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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211권, 선조 40년 5월 13일 을해 4/8 기사 / 1607년 명 만력(萬曆) 35년

전 의정부 영의정 풍원 부원군 유성룡의 졸기

국역

전 의정부 영의정 풍원 부원군(豊原府院君) 유성룡(柳成龍)이 졸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유성룡은 경상도 안동(安東) 풍산현(豊山縣) 사람이다. 타고난 자질이 총명하고 기상이 단아하였다. 어린 나이에 퇴계(退溪) 선생의 문하에 종유(從遊)하여 예로써 자신을 단속하니 보는 사람들이 그릇으로 여겼다.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명예가 날로 드러났으나 아침 저녁 여가에 또 학문에 힘써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서 조금도 기대거나 다리를 뻗는 일이 없었다. 사람을 응접(應接)하는 즈음에는 고요하고 단아하여 말이 적었고 붓을 잡고 글을 쓸 때에는 일필휘지(一筆揮之)하여 뜻을 두지 않는 듯하였으나 문장이 정숙(精熟)하여 맛이 있었다. 여러 책을 박람(博覽)하여 외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한 번 눈을 스치면 환히 알아 한 글자도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으며 의리(義理)를 논설하는 데는 뭇 서적에 밝아 수미(首尾)가 정밀하니 듣는 이들이 탄복하였다. 사명(使命)을 받들고 경사(京師)에 갔을 때 중국의 선비들이 모여 들었으나 힐난(詰難)하지 못하고서는 서애 선생(西厓先生)이라고 칭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명예와 지위가 함께 드러나고 총애가 융숭하였다. 재상의 자리에 올라서는 국가의 안위(安危)가 그에 의지하였는데, 정인홍(鄭仁弘)과 의논이 맞지 않아서, 인홍이 매양 공손홍(公孫弘)이라 배척025) 하였고, 성룡 역시 인홍의 속이 좁고 편벽됨을 미워하니, 사론(士論)이 두 갈래로 나뉘어져 서로 공격하는 것이 물과 불 같았다. 성룡은 조목(趙穆)·김성일(金誠一)과 함께 퇴계(退溪)의 문하에서 배웠다. 성일은 강의(剛毅), 독실하여 풍도가 엄숙하고 단정하였으며 너무 곧아서 조정에 용납되지 못하였으나 대절(大節)이 드높아 사람들의 이의(異義)가 없었는데 계사년026) 나라 일에 진력하다가 군중(軍中)에서 죽었다. 조목은 종신토록 은거하면서 학문에 독실하고 자수(自修)하였으나, 나라에 어려운 일이 많게 되자 강개(慷慨)해 마지 않았는데 지난해 죽었다. 조목은 일찍이 성일을 낫게 생각하고 성룡을 못하게 여겼는데, 만년에는 성룡이 하는 일에 매우 분개하여 절교(絶交)하는 편지를 쓰기까지 하였다. 퇴계의 문하에서는 이 세 사람을 영수(領袖)로 삼는다. 유성룡은 조정에 선 지 30여 년 동안 재상으로 있은 것이 10여 년이었는데, 상의 권우(眷遇)가 조금도 쇠하지 않아 귀를 기울여 그의 말을 들었다. 경악에서 선한 말을 올리고 임금의 잘못을 막을 적엔 겸손하고 뜻이 극진하니 이 때문에 상이 더욱 중히 여겨 일찍이 말하기를 ‘내가 유모(柳某)의 학식과 기상을 보면 모르는 사이에 심복(心服)할 때가 많다.’고 하였다. 그러나 규모(規模)가 조금 좁고 마음이 굳세지 못하여 이해가 눈앞에 닥치면 흔들림을 면치 못하였다. 그러므로 임금의 신임을 얻은 것이 오래였었지만 직간했다는 말을 들을 수 없었고 정사를 비록 전단(專斷)하였으나 나빠진 풍습을 구하지 못하였다. 기축년027) 의 변에 권간(權姦)이 화(禍)를 요행으로 여겨 역옥(逆獄)으로 함정을 만들어 무고한 사람을 얽어서 자기와 다른 사람을 일망타진하여 산림(山林)의 착한 사람들이 잇따라 죽었는데도 일찍이 한마디 말을 하거나 한 사람도 구제하지 않고 상소하여 자신을 변명하면서 구차하게 몸과 지위를 보전하기까지 하였다. 임진년과 정유년 사이에는 군신(君臣)이 들판에서 자고 백성들이 고생을 하였으며 두 능(陵)이 욕을 당하고 종사(宗社)가 불에 탔으니 하늘까지 닿는 원수는 영원토록 반드시 갚아야 하는데도 계획이 굳세지 못하고 국시(國是)가 정해지지 않아서 화의(和議)를 극력 주장하며 통신(通信)하여 적에게 잘 보이기를 구하여서 원수를 잊고 부끄러움을 참게 한 죄가 천고(千古)에 한을 끼치게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의사(義士)들이 분개해 하고 언자(言者)들이 말을 하였다. 부제학 김우옹(金宇顒)이 신구(伸救)하는 상소 가운데 ‘성룡은 역시 얻기 어려운 인물입니다마는 재보(宰輔)의 기국(器局)이 부족하고 대신(大臣)의 풍력(風力)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정확한 논의이다. 무술년028) 겨울에 변무(辨誣)하는 일을 어렵게 여겨 사피함으로써 파직되어 전리(田里)로 돌아갔다. 그후에 직첩(職牒)을 돌려주었고, 상이 그의 병이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는 의관을 보내 치료하게 하였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졸한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14책 211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334면
  • 【분류】역사-사학(史學)
  • [註 025] 공손홍(公孫弘)이라 배척 : 겉은 관대한 체하나 속은 악함을 말함. 한 무제(漢武帝) 때 평진후(平津侯)에 봉해진 공손홍은 성품이 겉으로는 관대한 듯하였으나 속 마음은 악하여 주부언(主父偃)을 죽이고 동중서(董仲舒)를 교서(膠西)로 내치기도 하였다. 《한서(漢書)》 권58.
  • [註 026] 계사년 : 1593 선조 26년.
  • [註 027] 기축년 : 1589 선조 22년.
  • [註 028] 무술년 : 1598 선조 31년.

