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146권, 선조 35년 2월 7일 경오 2/6 기사 / 1602년 명 만력(萬曆) 30년
대사간 정광적 등이 최영경의 일에 대한 성혼의 죄를 아뢰다
국역
대사간 정광적, 사간 강첨, 헌납 최충원, 정언 이구징이 아뢰기를,
"최영경은 산림의 처사로서 간신 정철의 시기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악명을 입고 왕옥에 수금된 일에 대해서는 삼척 동자라도 모두 그 원통함을 아는데, 그때 대간이 재차 국문하기를 계청하여 마침내 옥사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모두가 정철이 사주한 것인 바, 신들이 당시의 대간들을 논계하는 것이 비록 시공(緦功)을 살피는 것에 가까우나 권간에게 아첨해 빌붙어서 착한 선비를 해치어 죽였으니 그 죄를 논하면 칼을 잡고 사람을 죽인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실에 의거하여 죄주기를 청한 것입니다.
성혼의 경우는, 일시의 중한 명망이 짊어지고 정철과 가장 친밀하였으니 정철의 마음과 계책을 성혼이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최영경이 죽을 적에 성혼이 만일 힘껏 구제했더라면 분명히 억울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팔짱끼고 옆에서 보기만 했고 끝내 구제하지 않았으니, 행적에 앞서 그 의도를 주벌하는 춘추의 법으로 처단하면 부월(鈇鉞)의 주벌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죄를 정하는 법은 반드시 근거할 만한 사실을 따르는 것이니, 지금 구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얽어 죽였다는 죄명을 가하면 왕자(王者)가 사실에 의거하여 형률을 정하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들이 재차 국문을 청한 대간만 논하였을 뿐 성혼에게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지금 성교를 받드니 신들이 나약하여 직무를 이행하지 못한 잘못이 나타났으므로 염치없이 그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신들의 직을 파직하소서."
하니, 양사에 답하기를,
"경들이 언관이 되어 사람을 죽인 간당(奸黨)을 10년 뒤에 와서 비로서 논하니, 한오라기의 공론은 마치 어린 양(陽)이 처음 동(動)하는 것과 같아, 끊어진 맥이 겨우 이어졌다 하겠다. 소를 세 차례나 올렸으나 내가 잘잘못을 말하지 않은 것은 위안이 되기도 하나 한편 슬프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무릇 천하의 일은 근본이 있고 끝이 있다. 근본을 버리고 끝만 다스리면 수고롭기만 하고 다스려지지 아니하며, 근본을 먼저 하고 끝을 뒤로 하면 수고롭지 아니하고도 일이 모두 바르게 되는 법이다.
최영경이 정철을 가리켜 ‘강퍅한 소인이다. [索性小人]’하였으니, 정철이 이를 갈고 입술을 깨물며 으르릉거리면서 기회를 엿보아 아마 하루도 마음에 잊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역옥이 일어나게 되자, 정철이 이에 손바닥을 치고 기뻐 날뛰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의 무리로 하여금 고변하게 하고 마침내는 그 무리로 하여금 논하게 하여 반드시 그를 죽임으로써 그 뜻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최영경이 죽던 날 정철은 필시 술을 장만하여 성대히 잔치하였을 것이다. 그 사이의 음모와 흉악한 계획은 필시 차마 말하지 못할 일이 있었을 것이다. 이는 그 마음가짐이 칼날보다 더 매서운 것이니 참으로 천고의 간흉이다.
그러나 정철이 이같이 자행하여 기탄이 없게 된 것은 성혼이 곁에서 도왔기 때문이다. 성혼이 정철의 심복이 되어 정철과 일체가 된 것은, 아래 있는 사람이 논하고 위에 있는 사람이 알고 있다. 지금 헌부의 말에 ‘정철의 친우가 되어 논의를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하였으니, 이것은 헌부가 그를 아는 것이고, 간원의 말에 ‘정철과 가장 친밀하여 정철의 심사를 성혼이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성혼은 곧 정철의 분신(分身)이다. 하나의 정철은 비록 이미 죄를 받았으나 또 다른 하나의 정철이 있지 않은가. 그 당시 대간으로 있던 자는 지시를 받아 아첨하고 빌붙은 간사한 무리에 불과하니 어찌 논할 거리가 되겠는가. 지금 곧 악인을 토벌하는 형전(刑典)을 거행하여 일시의 풍절(風節)을 떨치어 만세의 시비를 정하고자 하면서 그 괴수인 정철을 버려두고 그 지엽만을 논하니, 이것은 이른바 배를 삼키는 큰 고기는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두고 시공(緦功)만 살핀다는 격으로, 공론이 어느 때에 행해지며 간인이 어느 때에 두려워하겠는가. 저 논핵을 받는 그 당시 대간도 또한 승복하지 않고 도리어 비웃을 것이다.
