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100권, 선조 31년 5월 27일 신해 1/3 기사 /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마 제독 전송시 장운익과 제독의 능력, 도산 전투 등에 대해 논의하다
국역
상이 마 제독(麻提督)을 전송하는 일로 한강 막차(幕次)에 나아갔다. 상이 접반사 장운익(張雲翼)을 불러 입시케 하였다. 상이 하문하기를,
"이런 한여름을 당하여 대인이 무슨 일로 내려가는 것인가?"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신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마 제독은 몸소 사졸보다 솔선한다는 소리를 제일 듣기 좋아합니다. 울산(蔚山)의 싸움에서도 이와 같이 하였으니, 지금 필시 이 때문에 먼저 가는 것일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번 행차는 경리가 명한 것인가?"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군문(軍門)의 명령이라고는 하나 실상은 경리가 분부한 것입니다. 듣건대 강화(講和)하는 일이 있다 하므로 대병(大兵)으로 위압하고 나서 그 성사를 요구하려는 것이라 합니다. 또 하졸(下卒)에게 듣건대, 황상이 ‘마 제독이 아직도 서울에 있으니 왜노를 어떻게 평정할 수 있겠는가.’ 하였으므로, 마 제독이 갑자기 내려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번 행차는 안동(安東)으로 갈 것인가?"
하니, 장운익이 예천(醴泉)으로 갈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무엇 때문에 예천으로 가는가?"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지난번 안동에 갔을 때 그곳 토인(土人)들이, 그의 하인(下人)이 폐단을 일으킨 일을 정문(呈文)하였으므로 하인을 효시(梟示)하였었습니다. 그리고 예천 사람들은 술과 고기를 가지고 위로하여 맞이하였고 또 덕을 칭송한 일이 있었으므로, 예천에 머물고자 하여 가는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마 제독이 이여매(李如梅)가 데리고 있던 창기(娼妓)를 빼앗아 배에 싣고 돌아갔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마 대인은 용맹과 지략이 있는가?"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유복(有福)한 데다가 신(神)의 도움은 있으나 지략은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장이 지략이 없으면 무엇에 쓰겠는가."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전일 도산(島山) 싸움에서 오랫동안 지구전을 펼 때, 양야(楊爺)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계속 시끄럽게 떠들었는데, 마 제독은 아무 생각없이 한쪽 가에 앉아서 침묵하는 듯하였지만 도리어 사리에 어둡고 완고한 듯이 보였습니다. 대체로 결단을 내릴 일이 있으면 반드시 경리에게 공손히 사양하면서 ‘본래 주단(主斷)할 분이 있다.’ 하였고, 물러가 사관에 있을 적에는 일에 대해서 한 마디도 언급이 없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성(城)을 공격할 때의 기계는 어떠했고 계책은 어떠했길래 먼저는 크게 이기고 뒤에는 대패하였는가?"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기계는 몹시 소탈하고 계략도 주밀하지 못했습니다. 날마다 명령하는 것은 풀을 베라는 것뿐이었는데, 이는 성 밑에 쌓아놓고 불을 지르려고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한 다발의 풀을 가지고 성 밑에 가까이 가면 철환(鐵丸)이 비오듯이 쏟아져서 사람들이 난마(亂麻)처럼 쓰러지니 이에 이르러서 기술이 궁했습니다. 처음 쳐들어 갔을 때에는 군중(軍中)에서 도산의 외성(外城)이 불에 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승기를 타고 질주하여 기계를 모두 버린 채 40리나 되는 곳을 멀리 달려갔는데, 맨주먹으로 간 자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난번 왜적이 내성(內城)을 굳게 지키고 있을 적에는 기계를 사용하고자 하여도 기계가 없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성은 대포로 깨뜨릴 수가 없었는가?"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성은 산 꼭대기에 있고 지세가 험준하여 대포를 쏘면 20여 장(丈)이나 높게 성을 넘어가니, 자주 쏘더라도 전혀 맞을 리가 없었습니다. 