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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34권, 선조 34년 2월 24일 계사 7/8 기사 / 1601년 명 만력(萬曆) 29년

함경 관찰사 신잡을 인견하는 자리에 여진족 방어책 등을 상의하다

국역

전시(辰時)에 상이 별전(別殿)에 나아가 함경도 관찰사 신잡(申磼)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본도(本道)가 허술하고 노(虜) 또한 횡행하니 경은 성심을 다하라."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용렬한 소신이 병조에 있은 지 10여 개월인데도 한 일이 없었는데, 이처럼 북관(北關)에 걱정이 많은 때 외람되이 중책을 받으니 어찌해야 할지 몰라 민망하고 박절할 뿐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전 감사(監司)를 만나 보았는가?"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어젯밤에 가서 보니, 윤승훈(尹承勳)이 말하기를 ‘북도의 일은 남쪽과 같이 우려되는 정도는 아니어서 노가 대대적으로 침입만 하지 않는다면 막아낼 수 있다. 그곳의 토병(土兵)을 잘 배양하면 전장에서 돌진하게 할 수 있으나 다만 북도가 번호(藩胡)를 공격한 뒤로 충분히 위엄을 떨치지 못하였고, 또 먹고 살아갈 길이 없기 때문에 사람 수효가 줄어들고 있는데 혹은 해변으로 옮겨가기도 하니, 이 점이 걱정된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노의 형세는 어떻다고 하던가?"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온성(穩城) 각 부락 가운데 사장 부락(社長部落)이 매우 공손한데, 지난날 왜란 때 우리 나라 사람들이 왜적에게 투항하여 우리 나라 사람을 많이 죽이자 심하게 꾸짖기를 ‘우리 지역에서는 죽일 수 없다.’ 하고 모두가 금지시켰으니, 그들의 지혜가 우수한 듯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노토(老土)가 생각할 때, 이 부락이 있으면 거사할 수 없으므로 먼저 그들을 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노토의 형세는 어떻다고 하던가?"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우리가 분탕한 뒤로 약간 기세가 꺾였다고 하였습니다. 계미년035)신립(申砬)이 토벌할 때, 군사를 훈련시키고 성을 보전한 공으로 신상절(申尙節)에게 단지 예빈시 정(禮賓寺正)을 제수하였으나 내금위(內禁衛)의 녹봉(祿俸)으로 쌀 1백여 석을 운반하여 수효를 헤아려 지급하였기 때문에 모두 흥기하여 기꺼이 싸움에 임하였습니다. 지금은 장사(將士)를 위로할 녹봉이 없어 부득이 관직을 더 설치하여야겠는데 변란 이후에 구차한 정사(政事)는 상께서 일체 혁파하셨으므로 더 설치하는 관직을 이제 마련할 수가 없습니다. 신이 이제 들어가면 필시 곳곳에서 호소할 것인데 그에 대하여 마련하지 못한다고 대답하는 것은 안 될 듯하지만 달리 혜택을 실시할 만한 방도가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변통하여 논상을 해야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체로 사람들이 있은 다음에 모든 일을 할 수가 있으니, 변란 때만이 아니라 평시에도 그렇다. 북도가 텅 비었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한다면 좋겠다."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즐겁게 살 땅이 있은 다음에야 그들을 안주시킬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녹봉이 있었기 때문에 모두 이에 힘입어 살아갈 수 있었으나, 이제는 녹봉이 없어 살 길이 끊기고 변장(邊將)의 수탈도 어찌 반드시 없다고 보장하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나가는 백성을 묶어두고 금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을 보살피고 안주시키는 책임은 변장과 수령에게 있고 변장과 수령을 진퇴하는 권한은 감사에게 있으니, 경은 책임지고 잘 하길 바란다. 추쇄(推刷)의 법이 매우 엄중하였는데 이제 다 해이해졌다. 그러나 양계(兩界)의 인물을 다른 도로 이사하지 못하게 해야 하고, 또 속신(贖身)을 허용해서도 안 된다. 설사 속신을 하더라도 그대로 그곳에 있게 해야 한다. 번호(藩胡)에게는 우리의 위세를 두려워하게만 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그들이 상경(上京)하지 못하므로 이 점을 원망하는 마음이 없지 않을 것이니, 또한 보살펴 주는 뜻을 베풀도록 하라."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평소에는 번호가 상경하면 연향(宴享)만 베푸는 것이 아니라 관복(冠服)을 주는 사례도 있었으나 임진년 이후 오랫동안 접대하는 일을 폐하였습니다. 이제 급히 우선 거행해야겠으므로 비변사가 지금 논의중인데, 혹자는 길주(吉州) 이하 관사(館舍)가 있는 곳에서만 할 수 있다 하고, 혹자는 함흥부(咸興府)에서 하려고 하기 때문에, 신이 윤승훈(尹承勳)에게 물었더니 ‘함흥은 대청(大廳) 40여 간을 조성한 다음에나 할 수 있으니 부득이 길주에서 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변장과 수령으로 하여금 탐욕을 부리지 못하게 하고 다른 도로 나간 사람을 쇄환하며 번호를 보살피는 등의 일은 내가 이미 말하였고, 호(胡)를 제압하는 데에 화기(火器)가 아니면 어려우니, 북도의 포수를 특별히 교훈하라."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전일에 백자통(百字筒)을 쓰자 호마(胡馬)가 놀라서 물러나고 노인(虜人)이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 호(胡)를 위협하는 무기는 포를 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으니, 이것을 가르치는 일을 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이원익(李元翼)이 관서(關西)에서 교련에 전념하여 1개월 안에 거의 성재(成材)가 되었습니다. 다만 화약을 얻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염초(焰硝)를 구워 만들어 쓰라는 조정의 명령이 있기는 하나 그 공역이 매우 많아 차라리 중국인에게 무역하는 것만 못합니다. 북도에는 은(銀)이 나는 곳이 있어 무역을 할 수 있으나 그 길이 한번 열리면 장래에 폐단이 있을까 염려되기 때문에 금지하고 하지 않습니다. 윤승훈이 중국에 직무역할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비변사에 은을 보냈던 것은 잡음이 자신에게 미칠까 염려해서였는데 비변사가 아직까지 무역해 보내지 않고 있으니, 포수가 무슨 수로 성재가 되겠습니까. 이세증(李世曾)이 일찍이 상토(上土)에 있을 때 여인 옥잔(玉盞)에게도 활쏘기를 가르쳐 10번 쏘아 8∼9번을 맞히니, 그 당시 어사(御史) 이영(李覮)이 장계하기를 ‘성재한 자는 면천(免賤)해 주는 것이 관례인데, 변방의 여인들이 모두 성을 지키고 포를 쏠 수 있으니 조정에서 특별히 처치하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관원을 보내 은을 캐 본도에서 직접 염초와 화약을 많이 사와 전쟁 물자로 쓰게 하는 것이 매우 마땅하겠습니다."

