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수정실록36권, 선조 35년 9월 25일 갑신 1/1 기사 / 1602년 명 만력(萬曆) 30년
경상도에 사는 오여은과 당시 사관들이 정인홍을 위해 변명하다
국역
경상도에 사는 오여은(吳汝穩)이 상소하기를 ‘정인홍은 사람 가운데 봉황인데 이귀가 감히 죄를 얽어 날조하였다.’ 하면서 절목마다 변명한 것이 수천 언이었다. 그때의 사관이 또 잇따라 말하기를 ‘인홍은 조식(趙植)의 고제(高弟)로서 기절(氣節)로 자부하였으므로 많은 선비들이 그를 높여 내암 선생(來庵先生)이라 불렀다. 이제 불세(不世)의 지우(知遇)를 받아 잇따라 풍헌(風憲)의 장관이 되었으니, 조정은 마땅히 어진이를 높이는 지극한 뜻을 체득해야 하는데, 인홍이 끝내 실의(失意)하고 돌아감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고고한 산림(山林)의 선비들로 하여금 산으로 깊이깊이 들어가면서 인홍의 일로 경계를 삼게 하였으니 매우 애석한 일이다.’ 하였다.
인홍은 산림에다 자취를 가탁하여 멀리서 조정의 권한을 쥐고 사림(士林)을 해치는 것으로 일을 삼았다. 신사 연간에는 대각(臺閣)에 들어가 맨 먼저 사류(士類)들을 탄핵하고 다시 이경중(李敬中)이 정여립을 배척한 죄를 논박하였다. 그 뒤로는 또 이이와 성혼 등을 원수보다 심하게 비방하여 팔을 걷고 날뛰면서 이이첨 등 3, 4인과 결탁하여 조정를 어지럽혀 못하는 짓이 없었다. 그런데도 사신이 제멋대로 찬양하였으니, 이는 부회(附會)하여 아첨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비부(鄙夫)와는 임금을 섬기기 어렵다고 한 말이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원문
선조 35년 (1602) 9월 25일
선조수정실록36권, 선조 35년 9월 25일 갑신 1/1 기사 / 1602년 명 만력(萬曆) 30년
경상도에 사는 오여은과 당시 사관들이 정인홍을 위해 변명하다
국역
경상도에 사는 오여은(吳汝穩)이 상소하기를 ‘정인홍은 사람 가운데 봉황인데 이귀가 감히 죄를 얽어 날조하였다.’ 하면서 절목마다 변명한 것이 수천 언이었다. 그때의 사관이 또 잇따라 말하기를 ‘인홍은 조식(趙植)의 고제(高弟)로서 기절(氣節)로 자부하였으므로 많은 선비들이 그를 높여 내암 선생(來庵先生)이라 불렀다. 이제 불세(不世)의 지우(知遇)를 받아 잇따라 풍헌(風憲)의 장관이 되었으니, 조정은 마땅히 어진이를 높이는 지극한 뜻을 체득해야 하는데, 인홍이 끝내 실의(失意)하고 돌아감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고고한 산림(山林)의 선비들로 하여금 산으로 깊이깊이 들어가면서 인홍의 일로 경계를 삼게 하였으니 매우 애석한 일이다.’ 하였다.
인홍은 산림에다 자취를 가탁하여 멀리서 조정의 권한을 쥐고 사림(士林)을 해치는 것으로 일을 삼았다. 신사 연간에는 대각(臺閣)에 들어가 맨 먼저 사류(士類)들을 탄핵하고 다시 이경중(李敬中)이 정여립을 배척한 죄를 논박하였다. 그 뒤로는 또 이이와 성혼 등을 원수보다 심하게 비방하여 팔을 걷고 날뛰면서 이이첨 등 3, 4인과 결탁하여 조정를 어지럽혀 못하는 짓이 없었다. 그런데도 사신이 제멋대로 찬양하였으니, 이는 부회(附會)하여 아첨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비부(鄙夫)와는 임금을 섬기기 어렵다고 한 말이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원문
원본
선조 35년 (1602) 9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