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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수정실록4권, 선조 3년 12월 1일 갑오 1/6 기사 / 1570년 명 융경(隆慶) 4년

숭정 대부 판중추부사 이황의 졸기

국역

숭정 대부(崇政大夫)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황(李滉)이 졸(卒)하였다. 그에게 영의정(領議政)을 추증하도록 명하고 부의(賻儀)와 장제(葬祭)를 예(禮)대로 내렸다.

이황이 향리에 돌아가 누차 상소하여 연로하므로 치사(致仕)할 것을 빌었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 병이 들었는데 아들 준(寯)에게 경계하기를,

"내가 죽으면 해조(該曹)가 틀림없이 관례에 따라 예장(禮葬)을 하도록 청할 것인데, 너는 모름지기 나의 유령(遺令)이라 칭하고 상소를 올려 끝까지 사양하라. 그리고 묘도(墓道)에도 비갈(碑碣)을 세우지 말고 작은 돌의 전면에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 쓰고, 그 후면에 내가 지어둔 명문(銘文)을 새기라."

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죽었는데 준이 두 번이나 상소하여 예장을 사양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이황의 자(字)는 경호(景浩)이고, 선대는 진성인(眞城人)이며, 숙부 우(堣)와 형인 해(瀣)도 다 명망이 높았다. 이황은 타고 난 바탕이 수미(粹美)하고 재주와 식견이 영오(穎悟)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자력으로 학문을 하였는데, 문장(文章)이 일찍 성취되었고, 약관에 국상(國庠)에 들어갔다. 당시는 기묘 사화를 겪은 후라서 사습(士習)이 부박(浮薄)하였으나, 이황은 예법(禮法)으로 자신을 지키면서 남의 조롱이나 비웃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상한 뜻과 차분한 마음을 가졌다. 비록 늙은 어머니를 위하여 과거를 통해 벼슬을 하기는 하였으나 통현(通顯)되기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을사년 난리에 거의 불측한 화에 빠질 뻔하고 권간들이 조정을 어지럽히는 꼴을 보고는 되도록 외직에 보임되어 나가고자 하였고, 얼마 후 형 해가 권간을 거슬러 억울한 죽음을 당하자 그때부터는 물러가 숨을 뜻을 굳히고 벼슬에 임명되어도 대부분 나가지 않았었다.

오로지 성리(性理)의 학문에 전념하다가 《주자전서(朱子全書)》를 읽고서는 그것을 좋아하여 한결같이 그 교훈대로 따랐다. 진지(眞知)와 실천(實踐)을 위주로 하여 제가(諸家) 학설의 동이 득실(同異得失)에 대해 널리 통달하고 주자의 학설에 의거하여 절충하였으므로, 의리(義理)에 있어서는 소견이 정미(精微)하고 도(道)의 대원(大源)에 대하여 환히 통찰하고 있었다. 도가 이루어지고 덕이 확립되자 더욱 더 겸허하였으므로 그에게 배우려는 학자들이 사방에서 모여 들었고 달관(達官)·귀인(貴人)들도 마음을 다해 향모(向慕)하였는데, 학문 강론과 몸 단속을 위주하여 사풍(士風)이 크게 변화되었다.