하였다. 우부승지 윤방(尹昉)이 아뢰기를,

"사람들이 있은 다음에야 호(胡)를 막을 수 있다는 하교는 매우 옳습니다. 지금 북도에 사람이 없으니 변장들의 수탈하는 폐단을 막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육진(六鎭) 중 한 곳에 문관을 차견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고, 신잡은 아뢰기를,

"북쪽 지방은 매우 추운데다 면화도 생산되지 않으니, 이번에 낙폭지(落幅紙)를 전량 내려 보내 군사를 교련할 때 상품으로 준다면 변방 사람이 반드시 기뻐할 것입니다. 본도의 내금위(內禁衛)와 정로위(定虜衛)의 갑사(甲士)는 평소에 녹봉이 있었으니 지금도 그 규정에 따라 주고 취재(取才)할 때 포 쏘는 한 가지 기예를 추가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무사는 부득이 배양한 다음에 성재를 기대할 수 있는데 배양하고자 한다면 상벌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쇄환하는 일은 더욱 절박합니다. 변신(邊臣)이 민망하고 박절한 상황을 눈으로 보고 급히 치계하면, 해사(該司)에서는 문서가 왕복하는 사이에 걸핏하면 시일이 경과되어 3∼4년 뒤에는 끝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마니, 조정에서 각별히 거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의 말이 옳다. 삼수(三水)·갑산(甲山)은 북도 중에서도 더욱 외로운 곳인데 노추(老酋)가 있는 곳이 멀지 않다. 혹시 우리 나라에서 사로잡혀간 자가 길을 일러주어 함흥(咸興)으로 나온다면 이 노토(老土)는 기타 호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니 어찌할 것인가?"

하자, 신잡이 아뢰기를,

"강계(江界)노토가 있는 곳에서 20일정(日程)이나 지름길로 함흥으로 오면 그 형세가 더 쉽게 올 듯하므로 그곳에 왕래하는 사람들이 모두 우려하고 있습니다. 삼수·갑산은 살아갈 길이 전혀 없어 백성들이 생활을 즐길 마음이 없으니, 혹시 사변이 생긴다면 크게 두렵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은 북도에 가 보았는가?"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한 집안 사람이 다 그곳에 왕래하였기 때문에 그곳의 형세를 익히 들었습니다. 강계에서부터 삼수·갑산까지는 5일정이며 노추가 있는 곳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대체로 거리가 먼 듯합니다. 노추가 만약 큰 뜻이 있다면 관서(關西)로 나오지 어찌 북도로 나오겠습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비록 그렇더라도 그곳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오직 소소한 적들이 돌발하면 막아내지 못할까 염려될 뿐입니다. 소신은 지금 멀리 떠나고 나이도 60세가 넘었으니 다시 천안(天顔)을 뵐 날이 있을지 어찌 장담하겠습니까. 가슴 속에 있는 말을 진달하고자 합니다. 국가의 절박한 근심은 비록 남북 변방에 있기는 하나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인심입니다. 이몽학(李夢鶴)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사대부는 모든 국란에 죽을 마음이 있었으나 시정배(市井輩)들은 태연하였으니 이 일이 두렵습니다. 경외(京外)의 인심을 보전하고 합치는 일을 유념하소서. 만약 인심을 잃는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구중궁궐 깊이 계시니 여염 사이의 일을 무슨 수로 들으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나라는 땅이 좁아 별로 인재가 없으니 한 차례 과거의 시취(試取)로 과연 몇 사람이나 얻을 수 있겠습니까. 조정이 한번 잘못된 뒤로 피차간에 서로 풍파의 환난이 있었으니, 그 사이에 한두 사람은 용서할 수 없더라도 간혹 애석한 인재가 있었는데 일시에 다 버렸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모자라는 때를 당하여 이들을 혹 수령에 보임한다면 반드시 무식배들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군신의 의리는 노성(老成)한 신하가 그 누구보다 깊은데, 배척을 당한 사람이 모두 죽어갈 나이가 되었으니 소방(疏放)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심을 위안시키는 근본이 다 이에 있으니, 조정에서는 힘써 화평을 위주로 하고 인재를 버리지 않으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의 말이 좋다. 누구를 가리켜 한 말인지 바른대로 말하라."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지척에 계신 천위(天威) 앞에서 감히 숨길 것이 있겠습니까. 지난날 정적(鄭賊)036) 사건 당시 일이 자꾸 만연되는 조짐이 있었기 때문에 상께서 만연시키지 말라는 하교가 계시어 이로 인하여 살아난 자가 많았습니다. 오늘날의 일로 말하면 유성룡(柳成龍)이 그르면 유성룡만 문책하면 될 것이고, 김신국(金藎國)남이공(南以恭)이 그르면 김신국·남이공만 문책하면 될 것이며, 홍여순(洪汝諄)이산해(李山海)가 그르면 홍여순·이산해만 문책하면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한계로 따져볼 때 나이 젊은 아까운 인재가 모두 폐기되어 신은 전부터 한탄하였습니다. 이광(李洸)이 만약 그 당시에 죽었다면 말할 것 없으나 쓸 만한 재주가 있는데도 그 자만 쓰이지 못하였으니 매우 애석합니다. 황정욱(黃廷彧)의 일은 신의 생각에 그렇지 않다고 보는데 그 간의 잡설을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성명(聖明)의 세상에 훈구 대신(勳舊大臣)들이 오랫동안 죄망에 걸려 있으니 매우 미안합니다. 소신의 소견이 무엇이 긴절하겠습니까. 오직 세상에 물의만 일으킬 것이나 살아서 돌아올 것을 기약할 수 없으므로 마음 속에 지닌 생각을 전부 진달하는 것입니다.

