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106권, 선조 31년 11월 21일 임인 2/3 기사 /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경상 좌병사 성윤문이 왜장의 소행에 관한 치계를 올리다
국역
경상 좌병사(慶尙左兵使) 성윤문(成允文)이 치계하기를,
"포로가 되었던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관백(關白)이 7월 17일 병으로 죽자 덕천가강(德川家康)이란 대장이 국사(國事)를 다스리면서 이곳에 온 왜장(倭將)들의 처자를 모두 붙잡아 가두고 모반(謀叛)하지 못하게 하고 두세 번 사람을 보내어 가등청정(加藤淸正) 등을 소환하였으므로 청정이 이달 내에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고 하였습니다. 또 도망쳐 돌아온 자가 말하기를 ‘관백이 7월 초에 병으로 죽고 여덟 살 먹은 자식은 어려서 국사를 다스리지 못하니, 이야사(二也思)란 왜장이 멋대로 호령을 내리며, 청정의 6촌인 가등창(加藤窓)은 청정을 소환하는 일로 빈 배 50척을 거느리고 나왔다. 지금 도산(島山)의 왜적이 집을 부수어 밥을 지어 먹고 날마다 짐을 꾸리고 있는데, 군량과 전마(戰馬)의 3분의 1은 이미 일본으로 실어갔으며, 잡곡(雜穀) 창고는 수송해 가지 못하고 흙으로 문을 발랐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啓下)하였다.
원문
○慶尙左兵使成允文馳啓曰: "被擄人來言: ‘關白七月十七日病故, 家康稱號大將, 察治國事, 來此倭將妻子, 竝爲捉囚, 使不得謀叛, 再三差人, 召還淸正等, 故淸正今月內, 丁寧入歸云云。’ 又逃還人言內, 關白七月初病死, 八歲兒子, 幼不能治事, 二也思稱號倭將, 擅發號令, 淸正六寸倭 加藤窓, 以招淸正事, 領空船五十隻出來。 今則島山之賊, 毁屋炊飯, 日治行裝, 軍糧、戰馬三分之一, 已爲載入日本, 雜穀庫則不得輸去, 以土塗門云。" 啓下備邊司。
선조 31년 (1598) 11월 21일
선조실록106권, 선조 31년 11월 21일 임인 2/3 기사 /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경상 좌병사 성윤문이 왜장의 소행에 관한 치계를 올리다
국역
경상 좌병사(慶尙左兵使) 성윤문(成允文)이 치계하기를,
"포로가 되었던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관백(關白)이 7월 17일 병으로 죽자 덕천가강(德川家康)이란 대장이 국사(國事)를 다스리면서 이곳에 온 왜장(倭將)들의 처자를 모두 붙잡아 가두고 모반(謀叛)하지 못하게 하고 두세 번 사람을 보내어 가등청정(加藤淸正) 등을 소환하였으므로 청정이 이달 내에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고 하였습니다. 또 도망쳐 돌아온 자가 말하기를 ‘관백이 7월 초에 병으로 죽고 여덟 살 먹은 자식은 어려서 국사를 다스리지 못하니, 이야사(二也思)란 왜장이 멋대로 호령을 내리며, 청정의 6촌인 가등창(加藤窓)은 청정을 소환하는 일로 빈 배 50척을 거느리고 나왔다. 지금 도산(島山)의 왜적이 집을 부수어 밥을 지어 먹고 날마다 짐을 꾸리고 있는데, 군량과 전마(戰馬)의 3분의 1은 이미 일본으로 실어갔으며, 잡곡(雜穀) 창고는 수송해 가지 못하고 흙으로 문을 발랐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啓下)하였다.
원문
○慶尙左兵使成允文馳啓曰: "被擄人來言: ‘關白七月十七日病故, 家康稱號大將, 察治國事, 來此倭將妻子, 竝爲捉囚, 使不得謀叛, 再三差人, 召還淸正等, 故淸正今月內, 丁寧入歸云云。’ 又逃還人言內, 關白七月初病死, 八歲兒子, 幼不能治事, 二也思稱號倭將, 擅發號令, 淸正六寸倭 加藤窓, 以招淸正事, 領空船五十隻出來。 今則島山之賊, 毁屋炊飯, 日治行裝, 軍糧、戰馬三分之一, 已爲載入日本, 雜穀庫則不得輸去, 以土塗門云。" 啓下備邊司。
원본
선조 31년 (1598) 11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