명종(明宗)은 그의 염퇴(恬退)한 태도를 가상히 여겨 누차 관작을 높여 징소(徵召)하였으나, 모두 나오지 않고 예안(禮安)의 퇴계(退溪)에 살면서 이 지명에 따라 호(號)를 삼았었다. 늘그막에는 산수(山水)가 좋은 도산(陶山)에 집을 짓고 호를 도수(陶叟)로 고치기도 하였다. 빈약(貧約)을 편안하게 여기고 담박(淡泊)을 좋아했으며 이끗이나 형세, 분분한 영화 따위는 뜬구름 보듯 하였다. 그러나 보통 때는 별다르게 내세우는 바가 없어 일반 사람과 크게 다른 점이 없어 보였지만, 진퇴(進退)·사수(辭受) 문제에 있어서는 털끝만큼도 잘못이 없었다. 그가 서울에서 세들어 있을 때 이웃집의 밤나무 가지가 담장을 넘어 뻗쳐 있었으므로 밤이 익으면 알밤이 뜰에 떨어졌는데, 가동(家僮)이 그걸 주워 먹을까봐 언제나 손수 주워 담 너머로 던졌을 정도로 개결한 성품이었다. 주상의 초정(初政)에 조야(朝野)가 모두 부푼 기대에 이황이 아니면 성덕(聖德)을 성취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고 상 역시 그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는데, 이황은 이미 늙었고 재지(才智)가 큰 일을 담당하기에는 부족하며, 또 세상이 쇠퇴하고 풍속도 야박하여 위아래에 믿을 만한 사람이 없어 유자(儒者)가 무엇을 하기에는 어렵겠다고 여겨 총록(寵祿)을 굳이 사양하고 기어이 물러가고야 말았었다. 상은 그의 죽음을 듣고 슬퍼하여 증직(贈職)과 제례(祭禮)를 더욱 후하게 내렸으며, 장례에 모인 태학생(太學生)과 제자들이 수백 명에 달하였다.

이황은 겸양하는 뜻에서 감히 작자(作者)로 자처하지 않아 특별한 저서(著書)는 없었으나, 학문을 강론하고 수응(酬應)한 것을 붓으로 쓰기 시작하여 성훈(聖訓)을 밝히고 이단(異端)을 분별했는데, 논리가 정연하고 명백하여 학자들이 믿고 따랐다. 매양 중국에 도학(道學)이 전통을 잃어 육구연(陸九淵)·왕수인(王守仁) 등의 치우친 학설들이 성행하고 있는 것을 슬프게 여겨 그 그름을 배격하기에 극언(極言)·갈론(渴論)을 아끼지 않았고, 우리 나라도 근대에 화담(花潭) 서경덕(徐慶德)의 학설이 기(氣)를 이(理)로 오인한 병통이 있었는데도 그를 전술(傳述)하는 학자들이 많아 이황은 그 점을 밝히는 저술도 썼다. 그가 편집한 책으로는 《이학통록(理學通錄)》·《주서절요(朱書節要)》가 있고, 그의 문집(文集)이 세상에 전해지는데, 세상에서는 그를 퇴계 선생(退溪先生)이라 한다.

논자들에 의하면, 이황은 이 세상의 유종(儒宗)으로서 조광조(趙光祖) 이후 그와 겨룰 자가 없으니, 이황이 재주나 기국(器局)에 있어서는 조광조에 미치지 못하지만 의리(義理)를 깊이 파고들어 정미(精微)한 경지까지 이른 것은 조광조가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원문

