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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132권, 선조 33년 12월 2일 신미 6번째기사 1600년 명 만력(萬曆) 28년

비변사에서 호인과 북도에 대한 위무책을 건의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북로(北虜)가 흔단을 만들어 근심스러운 조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제때에 강구하여 상두(桑土)의 계책255) 을 세우지 않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만약 대병(大兵)을 자주 일으켜 저들의 소굴을 뒤엎어 버리면 당장에는 통쾌하겠지만 우리의 원기(元氣)가 먼저 시들 것이고, 그렇다고 주저하고 고식만을 일삼아 발 등의 불이나 끝다면 후일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근심이 있을 것입니다. 근래 북도(北道)에서 온 자와 변방의 실정을 잘 아는 자들이 대부분 말하기를 ‘북로는 탐욕스럽고 만족할 줄 몰라 이(利)만을 추구할 뿐이니, 이로움을 미끼로 기미할 수는 있어도 의리로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 전일에 호인(胡人)들이 진력하여 명을 따르면서 우리의 변방이 되기를 원했던 것도 반드시 의를 사모하여 귀화(歸化)해 온 것이 아니다. 이는 그들이 상경(上京)하여 하사품을 받고 그것을 매매하여 생활을 이롭게 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변란 이후로 상경하는 규례가 없어지자, 귀순하여도 이로움이 조금도 없기 때문에 오직 출몰하면서 노략질을 할 뿐인데, 간혹 뜻밖의 이익을 얻기도 한다. 이번에 난을 일으킨 것이 원한을 맺은 데서 기인한 소치이기는 하지만 이익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상경하는 길을 한번 열어 주면 귀순하는 북로들이 반드시 소문만 듣고도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올 것이다. 그들이 오거든 알아듣도록 잘 타이르고 중한 상을 걸고서 배반한 자를 잡아오게 한다면 배반한 몇몇 호인의 목을 힘들이지 않고 잘라 오게 할 수 있을 것이니, 변방의 일이 혹 이로 인하여 조금 안정될 수 있을 것이다.’ 합니다.

의논하는 자들의 말이 다 기의(機宜)에 맞는 것은 아니지만, 북변(北邊)의 정세를 잘 아는 자들이 모두 이런 의논을 주장합니다. 지난 병신 연간에 이일(李鎰)이 북도 병사가 되었을 때 치계하기를 ‘각진의 호인들이 상경할 수 없어 실망하는 자들이 많으므로 통솔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하였고, 지난해 순찰사 윤승훈(尹承勳)이 치계하기를 ‘상으로 줄 각종 물품을 번호(藩胡)의 추장들에게 과시하여 그들의 탐욕스러운 마음을 격발(激發)하면 도모하기가 매우 쉽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본사가 청포(靑布)와 남포(藍布) 각 50필, 대포(大布) 50필, 목면(木綿) 2동(同)을 즉시 수송하여 계략을 시행하는 데 필요한 물자로 쓰도록 한 지가 지금 1년이 넘었는데, 이 계책을 과연 시행하였는지의 여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만약 계책을 시행할 수 없을 경우에는 보낸 포물(布物)의 필수를 계산하여 곡식을 무역해서 군량에 보태겠다는 내용으로 윤승훈(尹承勳)이 전에 이미 치계한 적이 있었으니, 만약 이미 곡식을 무역하였다면 수량을 적어 보고하게 하고, 아직 계책을 시행하지는 못하였으나 기회가 있는데 군자(軍資)가 부족하다면 이곳에서 잘 헤아려 더 보내 주어야 할 것이니, 이런 사정을 순찰사에게 은밀히 하유하여 잘 헤아려 치계하게 하소서.

그리고 상경에 관한 한 가지 가장 긴요한 바, 그들을 도성(都城)까지 오도록 허락하지는 않더라도 병조의 가포(價布)와 호조의 노비 신공(奴婢身貢)을 참작하여 수송해서, 본도 감사가 수령해 보관하고 있다가 번호(藩胡) 중에 드러난 공이 있는 자를 뽑아서 과거처럼 진상하도록 허락하고, 물건 값을 요량하여 지급해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한편 서서히 일로(一路)가 소복(蘇復)되기를 기다려 점차 상경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으로 회유하게 함이 마땅할 듯하니, 각사(各司)로 하여금 착실히 거행하게 하소서.