원문

○前議政府領議政豊原府院君 柳成龍卒。

【史臣曰: "成龍, 慶尙道 安東 豐山縣人。 天資聰穎, 氣象端雅。 早歲從遊退溪先生門下, 矜束以禮, 見者器之。 妙齡應第, 譽望日著, 夙夜之暇, 又自力於學問, 終日端坐, 未嘗跛倚。 應接之際, 靜雅簡默, 操筆爲文, 一揮而就, 若不經意, 而精熟有味。 博覽諸書, 未嘗誦讀, 而過眼了然, 片字不忘, 論說義理, 澄明群書, 首尾精到, 聞者歎服。 奉使朝京時, 華士坌集, 而不能難, 稱之以(西崖)〔西厓〕 先生焉。 由是, 名位俱顯, 寵渥隆洽。 及登台位, 倚爲安危, 與鄭仁弘議不合, 仁弘每以公孫弘斥之; 成龍亦惡仁弘之隘僻, 士論携貳, 相攻擊如水火。 成龍趙穆金誠一俱學於退陶之門。 誠一剛毅篤實, 風裁峻整, 以直道不容於朝, 而大節卓落, 人無異議, 歲在癸巳, 盡瘁王事, 卒於軍中。 終身索居, 篤學自修, 遭國多艱, 慷慨不已, 亦以去歲卒。 嘗多誠一, 而少成龍, 晩年頗憤成龍所爲, 至作絶交書。 然退陶門下, 以此三人爲領袖。 成龍立朝三十餘年, 爲相者十年, 上眷不衰, 傾耳以聽。 獻替經幄, 言巽而意盡, 以此, 上尤重之, 嘗曰: "予觀某學識、氣象, 不覺心服之時多矣。’ 然, 規模少狹, 脊樑不牢, 利害當前, 未免動搖。 故, 得君雖久, 鮮聞謇諤之言; 爲政雖專, 不救偸靡之習。 己丑之變, 權姦幸禍, 以逆獄爲機穽, 羅織無辜, 網打異己, 山林善人, 相繼殄戮, 而未嘗發一言救一人, 而至於分疏自明, 苟保身位。 壬辰、丁酉之間, 君臣拔舍, 赤子殷衁, 兩陵遭辱, 宗社燒夷, 通天之讎, 九世必報, 而謀猷不競, 國是靡定, 力主和議, 通信求媚, 使忘讐忍恥之罪, 貽羞恨於千古。 由是, 義士憤惋, 言者藉口。 副提學金宇顒申救疏中有曰: ‘成龍亦難得之人。 但乏宰輔器局, 無大臣風力。’ 斯爲的論也。 戊戌冬, 以辭難於辨誣之事, 削其職, 歸田里。 其後還授職牒, 上聞其病危, 遣醫治之。 及是卒。"】