벽력포(霹靂砲)와 호준포(虎蹲砲)도 무수히 쏘았으나 모두 맞지 않았습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회군하기 직전에는 장관(將官)이 이미 넋이 빠져서 사람다운 기색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무엇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22∼23일 사이에 대군이 자리를 마는 듯한 세찬 기세로 성 밑을 공격하여 외책(外柵)을 불사르니, 왜적들이 두려워서 성 안에 잠복하여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중국군들은 모두들 내일은 태산으로 쌓아 놓은 계란을 누르듯이 공격할 것이라고 여겼었습니다만, 24일이 되자 큰 싸움에서 대패한 이후로 사기가 크게 꺾였습니다. 거기다 6∼7일에는 큰비가 계속 내려 몸에는 마른 옷이 한 조각도 없었고 8일에는 대풍(大風)이 불어서 중국군의 말이 모두 죽었으므로, 일군(一軍)이 모두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퇴주하여 살 생각만 하느라 군정(軍情)이 소요스럽고 투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경리는 이 일을 보았기 때문에 용병(用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서 다시 계책을 세워 퇴각하고자 하였습니다. 끝까지 강화를 말하지 않은 사람은 마 제독뿐이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판서는 이제 또 노고가 몹시 많겠다."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죽음 이외는 다시 보답할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원문
○辛亥/上以麻提督餞慰事, 出幸漢江幕次。 上召接伴使張雲翼入侍。 上問曰: "當此盛夏, 大人何事下去乎?" 張雲翼曰: "臣亦不知之。 第麻也, 最喜身先士卒之名。 蔚山之戰, 亦如此, 今必以此而先往也。" 上曰: "此行經理命之耶?" 張雲翼曰: "雖曰軍門之令, 而實則經理分付。 聞有和好之事, 故欲以大兵壓之, 而後要其成也。 且聞於下卒, 皇上曰: ‘麻貴尙在京中, 倭何可平?’ 云云, 故麻爺不意下去云。" 上曰: "此行當往安東乎?" 雲翼曰: "當往醴泉。" 上曰: "何以往醴泉耶?" 雲翼曰: "前日之往安東也, 土人等, 以下人作弊事呈文, 故梟示下人, 而醴泉之人, 則牛酒勞迎, 而且有頌德, 故欲住醴泉而去耳。" 且曰: "麻也奪李如梅所曾畜娼物, 載歸於船上矣。" 上曰: "麻大人有勇略乎?" 雲翼曰: "有福且神, 而無謀策也。" 上曰: "大將無謀, 何以爲乎?" 雲翼曰: "前日島山之戰, 曠日持久, 楊爺口噪, 嘖嘖不耐煩, 而麻則無思無慮, 而坐一邊, 似深沈而還似冥頑。 凡有取斷之事, 必揖讓於經理曰: ‘自有主斷者’ 云, 而退在舍館, 無一語相及。" 上曰: "攻城之時, 器械如何, 謀策如何, 而先爲大捷, 後爲大敗也。" 雲翼曰: "器械甚爲疎脫, 計慮亦不周密, 日日所令, 只曰刈草, 蓋欲積於城底, 欲焚之也。 人持一束芻而近城, 則鐵丸雨散, 人如亂麻而仆, 至此而技窮矣。 當其初入之時, 軍中聞島山外城焚撤, 乘勝疾趨, 盡棄器械, 而長驅四十里之地, 兵器狼藉, 人多空拳而往者。 及其倭賊內城堅守, 雖欲用器械而無之矣。" 上曰: "內城未可以大砲撞破?" 雲翼曰: "城在山上, 地勢高峻, 大砲高放, 則越過於城者, 其高二十餘丈, 雖屢放, 萬無得中之理矣。 霹靂砲、虎蹲砲, 亦無數放之, 皆不中矣。" 且曰: "未回軍前, 將官已爲奪魄, 更無人色。" 上曰: "何故至於如此耶?" 雲翼曰: "卄二三日間, 大軍席卷而衝其城下, 盡焚其外柵, 倭子慴伏內城, 小無形影。 故唐軍皆以爲明日將以太山壓累卵, 而及乎卄四日大戰大挫之後, 士氣十分銷沮, 而加以六日七日大雨連注, 身無一片乾衣, 至八日大風, 唐馬盡死, 一軍之人, 知其無可奈何, 唯知退走而生, 而軍情擾擾, 無復鬪志矣。 經理旣見此事, 知其用兵之難, 更欲以謀却之, 唯終始不言和者, 麻也。 上曰: "判書今又勞苦勞苦。" 雲翼曰: "一死之外, 更無所報。"
선조 31년 (1598) 5월 27일
선조실록100권, 선조 31년 5월 27일 신해 1/3 기사 /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마 제독 전송시 장운익과 제독의 능력, 도산 전투 등에 대해 논의하다
국역
상이 마 제독(麻提督)을 전송하는 일로 한강 막차(幕次)에 나아갔다. 상이 접반사 장운익(張雲翼)을 불러 입시케 하였다. 상이 하문하기를,
"이런 한여름을 당하여 대인이 무슨 일로 내려가는 것인가?"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신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마 제독은 몸소 사졸보다 솔선한다는 소리를 제일 듣기 좋아합니다. 울산(蔚山)의 싸움에서도 이와 같이 하였으니, 지금 필시 이 때문에 먼저 가는 것일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번 행차는 경리가 명한 것인가?"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군문(軍門)의 명령이라고는 하나 실상은 경리가 분부한 것입니다. 듣건대 강화(講和)하는 일이 있다 하므로 대병(大兵)으로 위압하고 나서 그 성사를 요구하려는 것이라 합니다. 또 하졸(下卒)에게 듣건대, 황상이 ‘마 제독이 아직도 서울에 있으니 왜노를 어떻게 평정할 수 있겠는가.’ 하였으므로, 마 제독이 갑자기 내려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번 행차는 안동(安東)으로 갈 것인가?"
