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일기[중초본]15권, 광해 1년 4월 2일 계축 3/3 기사 / 1609년 명 만력(萬曆) 37년
일본 객사의 상경 불허의 개유 상황에 대한 경상 감사 신경진의 치계
국역
경상 감사 신경진(辛慶晉)이 치계하였다.
"3월 25일 선위사(宣慰使)가 접대 잔치를 베푼 이튿날, 신이 동래로부터 부산에 도착하여 객사(客使)의 상경을 허락하지 않는 일로 선위사 이지완(李志完)과 상의하였습니다. 신이 객사의 상경을 허락지 않는 일과 다음달 1일 부산관(釜山館)에서 서계(書契)를 받는 조정의 사목(事目)을 가지고 선위사에게 이문(移文)하고, 이어 박대근(朴大根)·김효순(金孝舜) 등으로 하여금 한결같이 조정이 분부한 내용으로 잘 말하여 개유하되, 만약 곤란하게 여기는 기색이 있거든 공문을 내보이며 힘껏 말하여 굽히지 말라는 뜻으로 지시하여 보냈습니다.
돌아와 말하기를 ‘먼저 평경직(平景直)을 보고 한결같이 분부대로 개유하였으나 경직은 여전히 화를 내었다. 대근이 즉시 공문을 내보이자, 경직이 지정(智正)을 불러 이르기를 「지금 관찰사의 이문을 보니 그 기일을 정하기까지 하였다. 실로 이와 같다면 차라리 돌아가지 여기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 관찰사 역시 공연히 멀리 올 필요가 없다.」 하였다. 대근·효순이 정색하고 큰 소리로 말하기를 「나라에 대상(大喪)이 있고 중국 사신이 거듭 이르렀다. 또 약조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니, 너희들의 상경은 결코 적시가 아니다. 너희 나라가 까닭없이 군사를 일으켜 우리 나라의 무고한 백성을 살해했으니, 우리 나라의 본의는 차마 너희 나라와 화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근래 가강(家康)이 수길(秀吉)의 소행을 모두 반성하고 옛날의 조약을 다시 맺고자 포로를 계속 내보내고 너희 마도(馬島) 또한 정성을 바치는 뜻이 있으므로 우리 나라가 변방을 포용하는 도량으로 우선 너희 소원을 허락하였으니, 실로 이는 너희 마도의 다행이다. 오늘날 부산에서 너희를 기다려 약조를 강정(講定)하는 것은 모두 너희 마도를 위해서이다. 너희는 왜 사세를 헤아리지 않고 이와 같이 협박하는가. 조정이 만약 이 말을 듣는다면 너희들의 7, 8년 공부는 반드시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고 하자, 경직이 말하기를 「조선이 전투는 겁내면서 쟁변에는 용감하여 한갓 예모와 문자에만 구구하게 굴고 있는데 이는 말로 따질 일이 아니다. 또 이미 국왕의 서계를 받았으니 중도에 버려두고 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큰 책망을 받을 뿐 아니라 끝내 죽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조선의 말을 듣지 않자니 이 일이 거의 이루어졌다가 끝내 실패할 것이고, 듣자니 이 몸을 장차 어느 곳에 두겠는가. 진퇴 양난이 되어 조처할 바를 모르겠다.」고 하면서 끝내 거절하고 따르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현재 역관 박대근 등으로 하여금 주선해 반복하여 개유하게 하고 있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408면
- 【분류】외교-왜(倭)
원문
○慶尙監司辛慶晉馳啓曰: "三月二十五日, 宣慰使宴享, 翌日, 臣自東萊到釜山, 以客使不許上京事, 與宣慰使李志完商議。 臣以‘朝廷事目客使不許上京及開月初一日受書契于釜山館’等事, 移文于宣慰使, 仍令朴大根、金孝舜等, 一依朝廷分付(事)意, 善辭開諭, 如有持難之色, 出示公文, 力爭不撓之意, 指揮分送。 則回言: ‘先見景直一遵分付諭之, 則景直如前勃怒。 大根卽出公文示之, 則景直招智正謂曰: 「見此觀察使移文, 至於定其日期。 實若如此, 則寧卽還歸, 不宜留此。 觀察使亦不須等閑遠來。」 大根、孝舜等正色大言曰: 「國有大喪, 天使疊到。 且約條尙未講定, 爾之上京, 決非其時。 況爾國無故動兵, 殺我國無辜之民, 我國本意, 不忍與爾國通和, 而年來家康盡反秀吉所爲, 欲尋舊約, 被擄之人, 連續出送, 爾島亦有輸誠納款之意, 故我國以包荒之量, 姑許爾願, 實是爾島之幸也。 今日, 待爾於釜山, 講定約條者, 無非爲馬島耳。 爾何不量事勢, 發此恐䝱之言? 朝廷若聞此言, 則爾等七八年工夫, 必歸虛地。」 景直曰: 「朝鮮怯於戰鬪, 勇於爭辨, 徒區區於禮貌文字之間, 此不可以口舌爭之也。 且旣受國王書契, 置於中道, 不爲傳送, 則非徒得蒙大責, 終難免死。 不聽朝鮮之言, 則此事垂成而終敗, 欲聽則此身將置於何地? 進退維谷, 不知所處。」 終始牢拒不從。’ 方令譯官朴大根等, 周旋反覆開諭矣。" ○申時, 太白見於未地, 日暈。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408면
- 【분류】외교-왜(倭)
광해 1년 (1609) 4월 2일
광해군일기[중초본]15권, 광해 1년 4월 2일 계축 3/3 기사 / 1609년 명 만력(萬曆) 37년
일본 객사의 상경 불허의 개유 상황에 대한 경상 감사 신경진의 치계
국역
경상 감사 신경진(辛慶晉)이 치계하였다.