귀신이 알고 온 세상 사람이 알고 있는 성혼 같은 자도 오히려 바른 말로 곧바로 지척하지 못하니, 혹시 큰 간인이 집정하였을 때 능히 말을 벨 수 있는 상방검(尙方劍)을 빌리고028) 뱀을 쳤던 홀로 지적할 수 있겠는가.029) 나는 이를 두려워한다. 예로부터 간흉에게 편당하여 그 심복이 된 자가 그때 조금이라도 공론이 있었을 경우 천벌을 면한 적이 있었던가. 사람을 죽인 간특함으로 말하면 사람이 헤아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내가 성혼에게 최영경을 죽인 형률로써 가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옛날 임금은 한 지아비, 한 아낙네를 위하여 복수하였다. 시비란 임금이 결정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니, 내가 말하지 않으려 하나 될 수 있겠는가.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8책 146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340면
- [註 028] 말을 벨 수 있는 상방검(尙方劍)을 빌리고 : 한 성제(漢成帝) 때 주운(朱雲)이 성제에게 "신에게 상방(尙方)의 말을 벨 수 있는 칼을 빌려주시면 영신(佞臣) 1인을 처단하여 그 나머지 소인들을 징계하겠습니다." 하였는데, 영신은 당시 임금의 신임을 받는 승상 장우(張禹)를 지칭한 것이다. 《한서(漢書)》 권67.
- [註 029] 뱀을 쳤던 홀로 지적할 수 있겠는가. : 송 인종(宋仁宗) 때 사람인 송도보(宋道輔)가 영주(寧州)의 좌막(佐幕)으로 있을 때 천경관(天慶觀)의 요사(妖蛇)를 홀(笏)로 쳐서 죽였다. 석개(石介)가 격사홀명(擊蛇笏銘)의 서설(序說)에서 "대궐에서 임금을 속이고 백성을 속이며 임금의 뜻에 앞서서 비위 맞추는 자가 있으면 공은 이 격사홀로 지목하라." 하였다. 《조래집(徂徠集)》 권6 격사흘명(擊蛇笏銘).
원문
○大司諫鄭光績、司諫姜籤、獻納崔忠元、正言李久澄啓曰: "崔永慶, 以林下之處士, 爲奸臣鄭澈所媢疾, 橫被惡名, 囚繫王獄, 雖尺童皆知其至冤極痛, 而其時臺諫啓請再鞫, 終至瘐死, 此無非鄭澈之所指嗾也。 臣等之論啓此人, 雖近於緦、功之察, 而謟附權奸, 戕殺善士, 論其罪, 則無異於操刃殺人, 故據實請罪矣。 至於成渾, 則負一時重名, 與澈最相親密, 澈之心計, 渾無不知之理。 永慶之死, 渾若力救, 則其不至於枉死也明矣, 而袖手旁觀, 終始不救。 斷以《春秋》誅意之法, 則鈇鉞之誅, 在所難免, 然國家定罪之典, 必因其可據之迹。 今若以不救之故, 而遽加以搆殺之名, 則似非王者據實定律之意, 故臣等只論再鞫之臺諫, 而不及於成渾矣。 今承聖敎, 臣等疲軟不職之失著矣。 不可靦然仍冒, 請命罷斥臣等之職。" 答兩司曰: "卿等爲言官, 始論殺人奸黨於十年之後, 一線公論, 如稚陽初動, 絶脈纔續。 疏三上, 而予不言其皂白者, 以其雖可慰, 而亦可哀已。 夫天下之事, 有本有末。 捨其本, 而治其末, 則徒勤而愈不治。 先其本, 而後其末, 則不勞而事皆得其正矣。 崔永慶, 指鄭澈爲索性小人。 澈之磨牙鼓吻, 狺然而旁伺者, 蓋未嘗一日而忘于懷。 及逆獄起, 澈於是抵掌雀躍, 始焉使其黨告之, 終焉使其黨論之, 必殺之以快其意。 永慶之死日, 澈必置酒高會矣。 其間陰謀凶計, 必有所不忍言者。 此其設心, 慘於鏌鎁, 眞千古之奸兇也。 然澈之所以恣行至此, 而無所忌者, 以其成渾爲之主也。 渾之爲澈腹心, 與澈一體, 在下者論之, 在上者知之。 