도성에는 살아갈 길이 있은 뒤에야 백성이 모이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중국군에게 시달려 들어오지 않았으나 이제는 그렇지도 않은데 사대부들까지 모두 하향(下鄕)할 생각을 하니, 민원을 없애는 일이 가장 급선무입니다. 순화군(順和君)수원(水原)으로 내려갈 때, 신이 비변사에 말하기를 ‘상심(喪心)한 사람을 혹시 외방에 내놓으면 외방의 인심이 극히 사나우므로 뜻밖의 변고가 생길까 염려된다.’ 하니, 그때 영상이 ‘임금이 애정을 희생하고 법을 보이는데 신자가 어찌 감히 다른 말을 하겠느냐.’ 하였습니다. 요즘 순화군의 일을 볼 때 예측하지 못할 변고가 있을까 염려되는데 만약 그렇게 되면 수원의 백성은 전부 살해될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서울로 돌아오게 하고 싶은가?"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만약 도성에다 담장을 높이 쌓아 엄중히 방비하게 하고 수시로 중사(中使)를 보내 부드럽게 타이르고 가르치면 마음을 위로해 줄 길이 있을 것이니, 그 자신의 안전을 보전할 뿐 아니라 수원의 백성도 살해를 모면할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서울로 돌아오면 조용히 살 수 있겠는가?"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소신이 이른바 인심이 두렵다는 말을 깊이 유의하소서."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은 멀리 떠나는 이 마당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말하라. 그 말을 쓰고 안쓰고는 내가 헤아려 하겠다."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신이 전번에 좌상(左相)과 언급한 일인데, 선조(先朝) 인묘(仁廟)께서 동궁으로 계시면서 진법(陣法)을 익힐 때는 군복, 예법을 익힐 때는 예복을 입고 항상 백관 앞에서 부왕을 따라 참여하셨고 경연에까지도 입시(入侍)하여 경연 좌석에서의 말을 참여하여 들으셨다고 합니다. 전번에 시강관이 그 수효가 너무 많고 강습에 전념하지 않는다고 상께서 전교하셨으니, 왕세자를 간절히 보양하시는 뜻이 어찌 한량이 있겠습니까. 선조의 고사에 따라 왕세자께서 경연에 입시하신다면 다행하기 그지없겠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경의 뜻인가, 외정(外廷)의 뜻인가?"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윤방(尹昉)도 여기 있습니다마는 신자의 뜻이 어느 누가 그렇지 않겠습니까. 신자가 군부를 볼 때 값진 보물처럼 여기니 왕세자가 군국(軍國)의 모책을 참여하여 들으시면 그만한 다행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윤방은 아뢰기를,

"경연을 열자고 여쭙고 싶었으나 상께서 침구(欽灸) 치료를 받는다는 명이 계셨고 또 전교가 있을 때까지 기다린 뒤에 하라고 하셨으므로 아직은 정지하고 있습니다마는, 혹자는 취품하는 것이 옳다고 하니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왕세자께서 경연에 따라 참여하시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호인(胡人)에게는, 중국 장수가 많이와 있으니 너희들이 상경할 수 없다는 뜻으로 말을 만들어 말해 주면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의 소소한 동정을 모두 알 것이다. 그러나 무슨 일에나 어법(語法)이 있는 법인데 이는 어법을 잘 구사하여야 할 것이다. 대체로 우리 나라의 살림이 잔파(殘破)되어 접대할 수 없다는 것을 필시 다 알 것이다. 내가 계미년037) 에 그들을 보니 마음이 극히 간사하였다. 호인뿐만 아니라 북방 사람도 우직(愚直)한 듯하였으나 간사한 일이 많았다."

하니, 윤방이 아뢰기를,

"번호를 상경하지 못하게 하면 길주(吉州)에서 연향을 베푸는 것은 온당치 못하고 함흥부(咸興府)에서 하는 것은 괜찮을 듯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함흥에서 연향을 베풀면 사체에 맞을 뿐 아니라 뜻밖에 간사한 짓을 할 폐단을 감사(監司)가 또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2책 134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204면
  • 【분류】외교-야(野) /
  • [註 035] 계미년 : 1583 선조 16년.
  • [註 036] 정적(鄭賊) : 정여립(鄭汝立)을 말함.
  • [註 037] 계미년 : 1583 선조 16년.

