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수정실록41권, 선조 40년 1월 1일 을축 3/3 기사 / 1607년 명 만력(萬曆) 35년
회답사에 쇄환사를 겸칭하도록 명하다
국역
회답사에 쇄환사(刷還使)를 겸칭하도록 명하였다. 여우길(呂祐吉) 등이 떠난 후에 비변사가 아뢰기를,
"삼가 전후 성교(聖敎)를 보건대 사신의 행차에 우리 나라 피로인(被擄人)들을 모두 쇄환코자 한다 하였습니다. 무릇 이를 보고 듣는 자로서 누군들 감격치 않겠습니까. 구구하게 이런 거조를 하는 것은 백성을 위해 굽히는 것이니, 사신의 명호를 회답 겸 쇄환사(回答兼刷還使)라고 칭하고 중국 조정에 주문(奏文)할 때에도 이러한 뜻을 언급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따랐다. 그리고 상이 하교하기를,
"전쟁에 사용하는 무기로는 왜인의 조총(鳥銃)이 가장 절묘하다. 백금을 넉넉히 보내 역관(譯官)들로 하여금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을 사서 가져오게 하라."
하니, 이에 해조(該曹)에서 급히 사람을 보내 상의 뜻을 알렸다. 이로 말미암아 사행(使行)에 참여한 사람들이 화물(貨物)을 많이 가지고 가 모두 흥리(興利)할 계책을 꾸몄으므로 식자(識者)들이 한심하게 여겼다.
원문
선조 40년 (1607) 1월 1일
선조수정실록41권, 선조 40년 1월 1일 을축 3/3 기사 / 1607년 명 만력(萬曆) 35년
회답사에 쇄환사를 겸칭하도록 명하다
국역
회답사에 쇄환사(刷還使)를 겸칭하도록 명하였다. 여우길(呂祐吉) 등이 떠난 후에 비변사가 아뢰기를,
"삼가 전후 성교(聖敎)를 보건대 사신의 행차에 우리 나라 피로인(被擄人)들을 모두 쇄환코자 한다 하였습니다. 무릇 이를 보고 듣는 자로서 누군들 감격치 않겠습니까. 구구하게 이런 거조를 하는 것은 백성을 위해 굽히는 것이니, 사신의 명호를 회답 겸 쇄환사(回答兼刷還使)라고 칭하고 중국 조정에 주문(奏文)할 때에도 이러한 뜻을 언급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따랐다. 그리고 상이 하교하기를,
"전쟁에 사용하는 무기로는 왜인의 조총(鳥銃)이 가장 절묘하다. 백금을 넉넉히 보내 역관(譯官)들로 하여금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을 사서 가져오게 하라."
하니, 이에 해조(該曹)에서 급히 사람을 보내 상의 뜻을 알렸다. 이로 말미암아 사행(使行)에 참여한 사람들이 화물(貨物)을 많이 가지고 가 모두 흥리(興利)할 계책을 꾸몄으므로 식자(識者)들이 한심하게 여겼다.
원문
원본
선조 40년 (1607)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