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181권, 선조 37년 11월 16일 임진 6/8 기사 / 1604년 명 만력(萬曆) 32년
평천군 신잡이 윤세침의 옥사에 대한 정황과 입장을 해명하여 아뢰다
국역
평천군(平川君) 신잡이 아뢰기를,
"난리 이후로 요괴(妖怪)한 무리가 각도에 횡행합니다. 신이 평안 병사(平安兵使)로 있을 때 자칭 함경 감사(咸鏡監司) 유영립(柳永立)의 아들이라는 자가 보러 왔기에 상세히 추문(推問)하였더니 유영립의 아들이 아니라 도적인 전주(全州)의 관노(官奴)였으므로 감사(監司)에게 보고해 형추(刑推)하였습니다. 또 좌의정 유영경(柳永慶)이 황해 감사(黃海監司)였을 당시 자칭 수안 군수(遂安郡守)라는 자가 보러 왔으므로 잡아서 죄를 다스렸으나, 다 왕옥(王獄)에서 국문(鞫問)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번에 신의 아들 신경희(申景禧)가 윤섬(尹暹)이라는 자를 잡아서 감춘 문서를 찾아냈는데, 대개 신에게 써 보내기를 ‘도둑의 정상이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사상(事狀)이 흉궤(兇詭)하여 보통 요괴한 따위가 아니므로 감사에게 알려 전계(轉啓)하게 하였다…….’ 하였습니다. 그래서신이 전일 겪고 들은 일에 따라 답하기를 ‘역적이 아니면 이러한 일은 본도(本道)에서 처치하는데, 어찌하여 전계하도록 관찰사에게 알렸는가. 더구나 이 사람이 역적의 무리라면 드러내놓고 윤섬이라고 자칭했겠는가. 최관(崔灌)은 수령(守令)인 사람인데, 또한 어찌 언서(諺書)로 서로 통하겠으며 말하는 것이 어찌 이처럼 무리하겠는가. 네가 상세히 살펴 정상을 알아내지 못하고서 경솔히 관찰사에게 알린 것은 아니냐…….’ 하였습니다.
감사 권희는 신과 생원 동년(生員同年)이고 또 집을 연접하여 서로 친절한 사이기에 신이 억측한 뜻을 반복해서 논하여 글을 써서 권희에게 보냈더니, 권희가 신의 글을 경희에게 보냈는데, 이는 대체로 신의 억측이 이러하기 때문에 신경희에게 보이려는 뜻이었습니다. 벗 사이의 사서(私書)를 바치기는 미안하나, 신이 어찌 감히 조금이라도 임금에게 숨기는 것이 있겠습니까. 이제 바치는 글이 그것입니다. 다만 신이 손수 쓴 글을 신이 스스로 바치는 것이 사리에 매우 어긋나는 일이긴 하지만 이 글을 권희에게 보내어 전일에 본 글인지의 여부를 하문하시면 권희가 반드시 스스로 회계(回啓)할 것입니다. 신이 약방(藥房)의 입직(入直) 때문에 들어왔다가 패초(牌招)하라는 명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황공하여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경의 말을 잘 알았다. 경의 뜻은 지극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2책 181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698면
원문
○平川君 申磼啓曰: "亂離以後, 妖怪之輩, 橫行各道。 臣爲平安兵使時, 有自稱咸鏡監司柳永立子者來謁。 備細推問, 則非永立之子, 乃賊人全州官奴, 故報監司刑推。 又左議政柳永慶爲黃海監司時, 有自稱遂安郡守者來現, 執捉治罪, 皆不鞫問王獄矣。 頃日臣子申景禧, 捕捉尹暹稱號者, 搜得所藏文書, 大槪書示於臣曰: ‘雖無現出賊情, 事狀兇詭, 非尋常妖怪之類, 故報監司, 使之轉啓云云。’ 臣以前日所經所聞之事, 答之曰: ‘非逆賊, 則如此之事, 自本道處之矣。 何以轉啓報使乎? 況此人, 若逆徒, 則豈表表尹暹自稱乎? 崔灌, 守令之人, 又豈以諺書相通, 而所言何如是無理乎? 汝無乃不爲詳覈得情, 而輕率報使耶云云。’ 監司權憘, 臣生員同年, 又連家相切之人, 故臣以臆料之意, 反覆論說, 作書轉送權憘處, 權憘以臣書, 送于景禧。 蓋以臣之臆度如是, 故使景禧見之之意也。 朋友間私書, 入納未安, 而臣何敢一毫有隱於君父哉? 今納之書, 是也。 但臣之手筆之書, 臣自入納, 於事理甚乖。 此書送于權憘處, 此是前日所見之書乎下問, 則權憘必自回啓矣。 臣藥房入直入來, 聞牌招命下之奇, 惶恐敢啓。" 傳曰, 具悉卿言。 卿意至矣。"
- 【태백산사고본】 102책 181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698면