원문

○辰時, 上御別殿, 咸鏡道觀察使申磼引見。 上曰: "本道虛踈, 虜亦橫行, 卿可盡心。" 申磼曰: "庸劣小臣, 忝冒本兵十餘朔, 而尙無所爲, 當此北關多憂, 猥受重任, 罔知攸措, 徒切悶迫。" 上曰: "見前監司乎?" 曰: "昨夜往見, 則尹承勳曰: ‘北道之事, 不至如南方之可虞, 而虜若非大擧入寇, 則可以防之。 其處土兵, 善爲培養, 則可使直進, 而但北道, 攻藩胡之後, 未足以震威, 又無資食之路, 故人數減縮, 或移避海邊, 此可爲悶云。" 上曰: "虜勢如何云?" 曰: "穩城部落中, 社長部落, 甚爲恭順, 前者變時, 我 國人民, 投入中, 多殺我國之人, 則極加嗔責曰: ‘在我地, 不可殺’ 皆禁止之。 此其智似優矣。 老土有此部落, 則不得擧事, 故先伐之矣。" 上曰: "老土之勢, 如何云?" 曰: "焚蕩之後, 頗爲摧挫云矣。 癸未年, 申砬征討時, 申尙節, 以訓戎全城之功, 只授禮賓正, 而內禁衛祿俸, 則以移轉米百餘石計給, 故皆有興心而樂赴, 今無祿俸, 以慰將士, 不得已爲加設職矣。 亂後苟且之政, 自上一切革罷, 故加設之職, 今不得磨鍊。 臣今入歸, 則必將處處號訴, 以不爲磨鍊答之, 似爲不可, 而他無可施之路, 不可不變通, 以爲論賞矣。" 上曰: "大槪有人, 然後凡事可爲。 非但亂後, 平時亦然。 有北道空虛之說, 使勿如是則可也。" 曰: "有樂地, 然後可使安接。 平日則有祿俸, 故皆賴此資生, 今無祿俸, 生理頓絶, 而邊將侵漁, 亦安保其必無也?" 上曰: "出去之民, 不可縛以禁之, 然撫恤安集, 在於邊將守令, 黜陟之權, 在於監司, 卿可自爲之。 推刷之法甚嚴, 而今皆解弛, 而兩界人物, 不可使之移徙, 又不可許爲贖身。 設使贖身, 仍在其處可矣。 藩胡, 不可徒使畏我之威。 今則不得上京, 渠不能無怨之之心。 亦施撫恤之意可也。" 曰: "平時藩胡上京, 則非但宴享, 有給冠服之例, 而壬辰之後, 久廢接待之道。 今宜急先擧行, 故備邊司方議之, 或以爲吉州以下, 有館舍處可爲, 或欲於咸興府爲之, 故臣問於尹承勳, 則曰: ‘咸興, 大廳四十餘間造成, 然後可爲。’ 不得已吉州爲之可也。" 上曰: "使邊將、守令, 不得泛濫。 出去人刷還、藩胡撫恤等事, 予已言之, 制, 非火器難矣。 北道砲手, 另加敎訓。" 曰: "前日用百字筒, 則胡馬辟易, 虜人震恐。 威之具, 莫如放砲。 敎訓之事, 所當急先。 李元翼, 於關西, 專意敎鍊, 一月之內, 幾爲成材。 但火藥得之甚難。 焰硝煮取, 雖有朝廷命令, 而其功役倍多, 不如貿易於唐人之便利也。 北道有産銀之處, 可使貿易, 而此路一開, 則恐有濫觴之弊, 故禁不爲之矣。 尹承勳知直貿於上國, 而送銀兩于備邊司者, 慮有雜言, 陋及其身也。 備邊司, 迄不貿送, 砲手何由得成林乎? 李世曾上土時, 女人玉盞, 亦爲敎訓, 十放八九中。 其時御史李覮狀啓, 以成材免賤。 邊上女人, 皆可守城放砲, 自朝庭, 別樣處置。 差官採銀, 自本道焰硝火藥, 多數貿來, 以爲戰用之具, 甚爲宜當。 右副承旨尹昉曰: "有人然後防之敎, 極爲允當。 今北道無人, 而邊將侵漁之弊, 不可不杜。 六鎭一處, 差遣文官宜當。" 曰: "北地寒苦, 又不産綿絮。 今次落幅紙, 無遺下送, 敎鍊之時, 以爲賞格, 則邊土之人, 必爲嘉悅矣。 本道內禁衛、定虜衛甲士, 平時則有(祿捧)〔祿俸〕 , 今亦依此規, 取才時, 添入放砲一技爲當。 武士不得已培養, 然後可期成材, 而欲爲培養, 則在於賞罰之分明而已。 刷還一事, 尤爲急切。 邊臣目見悶迫之狀, 急急馳啓, 則該司文移往復之間, 動經時月, 三四年後, 竟歸無用之地。 朝庭另加擧行宜當。" 上曰: "卿言宜矣。 三水甲山, 尤甚孤危, 而老酋所在處不遠, 幸有我國被擄者指路, 自咸興出來, 則此非老土之比也, 爲之奈何?" 曰: "江界老酋所在, 二十日程, 而由邪逕到咸興, 則其勢似易, 故其處往來人, 皆以爲憂矣。 三水甲山, 生理頓絶, 民無樂業之心, 脫有警急, 則大可畏也。" 上曰: "卿見北道乎?" 曰: "一家之人, 皆爲往來, 故其間形勢, 聞之熟矣。 自江界三水甲山, 五日之程, 而老酋所在, 雖不能的知, 大槪似遠。 老酋若有大志, 則定出於關西, 何必於北道也?" 上曰: "雖如是, 此處則不可不慮。" 曰: "但憂零賊猝發, 不可抵當也。 小臣今當遠去, 年亦六十餘, 再見天顔, 何可必也? 欲陳所懷, 國家切迫之憂, 雖在於南北, 最可畏者, 人心也。 李夢鶴時, 士大夫皆有死心, 而市井恬然。 此事可懼。 京外人心保合之事, 願留聖念。 若失人心, 則何事可爲? 深居九重, 閭閻間事, 何由得聞? 我國褊小, 有何人才, 而一科擧試取, 能得幾許? 朝廷一誤之後, 彼此有風波之患。 其間一二人, 雖不可容貸, 或有可惜之才, 而一時皆棄。 當此乏人之時, 或補守令, 則必勝於無識之輩。 君臣之義, 最重於老成, 而被斥之人, 皆當垂死之年, 不可不疏放也。 慰悅人心之本, 皆在於此, 而朝廷之上, 務爲和平, 不棄人才則幸甚。" 上曰: "卿言好矣, 指誰而言也? 直言所懷。" 曰: "咫尺天威, 敢有隱乎? 前者賊之時, 多有蔓及之漸, 故自上有勿爲蔓及之敎。 緣此得生者多矣。 以今日之事言之, 以柳成龍爲非, 則只責成龍可也, 以金藎國南以恭爲非, 則只責可也, 以洪汝諄李山海爲非, 則只責可也。 以分數計之, 則年少可惜之人才, 皆爲廢棄, 臣嘗嗟惜。 李洸, 若其時死則已矣, 有可用之才, 而獨不見用, 甚可惜也。 黃廷彧事, 則臣意以爲不然。 其間雜言, 胡可信也? 聖明之下, 大臣勳舊, 久在罪戾之中, 甚爲未安。 小臣所見, 有何關乎? 徒爲行世之災, 而生還不可期, 故畢達所懷。 都城有生理, 然後百姓可集。 頃困於唐兵, 不得入來, 而今則至如士大夫, 皆有一鄕之意。 除民怨一事, 最爲急務也。 順和君下去水原之時, 臣言於備邊司曰: ‘喪心之人, 或暴於外方, 則外方人心極頑, 慮有意外之變。’ 其時領相曰: ‘人君割愛示法。 臣子何敢更有說乎?’ 近見順和之事, 恐有不測之變。 若然, 則水原之民, 盡劉矣。" 上曰: "欲使還京乎?" 曰: "若於都城, 高築墻屋, 使之嚴防, 時遣中使, 諄諄敎誨, 則庶有慰心之路。 非但保其身, 水原之民, 亦免盡劉矣。" 上曰: "還京, 則其可穩居乎?" 曰: "小臣所謂, 人心可畏之言, 更加留意。" 上曰: "卿當遠去, 如有所欲言, 則盡言可矣, 用否, 在予酙酌。" 曰: "臣頃與左相, 言及先朝, 仁廟在東宮時, 習陣則戎服, 禮行則禮服, 每於百官頭隨參, 至於經筵, 亦入侍, 與聞 筵中之語云。 頃者侍講之官, 其數太多, 而不專講習。 自上傳敎惓惓, 其所保養之意, 何可量也? 依先朝故事, 王世子入侍經筵, 則不勝幸甚。" 上曰: "卿之意乎? 外廷意乎?" 曰: "尹昉亦在, 此臣子之意, 孰不然乎? 臣子見君父時, 如得重寶。 王世子參聽軍國謀猷, 則何幸如之?" 曰: "欲稟經筵, 而自上有鍼灸之命, 且更待傳敎後爲之, 故今姑停矣, 或以爲取稟可矣。 何以爲之? 王世子隨參經筵, 亦盛事也。 胡人處, 天將多來, 不可上京之意, 措辭言之, 則恐無不知之理矣。" 上曰: "小小動靜, 無不知之, 然各有語法。 此乃語法之言也。 大槪我國殘破, 不可接待之事, 必皆知之, 予於癸未年見之, 其心極奸詐。 非但也, 北方之人, 雖似愚直, 亦多奸詐之事矣。" 曰: "藩胡旣不得上京, 則吉州設宴, 似爲未穩。 咸興府, 則似可矣。" 上曰: "設宴於咸興, 則非但得體, 意外奸濫之弊, 監司亦可防閑矣。"

