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수정실록40권, 선조 39년 12월 1일 을미 1/1 기사 / 1606년 명 만력(萬曆) 34년
회답사 여우길·경섬, 서장관 정호관 등을 일본에 파견하다
국역
회답사(回答使) 여우길(呂祐吉)·경섬(慶暹), 서장관(書狀官) 정호관(丁好寬) 등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원가강(源家康)이 신사(信使)를 여러 번 청하였으나 조정의 의논은 사행의 명칭 붙이는 것을 어렵게 여겨 오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가강이 서계(書契)를 보내 굳이 청하므로 드디어 회답(回答)이란 이름으로 이들을 파견하였는데, 사람들이 모두 나라의 원수를 갚지도 못한 상태에서 먼저 신사(信使)를 허락한 것은 옳지 못하다고 여겼다. 전 참판 윤안성(尹安性)이 시를 지어 우길에서 준 전별시(餞別詩)에,
회답이란 사명 띠고 어디로 향하는가
오늘 그대의 행차를 나는 모르겠네
한강에 나가 강 위를 바라보라
두 능의 송백 가지가 솟지 않았으리.
하였는데, 한때에 널리 애송되었다. 당시는 유영경이 오래도록 권력을 잡았던 때로 뇌물이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었다. 남쪽 변방의 어느 수장(水將)이 배 한 척의 쌀을 영경에게 보내면서 훈련 도감(訓鍊都監)의 군량미라고 하였는데, 도제조(都提調) 이항복이 이를 듣고 그 배에 실은 것을 거두어 도감에 실어 들였다. 또 어떤 무부(武夫)가 영경에게 뇌물을 바치고 만호(萬戶)의 벼슬을 얻었는데 이름이 같은 자가 와서 다투어 숙배(肅拜)하려고 했으므로 듣는 이마다 실소하지 않는 자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윤안성이 또 시를 지어 기롱하였는데,
도감은 배 한 척의 쌀을 거저 얻었고
만호 두 명이 와 숙배 다투네
이같은 말이 새외에 들린다면
동왜와 북적은 저절로 평정되겠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40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99면
- 【분류】외교-왜(倭) / 어문학-문학(文學)
원문
○朔乙未/遣回答使呂祐吉ㆍ慶暹、書狀官丁好寬等入日本。 家康累請信使, 而朝議難其名, 久不許。 至是, 家康致書固請, 遂以回答爲名而遣之, 人皆以國讐未復, 徑許信使爲非。 前參判尹安性作詩, 贈別祐吉曰: "使名回答向何之? 今日君行我未知。 試到漢江江上望, 二陵松栢不生枝。" 一時傳誦。 時, 柳永慶久執朝權, 賄賂公行。 有南邊水將以一舡米遺永慶, 而稱以訓鍊都監軍餉, 都提調李恒福聞之, 取其船所載, 輸入于都監。 又一武夫納賂於永慶, 得除萬戶, 有同名者來爭肅拜, 聞者無不失笑。 安性又有詩曰: "都監坐得全舡米, 萬戶來爭肅拜名。 若使此言聞塞外, 東倭北狄自然平。"
宣祖大王修正實錄卷之四十
- 【태백산사고본】 8책 40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99면
- 【분류】외교-왜(倭) / 어문학-문학(文學)
선조 39년 (1606) 12월 1일
선조수정실록40권, 선조 39년 12월 1일 을미 1/1 기사 / 1606년 명 만력(萬曆) 34년
회답사 여우길·경섬, 서장관 정호관 등을 일본에 파견하다
국역
회답사(回答使) 여우길(呂祐吉)·경섬(慶暹), 서장관(書狀官) 정호관(丁好寬) 등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원가강(源家康)이 신사(信使)를 여러 번 청하였으나 조정의 의논은 사행의 명칭 붙이는 것을 어렵게 여겨 오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가강이 서계(書契)를 보내 굳이 청하므로 드디어 회답(回答)이란 이름으로 이들을 파견하였는데, 사람들이 모두 나라의 원수를 갚지도 못한 상태에서 먼저 신사(信使)를 허락한 것은 옳지 못하다고 여겼다. 전 참판 윤안성(尹安性)이 시를 지어 우길에서 준 전별시(餞別詩)에,
회답이란 사명 띠고 어디로 향하는가
오늘 그대의 행차를 나는 모르겠네
한강에 나가 강 위를 바라보라
두 능의 송백 가지가 솟지 않았으리.
하였는데, 한때에 널리 애송되었다. 당시는 유영경이 오래도록 권력을 잡았던 때로 뇌물이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었다. 남쪽 변방의 어느 수장(水將)이 배 한 척의 쌀을 영경에게 보내면서 훈련 도감(訓鍊都監)의 군량미라고 하였는데, 도제조(都提調) 이항복이 이를 듣고 그 배에 실은 것을 거두어 도감에 실어 들였다. 또 어떤 무부(武夫)가 영경에게 뇌물을 바치고 만호(萬戶)의 벼슬을 얻었는데 이름이 같은 자가 와서 다투어 숙배(肅拜)하려고 했으므로 듣는 이마다 실소하지 않는 자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윤안성이 또 시를 지어 기롱하였는데,
도감은 배 한 척의 쌀을 거저 얻었고
만호 두 명이 와 숙배 다투네
이같은 말이 새외에 들린다면
동왜와 북적은 저절로 평정되겠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40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99면
- 【분류】외교-왜(倭) / 어문학-문학(文學)
원문
○朔乙未/遣回答使呂祐吉ㆍ慶暹、書狀官丁好寬等入日本。 家康累請信使, 而朝議難其名, 久不許。 至是, 家康致書固請, 遂以回答爲名而遣之, 人皆以國讐未復, 徑許信使爲非。 前參判尹安性作詩, 贈別祐吉曰: "使名回答向何之? 今日君行我未知。 試到漢江江上望, 二陵松栢不生枝。" 一時傳誦。 時, 柳永慶久執朝權, 賄賂公行。 有南邊水將以一舡米遺永慶, 而稱以訓鍊都監軍餉, 都提調李恒福聞之, 取其船所載, 輸入于都監。 又一武夫納賂於永慶, 得除萬戶, 有同名者來爭肅拜, 聞者無不失笑。 安性又有詩曰: "都監坐得全舡米, 萬戶來爭肅拜名。 若使此言聞塞外, 東倭北狄自然平。"
宣祖大王修正實錄卷之四十
- 【태백산사고본】 8책 40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99면
- 【분류】외교-왜(倭) / 어문학-문학(文學)
원본
선조 39년 (1606) 12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