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수정실록26권, 선조 25년 6월 1일 기축 16/43 기사 /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이덕형을 청원사로 삼아 요동에 가서 급박함을 알리도록 하다
국역
상이 숙천(肅川)에 머물면서 이덕형을 청원사(請援使)로 삼아 요동에 가서 급박함을 알리도록 하였다. 당시 이항복과 이덕형이 야대(夜對)하여 상께서 영변에 진주(進住)하기를 청하고, 그들이 직접 요동에 가서 구원병을 청하겠다고 하면서 서로들 다투며 가기를 자청하였다. 이에 부제학 심충겸(沈忠謙)이 ‘항복은 현재 병조의 직책을 맡고 있으니 파견할 수 없다.’고 하자, 마침내 덕형을 파견하게 되었다. 장차 떠나려할 즈음 항복이 남문에서 전송하였는데 덕형이 말하기를,
"날랜 말이 없어 주야로 빨리 가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하니, 항복이 즉시 탔던 말을 풀어주면서 말하기를,
"군사가 나오지 않으면 그대는 나를 지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니 서로 만나지 못할 것이다."
하자, 덕형이 말하기를,
"군사가 나오지 않으면 나는 의당 뼈를 노룡령(盧龍嶺)에 묻고 다시 압록강을 건너지 않겠다."
하며, 두 사람이 눈물을 뿌리고 작별하였다.
윤두수 등이 장수를 보내어 밤에 왜군의 진영을 공격하게 하였으나 불리하여 퇴각하였다. 왜병이 마침내 대동강을 건넜다. 상은 이미 떠났지만 두수는 그대로 성을 지킬 계획을 하였다. 성중의 민병(民兵)이 도합 4천여 명이었는데 여러 첩(堞)에 나누어 지키도록 하였으나 지키지 못하는 첩이 많았다. 유성룡은 그들이 틀림없이 패할 것을 알고 중국 군사를 불러들여 구원하겠다 하고 먼저 떠났다.
이날 적병이 모두 이르렀지만 강가에 배가 없어 건널 수 없었다. 두수 등이 연광정(練光亭) 위에 있었는데 적이 조총으로 집중 사격을 하니 탄환이 정자 위에 비오듯 쏟아졌다. 아군 역시 배를 타고 중류(中流)에서 편전(片箭)을 쏘아 적을 맞히는 한편 화전(火箭)을 발사하니 적진이 조금 퇴각하였다. 순찰사 이원익은 병사 이윤덕(李潤德)과 왕성탄(王城灘)을 지켰다. 원익이 계책을 내어 용사 수백 명을 뽑아 고언백(高彦伯)과 문언(文言) 등을 영장(領將)으로 삼아 밤을 틈타 강을 건너 곧장 적의 진영을 공격하여 몇 명의 머리를 베었으며 쏘아 죽인 자도 많았다. 얼마 되지 않아 날이 밝아지자 아군이 퇴각하는데 한 척의 배가 모래톱에 걸려 배 전부가 해를 입었다. 이때 배 안에 있던 토병(土兵) 공수(孔秀) 등이 처음부터 끝까지 혈전(血戰)을 벌였는데, 공수가 직접 수십 명을 베다가 칼이 부러져 어쩔 수 없었다. 그러자 왜적이 앞으로 나오며 생포하려고 하니 공수가 바로 두 사람의 적을 옆에 끼고 강으로 뛰어들었다. 이를 보는 자들이 장하게 여겼다. 이날 밤에 감사 송언신(宋言愼)이 성문의 열쇠를 가지고 민가에 있었는데 불시(不時)에 와 회합하여 문을 열고 군사를 내보냈으나 때가 늦었기 때문에 밤에 공격을 하다가 도리어 손해를 보았다. 이날 관군(官軍)으로 죽거나 다친 자가 50∼60명이나 되었다.