  • 【태백산사고본】 82책 134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204면
  • 【분류】외교-야(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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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34권, 선조 34년 2월 24일 계사 7/8 기사 / 1601년 명 만력(萬曆) 29년

함경 관찰사 신잡을 인견하는 자리에 여진족 방어책 등을 상의하다

국역

전시(辰時)에 상이 별전(別殿)에 나아가 함경도 관찰사 신잡(申磼)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본도(本道)가 허술하고 노(虜) 또한 횡행하니 경은 성심을 다하라."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용렬한 소신이 병조에 있은 지 10여 개월인데도 한 일이 없었는데, 이처럼 북관(北關)에 걱정이 많은 때 외람되이 중책을 받으니 어찌해야 할지 몰라 민망하고 박절할 뿐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전 감사(監司)를 만나 보았는가?"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어젯밤에 가서 보니, 윤승훈(尹承勳)이 말하기를 ‘북도의 일은 남쪽과 같이 우려되는 정도는 아니어서 노가 대대적으로 침입만 하지 않는다면 막아낼 수 있다. 그곳의 토병(土兵)을 잘 배양하면 전장에서 돌진하게 할 수 있으나 다만 북도가 번호(藩胡)를 공격한 뒤로 충분히 위엄을 떨치지 못하였고, 또 먹고 살아갈 길이 없기 때문에 사람 수효가 줄어들고 있는데 혹은 해변으로 옮겨가기도 하니, 이 점이 걱정된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노의 형세는 어떻다고 하던가?"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온성(穩城) 각 부락 가운데 사장 부락(社長部落)이 매우 공손한데, 지난날 왜란 때 우리 나라 사람들이 왜적에게 투항하여 우리 나라 사람을 많이 죽이자 심하게 꾸짖기를 ‘우리 지역에서는 죽일 수 없다.’ 하고 모두가 금지시켰으니, 그들의 지혜가 우수한 듯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노토(老土)가 생각할 때, 이 부락이 있으면 거사할 수 없으므로 먼저 그들을 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노토의 형세는 어떻다고 하던가?"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우리가 분탕한 뒤로 약간 기세가 꺾였다고 하였습니다. 계미년035)신립(申砬)이 토벌할 때, 군사를 훈련시키고 성을 보전한 공으로 신상절(申尙節)에게 단지 예빈시 정(禮賓寺正)을 제수하였으나 내금위(內禁衛)의 녹봉(祿俸)으로 쌀 1백여 석을 운반하여 수효를 헤아려 지급하였기 때문에 모두 흥기하여 기꺼이 싸움에 임하였습니다. 지금은 장사(將士)를 위로할 녹봉이 없어 부득이 관직을 더 설치하여야겠는데 변란 이후에 구차한 정사(政事)는 상께서 일체 혁파하셨으므로 더 설치하는 관직을 이제 마련할 수가 없습니다. 신이 이제 들어가면 필시 곳곳에서 호소할 것인데 그에 대하여 마련하지 못한다고 대답하는 것은 안 될 듯하지만 달리 혜택을 실시할 만한 방도가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변통하여 논상을 해야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체로 사람들이 있은 다음에 모든 일을 할 수가 있으니, 변란 때만이 아니라 평시에도 그렇다. 북도가 텅 비었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한다면 좋겠다."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즐겁게 살 땅이 있은 다음에야 그들을 안주시킬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녹봉이 있었기 때문에 모두 이에 힘입어 살아갈 수 있었으나, 이제는 녹봉이 없어 살 길이 끊기고 변장(邊將)의 수탈도 어찌 반드시 없다고 보장하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나가는 백성을 묶어두고 금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을 보살피고 안주시키는 책임은 변장과 수령에게 있고 변장과 수령을 진퇴하는 권한은 감사에게 있으니, 경은 책임지고 잘 하길 바란다. 추쇄(推刷)의 법이 매우 엄중하였는데 이제 다 해이해졌다. 그러나 양계(兩界)의 인물을 다른 도로 이사하지 못하게 해야 하고, 또 속신(贖身)을 허용해서도 안 된다. 설사 속신을 하더라도 그대로 그곳에 있게 해야 한다. 번호(藩胡)에게는 우리의 위세를 두려워하게만 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그들이 상경(上京)하지 못하므로 이 점을 원망하는 마음이 없지 않을 것이니, 또한 보살펴 주는 뜻을 베풀도록 하라."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평소에는 번호가 상경하면 연향(宴享)만 베푸는 것이 아니라 관복(冠服)을 주는 사례도 있었으나 임진년 이후 오랫동안 접대하는 일을 폐하였습니다. 이제 급히 우선 거행해야겠으므로 비변사가 지금 논의중인데, 혹자는 길주(吉州) 이하 관사(館舍)가 있는 곳에서만 할 수 있다 하고, 혹자는 함흥부(咸興府)에서 하려고 하기 때문에, 신이 윤승훈(尹承勳)에게 물었더니 ‘함흥은 대청(大廳) 40여 간을 조성한 다음에나 할 수 있으니 부득이 길주에서 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변장과 수령으로 하여금 탐욕을 부리지 못하게 하고 다른 도로 나간 사람을 쇄환하며 번호를 보살피는 등의 일은 내가 이미 말하였고, 호(胡)를 제압하는 데에 화기(火器)가 아니면 어려우니, 북도의 포수를 특별히 교훈하라."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전일에 백자통(百字筒)을 쓰자 호마(胡馬)가 놀라서 물러나고 노인(虜人)이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 호(胡)를 위협하는 무기는 포를 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으니, 이것을 가르치는 일을 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이원익(李元翼)이 관서(關西)에서 교련에 전념하여 1개월 안에 거의 성재(成材)가 되었습니다. 다만 화약을 얻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염초(焰硝)를 구워 만들어 쓰라는 조정의 명령이 있기는 하나 그 공역이 매우 많아 차라리 중국인에게 무역하는 것만 못합니다. 북도에는 은(銀)이 나는 곳이 있어 무역을 할 수 있으나 그 길이 한번 열리면 장래에 폐단이 있을까 염려되기 때문에 금지하고 하지 않습니다. 윤승훈이 중국에 직무역할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비변사에 은을 보냈던 것은 잡음이 자신에게 미칠까 염려해서였는데 비변사가 아직까지 무역해 보내지 않고 있으니, 포수가 무슨 수로 성재가 되겠습니까. 이세증(李世曾)이 일찍이 상토(上土)에 있을 때 여인 옥잔(玉盞)에게도 활쏘기를 가르쳐 10번 쏘아 8∼9번을 맞히니, 그 당시 어사(御史) 이영(李覮)이 장계하기를 ‘성재한 자는 면천(免賤)해 주는 것이 관례인데, 변방의 여인들이 모두 성을 지키고 포를 쏠 수 있으니 조정에서 특별히 처치하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관원을 보내 은을 캐 본도에서 직접 염초와 화약을 많이 사와 전쟁 물자로 쓰게 하는 것이 매우 마땅하겠습니다."