○朔甲午/崇政大夫判中樞府事李滉卒。 命贈領議政, 賜賻葬祭如禮。 滉旣歸鄕里, 屢上章, 引年乞致仕, 不許。 至是有疾, 戒子寯曰: "我死, 該曹必循例, 請用禮葬, 汝須稱遺令, 陳疏固辭。 且墓道勿用碑碣, 只以小石, 題其面曰: ‘退陶晩隱眞城 李公之墓’ 以嘗所自製銘文, 刻其後可也。" 數日而卒, 寯再上疏辭禮葬, 不許。 滉, 字景浩, 其先眞城人。 叔父堣、兄瀣, 皆聞人。 滉天資粹美, 材識穎悟, 幼而喪考, 自力爲學, 文章夙成, 弱冠遊國庠。 時經己卯之禍, 士習浮薄, 滉以禮法自律, 不恤人譏笑, 雅意恬靜。 雖爲母老, 由科第入仕, 通顯非所樂也。 乙巳之難, 幾陷不測, 且見權奸濁亂, 力求外補以出, 旣而兄瀣忤權倖冤死, 自是, 決意退藏, 拜官多不就。 專精性理之學, 得《朱子全書》, 讀而喜之, 一遵其訓。 以眞知、實踐爲務, 諸家衆說之同異、得失, 皆旁通曲暢, 而折衷於朱子, 義理精微, 洞見大原。 道成德立, 愈執謙虛, 從遊講學者, 四方而至, 達官、貴人, 亦傾心向慕, 多以講學、飭躬爲事, 士風爲之丕變。 明廟嘉其恬退, 累進爵徵召, 皆不起。 家居禮安之退溪, 仍以寓號。 晩年築室陶山, 有山水之勝, 改號陶叟。 安於貧約, 味於淡泊, 利勢紛華視之如浮雲。 然平居不務矜持, 若無甚異於人, 而於進退辭受之節, 不敢分毫蹉過。 其僑居漢城, 隔家有栗樹, 數枝過墻, 子熟落庭, 恐家僮取啖, 每自手拾, 投之墻外, 其介潔如此。 上之初服, 朝野顒望皆以爲: "非滉不能成就聖德。" 上亦眷注特異, 滉自以年已老, 才智不足當大事, 又見世衰俗澆, 上下無可恃, 儒者難以有爲, 懇辭寵祿, 必退乃已。 上聞其卒嗟悼, 贈祭加厚, 太學生及弟子會葬者數百人。 滉謙讓不敢當作者, 無特著書, 而因論學酬應, 始筆之書, 發揮聖訓, 辨斥異端, 正大明白, 學者信服。 每痛中原道學失傳, 陸、王諸子頗僻之說大行, 常極言竭論, 以斥其非。 我國近代亦有花潭 徐氏之學, 有認氣爲理之病, 學者多傳述, 滉爲著說以明之。 所編輯有《理學通錄》、《朱子節要》及《文集》行于世, 世稱退 溪先生。 論者以爲: "滉爲世儒宗, 趙光祖之後, 無與爲比, 滉才調器局, 雖不及光祖, 至深究義理, 以盡精微, 則非光祖之所及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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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수정실록4권, 선조 3년 12월 1일 갑오 1/6 기사 / 1570년 명 융경(隆慶) 4년

숭정 대부 판중추부사 이황의 졸기

국역

숭정 대부(崇政大夫)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황(李滉)이 졸(卒)하였다. 그에게 영의정(領議政)을 추증하도록 명하고 부의(賻儀)와 장제(葬祭)를 예(禮)대로 내렸다.

이황이 향리에 돌아가 누차 상소하여 연로하므로 치사(致仕)할 것을 빌었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 병이 들었는데 아들 준(寯)에게 경계하기를,

"내가 죽으면 해조(該曹)가 틀림없이 관례에 따라 예장(禮葬)을 하도록 청할 것인데, 너는 모름지기 나의 유령(遺令)이라 칭하고 상소를 올려 끝까지 사양하라. 그리고 묘도(墓道)에도 비갈(碑碣)을 세우지 말고 작은 돌의 전면에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 쓰고, 그 후면에 내가 지어둔 명문(銘文)을 새기라."

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죽었는데 준이 두 번이나 상소하여 예장을 사양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이황의 자(字)는 경호(景浩)이고, 선대는 진성인(眞城人)이며, 숙부 우(堣)와 형인 해(瀣)도 다 명망이 높았다. 이황은 타고 난 바탕이 수미(粹美)하고 재주와 식견이 영오(穎悟)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자력으로 학문을 하였는데, 문장(文章)이 일찍 성취되었고, 약관에 국상(國庠)에 들어갔다. 당시는 기묘 사화를 겪은 후라서 사습(士習)이 부박(浮薄)하였으나, 이황은 예법(禮法)으로 자신을 지키면서 남의 조롱이나 비웃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상한 뜻과 차분한 마음을 가졌다. 비록 늙은 어머니를 위하여 과거를 통해 벼슬을 하기는 하였으나 통현(通顯)되기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을사년 난리에 거의 불측한 화에 빠질 뻔하고 권간들이 조정을 어지럽히는 꼴을 보고는 되도록 외직에 보임되어 나가고자 하였고, 얼마 후 형 해가 권간을 거슬러 억울한 죽음을 당하자 그때부터는 물러가 숨을 뜻을 굳히고 벼슬에 임명되어도 대부분 나가지 않았었다.

