 별초(別抄)한 의방(醫方)이 매우 많아 의관들이 그대로 따라 약을 쓰고 있는데, 대부분 본원(本源)을 잃은 것들이니 신은 유념하시기를 바랍니다. 원기를 북돋우어 언제나 수화(水火)가 서로 조절되게 한다면 자연 열증은 사라져 쉬이 효험을 볼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유념하겠다고 하니, 덕형이 아뢰기를,
"국가가 큰 난리를 겪은 뒤로 상께서 2백 년 왕업을 이어받아 삼년상을 마치자마자 큰 경사를 온 나라에 반포하시니, 백성들은 눈을 닦고 훌륭한 정치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렵고 위태로운 형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하니, 이야말로 상께서 밤낮으로 걱정하여 쉴 겨를이 없어야 할 때입니다. 현재 인심은 불량하고 기강은 날로 해이해져 조정의 명령이 도성문 밖에서 시행되지 않으니 참으로 한심합니다. 군신 상하가 생각없이 구태의연한 인습만을 따르고 분발하는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면 국사는 다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입니다. 상께서 앞장서서 큰 정치를 하려는 뜻을 지니고 끊임없이 애쓰면서 신하에게 도움을 구하시면 아래에서 누군들 감격하여 돕지 않겠습니까. 전(傳)에 이르기를 ‘진실[誠]이란 사물의 전부이니, 진실하지 못하면 사물도 없다.’ 하였습니다. 만일 세운 뜻이 진실하지 못하면 하는 일은 모두 허위가 되고 맙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그러한 뜻을 세우고 나서 착실한 공부를 해야 효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문장(文章)의 조그만 재주는 광대와 비슷한 것입니다. 그리고 음악이나 여색, 진귀한 노리갯감, 의복, 음식에 관심을 두면 역시 마음을 지켜 공부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더구나 임금의 마음은 수많은 욕망이 공략하니 비록 큰 정치를 하려는 뜻을 지녔더라도 빼앗기지 않는 경우가 드뭅니다. 이 점이 진실함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입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그 말은 실로 약석(藥石) 같은 말이다. 깊이 명심하겠다. 지금은 지난날보다 갑절이나 어렵고 위태로워 나는 항상 한밤중에도 근심하고 있다. 그러니 대신들도 협력하여 도와야 할 텐데, 근래 서로 계속하여 정고(呈告)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물러날 계책을 하지 말고 다시 나의 뜻을 깊이 이해하여 함께 지금의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하라."
하였다. 덕형이 아뢰기를,
"소신은 용렬하고 천박한 몸으로 외람되이 수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아무리 힘을 다한다 해도 무슨 일을 꾀하여 해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정(私情)이 절박하여 지난번에 무릅쓰고 정고하였다가 여러 번 성상의 하교를 받들었으니, 죽고 싶을 뿐입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대신의 진퇴는 국가가 태평한 때라 하더라도 가볍게 해서는 안 되는데, 더구나 위급한 때이겠는가. 노친이 병환이 있으면 오가면서 보살피면 되는 것인데, 이로 인해 사직까지 하는 것은 불가하다."
하였다.
원문
○庚戌四月二十三日戊戌上御視事廳, 引見領議政李德馨。 上曰: "卿久在呈告中, 未得一見, 今以覲親辭焉, 不勝缺然。" 德馨 ■ 稱謝, 仍曰: "(小臣頃者情事切迫, 不得已呈告, 自王開筵, 一未入侍。 負罪退伏, 無地自容。 老父病根深痼, 醫言: ‘難以藥治, 必施針灸。’ 玆欲率醫下歸, 冒死陳達, 昨聞下敎, 尤爲惶恐。) 近來大禮重複, 節目繁褥, 自王 上勞動甚多, 未審玉候何如?" 王曰: "自少素多熱氣, 積傷爲火證, 此非朝夕之疾。 雖不至大段, 而常患鬱熱, 以此亦未得頻數開筵耳。" 德馨曰: "今者醫方, 別抄甚多, 醫官沿龍 襲用藥, 多失本源, 臣願留念焉。 培養眞元, 常使水火相濟, 則自然疎泄, 而見效甚易矣。" 王曰: "當體念。" 德馨曰: "國家大亂之後, 自上嗣受二百年鴻業, 纔畢三年之制, 頒布大慶於國中, 萬姓拭目, 佇見至治。 而時勢艱危, 日甚一日, 此誠自上夙夜惕慮不遑暇息之時也。 目今人心不淑, 紀綱日解, 朝廷命令, 不行於國門之外, 良可寒心。 君臣上下, 悠悠泛泛, 徒守因循之轍, 不有奮發之擧, 則國事無復可爲者。 自上先主, 大有爲之志, 孜孜不息, 求助臣隣, 下之人孰不感激交修不逮乎? 傳曰: ‘誠者, 物之終始, 不誠無物。’ 若立志不誠, 則所爲之事, 皆歸虛僞。 是心旣立其志, 且加着實功夫, 然後其效可見。 如文章小技, 近於俳優。 而留意於聲色、玩好、衣服、飮食之間, 則亦不得守心做工。 況人君一心, 衆欲交攻, 雖有有爲之志, 而不爲侵奪者幾希。 此所以誠之爲貴也。" 王曰: "此實藥石之言。 當體念。 目今艱危, 倍於曩日, 予當 常中夜憂悶, 大臣亦須協力同寅, 而近來相繼呈告。 此時勿爲辭退計, 更體予意, 共濟時艱。" 德馨曰: "小臣駑劣譾薄, 冒忝首相, 雖■殫竭筋力, 有何猷爲之事? 但私情切迫, 頃者冒昧呈告。 屢承■ 聖敎, 欲死無地。" 王曰: "大臣進退, 雖在國家隆平之時, 不可輕易, 況此危急之秋乎? 老親有病, 則可以往來省親, 以此至於辭職, 則不可也。"