하였다. 우부승지 윤방(尹昉)이 아뢰기를,

"사람들이 있은 다음에야 호(胡)를 막을 수 있다는 하교는 매우 옳습니다. 지금 북도에 사람이 없으니 변장들의 수탈하는 폐단을 막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육진(六鎭) 중 한 곳에 문관을 차견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고, 신잡은 아뢰기를,

"북쪽 지방은 매우 추운데다 면화도 생산되지 않으니, 이번에 낙폭지(落幅紙)를 전량 내려 보내 군사를 교련할 때 상품으로 준다면 변방 사람이 반드시 기뻐할 것입니다. 본도의 내금위(內禁衛)와 정로위(定虜衛)의 갑사(甲士)는 평소에 녹봉이 있었으니 지금도 그 규정에 따라 주고 취재(取才)할 때 포 쏘는 한 가지 기예를 추가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무사는 부득이 배양한 다음에 성재를 기대할 수 있는데 배양하고자 한다면 상벌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쇄환하는 일은 더욱 절박합니다. 변신(邊臣)이 민망하고 박절한 상황을 눈으로 보고 급히 치계하면, 해사(該司)에서는 문서가 왕복하는 사이에 걸핏하면 시일이 경과되어 3∼4년 뒤에는 끝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마니, 조정에서 각별히 거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의 말이 옳다. 삼수(三水)·갑산(甲山)은 북도 중에서도 더욱 외로운 곳인데 노추(老酋)가 있는 곳이 멀지 않다. 혹시 우리 나라에서 사로잡혀간 자가 길을 일러주어 함흥(咸興)으로 나온다면 이 노토(老土)는 기타 호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니 어찌할 것인가?"

하자, 신잡이 아뢰기를,

"강계(江界)노토가 있는 곳에서 20일정(日程)이나 지름길로 함흥으로 오면 그 형세가 더 쉽게 올 듯하므로 그곳에 왕래하는 사람들이 모두 우려하고 있습니다. 삼수·갑산은 살아갈 길이 전혀 없어 백성들이 생활을 즐길 마음이 없으니, 혹시 사변이 생긴다면 크게 두렵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은 북도에 가 보았는가?"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한 집안 사람이 다 그곳에 왕래하였기 때문에 그곳의 형세를 익히 들었습니다. 강계에서부터 삼수·갑산까지는 5일정이며 노추가 있는 곳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대체로 거리가 먼 듯합니다. 노추가 만약 큰 뜻이 있다면 관서(關西)로 나오지 어찌 북도로 나오겠습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비록 그렇더라도 그곳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오직 소소한 적들이 돌발하면 막아내지 못할까 염려될 뿐입니다. 소신은 지금 멀리 떠나고 나이도 60세가 넘었으니 다시 천안(天顔)을 뵐 날이 있을지 어찌 장담하겠습니까. 가슴 속에 있는 말을 진달하고자 합니다. 국가의 절박한 근심은 비록 남북 변방에 있기는 하나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인심입니다. 이몽학(李夢鶴)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사대부는 모든 국란에 죽을 마음이 있었으나 시정배(市井輩)들은 태연하였으니 이 일이 두렵습니다. 경외(京外)의 인심을 보전하고 합치는 일을 유념하소서. 만약 인심을 잃는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구중궁궐 깊이 계시니 여염 사이의 일을 무슨 수로 들으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나라는 땅이 좁아 별로 인재가 없으니 한 차례 과거의 시취(試取)로 과연 몇 사람이나 얻을 수 있겠습니까. 조정이 한번 잘못된 뒤로 피차간에 서로 풍파의 환난이 있었으니, 그 사이에 한두 사람은 용서할 수 없더라도 간혹 애석한 인재가 있었는데 일시에 다 버렸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모자라는 때를 당하여 이들을 혹 수령에 보임한다면 반드시 무식배들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군신의 의리는 노성(老成)한 신하가 그 누구보다 깊은데, 배척을 당한 사람이 모두 죽어갈 나이가 되었으니 소방(疏放)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심을 위안시키는 근본이 다 이에 있으니, 조정에서는 힘써 화평을 위주로 하고 인재를 버리지 않으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의 말이 좋다. 누구를 가리켜 한 말인지 바른대로 말하라."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지척에 계신 천위(天威) 앞에서 감히 숨길 것이 있겠습니까. 지난날 정적(鄭賊)036) 사건 당시 일이 자꾸 만연되는 조짐이 있었기 때문에 상께서 만연시키지 말라는 하교가 계시어 이로 인하여 살아난 자가 많았습니다. 오늘날의 일로 말하면 유성룡(柳成龍)이 그르면 유성룡만 문책하면 될 것이고, 김신국(金藎國)남이공(南以恭)이 그르면 김신국·남이공만 문책하면 될 것이며, 홍여순(洪汝諄)이산해(李山海)가 그르면 홍여순·이산해만 문책하면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한계로 따져볼 때 나이 젊은 아까운 인재가 모두 폐기되어 신은 전부터 한탄하였습니다. 이광(李洸)이 만약 그 당시에 죽었다면 말할 것 없으나 쓸 만한 재주가 있는데도 그 자만 쓰이지 못하였으니 매우 애석합니다. 황정욱(黃廷彧)의 일은 신의 생각에 그렇지 않다고 보는데 그 간의 잡설을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성명(聖明)의 세상에 훈구 대신(勳舊大臣)들이 오랫동안 죄망에 걸려 있으니 매우 미안합니다. 소신의 소견이 무엇이 긴절하겠습니까. 오직 세상에 물의만 일으킬 것이나 살아서 돌아올 것을 기약할 수 없으므로 마음 속에 지닌 생각을 전부 진달하는 것입니다.