선조실록181권, 선조 37년 11월 16일 임진 6/8 기사 / 1604년 명 만력(萬曆) 32년
평천군 신잡이 윤세침의 옥사에 대한 정황과 입장을 해명하여 아뢰다
국역
평천군(平川君) 신잡이 아뢰기를,
"난리 이후로 요괴(妖怪)한 무리가 각도에 횡행합니다. 신이 평안 병사(平安兵使)로 있을 때 자칭 함경 감사(咸鏡監司) 유영립(柳永立)의 아들이라는 자가 보러 왔기에 상세히 추문(推問)하였더니 유영립의 아들이 아니라 도적인 전주(全州)의 관노(官奴)였으므로 감사(監司)에게 보고해 형추(刑推)하였습니다. 또 좌의정 유영경(柳永慶)이 황해 감사(黃海監司)였을 당시 자칭 수안 군수(遂安郡守)라는 자가 보러 왔으므로 잡아서 죄를 다스렸으나, 다 왕옥(王獄)에서 국문(鞫問)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번에 신의 아들 신경희(申景禧)가 윤섬(尹暹)이라는 자를 잡아서 감춘 문서를 찾아냈는데, 대개 신에게 써 보내기를 ‘도둑의 정상이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사상(事狀)이 흉궤(兇詭)하여 보통 요괴한 따위가 아니므로 감사에게 알려 전계(轉啓)하게 하였다…….’ 하였습니다. 그래서신이 전일 겪고 들은 일에 따라 답하기를 ‘역적이 아니면 이러한 일은 본도(本道)에서 처치하는데, 어찌하여 전계하도록 관찰사에게 알렸는가. 더구나 이 사람이 역적의 무리라면 드러내놓고 윤섬이라고 자칭했겠는가. 최관(崔灌)은 수령(守令)인 사람인데, 또한 어찌 언서(諺書)로 서로 통하겠으며 말하는 것이 어찌 이처럼 무리하겠는가. 네가 상세히 살펴 정상을 알아내지 못하고서 경솔히 관찰사에게 알린 것은 아니냐…….’ 하였습니다.
감사 권희는 신과 생원 동년(生員同年)이고 또 집을 연접하여 서로 친절한 사이기에 신이 억측한 뜻을 반복해서 논하여 글을 써서 권희에게 보냈더니, 권희가 신의 글을 경희에게 보냈는데, 이는 대체로 신의 억측이 이러하기 때문에 신경희에게 보이려는 뜻이었습니다. 벗 사이의 사서(私書)를 바치기는 미안하나, 신이 어찌 감히 조금이라도 임금에게 숨기는 것이 있겠습니까. 이제 바치는 글이 그것입니다. 다만 신이 손수 쓴 글을 신이 스스로 바치는 것이 사리에 매우 어긋나는 일이긴 하지만 이 글을 권희에게 보내어 전일에 본 글인지의 여부를 하문하시면 권희가 반드시 스스로 회계(回啓)할 것입니다. 신이 약방(藥房)의 입직(入直) 때문에 들어왔다가 패초(牌招)하라는 명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황공하여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경의 말을 잘 알았다. 경의 뜻은 지극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2책 181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698면
원문
○平川君 申磼啓曰: "亂離以後, 妖怪之輩, 橫行各道。 臣爲平安兵使時, 有自稱咸鏡監司柳永立子者來謁。 備細推問, 則非永立之子, 乃賊人全州官奴, 故報監司刑推。 又左議政柳永慶爲黃海監司時, 有自稱遂安郡守者來現, 執捉治罪, 皆不鞫問王獄矣。 頃日臣子申景禧, 捕捉尹暹稱號者, 搜得所藏文書, 大槪書示於臣曰: ‘雖無現出賊情, 事狀兇詭, 非尋常妖怪之類, 故報監司, 使之轉啓云云。’ 臣以前日所經所聞之事, 答之曰: ‘非逆賊, 則如此之事, 自本道處之矣。 何以轉啓報使乎? 況此人, 若逆徒, 則豈表表尹暹自稱乎? 崔灌, 守令之人, 又豈以諺書相通, 而所言何如是無理乎? 汝無乃不爲詳覈得情, 而輕率報使耶云云。’ 監司權憘, 臣生員同年, 又連家相切之人, 故臣以臆料之意, 反覆論說, 作書轉送權憘處, 權憘以臣書, 送于景禧。 蓋以臣之臆度如是, 故使景禧見之之意也。 朋友間私書, 入納未安, 而臣何敢一毫有隱於君父哉? 今納之書, 是也。 但臣之手筆之書, 臣自入納, 於事理甚乖。 此書送于權憘處, 此是前日所見之書乎下問, 則權憘必自回啓矣。 臣藥房入直入來, 聞牌招命下之奇, 惶恐敢啓。" 傳曰, 具悉卿言。 卿意至矣。"
- 【태백산사고본】 102책 181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69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