하니, 장운익이 예천(醴泉)으로 갈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무엇 때문에 예천으로 가는가?"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지난번 안동에 갔을 때 그곳 토인(土人)들이, 그의 하인(下人)이 폐단을 일으킨 일을 정문(呈文)하였으므로 하인을 효시(梟示)하였었습니다. 그리고 예천 사람들은 술과 고기를 가지고 위로하여 맞이하였고 또 덕을 칭송한 일이 있었으므로, 예천에 머물고자 하여 가는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마 제독이 이여매(李如梅)가 데리고 있던 창기(娼妓)를 빼앗아 배에 싣고 돌아갔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마 대인은 용맹과 지략이 있는가?"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유복(有福)한 데다가 신(神)의 도움은 있으나 지략은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장이 지략이 없으면 무엇에 쓰겠는가."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전일 도산(島山) 싸움에서 오랫동안 지구전을 펼 때, 양야(楊爺)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계속 시끄럽게 떠들었는데, 마 제독은 아무 생각없이 한쪽 가에 앉아서 침묵하는 듯하였지만 도리어 사리에 어둡고 완고한 듯이 보였습니다. 대체로 결단을 내릴 일이 있으면 반드시 경리에게 공손히 사양하면서 ‘본래 주단(主斷)할 분이 있다.’ 하였고, 물러가 사관에 있을 적에는 일에 대해서 한 마디도 언급이 없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성(城)을 공격할 때의 기계는 어떠했고 계책은 어떠했길래 먼저는 크게 이기고 뒤에는 대패하였는가?"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기계는 몹시 소탈하고 계략도 주밀하지 못했습니다. 날마다 명령하는 것은 풀을 베라는 것뿐이었는데, 이는 성 밑에 쌓아놓고 불을 지르려고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한 다발의 풀을 가지고 성 밑에 가까이 가면 철환(鐵丸)이 비오듯이 쏟아져서 사람들이 난마(亂麻)처럼 쓰러지니 이에 이르러서 기술이 궁했습니다. 처음 쳐들어 갔을 때에는 군중(軍中)에서 도산의 외성(外城)이 불에 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승기를 타고 질주하여 기계를 모두 버린 채 40리나 되는 곳을 멀리 달려갔는데, 맨주먹으로 간 자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난번 왜적이 내성(內城)을 굳게 지키고 있을 적에는 기계를 사용하고자 하여도 기계가 없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성은 대포로 깨뜨릴 수가 없었는가?"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성은 산 꼭대기에 있고 지세가 험준하여 대포를 쏘면 20여 장(丈)이나 높게 성을 넘어가니, 자주 쏘더라도 전혀 맞을 리가 없었습니다. 벽력포(霹靂砲)와 호준포(虎蹲砲)도 무수히 쏘았으나 모두 맞지 않았습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회군하기 직전에는 장관(將官)이 이미 넋이 빠져서 사람다운 기색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무엇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22∼23일 사이에 대군이 자리를 마는 듯한 세찬 기세로 성 밑을 공격하여 외책(外柵)을 불사르니, 왜적들이 두려워서 성 안에 잠복하여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중국군들은 모두들 내일은 태산으로 쌓아 놓은 계란을 누르듯이 공격할 것이라고 여겼었습니다만, 24일이 되자 큰 싸움에서 대패한 이후로 사기가 크게 꺾였습니다. 거기다 6∼7일에는 큰비가 계속 내려 몸에는 마른 옷이 한 조각도 없었고 8일에는 대풍(大風)이 불어서 중국군의 말이 모두 죽었으므로, 일군(一軍)이 모두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퇴주하여 살 생각만 하느라 군정(軍情)이 소요스럽고 투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경리는 이 일을 보았기 때문에 용병(用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서 다시 계책을 세워 퇴각하고자 하였습니다. 끝까지 강화를 말하지 않은 사람은 마 제독뿐이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판서는 이제 또 노고가 몹시 많겠다."