"3월 25일 선위사(宣慰使)가 접대 잔치를 베푼 이튿날, 신이 동래로부터 부산에 도착하여 객사(客使)의 상경을 허락하지 않는 일로 선위사 이지완(李志完)과 상의하였습니다. 신이 객사의 상경을 허락지 않는 일과 다음달 1일 부산관(釜山館)에서 서계(書契)를 받는 조정의 사목(事目)을 가지고 선위사에게 이문(移文)하고, 이어 박대근(朴大根)·김효순(金孝舜) 등으로 하여금 한결같이 조정이 분부한 내용으로 잘 말하여 개유하되, 만약 곤란하게 여기는 기색이 있거든 공문을 내보이며 힘껏 말하여 굽히지 말라는 뜻으로 지시하여 보냈습니다.
돌아와 말하기를 ‘먼저 평경직(平景直)을 보고 한결같이 분부대로 개유하였으나 경직은 여전히 화를 내었다. 대근이 즉시 공문을 내보이자, 경직이 지정(智正)을 불러 이르기를 「지금 관찰사의 이문을 보니 그 기일을 정하기까지 하였다. 실로 이와 같다면 차라리 돌아가지 여기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 관찰사 역시 공연히 멀리 올 필요가 없다.」 하였다. 대근·효순이 정색하고 큰 소리로 말하기를 「나라에 대상(大喪)이 있고 중국 사신이 거듭 이르렀다. 또 약조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니, 너희들의 상경은 결코 적시가 아니다. 너희 나라가 까닭없이 군사를 일으켜 우리 나라의 무고한 백성을 살해했으니, 우리 나라의 본의는 차마 너희 나라와 화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근래 가강(家康)이 수길(秀吉)의 소행을 모두 반성하고 옛날의 조약을 다시 맺고자 포로를 계속 내보내고 너희 마도(馬島) 또한 정성을 바치는 뜻이 있으므로 우리 나라가 변방을 포용하는 도량으로 우선 너희 소원을 허락하였으니, 실로 이는 너희 마도의 다행이다. 오늘날 부산에서 너희를 기다려 약조를 강정(講定)하는 것은 모두 너희 마도를 위해서이다. 너희는 왜 사세를 헤아리지 않고 이와 같이 협박하는가. 조정이 만약 이 말을 듣는다면 너희들의 7, 8년 공부는 반드시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고 하자, 경직이 말하기를 「조선이 전투는 겁내면서 쟁변에는 용감하여 한갓 예모와 문자에만 구구하게 굴고 있는데 이는 말로 따질 일이 아니다. 또 이미 국왕의 서계를 받았으니 중도에 버려두고 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큰 책망을 받을 뿐 아니라 끝내 죽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조선의 말을 듣지 않자니 이 일이 거의 이루어졌다가 끝내 실패할 것이고, 듣자니 이 몸을 장차 어느 곳에 두겠는가. 진퇴 양난이 되어 조처할 바를 모르겠다.」고 하면서 끝내 거절하고 따르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현재 역관 박대근 등으로 하여금 주선해 반복하여 개유하게 하고 있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408면
- 【분류】외교-왜(倭)
원문
○慶尙監司辛慶晉馳啓曰: "三月二十五日, 宣慰使宴享, 翌日, 臣自東萊到釜山, 以客使不許上京事, 與宣慰使李志完商議。 臣以‘朝廷事目客使不許上京及開月初一日受書契于釜山館’等事, 移文于宣慰使, 仍令朴大根、金孝舜等, 一依朝廷分付(事)意, 善辭開諭, 如有持難之色, 出示公文, 力爭不撓之意, 指揮分送。 則回言: ‘先見景直一遵分付諭之, 則景直如前勃怒。 大根卽出公文示之, 則景直招智正謂曰: 「見此觀察使移文, 至於定其日期。 實若如此, 則寧卽還歸, 不宜留此。 觀察使亦不須等閑遠來。」 大根、孝舜等正色大言曰: 「國有大喪, 天使疊到。 且約條尙未講定, 爾之上京, 決非其時。 況爾國無故動兵, 殺我國無辜之民, 我國本意, 不忍與爾國通和, 而年來家康盡反秀吉所爲, 欲尋舊約, 被擄之人, 連續出送, 爾島亦有輸誠納款之意, 故我國以包荒之量, 姑許爾願, 實是爾島之幸也。 今日, 待爾於釜山, 講定約條者, 無非爲馬島耳。 爾何不量事勢, 發此恐䝱之言? 朝廷若聞此言, 則爾等七八年工夫, 必歸虛地。」 景直曰: 「朝鮮怯於戰鬪, 勇於爭辨, 徒區區於禮貌文字之間, 此不可以口舌爭之也。 且旣受國王書契, 置於中道, 不爲傳送, 則非徒得蒙大責, 終難免死。 不聽朝鮮之言, 則此事垂成而終敗, 欲聽則此身將置於何地? 進退維谷, 不知所處。」 終始牢拒不從。’ 方令譯官朴大根等, 周旋反覆開諭矣。" ○申時, 太白見於未地, 日暈。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408면
- 【분류】외교-왜(倭)
원본
광해 1년 (1609) 4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