今憲府之言曰: ‘爲澈親友, 論議無不預知’, 是憲府而知之, 諫院之言曰: ‘與澈最相親密, 澈之心事, 渾無不知’, 是諫院而知之。 然則渾者, 乃澈之分身也。 一澈雖已服辜, 其無一澈乎? 彼其時之爲臺諫者, 不過承望風旨, 依阿淟涊, 趨附邪侫之輩, 此何足數乎? 今乃擧討惡之典, 欲振一時之風節, 以定萬世之是非, 而正捨其魁澈, 僅論其枝葉, 此所謂網漏呑舟, 緦功是察。 公論何時而得行, 奸人何時而畏懼? 彼論者, 亦恐不服而反哂之矣。 夫鬼神之所知, 十目之所視, 如渾者, 尙不能正言直斥, 設使巨奸當朝, 其能借斬馬之劍, 指擊蛇之笏乎? 予爲是懼。 未審自古黨於奸兇, 爲其腹心者, 其時稍有公論, 則得免天討否? 若其殺人之慝, 人所難測。 予非以渾爲可加以殺永慶之律。 古之人君, 爲匹夫匹婦復讐。 是非者, 人君之不可以不定者, 予雖欲無言, 得乎? 勿辭。"
- 【태백산사고본】 88책 146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340면
선조실록146권, 선조 35년 2월 7일 경오 2/6 기사 / 1602년 명 만력(萬曆) 30년
대사간 정광적 등이 최영경의 일에 대한 성혼의 죄를 아뢰다
국역
대사간 정광적, 사간 강첨, 헌납 최충원, 정언 이구징이 아뢰기를,
"최영경은 산림의 처사로서 간신 정철의 시기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악명을 입고 왕옥에 수금된 일에 대해서는 삼척 동자라도 모두 그 원통함을 아는데, 그때 대간이 재차 국문하기를 계청하여 마침내 옥사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모두가 정철이 사주한 것인 바, 신들이 당시의 대간들을 논계하는 것이 비록 시공(緦功)을 살피는 것에 가까우나 권간에게 아첨해 빌붙어서 착한 선비를 해치어 죽였으니 그 죄를 논하면 칼을 잡고 사람을 죽인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실에 의거하여 죄주기를 청한 것입니다.
성혼의 경우는, 일시의 중한 명망이 짊어지고 정철과 가장 친밀하였으니 정철의 마음과 계책을 성혼이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최영경이 죽을 적에 성혼이 만일 힘껏 구제했더라면 분명히 억울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팔짱끼고 옆에서 보기만 했고 끝내 구제하지 않았으니, 행적에 앞서 그 의도를 주벌하는 춘추의 법으로 처단하면 부월(鈇鉞)의 주벌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죄를 정하는 법은 반드시 근거할 만한 사실을 따르는 것이니, 지금 구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얽어 죽였다는 죄명을 가하면 왕자(王者)가 사실에 의거하여 형률을 정하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들이 재차 국문을 청한 대간만 논하였을 뿐 성혼에게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지금 성교를 받드니 신들이 나약하여 직무를 이행하지 못한 잘못이 나타났으므로 염치없이 그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신들의 직을 파직하소서."