  • 【태백산사고본】 114책 211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334면
  • 【분류】역사-사학(史學)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선조실록211권, 선조 40년 5월 13일 을해 4/8 기사 / 1607년 명 만력(萬曆) 35년

전 의정부 영의정 풍원 부원군 유성룡의 졸기

국역

전 의정부 영의정 풍원 부원군(豊原府院君) 유성룡(柳成龍)이 졸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유성룡은 경상도 안동(安東) 풍산현(豊山縣) 사람이다. 타고난 자질이 총명하고 기상이 단아하였다. 어린 나이에 퇴계(退溪) 선생의 문하에 종유(從遊)하여 예로써 자신을 단속하니 보는 사람들이 그릇으로 여겼다.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명예가 날로 드러났으나 아침 저녁 여가에 또 학문에 힘써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서 조금도 기대거나 다리를 뻗는 일이 없었다. 사람을 응접(應接)하는 즈음에는 고요하고 단아하여 말이 적었고 붓을 잡고 글을 쓸 때에는 일필휘지(一筆揮之)하여 뜻을 두지 않는 듯하였으나 문장이 정숙(精熟)하여 맛이 있었다. 여러 책을 박람(博覽)하여 외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한 번 눈을 스치면 환히 알아 한 글자도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으며 의리(義理)를 논설하는 데는 뭇 서적에 밝아 수미(首尾)가 정밀하니 듣는 이들이 탄복하였다. 사명(使命)을 받들고 경사(京師)에 갔을 때 중국의 선비들이 모여 들었으나 힐난(詰難)하지 못하고서는 서애 선생(西厓先生)이라고 칭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명예와 지위가 함께 드러나고 총애가 융숭하였다. 재상의 자리에 올라서는 국가의 안위(安危)가 그에 의지하였는데, 정인홍(鄭仁弘)과 의논이 맞지 않아서, 인홍이 매양 공손홍(公孫弘)이라 배척025) 하였고, 성룡 역시 인홍의 속이 좁고 편벽됨을 미워하니, 사론(士論)이 두 갈래로 나뉘어져 서로 공격하는 것이 물과 불 같았다. 성룡은 조목(趙穆)·김성일(金誠一)과 함께 퇴계(退溪)의 문하에서 배웠다. 성일은 강의(剛毅), 독실하여 풍도가 엄숙하고 단정하였으며 너무 곧아서 조정에 용납되지 못하였으나 대절(大節)이 드높아 사람들의 이의(異義)가 없었는데 계사년026) 나라 일에 진력하다가 군중(軍中)에서 죽었다. 조목은 종신토록 은거하면서 학문에 독실하고 자수(自修)하였으나, 나라에 어려운 일이 많게 되자 강개(慷慨)해 마지 않았는데 지난해 죽었다. 조목은 일찍이 성일을 낫게 생각하고 성룡을 못하게 여겼는데, 만년에는 성룡이 하는 일에 매우 분개하여 절교(絶交)하는 편지를 쓰기까지 하였다. 퇴계의 문하에서는 이 세 사람을 영수(領袖)로 삼는다. 유성룡은 조정에 선 지 30여 년 동안 재상으로 있은 것이 10여 년이었는데, 상의 권우(眷遇)가 조금도 쇠하지 않아 귀를 기울여 그의 말을 들었다. 경악에서 선한 말을 올리고 임금의 잘못을 막을 적엔 겸손하고 뜻이 극진하니 이 때문에 상이 더욱 중히 여겨 일찍이 말하기를 ‘내가 유모(柳某)의 학식과 기상을 보면 모르는 사이에 심복(心服)할 때가 많다.’고 하였다. 그러나 규모(規模)가 조금 좁고 마음이 굳세지 못하여 이해가 눈앞에 닥치면 흔들림을 면치 못하였다. 그러므로 임금의 신임을 얻은 것이 오래였었지만 직간했다는 말을 들을 수 없었고 정사를 비록 전단(專斷)하였으나 나빠진 풍습을 구하지 못하였다. 기축년027) 의 변에 권간(權姦)이 화(禍)를 요행으로 여겨 역옥(逆獄)으로 함정을 만들어 무고한 사람을 얽어서 자기와 다른 사람을 일망타진하여 산림(山林)의 착한 사람들이 잇따라 죽었는데도 일찍이 한마디 말을 하거나 한 사람도 구제하지 않고 상소하여 자신을 변명하면서 구차하게 몸과 지위를 보전하기까지 하였다. 임진년과 정유년 사이에는 군신(君臣)이 들판에서 자고 백성들이 고생을 하였으며 두 능(陵)이 욕을 당하고 종사(宗社)가 불에 탔으니 하늘까지 닿는 원수는 영원토록 반드시 갚아야 하는데도 계획이 굳세지 못하고 국시(國是)가 정해지지 않아서 화의(和議)를 극력 주장하며 통신(通信)하여 적에게 잘 보이기를 구하여서 원수를 잊고 부끄러움을 참게 한 죄가 천고(千古)에 한을 끼치게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의사(義士)들이 분개해 하고 언자(言者)들이 말을 하였다. 부제학 김우옹(金宇顒)이 신구(伸救)하는 상소 가운데 ‘성룡은 역시 얻기 어려운 인물입니다마는 재보(宰輔)의 기국(器局)이 부족하고 대신(大臣)의 풍력(風力)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정확한 논의이다. 무술년028) 겨울에 변무(辨誣)하는 일을 어렵게 여겨 사피함으로써 파직되어 전리(田里)로 돌아갔다. 그후에 직첩(職牒)을 돌려주었고, 상이 그의 병이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는 의관을 보내 치료하게 하였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졸한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14책 211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334면
  • 【분류】역사-사학(史學)
  • [註 025] 공손홍(公孫弘)이라 배척 : 겉은 관대한 체하나 속은 악함을 말함. 한 무제(漢武帝) 때 평진후(平津侯)에 봉해진 공손홍은 성품이 겉으로는 관대한 듯하였으나 속 마음은 악하여 주부언(主父偃)을 죽이고 동중서(董仲舒)를 교서(膠西)로 내치기도 하였다. 《한서(漢書)》 권58.
  • [註 026] 계사년 : 1593 선조 26년.
  • [註 027] 기축년 : 1589 선조 22년.
  • [註 028] 무술년 : 1598 선조 31년.