광해 2년 (1610) 4월 23일
광해군일기[중초본]28권, 광해 2년 4월 23일 무술 1/4 기사 / 1610년 명 만력(萬曆) 38년
영의정 이덕형을 인견하다
국역
상이 시사청에 나아가 영의정 이덕형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이 오래도록 정고(呈告) 중에 있어 한 번도 만나지 못하였는데, 이제 근친(覲親) 때문에 떠나니 섭섭하기 그지없다."
하니, 덕형이 【사례하고 이어】 아뢰기를,
"〈소신이 지난번 사정이 절박하여 부득이 정고함으로 해서 상께서 경연을 여셨어도 한 번도 입시하지 못하였습니다. 죄를 지고 물러나니 몸둘 곳이 없습니다. 늙은 아비의 병은 고질이 되어 의원이 ‘약으로는 치료가 어렵고 침구(針灸)를 시술해야 한다.’고 하므로, 이번에 의원을 데리고 내려가고자 죽음을 무릅쓰고 진달하였습니다. 어제 하교를 들으니 더욱 황공합니다.〉 근래 큰 예가 거듭 있어 절목이 번거로워 상의 노고가 매우 많으신데, 옥체의 기후가 어떠십니까?"
하니, 왕이 이르기를,
"어려서부터 본래 열이 많아 이것이 쌓여 화증(火症)에 걸렸으니 이는 조석간에 생긴 병이 아니다. 대단한 지경은 아니지만 항시 울열증(鬱熱症)을 앓아 이 때문에 자주 경연을 열지 못한 것이다."
하니, 덕형이 아뢰기를,
"지금 별초(別抄)한 의방(醫方)이 매우 많아 의관들이 그대로 따라 약을 쓰고 있는데, 대부분 본원(本源)을 잃은 것들이니 신은 유념하시기를 바랍니다. 원기를 북돋우어 언제나 수화(水火)가 서로 조절되게 한다면 자연 열증은 사라져 쉬이 효험을 볼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유념하겠다고 하니, 덕형이 아뢰기를,
"국가가 큰 난리를 겪은 뒤로 상께서 2백 년 왕업을 이어받아 삼년상을 마치자마자 큰 경사를 온 나라에 반포하시니, 백성들은 눈을 닦고 훌륭한 정치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렵고 위태로운 형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하니, 이야말로 상께서 밤낮으로 걱정하여 쉴 겨를이 없어야 할 때입니다. 현재 인심은 불량하고 기강은 날로 해이해져 조정의 명령이 도성문 밖에서 시행되지 않으니 참으로 한심합니다. 군신 상하가 생각없이 구태의연한 인습만을 따르고 분발하는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면 국사는 다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입니다. 상께서 앞장서서 큰 정치를 하려는 뜻을 지니고 끊임없이 애쓰면서 신하에게 도움을 구하시면 아래에서 누군들 감격하여 돕지 않겠습니까. 전(傳)에 이르기를 ‘진실[誠]이란 사물의 전부이니, 진실하지 못하면 사물도 없다.’ 하였습니다. 만일 세운 뜻이 진실하지 못하면 하는 일은 모두 허위가 되고 맙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그러한 뜻을 세우고 나서 착실한 공부를 해야 효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문장(文章)의 조그만 재주는 광대와 비슷한 것입니다. 그리고 음악이나 여색, 진귀한 노리갯감, 의복, 음식에 관심을 두면 역시 마음을 지켜 공부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더구나 임금의 마음은 수많은 욕망이 공략하니 비록 큰 정치를 하려는 뜻을 지녔더라도 빼앗기지 않는 경우가 드뭅니다. 이 점이 진실함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입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그 말은 실로 약석(藥石) 같은 말이다. 깊이 명심하겠다. 지금은 지난날보다 갑절이나 어렵고 위태로워 나는 항상 한밤중에도 근심하고 있다. 그러니 대신들도 협력하여 도와야 할 텐데, 근래 서로 계속하여 정고(呈告)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물러날 계책을 하지 말고 다시 나의 뜻을 깊이 이해하여 함께 지금의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하라."