이튿날 적이 진을 정비하고 왕성탄에서 방어하는 군사를 공격하자 군사들이 모두 패하여 흩어졌다. 이원익과 이빈은 퇴각하여 행재소로 가고, 이윤덕은 영변(寧邊)의 본영(本營)으로 돌아갔다. 이에 적이 왕성탄을 따라 건넜다. 이날 밤에 윤두수 등이 지킬 수 없음을 알고 먼저 성 안의 노약자와 부녀자를 내보내고, 적이 성에 가까이 오자 병기(兵器)를 강물에 가라앉힌 뒤 군사를 인솔하여 몰래 빠져 나왔는데, 더러는 배를 타고 강서(江西)로 내려갔다. 성 안이 텅 비어 아무도 없었으나 적이 모란봉(牡丹峯)에 올라가 한참 있다가 들어갔다. 성 안에 쌓아둔 수십만 석의 식량이 모두 왜적의 소유가 되었고 왜장이 마침내 평양을 점거하였다.
원문
○上次肅川, 以李德馨爲請援使, 赴遼告急。 時, 李恒福、李德馨夜對請: "上進住寧邊, 臣等親往乞師遼東。" 因爭請自往。 副提學沈忠謙以爲: "恒福方在本兵, 不可遣。" 於是, 遂遣德馨。 將發, 恒福送之南門, 德馨曰: "恨無快馬兼程而進也。" 恒福卽解所乘馬與之曰: "兵不出, 君當索我於泉下, 無相見也。" 德馨曰: "兵不出, 吾當棄骨於盧龍, 再不渡鴨水也。" 二人灑涕而別。 尹斗壽等遣將, 夜擊倭營, 不利而退。 倭兵遂渡大同江。 上旣出, 而斗壽仍爲城守計。 城中民兵合四千餘人, 分守諸堞, 堞多空曠。 柳成龍知其必敗, 欲延接漢兵繼援, 辭以先出。 是日賊兵畢至江岸, 無船不得渡。 斗壽等在練光亭上, 賊發銃叢射, 丸集亭上如雨。 我軍亦乘舟中流, 發片箭中賊, 又發火箭射之, 賊陣少却。 巡察使李元翼與兵使李潤德, 守王城灘。 元翼獻計, 抄勇士數百人, 以高彦伯、文言等爲領將, 乘夜渡江, 直斫賊營, 斬若干級, 多射殺。 未幾天明, 我軍退, 一舟膠於淺渚, 全船被害。 船中土兵孔秀等終始血戰, 秀手斬數十人, 劍折而止。 倭爭前欲生擒, 秀卽挾兩賊投江, 見者壯之。 是夜, 監司宋言愼持城門鑰在閭家, 不時來會, 開門出兵, 後時, 故夜擊而反失利, 官軍死傷者五六十人。 翌日賊整陣, 攻王城灘防兵, 兵皆潰散。 李元翼、李薲退赴行在, 潤德還寧邊本營。 賊從王城灘渡。 是夜, 尹斗壽等知不可守, 先出城內老弱、婦女。 賊迫城, 乃沈兵器江中, 引兵潛出, 或乘舟下江西, 城中空無人。 賊登牡丹峯, 良久乃入。 城中積糧數十萬石, 皆爲賊有, 倭將遂據平壤。
선조 25년 (1592) 6월 1일
- 삼도의 군사가 용인에서 패하다
- 이순신이 잇따라 왜병을 패배시키다
- 원균이 이순신과 연명으로 장계를 올리려 하였으나 이순신이 단독으로 장계를 올리다
- 유성룡을 다시 복직시키고 부원군에 봉하다
- 요동 도사사 진무 임세록이 왜적의 실정을 탐지하러 오다
- 왜장 평행장 등이 대동강 남쪽을 침범하다
- 영중추부사 정철이 행재소로 오다
- 임세록이 유성룡과 연광정에 올라 적의 상황을 탐지하다
- 이항복을 병조 판서로, 이덕형을 대사헌으로 삼다
- 좌의정 윤두수, 도원수 이원익 등에게 평양성을 지키도록 명하다
- 감사 송언신이 난을 일으킨 백성 몇 사람을 참수하다
- 조도사를 여러 도에 보내 식량을 조치하도록 하다
- 이희득을 함경도 순검사로 삼다
- 왜장이 이덕형과 강중에서 만나기를 청하다
- 상이 평양을 떠나 영변부로 향하다
- 이덕형을 청원사로 삼아 요동에 가서 급박함을 알리도록 하다
- 왜장 청정이 관북에 침입하다
