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128권, 선조 33년 8월 29일 기해 4/6 기사 / 1600년 명 만력(萬曆) 28년
예문관 대교 권태일이 시호와 실록 낙질에 대한 서계하다
국역
예문관 대교 권태일(權泰一)이 서계하기를,
"신이 묘향산(妙香山)의 《실록(實錄)》을 상고하는 일로 명을 받고 내려가서 이달 16일에 기사관(記事官) 홍익준(洪翼俊)과 함께 의논하여 사고(史庫)를 열고 장경 왕후(章敬王后)의 휘호와 시호를 올린 것과 시호를 더 올린 곡절에 대해서는 이미 고찰하여 치계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이 열람하던 중에 마침 문종 대왕(文宗大王) 시대의 《실록》 한 편을 보니, 그 표지에 ‘제 11권’이라고 쓰여 있었으나 그 내용은 제 9권의 내용으로서 9권은 거듭 있었으나 11권은 아예 없었습니다. 이는 필시 처음에 인쇄하여 나누어 저장할 때 권질이 잘못되어 서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 편 안에 기재된 1∼2월 사적은 앞으로 고증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 매우 안타깝습니다. 전대의 역사에 빠진 일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선조실록128권, 선조 33년 8월 29일 기해 4/6 기사 / 1600년 명 만력(萬曆) 28년
예문관 대교 권태일이 시호와 실록 낙질에 대한 서계하다
국역
예문관 대교 권태일(權泰一)이 서계하기를,
"신이 묘향산(妙香山)의 《실록(實錄)》을 상고하는 일로 명을 받고 내려가서 이달 16일에 기사관(記事官) 홍익준(洪翼俊)과 함께 의논하여 사고(史庫)를 열고 장경 왕후(章敬王后)의 휘호와 시호를 올린 것과 시호를 더 올린 곡절에 대해서는 이미 고찰하여 치계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이 열람하던 중에 마침 문종 대왕(文宗大王) 시대의 《실록》 한 편을 보니, 그 표지에 ‘제 11권’이라고 쓰여 있었으나 그 내용은 제 9권의 내용으로서 9권은 거듭 있었으나 11권은 아예 없었습니다. 이는 필시 처음에 인쇄하여 나누어 저장할 때 권질이 잘못되어 서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 편 안에 기재된 1∼2월 사적은 앞으로 고증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 매우 안타깝습니다. 전대의 역사에 빠진 일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