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98권, 선조 31년 3월 20일 을사 2/2 기사 /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접반사 이호민이 도산의 적병 포위시의 가등청정의 자살 기도 등을 전하다
국역
진 어사(陳御史) 접반사 이호민(李好閔)이 와서 아뢰었다.
"진주(晉州) 수군(水軍) 김수(金守)가 말하기를 ‘전년 12월 21일 포로가 되어 서생포(西生浦)에 있을 때에 가등청정이 도산(島山)이 포위되었다는 보고를 듣고는 처음에는 믿지 않고 말하기를 「이 놈이 내가 멀리 서생포에 떨어져 있자 나를 그곳으로 가게 하고자 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 하였다. 그러다가 거듭 실제 보고를 받고는 23일 밤에 비로소 5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도산의 내성(內城)으로 들어갔는데 20명이 중도에서 살해당하고 30명이 들어갔다. 청정이 홀로 그 군사들과 양식을 아껴 먹으면서 여러 날을 지냈는데 사세가 급박해지자 소도(小刀)를 뽑아 자신의 목을 겨누었다. 그러자 군관왜(軍官倭)가 칼을 빼앗으면서 말하기를 「여기에 소 1마리가 있으니 삶아 먹을 수 있다. 이를 다 먹은 후에 자처(自處)하라. 」 하였다. 중국군사가 퇴진하던 날에 그 고기를 먹고 있다가 우리 마병(馬兵)이 성 아래에서 성대하게 포위하고 서있는 것을 보고는 청정이 고기를 뱉으면서 대검(大劍)을 뽑아 또 목을 찌르려 하였다. 그러자 군관왜가 또 빼앗으면서 말하기를 「장군께서는 조금만 기다리라. 」 하였다. 얼마 후에 보병(步兵)이 달려나가자 적들이 성틈으로 엿보면서 말하기를 「내가 이곳에 있다 한들 무슨 일을 하겠으며 돌아간들 무슨 낯으로 돌아가겠는가. 」 하면서 날마다 관백이 소환하기 만을 기다리고 도산 등처에 성책을 더 쌓았는데 그 수가 모두 수만 명이 넘는다.’ 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63책 98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402면
- 【분류】외교-왜(倭) /
원문
○陳御史接伴使李好閔來啓曰: "晋州水軍金守稱說: ‘前年十二月二十一日, 擄在西生浦時, 淸正聞島山圍報, 始爲不信曰: 「此奴以我遠在西生浦, 欲我來住, 故爲此說。」 再聞實報, 二十三日夜, 始帶五十兵, 來投島山內城, 二十兵中途見殺, 三十人同入。 淸正獨與其軍, 計粒而食, 已經累日, 事勢甚迫, 拔小刀擬頸。 軍官倭前奪其刀曰: 「此中有一牛可烹。 喫盡後處之。」 天兵退陣之日, 方喫其肉, 淸正見馬兵圍立城下甚盛, 淸正吐肉, 引大劍刺頸。 軍官倭又奪之, 「幸將軍小待。」 俄而步兵走出, 賊闖城看曰: 「此無奈取糧去耶?」 俄而馬兵馳退, 諸賊撫掌大懽曰: 「今以後免死。」 西生之賊船載食物, (檥)〔艤〕 于島山之下, 兵退卽進, 窟中之賊, 得喫粥物盡斃, 唯淸正等若干人得生。 淸正卽還西生, 杜門稱疾, 不理一事曰: 「我在此處何爲, 歸國何顔? 日待關白之召還而已。 島山之兵, 悉還西生, 其衆滿萬。 島山等處, 加築城柵, 其衆不啻累萬’ 云。"
- 【태백산사고본】 63책 98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402면
- 【분류】외교-왜(倭) /
선조 31년 (1598) 3월 20일
선조실록98권, 선조 31년 3월 20일 을사 2/2 기사 /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접반사 이호민이 도산의 적병 포위시의 가등청정의 자살 기도 등을 전하다
국역
진 어사(陳御史) 접반사 이호민(李好閔)이 와서 아뢰었다.
"진주(晉州) 수군(水軍) 김수(金守)가 말하기를 ‘전년 12월 21일 포로가 되어 서생포(西生浦)에 있을 때에 가등청정이 도산(島山)이 포위되었다는 보고를 듣고는 처음에는 믿지 않고 말하기를 「이 놈이 내가 멀리 서생포에 떨어져 있자 나를 그곳으로 가게 하고자 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 하였다. 그러다가 거듭 실제 보고를 받고는 23일 밤에 비로소 5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도산의 내성(內城)으로 들어갔는데 20명이 중도에서 살해당하고 30명이 들어갔다. 청정이 홀로 그 군사들과 양식을 아껴 먹으면서 여러 날을 지냈는데 사세가 급박해지자 소도(小刀)를 뽑아 자신의 목을 겨누었다. 그러자 군관왜(軍官倭)가 칼을 빼앗으면서 말하기를 「여기에 소 1마리가 있으니 삶아 먹을 수 있다. 이를 다 먹은 후에 자처(自處)하라. 」 하였다. 중국군사가 퇴진하던 날에 그 고기를 먹고 있다가 우리 마병(馬兵)이 성 아래에서 성대하게 포위하고 서있는 것을 보고는 청정이 고기를 뱉으면서 대검(大劍)을 뽑아 또 목을 찌르려 하였다. 그러자 군관왜가 또 빼앗으면서 말하기를 「장군께서는 조금만 기다리라. 」 하였다. 얼마 후에 보병(步兵)이 달려나가자 적들이 성틈으로 엿보면서 말하기를 「내가 이곳에 있다 한들 무슨 일을 하겠으며 돌아간들 무슨 낯으로 돌아가겠는가. 」 하면서 날마다 관백이 소환하기 만을 기다리고 도산 등처에 성책을 더 쌓았는데 그 수가 모두 수만 명이 넘는다.’ 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63책 98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402면
- 【분류】외교-왜(倭) /
원문
○陳御史接伴使李好閔來啓曰: "晋州水軍金守稱說: ‘前年十二月二十一日, 擄在西生浦時, 淸正聞島山圍報, 始爲不信曰: 「此奴以我遠在西生浦, 欲我來住, 故爲此說。」 再聞實報, 二十三日夜, 始帶五十兵, 來投島山內城, 二十兵中途見殺, 三十人同入。 淸正獨與其軍, 計粒而食, 已經累日, 事勢甚迫, 拔小刀擬頸。 軍官倭前奪其刀曰: 「此中有一牛可烹。 喫盡後處之。」 天兵退陣之日, 方喫其肉, 淸正見馬兵圍立城下甚盛, 淸正吐肉, 引大劍刺頸。 軍官倭又奪之, 「幸將軍小待。」 俄而步兵走出, 賊闖城看曰: 「此無奈取糧去耶?」 俄而馬兵馳退, 諸賊撫掌大懽曰: 「今以後免死。」 西生之賊船載食物, (檥)〔艤〕 于島山之下, 兵退卽進, 窟中之賊, 得喫粥物盡斃, 唯淸正等若干人得生。 淸正卽還西生, 杜門稱疾, 不理一事曰: 「我在此處何爲, 歸國何顔? 日待關白之召還而已。 島山之兵, 悉還西生, 其衆滿萬。 島山等處, 加築城柵, 其衆不啻累萬’ 云。"
- 【태백산사고본】 63책 98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402면
- 【분류】외교-왜(倭) /
원본
선조 31년 (1598) 3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