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106권, 선조 31년 11월 24일 을사 1/5 기사 /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영돈녕부사 이산해 등이 왜적이 퇴각한 기쁨을 아뢰다
국역
영돈녕부사 이산해, 해원 부원군 윤두수(尹斗壽), 행 지중추부사 정탁(鄭琢) 등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가 왜적과 7년 동안 대치하고 있었지만 왜적의 진영 하나도 섬멸하지 못하고 적추(賊酋)로 하여금 버젓이 바다를 건너가게 하였으니, 원통하고 분한 마음이 어찌 한이 있겠습니까. 다만 백성들이 모두 도망쳐 군량 수송이 곤란하니 지금 우리 나라의 형편은 마치 끊어지는 목숨과 같이 위급합니다. 왜적이 만약 하루라도 더 머무른다면 일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다행히도 3로의 왜적이 일시에 도망쳤으니 후일의 환란이 반드시 없으리라고 보장하기는 어렵지만 임진년 이후 이런 날이 있는 것은 어찌 하늘이 도와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 선왕(周宣王)이 태원(太原)까지 험윤(獫狁)을 몰아냈고, 송 인종(宋仁宗) 시대에 비록 농지고(儂智高)를 효수(梟首)하지는 못했지만 청사(靑史)에 위대하게 여겼으니, 어찌 이유가 없겠습니까. 금일의 일은 사직과 백성을 위하여 신들이 기쁨을 견딜 수 없어 이렇게 와서 아뢰는 것입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옛날 송 휘종(宋徽宗)과 흠종(欽宗) 시대에 적이 까맣게 몰려오면 상하 모두가 어쩔 줄 몰라 후퇴할 계책만 생각하고, 적이 조금 물러가면 군신이 서로 축하하며 만세토록 걱정이 없을 듯이 여기다가, 끝내 오랑캐에게 침입을 당하여 국가를 위태롭게 하였다. 지금 이 왜적은 실로 우리 나라가 언젠가 기어이 갚아야 할 원수이다. 백성들을 짓밟고 종묘 사직을 폐허로 만들었으며, 양릉(兩陵)217) 에 대해서 참혹한 짓을 자행한 것은 차마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군신 상하가 마땅히 조석으로 와신 상담하며 기필코 이 왜적을 멸망시키고 말아야 하는데, 태연하게 세월만 보내다가 끝내 왜적의 괴수가 군대를 철수하여 바다를 건너가는데도 왜장을 죽이고 기(旗)를 빼앗아 조금이나마 임금의 치욕을 씻지 못하였으니, 당시의 신하들은 죽어도 죄가 남는다. 그런데 지금 대궐에 나아가 치하하면서 기쁘고 다행스럽다는 말을 늘어 놓으며 옛일을 인용하여 아첨하는 소지로 삼았다. 대저 험윤과 농지고를 어찌 왜적에다 비할 수 있겠는가. 옛적에 이강(李綱)이 당 고종(唐高宗)에게 고하기를 ‘적이 물러났다고 해서 기뻐하지 말고 원수를 갚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기소서.’ 하였는데, 진정 격언이라 하겠다.
- [註 217] 양릉(兩陵) : 선릉(宣陵)과 정릉(貞陵).
원문
○乙巳/領敦寧府事李山海、海原府院君 尹斗壽、行知中樞府事鄭琢等啓曰: "我國之於讐賊, 七年對壘, 猶不得勦滅一陣, 使賊酋, 揚揚渡海而去, 其爲痛憤, 曷有紀極? 但人民盡亡, 運糧難繼, 我國今日之勢, 岌岌奄奄, 正如垂絶之命。 賊若更留一日, 則事無可爲, 幸而三路之賊, 一時遁歸。 後日之患, 雖難保其必無, 而壬辰之後, 惟此一日, 豈非天之所佑而然耶? 周宣驅逐獫狁, 至于太原, 而宋 仁宗之世, 雖不鳥〔梟〕 (濃智高)〔儂智高〕 之首, 靑史韙之, 豈無所以? 今日之事, 爲社稷爲生民, 臣等不勝喜幸之至, 敢此來啓。" 答曰: "知道。"
【史臣曰: "昔宋 徽、欽之世, 賊若充斥, 則上下遑遑, 惟思退避之計; 賊若少退, 則君臣相慶, 自謂萬世無虞, 終致虜氣長驅, 國隨而危。 今玆倭賊, 實我國萬世必報之仇也。 生靈魚肉, 廟社丘墟, 至於兩陵, 不忍言慘, 則君臣上下, 所當朝夕嘗膽, 必滅此賊而後已, 而攸泛玩愒, 終使賊酋, 斂兵渡海, 猶不得斬將搴旗, 小雪君父之羞, 則當時臣子, 死有餘罪, 而今乃詣闕稱賀, 盛陳喜幸之言, 援引古昔, 以爲獻諂之資。 夫獫狁、儂智高, 豈此賊之比哉? 昔李綱告高宗之言曰: ‘勿以賊退爲可喜, 以寇賊未報爲可憤。’ 眞格言也。"】