도성에는 살아갈 길이 있은 뒤에야 백성이 모이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중국군에게 시달려 들어오지 않았으나 이제는 그렇지도 않은데 사대부들까지 모두 하향(下鄕)할 생각을 하니, 민원을 없애는 일이 가장 급선무입니다. 순화군(順和君)수원(水原)으로 내려갈 때, 신이 비변사에 말하기를 ‘상심(喪心)한 사람을 혹시 외방에 내놓으면 외방의 인심이 극히 사나우므로 뜻밖의 변고가 생길까 염려된다.’ 하니, 그때 영상이 ‘임금이 애정을 희생하고 법을 보이는데 신자가 어찌 감히 다른 말을 하겠느냐.’ 하였습니다. 요즘 순화군의 일을 볼 때 예측하지 못할 변고가 있을까 염려되는데 만약 그렇게 되면 수원의 백성은 전부 살해될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서울로 돌아오게 하고 싶은가?"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만약 도성에다 담장을 높이 쌓아 엄중히 방비하게 하고 수시로 중사(中使)를 보내 부드럽게 타이르고 가르치면 마음을 위로해 줄 길이 있을 것이니, 그 자신의 안전을 보전할 뿐 아니라 수원의 백성도 살해를 모면할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서울로 돌아오면 조용히 살 수 있겠는가?"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소신이 이른바 인심이 두렵다는 말을 깊이 유의하소서."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은 멀리 떠나는 이 마당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말하라. 그 말을 쓰고 안쓰고는 내가 헤아려 하겠다."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신이 전번에 좌상(左相)과 언급한 일인데, 선조(先朝) 인묘(仁廟)께서 동궁으로 계시면서 진법(陣法)을 익힐 때는 군복, 예법을 익힐 때는 예복을 입고 항상 백관 앞에서 부왕을 따라 참여하셨고 경연에까지도 입시(入侍)하여 경연 좌석에서의 말을 참여하여 들으셨다고 합니다. 전번에 시강관이 그 수효가 너무 많고 강습에 전념하지 않는다고 상께서 전교하셨으니, 왕세자를 간절히 보양하시는 뜻이 어찌 한량이 있겠습니까. 선조의 고사에 따라 왕세자께서 경연에 입시하신다면 다행하기 그지없겠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경의 뜻인가, 외정(外廷)의 뜻인가?"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윤방(尹昉)도 여기 있습니다마는 신자의 뜻이 어느 누가 그렇지 않겠습니까. 신자가 군부를 볼 때 값진 보물처럼 여기니 왕세자가 군국(軍國)의 모책을 참여하여 들으시면 그만한 다행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윤방은 아뢰기를,

"경연을 열자고 여쭙고 싶었으나 상께서 침구(欽灸) 치료를 받는다는 명이 계셨고 또 전교가 있을 때까지 기다린 뒤에 하라고 하셨으므로 아직은 정지하고 있습니다마는, 혹자는 취품하는 것이 옳다고 하니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왕세자께서 경연에 따라 참여하시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호인(胡人)에게는, 중국 장수가 많이와 있으니 너희들이 상경할 수 없다는 뜻으로 말을 만들어 말해 주면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의 소소한 동정을 모두 알 것이다. 그러나 무슨 일에나 어법(語法)이 있는 법인데 이는 어법을 잘 구사하여야 할 것이다. 대체로 우리 나라의 살림이 잔파(殘破)되어 접대할 수 없다는 것을 필시 다 알 것이다. 내가 계미년037) 에 그들을 보니 마음이 극히 간사하였다. 호인뿐만 아니라 북방 사람도 우직(愚直)한 듯하였으나 간사한 일이 많았다."

하니, 윤방이 아뢰기를,

"번호를 상경하지 못하게 하면 길주(吉州)에서 연향을 베푸는 것은 온당치 못하고 함흥부(咸興府)에서 하는 것은 괜찮을 듯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함흥에서 연향을 베풀면 사체에 맞을 뿐 아니라 뜻밖에 간사한 짓을 할 폐단을 감사(監司)가 또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2책 134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204면
  • 【분류】외교-야(野) /
  • [註 035] 계미년 : 1583 선조 16년.
  • [註 036] 정적(鄭賊) : 정여립(鄭汝立)을 말함.
  • [註 037] 계미년 : 1583 선조 16년.