하니, 양사에 답하기를,
"경들이 언관이 되어 사람을 죽인 간당(奸黨)을 10년 뒤에 와서 비로서 논하니, 한오라기의 공론은 마치 어린 양(陽)이 처음 동(動)하는 것과 같아, 끊어진 맥이 겨우 이어졌다 하겠다. 소를 세 차례나 올렸으나 내가 잘잘못을 말하지 않은 것은 위안이 되기도 하나 한편 슬프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무릇 천하의 일은 근본이 있고 끝이 있다. 근본을 버리고 끝만 다스리면 수고롭기만 하고 다스려지지 아니하며, 근본을 먼저 하고 끝을 뒤로 하면 수고롭지 아니하고도 일이 모두 바르게 되는 법이다.
최영경이 정철을 가리켜 ‘강퍅한 소인이다. [索性小人]’하였으니, 정철이 이를 갈고 입술을 깨물며 으르릉거리면서 기회를 엿보아 아마 하루도 마음에 잊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역옥이 일어나게 되자, 정철이 이에 손바닥을 치고 기뻐 날뛰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의 무리로 하여금 고변하게 하고 마침내는 그 무리로 하여금 논하게 하여 반드시 그를 죽임으로써 그 뜻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최영경이 죽던 날 정철은 필시 술을 장만하여 성대히 잔치하였을 것이다. 그 사이의 음모와 흉악한 계획은 필시 차마 말하지 못할 일이 있었을 것이다. 이는 그 마음가짐이 칼날보다 더 매서운 것이니 참으로 천고의 간흉이다.
그러나 정철이 이같이 자행하여 기탄이 없게 된 것은 성혼이 곁에서 도왔기 때문이다. 성혼이 정철의 심복이 되어 정철과 일체가 된 것은, 아래 있는 사람이 논하고 위에 있는 사람이 알고 있다. 지금 헌부의 말에 ‘정철의 친우가 되어 논의를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하였으니, 이것은 헌부가 그를 아는 것이고, 간원의 말에 ‘정철과 가장 친밀하여 정철의 심사를 성혼이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성혼은 곧 정철의 분신(分身)이다. 하나의 정철은 비록 이미 죄를 받았으나 또 다른 하나의 정철이 있지 않은가. 그 당시 대간으로 있던 자는 지시를 받아 아첨하고 빌붙은 간사한 무리에 불과하니 어찌 논할 거리가 되겠는가. 지금 곧 악인을 토벌하는 형전(刑典)을 거행하여 일시의 풍절(風節)을 떨치어 만세의 시비를 정하고자 하면서 그 괴수인 정철을 버려두고 그 지엽만을 논하니, 이것은 이른바 배를 삼키는 큰 고기는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두고 시공(緦功)만 살핀다는 격으로, 공론이 어느 때에 행해지며 간인이 어느 때에 두려워하겠는가. 저 논핵을 받는 그 당시 대간도 또한 승복하지 않고 도리어 비웃을 것이다.
귀신이 알고 온 세상 사람이 알고 있는 성혼 같은 자도 오히려 바른 말로 곧바로 지척하지 못하니, 혹시 큰 간인이 집정하였을 때 능히 말을 벨 수 있는 상방검(尙方劍)을 빌리고028) 뱀을 쳤던 홀로 지적할 수 있겠는가.029) 나는 이를 두려워한다. 예로부터 간흉에게 편당하여 그 심복이 된 자가 그때 조금이라도 공론이 있었을 경우 천벌을 면한 적이 있었던가. 사람을 죽인 간특함으로 말하면 사람이 헤아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내가 성혼에게 최영경을 죽인 형률로써 가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옛날 임금은 한 지아비, 한 아낙네를 위하여 복수하였다. 시비란 임금이 결정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니, 내가 말하지 않으려 하나 될 수 있겠는가.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8책 146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340면
- [註 028] 말을 벨 수 있는 상방검(尙方劍)을 빌리고 : 한 성제(漢成帝) 때 주운(朱雲)이 성제에게 "신에게 상방(尙方)의 말을 벨 수 있는 칼을 빌려주시면 영신(佞臣) 1인을 처단하여 그 나머지 소인들을 징계하겠습니다." 하였는데, 영신은 당시 임금의 신임을 받는 승상 장우(張禹)를 지칭한 것이다. 《한서(漢書)》 권67.