선조실록106권, 선조 31년 11월 24일 을사 1/5 기사 /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영돈녕부사 이산해 등이 왜적이 퇴각한 기쁨을 아뢰다
국역
영돈녕부사 이산해, 해원 부원군 윤두수(尹斗壽), 행 지중추부사 정탁(鄭琢) 등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가 왜적과 7년 동안 대치하고 있었지만 왜적의 진영 하나도 섬멸하지 못하고 적추(賊酋)로 하여금 버젓이 바다를 건너가게 하였으니, 원통하고 분한 마음이 어찌 한이 있겠습니까. 다만 백성들이 모두 도망쳐 군량 수송이 곤란하니 지금 우리 나라의 형편은 마치 끊어지는 목숨과 같이 위급합니다. 왜적이 만약 하루라도 더 머무른다면 일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다행히도 3로의 왜적이 일시에 도망쳤으니 후일의 환란이 반드시 없으리라고 보장하기는 어렵지만 임진년 이후 이런 날이 있는 것은 어찌 하늘이 도와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 선왕(周宣王)이 태원(太原)까지 험윤(獫狁)을 몰아냈고, 송 인종(宋仁宗) 시대에 비록 농지고(儂智高)를 효수(梟首)하지는 못했지만 청사(靑史)에 위대하게 여겼으니, 어찌 이유가 없겠습니까. 금일의 일은 사직과 백성을 위하여 신들이 기쁨을 견딜 수 없어 이렇게 와서 아뢰는 것입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옛날 송 휘종(宋徽宗)과 흠종(欽宗) 시대에 적이 까맣게 몰려오면 상하 모두가 어쩔 줄 몰라 후퇴할 계책만 생각하고, 적이 조금 물러가면 군신이 서로 축하하며 만세토록 걱정이 없을 듯이 여기다가, 끝내 오랑캐에게 침입을 당하여 국가를 위태롭게 하였다. 지금 이 왜적은 실로 우리 나라가 언젠가 기어이 갚아야 할 원수이다. 백성들을 짓밟고 종묘 사직을 폐허로 만들었으며, 양릉(兩陵)217) 에 대해서 참혹한 짓을 자행한 것은 차마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군신 상하가 마땅히 조석으로 와신 상담하며 기필코 이 왜적을 멸망시키고 말아야 하는데, 태연하게 세월만 보내다가 끝내 왜적의 괴수가 군대를 철수하여 바다를 건너가는데도 왜장을 죽이고 기(旗)를 빼앗아 조금이나마 임금의 치욕을 씻지 못하였으니, 당시의 신하들은 죽어도 죄가 남는다. 그런데 지금 대궐에 나아가 치하하면서 기쁘고 다행스럽다는 말을 늘어 놓으며 옛일을 인용하여 아첨하는 소지로 삼았다. 대저 험윤과 농지고를 어찌 왜적에다 비할 수 있겠는가. 옛적에 이강(李綱)이 당 고종(唐高宗)에게 고하기를 ‘적이 물러났다고 해서 기뻐하지 말고 원수를 갚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기소서.’ 하였는데, 진정 격언이라 하겠다.
- [註 217] 양릉(兩陵) : 선릉(宣陵)과 정릉(貞陵).
원문
○乙巳/領敦寧府事李山海、海原府院君 尹斗壽、行知中樞府事鄭琢等啓曰: "我國之於讐賊, 七年對壘, 猶不得勦滅一陣, 使賊酋, 揚揚渡海而去, 其爲痛憤, 曷有紀極? 但人民盡亡, 運糧難繼, 我國今日之勢, 岌岌奄奄, 正如垂絶之命。 賊若更留一日, 則事無可爲, 幸而三路之賊, 一時遁歸。 後日之患, 雖難保其必無, 而壬辰之後, 惟此一日, 豈非天之所佑而然耶? 周宣驅逐獫狁, 至于太原, 而宋 仁宗之世, 雖不鳥〔梟〕 (濃智高)〔儂智高〕 之首, 靑史韙之, 豈無所以? 今日之事, 爲社稷爲生民, 臣等不勝喜幸之至, 敢此來啓。" 答曰: "知道。"
【史臣曰: "昔宋 徽、欽之世, 賊若充斥, 則上下遑遑, 惟思退避之計; 賊若少退, 則君臣相慶, 自謂萬世無虞, 終致虜氣長驅, 國隨而危。 今玆倭賊, 實我國萬世必報之仇也。 生靈魚肉, 廟社丘墟, 至於兩陵, 不忍言慘, 則君臣上下, 所當朝夕嘗膽, 必滅此賊而後已, 而攸泛玩愒, 終使賊酋, 斂兵渡海, 猶不得斬將搴旗, 小雪君父之羞, 則當時臣子, 死有餘罪, 而今乃詣闕稱賀, 盛陳喜幸之言, 援引古昔, 以爲獻諂之資。 夫獫狁、儂智高, 豈此賊之比哉? 昔李綱告高宗之言曰: ‘勿以賊退爲可喜, 以寇賊未報爲可憤。’ 眞格言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