원문

○辰時, 上御別殿, 咸鏡道觀察使申磼引見。 上曰: "本道虛踈, 虜亦橫行, 卿可盡心。" 申磼曰: "庸劣小臣, 忝冒本兵十餘朔, 而尙無所爲, 當此北關多憂, 猥受重任, 罔知攸措, 徒切悶迫。" 上曰: "見前監司乎?" 曰: "昨夜往見, 則尹承勳曰: ‘北道之事, 不至如南方之可虞, 而虜若非大擧入寇, 則可以防之。 其處土兵, 善爲培養, 則可使直進, 而但北道, 攻藩胡之後, 未足以震威, 又無資食之路, 故人數減縮, 或移避海邊, 此可爲悶云。" 上曰: "虜勢如何云?" 曰: "穩城部落中, 社長部落, 甚爲恭順, 前者變時, 我 國人民, 投入中, 多殺我國之人, 則極加嗔責曰: ‘在我地, 不可殺’ 皆禁止之。 此其智似優矣。 老土有此部落, 則不得擧事, 故先伐之矣。" 上曰: "老土之勢, 如何云?" 曰: "焚蕩之後, 頗爲摧挫云矣。 癸未年, 申砬征討時, 申尙節, 以訓戎全城之功, 只授禮賓正, 而內禁衛祿俸, 則以移轉米百餘石計給, 故皆有興心而樂赴, 今無祿俸, 以慰將士, 不得已爲加設職矣。 亂後苟且之政, 自上一切革罷, 故加設之職, 今不得磨鍊。 臣今入歸, 則必將處處號訴, 以不爲磨鍊答之, 似爲不可, 而他無可施之路, 不可不變通, 以爲論賞矣。" 上曰: "大槪有人, 然後凡事可爲。 非但亂後, 平時亦然。 有北道空虛之說, 使勿如是則可也。" 曰: "有樂地, 然後可使安接。 平日則有祿俸, 故皆賴此資生, 今無祿俸, 生理頓絶, 而邊將侵漁, 亦安保其必無也?" 上曰: "出去之民, 不可縛以禁之, 然撫恤安集, 在於邊將守令, 黜陟之權, 在於監司, 卿可自爲之。 推刷之法甚嚴, 而今皆解弛, 而兩界人物, 不可使之移徙, 又不可許爲贖身。 設使贖身, 仍在其處可矣。 藩胡, 不可徒使畏我之威。 今則不得上京, 渠不能無怨之之心。 亦施撫恤之意可也。" 曰: "平時藩胡上京, 則非但宴享, 有給冠服之例, 而壬辰之後, 久廢接待之道。 今宜急先擧行, 故備邊司方議之, 或以爲吉州以下, 有館舍處可爲, 或欲於咸興府爲之, 故臣問於尹承勳, 則曰: ‘咸興, 大廳四十餘間造成, 然後可爲。’ 不得已吉州爲之可也。" 上曰: "使邊將、守令, 不得泛濫。 出去人刷還、藩胡撫恤等事, 予已言之, 制, 非火器難矣。 北道砲手, 另加敎訓。" 曰: "前日用百字筒, 則胡馬辟易, 虜人震恐。 威之具, 莫如放砲。 敎訓之事, 所當急先。 李元翼, 於關西, 專意敎鍊, 一月之內, 幾爲成材。 但火藥得之甚難。 焰硝煮取, 雖有朝廷命令, 而其功役倍多, 不如貿易於唐人之便利也。 北道有産銀之處, 可使貿易, 而此路一開, 則恐有濫觴之弊, 故禁不爲之矣。 尹承勳知直貿於上國, 而送銀兩于備邊司者, 慮有雜言, 陋及其身也。 備邊司, 迄不貿送, 砲手何由得成林乎? 李世曾上土時, 女人玉盞, 亦爲敎訓, 十放八九中。 其時御史李覮狀啓, 以成材免賤。 邊上女人, 皆可守城放砲, 自朝庭, 別樣處置。 差官採銀, 自本道焰硝火藥, 多數貿來, 以爲戰用之具, 甚爲宜當。 右副承旨尹昉曰: "有人然後防之敎, 極爲允當。 今北道無人, 而邊將侵漁之弊, 不可不杜。 六鎭一處, 差遣文官宜當。" 曰: "北地寒苦, 又不産綿絮。 今次落幅紙, 無遺下送, 敎鍊之時, 以爲賞格, 則邊土之人, 必爲嘉悅矣。 本道內禁衛、定虜衛甲士, 平時則有(祿捧)〔祿俸〕 , 今亦依此規, 取才時, 添入放砲一技爲當。 武士不得已培養, 然後可期成材, 而欲爲培養, 則在於賞罰之分明而已。 刷還一事, 尤爲急切。 邊臣目見悶迫之狀, 急急馳啓, 則該司文移往復之間, 動經時月, 三四年後, 竟歸無用之地。 朝庭另加擧行宜當。" 上曰: "卿言宜矣。 三水甲山, 尤甚孤危, 而老酋所在處不遠, 幸有我國被擄者指路, 自咸興出來, 則此非老土之比也, 爲之奈何?" 曰: "江界老酋所在, 二十日程, 而由邪逕到咸興, 則其勢似易, 故其處往來人, 皆以爲憂矣。 三水甲山, 生理頓絶, 民無樂業之心, 脫有警急, 則大可畏也。" 上曰: "卿見北道乎?" 曰: "一家之人, 皆爲往來, 故其間形勢, 聞之熟矣。 自江界三水甲山, 五日之程, 而老酋所在, 雖不能的知, 大槪似遠。 老酋若有大志, 則定出於關西, 何必於北道也?" 上曰: "雖如是, 此處則不可不慮。" 曰: "但憂零賊猝發, 不可抵當也。 小臣今當遠去, 年亦六十餘, 再見天顔, 何可必也? 欲陳所懷, 國家切迫之憂, 雖在於南北, 最可畏者, 人心也。 李夢鶴時, 士大夫皆有死心, 而市井恬然。 此事可懼。 京外人心保合之事, 願留聖念。 若失人心, 則何事可爲? 深居九重, 閭閻間事, 何由得聞? 我國褊小, 有何人才, 而一科擧試取, 能得幾許? 朝廷一誤之後, 彼此有風波之患。 其間一二人, 雖不可容貸, 或有可惜之才, 而一時皆棄。 當此乏人之時, 或補守令, 則必勝於無識之輩。 君臣之義, 最重於老成, 而被斥之人, 皆當垂死之年, 不可不疏放也。 慰悅人心之本, 皆在於此, 而朝廷之上, 務爲和平, 不棄人才則幸甚。" 上曰: "卿言好矣, 指誰而言也? 直言所懷。" 曰: "咫尺天威, 敢有隱乎? 前者賊之時, 多有蔓及之漸, 故自上有勿爲蔓及之敎。 緣此得生者多矣。 以今日之事言之, 以柳成龍爲非, 則只責成龍可也, 以金藎國南以恭爲非, 則只責可也, 以洪汝諄李山海爲非, 則只責可也。 以分數計之, 則年少可惜之人才, 皆爲廢棄, 臣嘗嗟惜。 李洸, 若其時死則已矣, 有可用之才, 而獨不見用, 甚可惜也。 黃廷彧事, 則臣意以爲不然。 其間雜言, 胡可信也? 聖明之下, 大臣勳舊, 久在罪戾之中, 甚爲未安。 小臣所見, 有何關乎? 徒爲行世之災, 而生還不可期, 故畢達所懷。 都城有生理, 然後百姓可集。 頃困於唐兵, 不得入來, 而今則至如士大夫, 皆有一鄕之意。 除民怨一事, 最爲急務也。 順和君下去水原之時, 臣言於備邊司曰: ‘喪心之人, 或暴於外方, 則外方人心極頑, 慮有意外之變。’ 其時領相曰: ‘人君割愛示法。 臣子何敢更有說乎?’ 近見順和之事, 恐有不測之變。 若然, 則水原之民, 盡劉矣。" 上曰: "欲使還京乎?" 曰: "若於都城, 高築墻屋, 使之嚴防, 時遣中使, 諄諄敎誨, 則庶有慰心之路。 非但保其身, 水原之民, 亦免盡劉矣。" 上曰: "還京, 則其可穩居乎?" 曰: "小臣所謂, 人心可畏之言, 更加留意。" 上曰: "卿當遠去, 如有所欲言, 則盡言可矣, 用否, 在予酙酌。" 曰: "臣頃與左相, 言及先朝, 仁廟在東宮時, 習陣則戎服, 禮行則禮服, 每於百官頭隨參, 至於經筵, 亦入侍, 與聞 筵中之語云。 頃者侍講之官, 其數太多, 而不專講習。 自上傳敎惓惓, 其所保養之意, 何可量也? 依先朝故事, 王世子入侍經筵, 則不勝幸甚。" 上曰: "卿之意乎? 外廷意乎?" 曰: "尹昉亦在, 此臣子之意, 孰不然乎? 臣子見君父時, 如得重寶。 王世子參聽軍國謀猷, 則何幸如之?" 曰: "欲稟經筵, 而自上有鍼灸之命, 且更待傳敎後爲之, 故今姑停矣, 或以爲取稟可矣。 何以爲之? 王世子隨參經筵, 亦盛事也。 胡人處, 天將多來, 不可上京之意, 措辭言之, 則恐無不知之理矣。" 上曰: "小小動靜, 無不知之, 然各有語法。 此乃語法之言也。 大槪我國殘破, 不可接待之事, 必皆知之, 予於癸未年見之, 其心極奸詐。 非但也, 北方之人, 雖似愚直, 亦多奸詐之事矣。" 曰: "藩胡旣不得上京, 則吉州設宴, 似爲未穩。 咸興府, 則似可矣。" 上曰: "設宴於咸興, 則非但得體, 意外奸濫之弊, 監司亦可防閑矣。"

  • 【태백산사고본】 82책 134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2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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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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