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수정실록39권, 선조 38년 8월 1일 계묘 3/3 기사 / 1605년 명 만력(萬曆) 33년
김상헌을 경성 판관으로 삼다
국역
김상헌(金尙憲)을 경성 판관(鏡城判官)으로 삼았다. 처음 상헌이 전랑(銓郞)으로 있을 때 이조 참판 기자헌이 유영경을 대사헌으로 의망하려 하자 상헌이 이를 힘써 막았다. 이 때문에 영경의 당이 깊이 유감을 품게 되었다. 얼마 있다가 영경이 국정(國政)을 훔쳐 잡자 이를 인연하여 때를 보아 복수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먼저 상헌을 배척하여 고산 찰방(高山察訪)으로 삼았다가 파직되어 돌아오자마자 바로 경성 판관으로 보임시켰으므로 여러 신하들이 모두 분해하며 탄식하였다. 《실록》을 살피건대,
"상헌이 일찍이 전랑이 되었을 때 일을 임의로 처리하니, 자헌이 영경을 끌어들여 응견(鷹犬)을 삼으려 하였는데, 상헌에게 저지당했다."
하였으니, 그 강직하고 방정하여 흔들리지 않았던 것을 여기에서 또한 알 수 있는데 이 때문에 미움을 받은 것이다. 《실록》에 또,
"좌의정 기자헌은 성품이 너그럽고 일찍부터 덕망을 지니고 있었다."
하였는데, 자헌이 《실록》을 감수할 때 자기 속셈대로 감행하면서 이토록 조금도 거리낌없이 하였으니 주벌(誅伐)해도 모자라다 하겠다.
선조수정실록39권, 선조 38년 8월 1일 계묘 3/3 기사 / 1605년 명 만력(萬曆) 33년
김상헌을 경성 판관으로 삼다
국역
김상헌(金尙憲)을 경성 판관(鏡城判官)으로 삼았다. 처음 상헌이 전랑(銓郞)으로 있을 때 이조 참판 기자헌이 유영경을 대사헌으로 의망하려 하자 상헌이 이를 힘써 막았다. 이 때문에 영경의 당이 깊이 유감을 품게 되었다. 얼마 있다가 영경이 국정(國政)을 훔쳐 잡자 이를 인연하여 때를 보아 복수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먼저 상헌을 배척하여 고산 찰방(高山察訪)으로 삼았다가 파직되어 돌아오자마자 바로 경성 판관으로 보임시켰으므로 여러 신하들이 모두 분해하며 탄식하였다. 《실록》을 살피건대,
"상헌이 일찍이 전랑이 되었을 때 일을 임의로 처리하니, 자헌이 영경을 끌어들여 응견(鷹犬)을 삼으려 하였는데, 상헌에게 저지당했다."
하였으니, 그 강직하고 방정하여 흔들리지 않았던 것을 여기에서 또한 알 수 있는데 이 때문에 미움을 받은 것이다. 《실록》에 또,
"좌의정 기자헌은 성품이 너그럽고 일찍부터 덕망을 지니고 있었다."
하였는데, 자헌이 《실록》을 감수할 때 자기 속셈대로 감행하면서 이토록 조금도 거리낌없이 하였으니 주벌(誅伐)해도 모자라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