그리고 또 본도 인민들의 물력(物力)이 전보다 갑절이나 줄어들었는데 시행하는 일들은 여전하니, 물력이 날로 피폐해지는 이유가 오로지 여기에 연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역시 감사로 하여금 모둔 군관(軍官)들의 추종(騶從)·사령(使令)·공억(供億)을 간소하게 하도록 하고, 혹시 분수 밖에 지나친 짓을 하는 자가 있거든 듣고 보는 대로 계문(啓聞)하여 탄핵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본도의 출신(出身) 무사들은 모두 정병(正兵) 및 보솔(保率)의 무리들입니다. 이들이 한번 무과에 오른 뒤로 보솔을 다 잃고 긴 세월 동안 방수(防戌)하고 있는데, 또 도와 주는 인력마저 없습니다. 그러므로 생업을 잃고 유리(流離)하며 파산하는 자들이 속출하고 있어 본도의 부로(父老)들은 모두 무(武)를 업(業)으로 삼는 것은 몸을 해치는 오랏줄이라고 자제들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인심이 이와 같으니, 매우 한심스럽습니다. 이 역시 감사로 하여금 잘 헤아려 복호(復戶)하여 가업(家業)을 보존하게 하고, 그 중에 재주와 기개(氣槪)가 드러나 칭찬할 만한 자는 특별히 변장(邊將)에 제수하여 권장하는 방법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북방 사람들은 오로지 활쏘기와 말타기를 일삼기 때문에 그 지방에 전해 오는 풍속이 말을 귀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좋은 말이 있으면 본도에서 일일이 끌어다가 삼명절(三名節)의 봉진(封進)에 씁니다. 그 말을 끌어다가 봉진하고서는 말 주인에게는 마첩(馬帖)만을 발급할 뿐인데, 먼 도의 사람 중에 마첩을 가지고 대신 말을 받은 자는 백 명 중에 한두 명도 없어 마첩은 끝내 무용지물이 되고 마니, 매우 타당치 않습니다. 그러니 모든 진상마(進上馬)의 값을 본도 목장(牧場)의 말로 대신 지급하여 말을 바친 사람으로 하여금 본업(本業)을 잃지 않게 하도록 아울러 해조에 명하여 참작해 시행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평소부터 육진(六鎭)에는 원마(遠馬)의 규정이 있었는데, 이른바 원마라는 것은 수령이 부임한 초기에 관속(官屬)들이 좋은 말 몇 마리를 따로 준비해 관에서 기르다가 수령이 교체되어 갈 때 타고 싣는 도구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타고 간 뒤 끝내 돌려 받지 못한 것이, 많은 곳에는 10여 필이나 되고 적은 곳이라 해도 5∼6필을 밑돌지 않습니다. 이런 폐단을 실로 무궁한 해가 되는 것이므로 경연 석상에서 누차 진달해서 명을 내려 금지시켰으나 아직까지 다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탕패(蕩敗)가 극심한 오늘에 이르러서도 구습이 간혹 남아 있으니, 토병(土兵)들이 계속해서 유망(流亡)하는 것이 반드시 이로부터 연유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정이 있는 말로 무궁한 준비들 해야 하니 이 폐단을 금하지 않는다면 몇 년 만에 육진의 전마는 씨가 마르고 말 것입니다. 변장 중에는 이 일을 빙자하여 교체되어 올 때 말을 내놓으라고 독촉하는 자도 상당히 있다고 하니, 엄히 금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관계가 될 것입니다.

평소에는 역마(驛馬)의 수가 많아서 수령이나 변장이 왕래할 때 법에 따라 차례로 다음 역의 말을 바꾸어 타고 갔지만, 지금은 역마의 수가 많지 않습니다. 수령과 변장은 걸어 다닐 수 없는 형편이니, 편의에 따라 역마를 갖추어 왕래하는 수령이나 변장들에게 점차 역마를 타도록 허락하고, 말을 내도록 독촉하는 폐단을 일체 엄금하여 육진의 잔약한 백성들로 하여금 보존될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양계(兩界) 토병의 귀를 베는 규정은 매우 좋은 법이니, 평시의 예에 따라 거듭 밝혀 거행하게 하소서. 가령 양계의 토병으로서 다른 도에서 잡히는 자가 있으면 일일이 다 관에 몰수하고, 법을 범한 자를 치죄하면 거의 금단(禁斷)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니, 병조로 하여금 특별히 공사(公事)를 만들도록 하여 양계의 감사·병사에게 하유(下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0책 132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158면
  • 【분류】
    정론(政論) / 행정(行政)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군사(軍事) / 재정(財政) / 교통-마정(馬政) / 외교-야(野) / 물가(物價) / 호구(戶口) / 무역(貿易)

  • [註 255]
    상두(桑土)의 계책 : 사전(事前)에 대비(對備)하는 계책을 말함. 상두는 상근(桑根)인데, 장마가 시작하기 전에 새가 상근의 껍질을 물어다가 둥지를 단단히 얽어 놓으면 누구도 감히 업신여기지 못한다는 시에서 나온 말이다. 《시경(詩經)》 빈풍 치효(豳風鴟鴞).