- 세자에게 종묘 사직을 받들고 분조하도록 명하다
- 사관 조존세·임취정·박정현 등이 도망하다
- 난이 일어나자 명망있는 진신들이 모두 도망하다
- 세자가 영변부에 머물며 분조하라는 상의 하교를 받다
- 상이 선천에 이르러 곽산 군수 이경준에게 거가를 수행하도록 명하다
- 평양이 함락되다
- 요동의 유격 사유, 참장 곽몽징이 군사를 거느리고 선천의 임반관에 도착하다
- 상이 선천에 머물다
- 상이 차령관에 머물다
- 상이 용천에 머물다
- 영의정 최흥원이 세자를 시위할 사직 참봉을 차송해 달라고 장계하다
- 상이 의주에 이르다
- 주청사 지돈녕부사 정곤수를 파견하여 대병이 와서 구원해 줄 것을 청하다
- 각도에서 의병이 일어나다
- 현풍인 곽재우가 거병하다
- 전 부사 고경명이 군사를 일으키다
- 전 장령 정인홍이 의병을 일으켜 적을 토벌하다
- 적이 강원도의 주현을 함락시키다
- 경상도를 나누어 이성임을 우도 순찰사로, 김성일을 좌도 순찰사로 삼다
- 초토사 김성일이 장계를 올려 곽재우의 공과를 논하다
- 왜적이 전라도와 충청도의 군현을 침범하다
- 전라도 조방장 이유의 등이 팔량치에 주둔하다 진영을 금산 송치로 옮기다
- 의병장 손인갑이 적을 초계에서 패배시키다
- 호남 의병장 김천일이 군사를 거느리고 북상하다
- 전 순찰사 김수를 한성 판윤에 임명하다
- 직제학 오억령을 이조 참의에 임명하다
선조수정실록26권, 선조 25년 6월 1일 기축 16/43 기사 /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이덕형을 청원사로 삼아 요동에 가서 급박함을 알리도록 하다
국역
상이 숙천(肅川)에 머물면서 이덕형을 청원사(請援使)로 삼아 요동에 가서 급박함을 알리도록 하였다. 당시 이항복과 이덕형이 야대(夜對)하여 상께서 영변에 진주(進住)하기를 청하고, 그들이 직접 요동에 가서 구원병을 청하겠다고 하면서 서로들 다투며 가기를 자청하였다. 이에 부제학 심충겸(沈忠謙)이 ‘항복은 현재 병조의 직책을 맡고 있으니 파견할 수 없다.’고 하자, 마침내 덕형을 파견하게 되었다. 장차 떠나려할 즈음 항복이 남문에서 전송하였는데 덕형이 말하기를,
"날랜 말이 없어 주야로 빨리 가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하니, 항복이 즉시 탔던 말을 풀어주면서 말하기를,
"군사가 나오지 않으면 그대는 나를 지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니 서로 만나지 못할 것이다."
하자, 덕형이 말하기를,
"군사가 나오지 않으면 나는 의당 뼈를 노룡령(盧龍嶺)에 묻고 다시 압록강을 건너지 않겠다."
하며, 두 사람이 눈물을 뿌리고 작별하였다.
윤두수 등이 장수를 보내어 밤에 왜군의 진영을 공격하게 하였으나 불리하여 퇴각하였다. 왜병이 마침내 대동강을 건넜다. 상은 이미 떠났지만 두수는 그대로 성을 지킬 계획을 하였다. 성중의 민병(民兵)이 도합 4천여 명이었는데 여러 첩(堞)에 나누어 지키도록 하였으나 지키지 못하는 첩이 많았다. 유성룡은 그들이 틀림없이 패할 것을 알고 중국 군사를 불러들여 구원하겠다 하고 먼저 떠났다.