원문

○前議政府領議政豊原府院君 柳成龍卒。

【史臣曰: "成龍, 慶尙道 安東 豐山縣人。 天資聰穎, 氣象端雅。 早歲從遊退溪先生門下, 矜束以禮, 見者器之。 妙齡應第, 譽望日著, 夙夜之暇, 又自力於學問, 終日端坐, 未嘗跛倚。 應接之際, 靜雅簡默, 操筆爲文, 一揮而就, 若不經意, 而精熟有味。 博覽諸書, 未嘗誦讀, 而過眼了然, 片字不忘, 論說義理, 澄明群書, 首尾精到, 聞者歎服。 奉使朝京時, 華士坌集, 而不能難, 稱之以(西崖)〔西厓〕 先生焉。 由是, 名位俱顯, 寵渥隆洽。 及登台位, 倚爲安危, 與鄭仁弘議不合, 仁弘每以公孫弘斥之; 成龍亦惡仁弘之隘僻, 士論携貳, 相攻擊如水火。 成龍趙穆金誠一俱學於退陶之門。 誠一剛毅篤實, 風裁峻整, 以直道不容於朝, 而大節卓落, 人無異議, 歲在癸巳, 盡瘁王事, 卒於軍中。 終身索居, 篤學自修, 遭國多艱, 慷慨不已, 亦以去歲卒。 嘗多誠一, 而少成龍, 晩年頗憤成龍所爲, 至作絶交書。 然退陶門下, 以此三人爲領袖。 成龍立朝三十餘年, 爲相者十年, 上眷不衰, 傾耳以聽。 獻替經幄, 言巽而意盡, 以此, 上尤重之, 嘗曰: "予觀某學識、氣象, 不覺心服之時多矣。’ 然, 規模少狹, 脊樑不牢, 利害當前, 未免動搖。 故, 得君雖久, 鮮聞謇諤之言; 爲政雖專, 不救偸靡之習。 己丑之變, 權姦幸禍, 以逆獄爲機穽, 羅織無辜, 網打異己, 山林善人, 相繼殄戮, 而未嘗發一言救一人, 而至於分疏自明, 苟保身位。 壬辰、丁酉之間, 君臣拔舍, 赤子殷衁, 兩陵遭辱, 宗社燒夷, 通天之讎, 九世必報, 而謀猷不競, 國是靡定, 力主和議, 通信求媚, 使忘讐忍恥之罪, 貽羞恨於千古。 由是, 義士憤惋, 言者藉口。 副提學金宇顒申救疏中有曰: ‘成龍亦難得之人。 但乏宰輔器局, 無大臣風力。’ 斯爲的論也。 戊戌冬, 以辭難於辨誣之事, 削其職, 歸田里。 其後還授職牒, 上聞其病危, 遣醫治之。 及是卒。"】

  • 【태백산사고본】 114책 211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3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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