오로지 성리(性理)의 학문에 전념하다가 《주자전서(朱子全書)》를 읽고서는 그것을 좋아하여 한결같이 그 교훈대로 따랐다. 진지(眞知)와 실천(實踐)을 위주로 하여 제가(諸家) 학설의 동이 득실(同異得失)에 대해 널리 통달하고 주자의 학설에 의거하여 절충하였으므로, 의리(義理)에 있어서는 소견이 정미(精微)하고 도(道)의 대원(大源)에 대하여 환히 통찰하고 있었다. 도가 이루어지고 덕이 확립되자 더욱 더 겸허하였으므로 그에게 배우려는 학자들이 사방에서 모여 들었고 달관(達官)·귀인(貴人)들도 마음을 다해 향모(向慕)하였는데, 학문 강론과 몸 단속을 위주하여 사풍(士風)이 크게 변화되었다.

명종(明宗)은 그의 염퇴(恬退)한 태도를 가상히 여겨 누차 관작을 높여 징소(徵召)하였으나, 모두 나오지 않고 예안(禮安)의 퇴계(退溪)에 살면서 이 지명에 따라 호(號)를 삼았었다. 늘그막에는 산수(山水)가 좋은 도산(陶山)에 집을 짓고 호를 도수(陶叟)로 고치기도 하였다. 빈약(貧約)을 편안하게 여기고 담박(淡泊)을 좋아했으며 이끗이나 형세, 분분한 영화 따위는 뜬구름 보듯 하였다. 그러나 보통 때는 별다르게 내세우는 바가 없어 일반 사람과 크게 다른 점이 없어 보였지만, 진퇴(進退)·사수(辭受) 문제에 있어서는 털끝만큼도 잘못이 없었다. 그가 서울에서 세들어 있을 때 이웃집의 밤나무 가지가 담장을 넘어 뻗쳐 있었으므로 밤이 익으면 알밤이 뜰에 떨어졌는데, 가동(家僮)이 그걸 주워 먹을까봐 언제나 손수 주워 담 너머로 던졌을 정도로 개결한 성품이었다. 주상의 초정(初政)에 조야(朝野)가 모두 부푼 기대에 이황이 아니면 성덕(聖德)을 성취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고 상 역시 그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는데, 이황은 이미 늙었고 재지(才智)가 큰 일을 담당하기에는 부족하며, 또 세상이 쇠퇴하고 풍속도 야박하여 위아래에 믿을 만한 사람이 없어 유자(儒者)가 무엇을 하기에는 어렵겠다고 여겨 총록(寵祿)을 굳이 사양하고 기어이 물러가고야 말았었다. 상은 그의 죽음을 듣고 슬퍼하여 증직(贈職)과 제례(祭禮)를 더욱 후하게 내렸으며, 장례에 모인 태학생(太學生)과 제자들이 수백 명에 달하였다.

이황은 겸양하는 뜻에서 감히 작자(作者)로 자처하지 않아 특별한 저서(著書)는 없었으나, 학문을 강론하고 수응(酬應)한 것을 붓으로 쓰기 시작하여 성훈(聖訓)을 밝히고 이단(異端)을 분별했는데, 논리가 정연하고 명백하여 학자들이 믿고 따랐다. 매양 중국에 도학(道學)이 전통을 잃어 육구연(陸九淵)·왕수인(王守仁) 등의 치우친 학설들이 성행하고 있는 것을 슬프게 여겨 그 그름을 배격하기에 극언(極言)·갈론(渴論)을 아끼지 않았고, 우리 나라도 근대에 화담(花潭) 서경덕(徐慶德)의 학설이 기(氣)를 이(理)로 오인한 병통이 있었는데도 그를 전술(傳述)하는 학자들이 많아 이황은 그 점을 밝히는 저술도 썼다. 그가 편집한 책으로는 《이학통록(理學通錄)》·《주서절요(朱書節要)》가 있고, 그의 문집(文集)이 세상에 전해지는데, 세상에서는 그를 퇴계 선생(退溪先生)이라 한다.

