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107권, 선조 31년 12월 18일 기사 4/10 기사 /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도원수 권율이 적의 머리를 벤 것이 적은 이유에 대해 아뢰다
국역
도원수 권율(權慄)이 아뢰었다.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이 전사한 뒤에 손문욱(孫文彧) 등이 임기 응변으로 잘 처리한 덕택에 죽음을 무릅쓰고 혈전하였습니다. 문욱이 직접 갑판 위에 올라가 적의 형세를 두루 살피며 지휘하여 싸움을 독려하였는데 진 도독이 함몰을 면한 것도 우리 주사의 공이었습니다. 우치적(禹致績)·이섬(李暹)·우수(禹壽)·유형(柳珩)·이언량(李彦良)의 공이 우수하였고, 수공(首功)은 이순신이 타고 있던 배였습니다. 다만 이순신이 군사들에게 약속하기를 ‘다투어 수급을 베려고 하다 보면 적을 많이 죽일 수 없다.’고 경계하였으므로, 이번 전투에서 수급을 참획한 것이 매우 적었습니다."
원문
선조실록107권, 선조 31년 12월 18일 기사 4/10 기사 /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도원수 권율이 적의 머리를 벤 것이 적은 이유에 대해 아뢰다
국역
도원수 권율(權慄)이 아뢰었다.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이 전사한 뒤에 손문욱(孫文彧) 등이 임기 응변으로 잘 처리한 덕택에 죽음을 무릅쓰고 혈전하였습니다. 문욱이 직접 갑판 위에 올라가 적의 형세를 두루 살피며 지휘하여 싸움을 독려하였는데 진 도독이 함몰을 면한 것도 우리 주사의 공이었습니다. 우치적(禹致績)·이섬(李暹)·우수(禹壽)·유형(柳珩)·이언량(李彦良)의 공이 우수하였고, 수공(首功)은 이순신이 타고 있던 배였습니다. 다만 이순신이 군사들에게 약속하기를 ‘다투어 수급을 베려고 하다 보면 적을 많이 죽일 수 없다.’고 경계하였으므로, 이번 전투에서 수급을 참획한 것이 매우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