○備邊司啓曰: "北虜構釁, 憂虞萬端。 不可不及時講究, 以爲桑土之計。 若屢興大兵, 覆其巢穴, 則雖快於目前, 在我元氣, 先已蕭然, 若(媕阿)〔媕婀〕 姑息, 苟度目前, 則日後之憂, 有不可勝言。 近日自北道來者及熟諳邊情者, 多言虜情無厭, 惟利是趨, 可以利餌, 難以義結。 前日胡人之所以奔走聽命, 願爲藩蔽者, 非必(募)〔慕〕 義向化而來也, 蓋利其上京, 受賜買賣, 以利其生。 變後上京之規一罷, 胡人歸順者, 一無所利, 而惟出沒寇抄, 間有分外之利, 今之作耗者, 雖因結怨之致, 未必不由於利絶而然也。 上京之路一開, 則虜之歸順者, 必將聞風而樂趨, 因此開諭, 懸重賞而購募, 則數三叛之頭, 可坐而致之, 邊事或得以小安云。 議者之言, 雖未必盡合機宜, 而深知北邊之情者, 皆主此論。 往在丙申年間, 李鎰爲北道兵使時, 馳啓以爲: ‘合鎭胡人, 未得上京, 多有缺望, 撫諭似難云。’ 上年巡察使尹承勳, 馳啓以爲: ‘各樣賞物, 誇示藩酋, 以激其貪得之心, 圖之甚易云云。 本司以靑藍布各五十匹、大布五十疋、木綿二同, 卽爲輸送, 以資行計之需。 今過一年, 未知此計, 果行與否。 若不可行, 則所送布物, 計匹貿穀, 以資軍餉之意, 承勳前已馳啓。 若已貿穀, 開數査報, 如未及行計, 而事有可乘之機, 軍資不足, 自此亦可量宜加送。 此等事, 宜密諭于巡察使, 使之商量馳啓。 其上京一事, 最爲緊要, 雖不得許, 至都城, 兵曹價布, 戶曹奴婢身貢, 參量輸送, 令本道監司, 收儲待時, 抄出藩胡中表表有功者, 許令如前進上, 量給價物, 以慰其心。 且諭以徐待一路蘇復, 漸次上京之意, 似爲宜當, 令各該司, 着實擧行。 且本道人民, 物力倍減於前, 而施爲擧動, 猶踵前習, 物力之日就凋弊者, 良由於此。 亦令監司, 凡軍官騶從使命供億, 務令省約, 或有分外濫觴者, 隨所聞見, 啓聞糾劾爲當。 本道出身武士, 皆是正兵及保率之類, 一登科第, 盡失保率, 長年防戍, 又無協助之力, 因此失業, 流離破家者, 前後相續, 本道父老, 戒其子弟, 皆以業武, 爲害身之累。 人心如此, 極可寒心。 亦令監司, 量宜復戶, 以存家業, 其中才氣表表可稱者, 特授邊將, 以爲聳動勸勵之方爲當。 北鄙之人, 專以弓馬爲事, 故土俗相傳, 以馬爲貴, 而其有才品者, 本道一一推捉, 以爲三名封進之用, 旣已封進, 只給馬帖, 遠道之人, 持帖受馬者, 百無一二, 其實終歸於無用, 極爲未安。 凡進上馬價, 卽令許給, 本道場馬, 使不失本事, 幷令該曹, 參酌施行爲當。 平時, 六鎭, 有遠馬之規。 所謂遠馬者, 守令赴任之初, 官屬等, 備立好馬若干, 別養于官中, 守令遞來時, 以爲騎載之具, 終不見還, 多者十餘匹, 小不下五六疋。 此等之弊, 實是無窮之害。 經席之上, 累次陳啓, 下令禁止, 而猶未盡革, 到今蕩敗之極, 舊習間或有之。 官屬土兵等, 流亡相繼, 未必不由於此。 以有限之馬, 應無窮之備, 此弊不禁, 數年之內, 六鎭戰馬, 將至絶種。 邊將依憑此事, 遞來時責立者, 亦頗有之云。 若不嚴禁, 必將成例。 平時則驛馬數多, 守令邊將往來時, 依法遞把, 今則驛馬不多。 守令邊將, 勢不可徒行, 隨便備立, 漸次許騎, 從馬責出之弊, 一切嚴禁, 使六鎭殘氓, 得以保存。 且兩界土兵割耳之規, 其法甚善。 依平時例, 申明擧行, 如有被捉於他道者, 一一沒官, 犯者治罪, 則庶有禁斷之路。 令兵曹, 別成公事, 兩界監、兵使處, 下諭何如?" 傳曰: "允。"


  • 【태백산사고본】 80책 132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158면
  • 【분류】
    정론(政論) / 행정(行政)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군사(軍事) / 재정(財政) / 교통-마정(馬政) / 외교-야(野) / 물가(物價) / 호구(戶口) / 무역(貿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