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197권, 선조 39년 3월 27일 을미 4/5 기사 / 1606년 명 만력(萬曆) 34년
전 양성 현감 심대복이 자신의 아버지 심대의 무덤을 파손한 이몽린의 처벌을 요청하다
국역
전 양성 현감(陽城縣監) 심대복(沈大復)이 상소하였다.
"삼가 아뢰건대, 신의 아비 대(岱)가 임진 왜란 초 군주가 욕을 당하면 신자는 죽어야 한다는 때를 당하여 경기 관찰사로 나가라는 명을 받들었습니다. 국가를 위하여 통분해 한 나머지 늘 스스로 맹세하기를 ‘적들과는 함께 살 수 없다. 죽고 나서야 그만 둘 것이다.’ 하다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침내 망극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간과(干戈)가 어지럽던 때이어서 고산(故山)으로 반장(返葬)하지 못하고 삭령(朔寧) 땅에 가매장하였는데, 그 지방에 사는 이몽린이라는 자가 적에게 빌붙어 심복이 되어서 흉적을 인도하여 무덤을 파기까지 하였습니다. 망극한 가운데 또 하나의 망극한 변고를 당하였으므로 신의 온 집안이 이 적을 찾아내어 사무친 원한을 씻으려 하였으나 신이 실로 무상(無狀)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으니 불효한 죄는 백 번 죽어도 용서받기 어렵고 그저 울음으로 나날을 보낼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천도(天道)가 지감이 있었던 탓으로 간흉한 행위를 끝까지 숨기기 어려워 법부의 관원이 적발하여 잡게 되었습니다. 신이 법정에 나아가서 이 적의 흉특한 행위를 빠짐없이 호소하였으므로 신의 사정은 법관이 이미 환히 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은 성상께서도 통촉하신 바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왕부(王府)에 잡아가두고서 막 국문을 가하고 있으니, 이는 실로 신이 복수를 할 기회이자 왕법(王法)이 시행될 수 있는 때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애처로운 이 충정을 불쌍히 여기시어 흉적의 행위를 분명히 밝히고 전형(典刑)을 보여서 애처로운 원한을 풀어주신다면 죽더라도 그날이 태어난 날이나 다름없겠습니다. 신은 황공하고 통분한 마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사신은 논한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것은 《예기(禮記)》에 보인 대의(大義)이다. 심대가 죽었을 적에 그의 아들이 된 자가 어떤 고생도 무릅쓰고 원수를 갚기로 맹세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데 15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법부의 풍문으로 인하여 몽린을 원수로 지적하여 상소까지 하였다. 복수의 의리가 어찌 이처럼 오활할 수 있겠는가. 아! 심대를 죽인 자는 왜인이요 몽린이 아닌데도 대복(大復)의 거조가 이같이 경망하니 그 또한 《예기》의 죄인인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07책 197권 9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17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외교-왜(倭) / 풍속-예속(禮俗) / 군사-전쟁(戰爭) / 역사-사학(史學)
원문
○前陽城縣監沈大復上疏曰:
伏以, 臣父岱, 當亂初, 主辱臣死之日, 承京畿方伯之命, 爲國憤惋, 常自誓曰: "不可與賊俱生, 死而後已。" 事與心違, 終至罔極。 干戈搶攘之中, 不得歸葬故山, 權窆于朔寧之地。 其地居人李夢麟者, 附賊爲腹心, 指導兇賊, 至於發葬。 罔極之中, 又遭罔極之變, 臣之一家願得此賊, 以雪深冤, 而臣實無狀, 以至今日不孝之罪百死難贖, 只自泣血度晷而已。 天道有知, 兇慝難掩, 法府之官摘發斯得。 臣趨詣法府之庭, 悉訴此賊行兇之狀, 臣之情事, 非獨府官已所洞知, 實惟天日亦所監臨。 今者囚繫王府, 方加鞫問, 此實微臣復讎之秋, 而王法得行之日也。 伏乞聖明, 矜察哀衷, 明燭兇狀, 卽示典刑, 俾伸哀冤, 則雖死日, 猶生年也。 臣不勝惶恐痛鬱之至。
【史臣曰: "父之讎, 不共戴一天者, 禮經之大義也。 當岱之死, 爲其子者, 不聞枕戈寢苫, 誓復其讎, 而十五年之後, 始因法府風聞, 指夢麟爲讎, 而至於上疏, 則復讎之義, 豈如是之迂哉? 噫! 殺岱者倭也, 非夢麟也。 而大復之擧措, 若此輕妄, 則其亦禮經之罪人也已。"】
- 【태백산사고본】 107책 197권 9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17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외교-왜(倭) / 풍속-예속(禮俗) / 군사-전쟁(戰爭) / 역사-사학(史學)
선조실록197권, 선조 39년 3월 27일 을미 4/5 기사 / 1606년 명 만력(萬曆) 34년
전 양성 현감 심대복이 자신의 아버지 심대의 무덤을 파손한 이몽린의 처벌을 요청하다
국역
전 양성 현감(陽城縣監) 심대복(沈大復)이 상소하였다.
