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일기[중초본]18권, 광해 1년 7월 7일 병술 1/1 기사 / 1609년 명 만력(萬曆) 37년
예조가 태묘 신주에 쓰인 호가 같지 않음을 심의하여 아뢰다
국역
【태묘 신주에 쓰인 호(號)가 같지 않은 것으로써 예조에 명하여 심의하도록 하였는데,】 예조가 아뢰기를,
"신들이 태묘 각실을 통틀어 조사하여 주면 등서(主面謄書)·책보 등록 단자(冊寶謄錄單子) 및 축문 등록(祝文謄錄)·실록 등초(實錄謄抄)를 봉심했는데, 열성의 주면(主面)과 책보·실록에 기록된 것 및 축호(祝號)의 가감(加減)과 이동(異同)이 〈비단 경온(景溫)이 차자에서 진달한 것 정도만이 아니었습니다.〉 신의 왕후(神懿王后)는 주면에 ‘승인 순성 신의 왕후(承仁順聖神懿王后)’라고 쓰여 있고 축문과 책보에도 모두 ‘태(太)’ 자가 없으며, 원경 왕후(元敬王后)는 주면에 ‘원경 왕후’라고 쓰여 있고 축문에는 ‘창덕 소열 원경 왕후(彰德昭烈元敬王后)’라고만 쓰여 있어 역시 ‘태(太)’ 자가 없으며 책보에는 또 ‘후덕(厚德)’이란 두 글자가 더 있습니다. 소헌 왕후(昭憲王后)는 주면에 단지 ‘소헌 왕후’라고만 쓰여 있고 축문에는 ‘선인 제성 소헌 왕후(宣仁齊聖昭憲王后)’라고 쓰여 있으며, 소혜 왕후(昭惠王后)는 주면에 ‘휘숙 명의 소혜 왕후(徽淑明懿昭惠王后)’라고 쓰여 있고 축문에도 이대로 쓰여 있는데 책보 등록과 실록등초에는 또 ‘인혜 명의(仁惠明懿)’란 네 자가 더 있습니다. 공혜 왕후(恭惠王后)는 축문에 ‘휘의 신숙 공혜 왕후(徽懿愼淑恭惠王后)’라고 쓰여 있는데 책보 등록을 상고해 보았더니 ‘신숙(愼淑)’의 ‘숙(淑)’ 자는 바로 숙(肅) 자로서 축문에서 과연 잘못 쓴 것이었습니다. 정현 왕후(貞顯王后)는 주면에 ‘소의 흠숙 정현 왕후(昭懿欽淑貞顯王后)’라고 쓰였고 축문에도 역시 이대로 쓰였으며 책보 등록과 실록 등초 가운데는 또 ‘자순(慈順)’이란 두 자가 더 있습니다. 또 ‘흠숙(欽淑)’의 ‘숙(淑)’ 자는 주면에도 이미 이 숙 자로 쓰였으니, 이것은 차자를 올리면서 애당초 잘 살피지 않고 아뢴 것입니다. 장경 왕후(章敬王后)는 주면에 단지 ‘장경 왕후’라고만 쓰여 있으나 축문에는 ‘선소 의숙 장경 왕후(宣昭懿淑章敬王后)’라고 쓰여 있으며, 인성 왕후(仁聖王后)는 주면에 ‘효순공의인성왕후(孝順恭懿仁聖王后)’라고 쓰여 있고, 축문에도 이렇게 쓰여 있으나 책보와 실록에는 모두 ‘효순(孝順)’ 두 글자가 없습니다. 인순 왕후(仁順王后)는 주면에 ‘선열 의성 인순 왕후(宣烈懿聖仁順王后)’라고 쓰여 있고 축문에도 이대로 쓰여 있으나 책보와 실록 가운데는 모두 ‘선열(宣烈)’ 두 글자가 없습니다.
