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제도에 의견이 분분하니 전일의 제도에 따라 중수하게 하다
예조가 아뢰기를,
"선왕조의 실록(實錄)을 상고하였으나 특별히 묘제를 상의한 일은 없었습니다. 태조(太祖) 때 비로소 태묘(太廟)를 창건하였고 명종(明宗) 때에 이르기까지 간가(間架)를 증수하였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다시 대신에게 의논하였더니 ‘삼대(三代)의 태묘 제도가 예(禮)에 있어 가장 올바른 것이다. 지금 중건하는 시기를 당하여 모두 옛 제도를 따른다면 진실로 논의할 것이 없지마는, 그렇지 않고 강등된 예를 따라 변경하는 것이 있다면 이는 이미 옛 제도도 아니고 또한 조종께서 남긴 뜻을 따르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전일의 제도대로 중수하면서 간가만을 넓히는 것이 타당하다.’고도 하고, ‘전전 후침(前殿後寢)은 옛 제도와 그다지 어긋나지 않고 시왕(時王)이 이미 행한 바이니 번국(藩國)으로서는 마땅히 우러러 본받아야 한다. 후침(後寢)에 있을 때의 위차는 중국의 제도와 동일하게 할 수 없었지만 전전(前殿)으로 나오면 태조를 높이고 소목(昭穆)을 질서있게 하는 의의를 행할 수 있어 예의에 어긋남이 없고 사리에도 어긋남이 없다. 모든 것을 옛 제도와 같게 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전일의 제도보다는 이것이 좋다.’고도 하였습니다. 종묘 제도를 개정하는 것은 중대한 일인데 의논이 이처럼 귀일되지 않으니 다시 널리 조정의 의논을 물어서 절충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
하니, 전교하기를,
"논의가 이미 이처럼 귀일되지 않았으니 지금 조정에서 논의한다 하더라도 시끄러움만 일어날 것이다. 전일의 제도에 따라 중수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3책 210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328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禮曹啓曰: "先王朝《實錄》相考, 則別無制度商確之事。 太祖朝始爲創建太廟, 至明廟朝增修間架而已。 以此更議于大臣, 則或以爲: ‘三代廟制, 最爲得禮之正。 今當重建之時, 若盡從古制, 則固無可議。 不然而從降等之禮, 有所變改, 則旣非古制, 亦非遵祖宗遺意。 寧仍舊制而重修, 只恢柘間架爲當。’ 或以爲: ‘前殿後(殿)〔寢〕 , 不遠於古制, 而時王之所已行, 藩國之所當仰法者。 在寢位次, 雖不得一如天朝之制, 而及其出于前殿, 則可以伸其尊太祖、序昭穆之意, 無失於禮意; 不乖於事理。 雖不盡如古制, 猶爲彼善於此。’ 云。 改定廟制, 事係重大, 而論議如是不同, 更爲廣詢廷議, 折衷施行何如?" 傳曰: "論議旣如是不同, 今雖廷議, 徒滋紛紜。 仍舊制重修。"
- 【태백산사고본】 113책 210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3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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