하니, 장운익이 아뢰기를,
"죽음 이외는 다시 보답할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원문
○辛亥/上以麻提督餞慰事, 出幸漢江幕次。 上召接伴使張雲翼入侍。 上問曰: "當此盛夏, 大人何事下去乎?" 張雲翼曰: "臣亦不知之。 第麻也, 最喜身先士卒之名。 蔚山之戰, 亦如此, 今必以此而先往也。" 上曰: "此行經理命之耶?" 張雲翼曰: "雖曰軍門之令, 而實則經理分付。 聞有和好之事, 故欲以大兵壓之, 而後要其成也。 且聞於下卒, 皇上曰: ‘麻貴尙在京中, 倭何可平?’ 云云, 故麻爺不意下去云。" 上曰: "此行當往安東乎?" 雲翼曰: "當往醴泉。" 上曰: "何以往醴泉耶?" 雲翼曰: "前日之往安東也, 土人等, 以下人作弊事呈文, 故梟示下人, 而醴泉之人, 則牛酒勞迎, 而且有頌德, 故欲住醴泉而去耳。" 且曰: "麻也奪李如梅所曾畜娼物, 載歸於船上矣。" 上曰: "麻大人有勇略乎?" 雲翼曰: "有福且神, 而無謀策也。" 上曰: "大將無謀, 何以爲乎?" 雲翼曰: "前日島山之戰, 曠日持久, 楊爺口噪, 嘖嘖不耐煩, 而麻則無思無慮, 而坐一邊, 似深沈而還似冥頑。 凡有取斷之事, 必揖讓於經理曰: ‘自有主斷者’ 云, 而退在舍館, 無一語相及。" 上曰: "攻城之時, 器械如何, 謀策如何, 而先爲大捷, 後爲大敗也。" 雲翼曰: "器械甚爲疎脫, 計慮亦不周密, 日日所令, 只曰刈草, 蓋欲積於城底, 欲焚之也。 人持一束芻而近城, 則鐵丸雨散, 人如亂麻而仆, 至此而技窮矣。 當其初入之時, 軍中聞島山外城焚撤, 乘勝疾趨, 盡棄器械, 而長驅四十里之地, 兵器狼藉, 人多空拳而往者。 及其倭賊內城堅守, 雖欲用器械而無之矣。" 上曰: "內城未可以大砲撞破?" 雲翼曰: "城在山上, 地勢高峻, 大砲高放, 則越過於城者, 其高二十餘丈, 雖屢放, 萬無得中之理矣。 霹靂砲、虎蹲砲, 亦無數放之, 皆不中矣。" 且曰: "未回軍前, 將官已爲奪魄, 更無人色。" 上曰: "何故至於如此耶?" 雲翼曰: "卄二三日間, 大軍席卷而衝其城下, 盡焚其外柵, 倭子慴伏內城, 小無形影。 故唐軍皆以爲明日將以太山壓累卵, 而及乎卄四日大戰大挫之後, 士氣十分銷沮, 而加以六日七日大雨連注, 身無一片乾衣, 至八日大風, 唐馬盡死, 一軍之人, 知其無可奈何, 唯知退走而生, 而軍情擾擾, 無復鬪志矣。 經理旣見此事, 知其用兵之難, 更欲以謀却之, 唯終始不言和者, 麻也。 上曰: "判書今又勞苦勞苦。" 雲翼曰: "一死之外, 更無所報。"
원본
선조 31년 (1598) 5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