이에 의거하여 참고하면 열성의 가호(加號)의 경우 축문엔 쓰고 주면에는 쓰지 않은 것은 있지만 주면에 쓴 것을 축문에서 감한 경우는 없으며, 줄여 쓴 것도 단지 ‘왕태후(王太后)’의 ‘태(太)’ 자 뿐입니다. 〈차자에서 진술한 바는 단지 자신이 살펴본 실록 등서에만 의거하여 운운한 것이고, 태묘의 열성 주면과 책보·실록에 원래 이처럼 많은 차이가 있는 줄은 미처 모른 것입니다.〉
대저 축호(祝號)를 혹 주면에 쓰인 바대로 따르는 것이 바로 통행하는 예였으며, 신주를 쓸 때에도 마땅히 책보와 차이가 없었어야 할 것이나, 조종조에서 반드시 헤아려서 절충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차이가 곧 이와 같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그 까닭이 있을 것이나, 지금 억측하여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축문 가운데 글자를 잘못 쓴 것은 마땅히 주면을 따라 고쳐 써야 하나, 차이가 있는 곳을 가감하는 데 있어서는 만약 주면대로 한다면 축문 호칭에서 가호(加號)를 감해야 하며, 만약 가호를 줄이기가 어렵다고 한다면 주면과 다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혹 주면을 따르거나 혹은 축호를 따르는 이 두 가지 항목은 사체가 아주 중하여 해조에서 감히 결정할 수 없으니, 대신과 의논하여 처리하소서.
공정 대왕(恭靖大王)과 안정 왕후(安定王后)의 휘호(徽號)의 차이점은 영녕전(永寧殿)을 미처 봉심하지 못하였으니, 이번 대신들의 수의를 기다려 품지하여 결정한 연후에 다시 봉심하여 일체로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주면·책보·축문·실록 네 조항은 별단(別單)에 등서하여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원문
○己酉七月初七日丙戌以太廟神主書號不同, 命禮曹審議。 禮曹啓曰: "臣等通査太廟各室, 奉審主面謄書、冊寶謄錄單子及祝文謄錄、實錄謄抄, 則列聖主面與冊寶、實錄所載及祝號加減異同, (不徒景溫箚子中所陳而已。) 神懿王后主面則書以‘承仁順聖神懿王后’, 祝文、冊寶俱無太字; 元敬王后主面則書以‘元敬王后’, 而祝文則以‘彰德昭烈元敬王后’書之, 而亦無太字, 冊寶則又有‘厚德’二字。 昭憲王后主面則只書‘昭憲王后’, 而祝文則以‘宣仁齊聖昭憲王后’書之; 昭惠王后主面則書以‘徽淑明懿昭惠王后’, 祝文亦依此書之, 而冊寶謄錄、實錄謄抄中, 又有‘仁惠明懿’四字。 恭惠王后祝文以‘徽懿愼淑恭惠王后’書之, 考諸冊寶謄錄, 則‘愼淑’之淑, 乃是肅字, 而祝文中果爲誤書。 貞顯王后主面則書以‘昭懿欽淑貞顯王后’, 祝文亦依此書之, 而冊寶謄錄、實錄謄抄中, 又有‘慈順’二字。 ‘欽淑’之淑字, 則主面旣以淑字書之, 此則箚子中, 初未察而上聞者也。 章敬王后主面則只書‘章敬王后’而祝文以‘宣昭懿淑章敬王后’書之; 仁聖王后主面則書以‘孝順恭懿仁聖王后’, 祝文亦依此書之, 而冊寶、實錄中俱無‘孝順’二字。 仁順王后主面則書以‘宣烈懿聖仁順王后’, 祝文亦依此書之, 而冊寶、實錄中俱無‘宣烈’二字。 據此參詳, 則列聖加號, 書於祝文而不書於主面者則有之矣, 未有主面所書減書於祝文者, 其減書者, 只‘王太后’之‘太’字而已。 (箚子所陳, 似是只據所見實錄謄書而云云, 未知太廟列聖主面與冊寶、實錄元有此許多異同也。)大抵祝號之或從主面所書, 乃是通行之禮, 題主之時, 亦當與冊寶宜無異同。 在祖宗朝, 必有商確折衷之事, 而異同乃如此。 此必有所以, 而今難以臆論也。 祝文中字之誤書者, 則當從主面改書。 而至於加減異同之處, 若從主面, 則祝文號中當減去加號, 若以加號減去爲重難, 則不免與主面有異。 或從主面, 或從祝號, 兩節事體極重, 非該曹所敢定奪。 請議大臣處置。 恭靖大王、安定王后徽號異同, 則永寧殿未及奉審, 待此大臣收議稟旨定奪, 然後更爲奉審, 一體施行何如? 主面、冊寶、祝文、實錄四款、謄書別單以啓。" 傳曰: "依啓。"
광해 1년 (1609) 7월 7일
광해군일기[중초본]18권, 광해 1년 7월 7일 병술 1/1 기사 / 1609년 명 만력(萬曆) 37년
예조가 태묘 신주에 쓰인 호가 같지 않음을 심의하여 아뢰다
국역
【태묘 신주에 쓰인 호(號)가 같지 않은 것으로써 예조에 명하여 심의하도록 하였는데,】 예조가 아뢰기를,
"신들이 태묘 각실을 통틀어 조사하여 주면 등서(主面謄書)·책보 등록 단자(冊寶謄錄單子) 및 축문 등록(祝文謄錄)·실록 등초(實錄謄抄)를 봉심했는데, 열성의 주면(主面)과 책보·실록에 기록된 것 및 축호(祝號)의 가감(加減)과 이동(異同)이 〈비단 경온(景溫)이 차자에서 진달한 것 정도만이 아니었습니다.〉 신의 왕후(神懿王后)는 주면에 ‘승인 순성 신의 왕후(承仁順聖神懿王后)’라고 쓰여 있고 축문과 책보에도 모두 ‘태(太)’ 자가 없으며, 원경 왕후(元敬王后)는 주면에 ‘원경 왕후’라고 쓰여 있고 축문에는 ‘창덕 소열 원경 왕후(彰德昭烈元敬王后)’라고만 쓰여 있어 역시 ‘태(太)’ 자가 없으며 책보에는 또 ‘후덕(厚德)’이란 두 글자가 더 있습니다. 소헌 왕후(昭憲王后)는 주면에 단지 ‘소헌 왕후’라고만 쓰여 있고 축문에는 ‘선인 제성 소헌 왕후(宣仁齊聖昭憲王后)’라고 쓰여 있으며, 소혜 왕후(昭惠王后)는 주면에 ‘휘숙 명의 소혜 왕후(徽淑明懿昭惠王后)’라고 쓰여 있고 축문에도 이대로 쓰여 있는데 책보 등록과 실록등초에는 또 ‘인혜 명의(仁惠明懿)’란 네 자가 더 있습니다. 공혜 왕후(恭惠王后)는 축문에 ‘휘의 신숙 공혜 왕후(徽懿愼淑恭惠王后)’라고 쓰여 있는데 책보 등록을 상고해 보았더니 ‘신숙(愼淑)’의 ‘숙(淑)’ 자는 바로 숙(肅) 자로서 축문에서 과연 잘못 쓴 것이었습니다. 정현 왕후(貞顯王后)는 주면에 ‘소의 흠숙 정현 왕후(昭懿欽淑貞顯王后)’라고 쓰였고 축문에도 역시 이대로 쓰였으며 책보 등록과 실록 등초 가운데는 또 ‘자순(慈順)’이란 두 자가 더 있습니다. 또 ‘흠숙(欽淑)’의 ‘숙(淑)’ 자는 주면에도 이미 이 숙 자로 쓰였으니, 이것은 차자를 올리면서 애당초 잘 살피지 않고 아뢴 것입니다. 장경 왕후(章敬王后)는 주면에 단지 ‘장경 왕후’라고만 쓰여 있으나 축문에는 ‘선소 의숙 장경 왕후(宣昭懿淑章敬王后)’라고 쓰여 있으며, 인성 왕후(仁聖王后)는 주면에 ‘효순공의인성왕후(孝順恭懿仁聖王后)’라고 쓰여 있고, 축문에도 이렇게 쓰여 있으나 책보와 실록에는 모두 ‘효순(孝順)’ 두 글자가 없습니다. 인순 왕후(仁順王后)는 주면에 ‘선열 의성 인순 왕후(宣烈懿聖仁順王后)’라고 쓰여 있고 축문에도 이대로 쓰여 있으나 책보와 실록 가운데는 모두 ‘선열(宣烈)’ 두 글자가 없습니다.