이날 적병이 모두 이르렀지만 강가에 배가 없어 건널 수 없었다. 두수 등이 연광정(練光亭) 위에 있었는데 적이 조총으로 집중 사격을 하니 탄환이 정자 위에 비오듯 쏟아졌다. 아군 역시 배를 타고 중류(中流)에서 편전(片箭)을 쏘아 적을 맞히는 한편 화전(火箭)을 발사하니 적진이 조금 퇴각하였다. 순찰사 이원익은 병사 이윤덕(李潤德)과 왕성탄(王城灘)을 지켰다. 원익이 계책을 내어 용사 수백 명을 뽑아 고언백(高彦伯)과 문언(文言) 등을 영장(領將)으로 삼아 밤을 틈타 강을 건너 곧장 적의 진영을 공격하여 몇 명의 머리를 베었으며 쏘아 죽인 자도 많았다. 얼마 되지 않아 날이 밝아지자 아군이 퇴각하는데 한 척의 배가 모래톱에 걸려 배 전부가 해를 입었다. 이때 배 안에 있던 토병(土兵) 공수(孔秀) 등이 처음부터 끝까지 혈전(血戰)을 벌였는데, 공수가 직접 수십 명을 베다가 칼이 부러져 어쩔 수 없었다. 그러자 왜적이 앞으로 나오며 생포하려고 하니 공수가 바로 두 사람의 적을 옆에 끼고 강으로 뛰어들었다. 이를 보는 자들이 장하게 여겼다. 이날 밤에 감사 송언신(宋言愼)이 성문의 열쇠를 가지고 민가에 있었는데 불시(不時)에 와 회합하여 문을 열고 군사를 내보냈으나 때가 늦었기 때문에 밤에 공격을 하다가 도리어 손해를 보았다. 이날 관군(官軍)으로 죽거나 다친 자가 50∼60명이나 되었다.
이튿날 적이 진을 정비하고 왕성탄에서 방어하는 군사를 공격하자 군사들이 모두 패하여 흩어졌다. 이원익과 이빈은 퇴각하여 행재소로 가고, 이윤덕은 영변(寧邊)의 본영(本營)으로 돌아갔다. 이에 적이 왕성탄을 따라 건넜다. 이날 밤에 윤두수 등이 지킬 수 없음을 알고 먼저 성 안의 노약자와 부녀자를 내보내고, 적이 성에 가까이 오자 병기(兵器)를 강물에 가라앉힌 뒤 군사를 인솔하여 몰래 빠져 나왔는데, 더러는 배를 타고 강서(江西)로 내려갔다. 성 안이 텅 비어 아무도 없었으나 적이 모란봉(牡丹峯)에 올라가 한참 있다가 들어갔다. 성 안에 쌓아둔 수십만 석의 식량이 모두 왜적의 소유가 되었고 왜장이 마침내 평양을 점거하였다.
원문
○上次肅川, 以李德馨爲請援使, 赴遼告急。 時, 李恒福、李德馨夜對請: "上進住寧邊, 臣等親往乞師遼東。" 因爭請自往。 副提學沈忠謙以爲: "恒福方在本兵, 不可遣。" 於是, 遂遣德馨。 將發, 恒福送之南門, 德馨曰: "恨無快馬兼程而進也。" 恒福卽解所乘馬與之曰: "兵不出, 君當索我於泉下, 無相見也。" 德馨曰: "兵不出, 吾當棄骨於盧龍, 再不渡鴨水也。" 二人灑涕而別。 尹斗壽等遣將, 夜擊倭營, 不利而退。 倭兵遂渡大同江。 上旣出, 而斗壽仍爲城守計。 城中民兵合四千餘人, 分守諸堞, 堞多空曠。 柳成龍知其必敗, 欲延接漢兵繼援, 辭以先出。 是日賊兵畢至江岸, 無船不得渡。 斗壽等在練光亭上, 賊發銃叢射, 丸集亭上如雨。 我軍亦乘舟中流, 發片箭中賊, 又發火箭射之, 賊陣少却。 巡察使李元翼與兵使李潤德, 守王城灘。 元翼獻計, 抄勇士數百人, 以高彦伯、文言等爲領將, 乘夜渡江, 直斫賊營, 斬若干級, 多射殺。 未幾天明, 我軍退, 一舟膠於淺渚, 全船被害。 