"삼가 아뢰건대, 신의 아비 대(岱)가 임진 왜란 초 군주가 욕을 당하면 신자는 죽어야 한다는 때를 당하여 경기 관찰사로 나가라는 명을 받들었습니다. 국가를 위하여 통분해 한 나머지 늘 스스로 맹세하기를 ‘적들과는 함께 살 수 없다. 죽고 나서야 그만 둘 것이다.’ 하다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침내 망극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간과(干戈)가 어지럽던 때이어서 고산(故山)으로 반장(返葬)하지 못하고 삭령(朔寧) 땅에 가매장하였는데, 그 지방에 사는 이몽린이라는 자가 적에게 빌붙어 심복이 되어서 흉적을 인도하여 무덤을 파기까지 하였습니다. 망극한 가운데 또 하나의 망극한 변고를 당하였으므로 신의 온 집안이 이 적을 찾아내어 사무친 원한을 씻으려 하였으나 신이 실로 무상(無狀)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으니 불효한 죄는 백 번 죽어도 용서받기 어렵고 그저 울음으로 나날을 보낼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천도(天道)가 지감이 있었던 탓으로 간흉한 행위를 끝까지 숨기기 어려워 법부의 관원이 적발하여 잡게 되었습니다. 신이 법정에 나아가서 이 적의 흉특한 행위를 빠짐없이 호소하였으므로 신의 사정은 법관이 이미 환히 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은 성상께서도 통촉하신 바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왕부(王府)에 잡아가두고서 막 국문을 가하고 있으니, 이는 실로 신이 복수를 할 기회이자 왕법(王法)이 시행될 수 있는 때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애처로운 이 충정을 불쌍히 여기시어 흉적의 행위를 분명히 밝히고 전형(典刑)을 보여서 애처로운 원한을 풀어주신다면 죽더라도 그날이 태어난 날이나 다름없겠습니다. 신은 황공하고 통분한 마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사신은 논한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것은 《예기(禮記)》에 보인 대의(大義)이다. 심대가 죽었을 적에 그의 아들이 된 자가 어떤 고생도 무릅쓰고 원수를 갚기로 맹세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데 15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법부의 풍문으로 인하여 몽린을 원수로 지적하여 상소까지 하였다. 복수의 의리가 어찌 이처럼 오활할 수 있겠는가. 아! 심대를 죽인 자는 왜인이요 몽린이 아닌데도 대복(大復)의 거조가 이같이 경망하니 그 또한 《예기》의 죄인인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07책 197권 9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17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외교-왜(倭) / 풍속-예속(禮俗) / 군사-전쟁(戰爭) / 역사-사학(史學)
원문
○前陽城縣監沈大復上疏曰:
伏以, 臣父岱, 當亂初, 主辱臣死之日, 承京畿方伯之命, 爲國憤惋, 常自誓曰: "不可與賊俱生, 死而後已。" 事與心違, 終至罔極。 干戈搶攘之中, 不得歸葬故山, 權窆于朔寧之地。 其地居人李夢麟者, 附賊爲腹心, 指導兇賊, 至於發葬。 罔極之中, 又遭罔極之變, 臣之一家願得此賊, 以雪深冤, 而臣實無狀, 以至今日不孝之罪百死難贖, 只自泣血度晷而已。 天道有知, 兇慝難掩, 法府之官摘發斯得。 臣趨詣法府之庭, 悉訴此賊行兇之狀, 臣之情事, 非獨府官已所洞知, 實惟天日亦所監臨。 今者囚繫王府, 方加鞫問, 此實微臣復讎之秋, 而王法得行之日也。 伏乞聖明, 矜察哀衷, 明燭兇狀, 卽示典刑, 俾伸哀冤, 則雖死日, 猶生年也。 臣不勝惶恐痛鬱之至。
【史臣曰: "父之讎, 不共戴一天者, 禮經之大義也。 當岱之死, 爲其子者, 不聞枕戈寢苫, 誓復其讎, 而十五年之後, 始因法府風聞, 指夢麟爲讎, 而至於上疏, 則復讎之義, 豈如是之迂哉? 噫! 殺岱者倭也, 非夢麟也。 而大復之擧措, 若此輕妄, 則其亦禮經之罪人也已。"】
- 【태백산사고본】 107책 197권 9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17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외교-왜(倭) / 풍속-예속(禮俗) / 군사-전쟁(戰爭)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