이에 의거하여 참고하면 열성의 가호(加號)의 경우 축문엔 쓰고 주면에는 쓰지 않은 것은 있지만 주면에 쓴 것을 축문에서 감한 경우는 없으며, 줄여 쓴 것도 단지 ‘왕태후(王太后)’의 ‘태(太)’ 자 뿐입니다. 〈차자에서 진술한 바는 단지 자신이 살펴본 실록 등서에만 의거하여 운운한 것이고, 태묘의 열성 주면과 책보·실록에 원래 이처럼 많은 차이가 있는 줄은 미처 모른 것입니다.〉
대저 축호(祝號)를 혹 주면에 쓰인 바대로 따르는 것이 바로 통행하는 예였으며, 신주를 쓸 때에도 마땅히 책보와 차이가 없었어야 할 것이나, 조종조에서 반드시 헤아려서 절충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차이가 곧 이와 같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그 까닭이 있을 것이나, 지금 억측하여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축문 가운데 글자를 잘못 쓴 것은 마땅히 주면을 따라 고쳐 써야 하나, 차이가 있는 곳을 가감하는 데 있어서는 만약 주면대로 한다면 축문 호칭에서 가호(加號)를 감해야 하며, 만약 가호를 줄이기가 어렵다고 한다면 주면과 다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혹 주면을 따르거나 혹은 축호를 따르는 이 두 가지 항목은 사체가 아주 중하여 해조에서 감히 결정할 수 없으니, 대신과 의논하여 처리하소서.
공정 대왕(恭靖大王)과 안정 왕후(安定王后)의 휘호(徽號)의 차이점은 영녕전(永寧殿)을 미처 봉심하지 못하였으니, 이번 대신들의 수의를 기다려 품지하여 결정한 연후에 다시 봉심하여 일체로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주면·책보·축문·실록 네 조항은 별단(別單)에 등서하여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원문
○己酉七月初七日丙戌以太廟神主書號不同, 命禮曹審議。 禮曹啓曰: "臣等通査太廟各室, 奉審主面謄書、冊寶謄錄單子及祝文謄錄、實錄謄抄, 則列聖主面與冊寶、實錄所載及祝號加減異同, (不徒景溫箚子中所陳而已。) 神懿王后主面則書以‘承仁順聖神懿王后’, 祝文、冊寶俱無太字; 元敬王后主面則書以‘元敬王后’, 而祝文則以‘彰德昭烈元敬王后’書之, 而亦無太字, 冊寶則又有‘厚德’二字。 昭憲王后主面則只書‘昭憲王后’, 而祝文則以‘宣仁齊聖昭憲王后’書之; 昭惠王后主面則書以‘徽淑明懿昭惠王后’, 祝文亦依此書之, 而冊寶謄錄、實錄謄抄中, 又有‘仁惠明懿’四字。 恭惠王后祝文以‘徽懿愼淑恭惠王后’書之, 考諸冊寶謄錄, 則‘愼淑’之淑, 乃是肅字, 而祝文中果爲誤書。 貞顯王后主面則書以‘昭懿欽淑貞顯王后’, 祝文亦依此書之, 而冊寶謄錄、實錄謄抄中, 又有‘慈順’二字。 ‘欽淑’之淑字, 則主面旣以淑字書之, 此則箚子中, 初未察而上聞者也。 章敬王后主面則只書‘章敬王后’而祝文以‘宣昭懿淑章敬王后’書之; 仁聖王后主面則書以‘孝順恭懿仁聖王后’, 祝文亦依此書之, 而冊寶、實錄中俱無‘孝順’二字。 仁順王后主面則書以‘宣烈懿聖仁順王后’, 祝文亦依此書之, 而冊寶、實錄中俱無‘宣烈’二字。 據此參詳, 則列聖加號, 書於祝文而不書於主面者則有之矣, 未有主面所書減書於祝文者, 其減書者, 只‘王太后’之‘太’字而已。 (箚子所陳, 似是只據所見實錄謄書而云云, 未知太廟列聖主面與冊寶、實錄元有此許多異同也。)大抵祝號之或從主面所書, 乃是通行之禮, 題主之時, 亦當與冊寶宜無異同。 在祖宗朝, 必有商確折衷之事, 而異同乃如此。 此必有所以, 而今難以臆論也。 祝文中字之誤書者, 則當從主面改書。 而至於加減異同之處, 若從主面, 則祝文號中當減去加號, 若以加號減去爲重難, 則不免與主面有異。 或從主面, 或從祝號, 兩節事體極重, 非該曹所敢定奪。 請議大臣處置。 恭靖大王、安定王后徽號異同, 則永寧殿未及奉審, 待此大臣收議稟旨定奪, 然後更爲奉審, 一體施行何如? 主面、冊寶、祝文、實錄四款、謄書別單以啓。" 傳曰: "依啓。"
원본
광해 1년 (1609) 7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