船中土兵孔秀等終始血戰, 秀手斬數十人, 劍折而止。 倭爭前欲生擒, 秀卽挾兩賊投江, 見者壯之。 是夜, 監司宋言愼持城門鑰在閭家, 不時來會, 開門出兵, 後時, 故夜擊而反失利, 官軍死傷者五六十人。 翌日賊整陣, 攻王城灘防兵, 兵皆潰散。 李元翼、李薲退赴行在, 潤德還寧邊本營。 賊從王城灘渡。 是夜, 尹斗壽等知不可守, 先出城內老弱、婦女。 賊迫城, 乃沈兵器江中, 引兵潛出, 或乘舟下江西, 城中空無人。 賊登牡丹峯, 良久乃入。 城中積糧數十萬石, 皆爲賊有, 倭將遂據平壤。
원본
선조 25년 (1592) 6월 1일
- 삼도의 군사가 용인에서 패하다
- 이순신이 잇따라 왜병을 패배시키다
- 원균이 이순신과 연명으로 장계를 올리려 하였으나 이순신이 단독으로 장계를 올리다
- 유성룡을 다시 복직시키고 부원군에 봉하다
- 요동 도사사 진무 임세록이 왜적의 실정을 탐지하러 오다
- 왜장 평행장 등이 대동강 남쪽을 침범하다
- 영중추부사 정철이 행재소로 오다
- 임세록이 유성룡과 연광정에 올라 적의 상황을 탐지하다
- 이항복을 병조 판서로, 이덕형을 대사헌으로 삼다
- 좌의정 윤두수, 도원수 이원익 등에게 평양성을 지키도록 명하다
- 감사 송언신이 난을 일으킨 백성 몇 사람을 참수하다
- 조도사를 여러 도에 보내 식량을 조치하도록 하다
- 이희득을 함경도 순검사로 삼다
- 왜장이 이덕형과 강중에서 만나기를 청하다
- 상이 평양을 떠나 영변부로 향하다
- 이덕형을 청원사로 삼아 요동에 가서 급박함을 알리도록 하다
- 왜장 청정이 관북에 침입하다
- 세자에게 종묘 사직을 받들고 분조하도록 명하다
- 사관 조존세·임취정·박정현 등이 도망하다
- 난이 일어나자 명망있는 진신들이 모두 도망하다
- 세자가 영변부에 머물며 분조하라는 상의 하교를 받다
- 상이 선천에 이르러 곽산 군수 이경준에게 거가를 수행하도록 명하다
- 평양이 함락되다
- 요동의 유격 사유, 참장 곽몽징이 군사를 거느리고 선천의 임반관에 도착하다
- 상이 선천에 머물다
- 상이 차령관에 머물다
- 상이 용천에 머물다
- 영의정 최흥원이 세자를 시위할 사직 참봉을 차송해 달라고 장계하다
- 상이 의주에 이르다
- 주청사 지돈녕부사 정곤수를 파견하여 대병이 와서 구원해 줄 것을 청하다
- 각도에서 의병이 일어나다
- 현풍인 곽재우가 거병하다
- 전 부사 고경명이 군사를 일으키다
- 전 장령 정인홍이 의병을 일으켜 적을 토벌하다
- 적이 강원도의 주현을 함락시키다
- 경상도를 나누어 이성임을 우도 순찰사로, 김성일을 좌도 순찰사로 삼다
- 초토사 김성일이 장계를 올려 곽재우의 공과를 논하다
- 왜적이 전라도와 충청도의 군현을 침범하다
- 전라도 조방장 이유의 등이 팔량치에 주둔하다 진영을 금산 송치로 옮기다
- 의병장 손인갑이 적을 초계에서 패배시키다
- 호남 의병장 김천일이 군사를 거느리고 북상하다
- 전 순찰사 김수를 한성 판윤에 임명하다
- 직제학 오억령을 이조 참의에 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