- [註 029] 뱀을 쳤던 홀로 지적할 수 있겠는가. : 송 인종(宋仁宗) 때 사람인 송도보(宋道輔)가 영주(寧州)의 좌막(佐幕)으로 있을 때 천경관(天慶觀)의 요사(妖蛇)를 홀(笏)로 쳐서 죽였다. 석개(石介)가 격사홀명(擊蛇笏銘)의 서설(序說)에서 "대궐에서 임금을 속이고 백성을 속이며 임금의 뜻에 앞서서 비위 맞추는 자가 있으면 공은 이 격사홀로 지목하라." 하였다. 《조래집(徂徠集)》 권6 격사흘명(擊蛇笏銘).
원문
○大司諫鄭光績、司諫姜籤、獻納崔忠元、正言李久澄啓曰: "崔永慶, 以林下之處士, 爲奸臣鄭澈所媢疾, 橫被惡名, 囚繫王獄, 雖尺童皆知其至冤極痛, 而其時臺諫啓請再鞫, 終至瘐死, 此無非鄭澈之所指嗾也。 臣等之論啓此人, 雖近於緦、功之察, 而謟附權奸, 戕殺善士, 論其罪, 則無異於操刃殺人, 故據實請罪矣。 至於成渾, 則負一時重名, 與澈最相親密, 澈之心計, 渾無不知之理。 永慶之死, 渾若力救, 則其不至於枉死也明矣, 而袖手旁觀, 終始不救。 斷以《春秋》誅意之法, 則鈇鉞之誅, 在所難免, 然國家定罪之典, 必因其可據之迹。 今若以不救之故, 而遽加以搆殺之名, 則似非王者據實定律之意, 故臣等只論再鞫之臺諫, 而不及於成渾矣。 今承聖敎, 臣等疲軟不職之失著矣。 不可靦然仍冒, 請命罷斥臣等之職。" 答兩司曰: "卿等爲言官, 始論殺人奸黨於十年之後, 一線公論, 如稚陽初動, 絶脈纔續。 疏三上, 而予不言其皂白者, 以其雖可慰, 而亦可哀已。 夫天下之事, 有本有末。 捨其本, 而治其末, 則徒勤而愈不治。 先其本, 而後其末, 則不勞而事皆得其正矣。 崔永慶, 指鄭澈爲索性小人。 澈之磨牙鼓吻, 狺然而旁伺者, 蓋未嘗一日而忘于懷。 及逆獄起, 澈於是抵掌雀躍, 始焉使其黨告之, 終焉使其黨論之, 必殺之以快其意。 永慶之死日, 澈必置酒高會矣。 其間陰謀凶計, 必有所不忍言者。 此其設心, 慘於鏌鎁, 眞千古之奸兇也。 然澈之所以恣行至此, 而無所忌者, 以其成渾爲之主也。 渾之爲澈腹心, 與澈一體, 在下者論之, 在上者知之。 今憲府之言曰: ‘爲澈親友, 論議無不預知’, 是憲府而知之, 諫院之言曰: ‘與澈最相親密, 澈之心事, 渾無不知’, 是諫院而知之。 然則渾者, 乃澈之分身也。 一澈雖已服辜, 其無一澈乎? 彼其時之爲臺諫者, 不過承望風旨, 依阿淟涊, 趨附邪侫之輩, 此何足數乎? 今乃擧討惡之典, 欲振一時之風節, 以定萬世之是非, 而正捨其魁澈, 僅論其枝葉, 此所謂網漏呑舟, 緦功是察。 公論何時而得行, 奸人何時而畏懼? 彼論者, 亦恐不服而反哂之矣。 夫鬼神之所知, 十目之所視, 如渾者, 尙不能正言直斥, 設使巨奸當朝, 其能借斬馬之劍, 指擊蛇之笏乎? 予爲是懼。 未審自古黨於奸兇, 爲其腹心者, 其時稍有公論, 則得免天討否? 若其殺人之慝, 人所難測。 予非以渾爲可加以殺永慶之律。 古之人君, 爲匹夫匹婦復讐。 是非者, 人君之不可以不定者, 予雖欲無言, 得乎? 勿辭。"
- 【태백산사고본】 88책 146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34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