하였다. 덕형이 아뢰기를,
"소신은 용렬하고 천박한 몸으로 외람되이 수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아무리 힘을 다한다 해도 무슨 일을 꾀하여 해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정(私情)이 절박하여 지난번에 무릅쓰고 정고하였다가 여러 번 성상의 하교를 받들었으니, 죽고 싶을 뿐입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대신의 진퇴는 국가가 태평한 때라 하더라도 가볍게 해서는 안 되는데, 더구나 위급한 때이겠는가. 노친이 병환이 있으면 오가면서 보살피면 되는 것인데, 이로 인해 사직까지 하는 것은 불가하다."
하였다.
원문
○庚戌四月二十三日戊戌上御視事廳, 引見領議政李德馨。 上曰: "卿久在呈告中, 未得一見, 今以覲親辭焉, 不勝缺然。" 德馨 ■ 稱謝, 仍曰: "(小臣頃者情事切迫, 不得已呈告, 自王開筵, 一未入侍。 負罪退伏, 無地自容。 老父病根深痼, 醫言: ‘難以藥治, 必施針灸。’ 玆欲率醫下歸, 冒死陳達, 昨聞下敎, 尤爲惶恐。) 近來大禮重複, 節目繁褥, 自王 上勞動甚多, 未審玉候何如?" 王曰: "自少素多熱氣, 積傷爲火證, 此非朝夕之疾。 雖不至大段, 而常患鬱熱, 以此亦未得頻數開筵耳。" 德馨曰: "今者醫方, 別抄甚多, 醫官沿龍 襲用藥, 多失本源, 臣願留念焉。 培養眞元, 常使水火相濟, 則自然疎泄, 而見效甚易矣。" 王曰: "當體念。" 德馨曰: "國家大亂之後, 自上嗣受二百年鴻業, 纔畢三年之制, 頒布大慶於國中, 萬姓拭目, 佇見至治。 而時勢艱危, 日甚一日, 此誠自上夙夜惕慮不遑暇息之時也。 目今人心不淑, 紀綱日解, 朝廷命令, 不行於國門之外, 良可寒心。 君臣上下, 悠悠泛泛, 徒守因循之轍, 不有奮發之擧, 則國事無復可爲者。 自上先主, 大有爲之志, 孜孜不息, 求助臣隣, 下之人孰不感激交修不逮乎? 傳曰: ‘誠者, 物之終始, 不誠無物。’ 若立志不誠, 則所爲之事, 皆歸虛僞。 是心旣立其志, 且加着實功夫, 然後其效可見。 如文章小技, 近於俳優。 而留意於聲色、玩好、衣服、飮食之間, 則亦不得守心做工。 況人君一心, 衆欲交攻, 雖有有爲之志, 而不爲侵奪者幾希。 此所以誠之爲貴也。" 王曰: "此實藥石之言。 當體念。 目今艱危, 倍於曩日, 予當 常中夜憂悶, 大臣亦須協力同寅, 而近來相繼呈告。 此時勿爲辭退計, 更體予意, 共濟時艱。" 德馨曰: "小臣駑劣譾薄, 冒忝首相, 雖■殫竭筋力, 有何猷爲之事? 但私情切迫, 頃者冒昧呈告。 屢承■ 聖敎, 欲死無地。" 王曰: "大臣進退, 雖在國家隆平之時, 不可輕易, 況此危急之秋乎? 老親有病, 則可以往來省親, 以此至於辭職, 則不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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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 2년 (1610) 4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