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수정실록7권, 선조 6년 5월 1일 경진 3/7 기사 / 1573년 명 만력(萬曆) 1년
최영경의 인품
국역
최영경은 처음 한성(漢城)에 살면서 문을 닫고 자취를 숨겼으므로 그를 아는 자가 없었다. 어버이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는데 어머니가 죽자 가산을 털어 돈을 마련한 뒤 석곽(石槨)을 써서 장사지내니, 마을 사람들이 오활하게 여겨 대단하게 대우하지 않았다. 사인(士人) 안민학(安敏學)이 그의 비범한 행동을 살펴보고 성혼(成渾)에게 말하니, 성혼이 그를 찾아가 용의가 청엄(淸嚴)한 것을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는데, 서로 마음이 통하였다. 그 말이 공경(公卿)들 사이에 전파되자 그로 인해 저명해졌다. 나중에 진주(晋州)에 은거하여 조식(曺植)을 따라 유학하였는데, 기절을 숭상하고 의리를 논변하기를 좋아하니 조식이 그를 정인홍(鄭仁弘) 다음으로 대우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7권 1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433면
원문
선조 6년 (1573) 5월 1일
선조수정실록7권, 선조 6년 5월 1일 경진 3/7 기사 / 1573년 명 만력(萬曆) 1년
최영경의 인품
국역
최영경은 처음 한성(漢城)에 살면서 문을 닫고 자취를 숨겼으므로 그를 아는 자가 없었다. 어버이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는데 어머니가 죽자 가산을 털어 돈을 마련한 뒤 석곽(石槨)을 써서 장사지내니, 마을 사람들이 오활하게 여겨 대단하게 대우하지 않았다. 사인(士人) 안민학(安敏學)이 그의 비범한 행동을 살펴보고 성혼(成渾)에게 말하니, 성혼이 그를 찾아가 용의가 청엄(淸嚴)한 것을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는데, 서로 마음이 통하였다. 그 말이 공경(公卿)들 사이에 전파되자 그로 인해 저명해졌다. 나중에 진주(晋州)에 은거하여 조식(曺植)을 따라 유학하였는데, 기절을 숭상하고 의리를 논변하기를 좋아하니 조식이 그를 정인홍(鄭仁弘) 다음으로 대우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7권 1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433면
원문
원본
선조 6년 (1573) 5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