논자들에 의하면, 이황은 이 세상의 유종(儒宗)으로서 조광조(趙光祖) 이후 그와 겨룰 자가 없으니, 이황이 재주나 기국(器局)에 있어서는 조광조에 미치지 못하지만 의리(義理)를 깊이 파고들어 정미(精微)한 경지까지 이른 것은 조광조가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원문

○朔甲午/崇政大夫判中樞府事李滉卒。 命贈領議政, 賜賻葬祭如禮。 滉旣歸鄕里, 屢上章, 引年乞致仕, 不許。 至是有疾, 戒子寯曰: "我死, 該曹必循例, 請用禮葬, 汝須稱遺令, 陳疏固辭。 且墓道勿用碑碣, 只以小石, 題其面曰: ‘退陶晩隱眞城 李公之墓’ 以嘗所自製銘文, 刻其後可也。" 數日而卒, 寯再上疏辭禮葬, 不許。 滉, 字景浩, 其先眞城人。 叔父堣、兄瀣, 皆聞人。 滉天資粹美, 材識穎悟, 幼而喪考, 自力爲學, 文章夙成, 弱冠遊國庠。 時經己卯之禍, 士習浮薄, 滉以禮法自律, 不恤人譏笑, 雅意恬靜。 雖爲母老, 由科第入仕, 通顯非所樂也。 乙巳之難, 幾陷不測, 且見權奸濁亂, 力求外補以出, 旣而兄瀣忤權倖冤死, 自是, 決意退藏, 拜官多不就。 專精性理之學, 得《朱子全書》, 讀而喜之, 一遵其訓。 以眞知、實踐爲務, 諸家衆說之同異、得失, 皆旁通曲暢, 而折衷於朱子, 義理精微, 洞見大原。 道成德立, 愈執謙虛, 從遊講學者, 四方而至, 達官、貴人, 亦傾心向慕, 多以講學、飭躬爲事, 士風爲之丕變。 明廟嘉其恬退, 累進爵徵召, 皆不起。 家居禮安之退溪, 仍以寓號。 晩年築室陶山, 有山水之勝, 改號陶叟。 安於貧約, 味於淡泊, 利勢紛華視之如浮雲。 然平居不務矜持, 若無甚異於人, 而於進退辭受之節, 不敢分毫蹉過。 其僑居漢城, 隔家有栗樹, 數枝過墻, 子熟落庭, 恐家僮取啖, 每自手拾, 投之墻外, 其介潔如此。 上之初服, 朝野顒望皆以爲: "非滉不能成就聖德。" 上亦眷注特異, 滉自以年已老, 才智不足當大事, 又見世衰俗澆, 上下無可恃, 儒者難以有爲, 懇辭寵祿, 必退乃已。 上聞其卒嗟悼, 贈祭加厚, 太學生及弟子會葬者數百人。 滉謙讓不敢當作者, 無特著書, 而因論學酬應, 始筆之書, 發揮聖訓, 辨斥異端, 正大明白, 學者信服。 每痛中原道學失傳, 陸、王諸子頗僻之說大行, 常極言竭論, 以斥其非。 我國近代亦有花潭 徐氏之學, 有認氣爲理之病, 學者多傳述, 滉爲著說以明之。 所編輯有《理學通錄》、《朱子節要》及《文集》行于世, 世稱退 溪先生。 論者以爲: "滉爲世儒宗, 趙光祖之後, 無與爲比, 滉才調器局, 雖不及光祖, 至深究義理, 以盡精微, 則非光祖之所及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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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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