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94권, 선조 30년 11월 14일 신축 1/4 기사 /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감사 이용순이 한형의 처 이씨, 조종도의 죽음을 포장하도록 건의하다
국역
경상도 관찰사 이용순(李用淳)이 치계하였다.
"황석 산성(黃石山城)이 패몰될 적에 거창 현감(居昌縣監) 한형(韓詗)이 군병을 모집하는 일로 밖에 나가 있고 아내 이씨(李氏)는 【이정암(李廷馣)의 누이동생. 】 성 안에 있었는데 이때 적이 이미 성을 침범하자, 한형에게 편지를 띄우기를 ‘지금 나는 그래도 피해 나갈 수 있으나 다만 성 안의 사람들이 거창의 군민(軍民)이 붕괴된 것을 낭군의 죄로 돌려서 여종을 아내 대신으로 성 안에 들여보내야 한다고까지 말하니, 만약 첩이 먼저 나간다면 그 누(累)가 반드시 낭군께 미칠 것이기에, 첩은 여기에서 죽는 것으로써 낭군께 보답하겠다. 만약 낭군이 미처 오기전에 성이 함락된다면 형세가 반드시 붕괴될 것이기에, 이에 백금 두어 냥을 가지고 구급의 도움을 삼을까 한다.’ 하고, 성이 함락되려고 하자 지키지 못할 것을 알고 그의 딸 한씨와 함께 스스로 목을 찔러 같이 죽었으며, 시비(侍婢) 한 사람도 스스로 목을 찔러 따라 죽었습니다. 함양 군수(咸陽郡守) 조종도(趙宗道)는 처자를 이끌고 산성(山城)에 들어가서 지키다가 적의 형세가 다급해져 성 안이 붕괴되자, 종도가 백사림(白士霖)에게로 달려가서 방책을 논의하려고 하였는데, 【사림은 김해 부사(金海府使)로서 성을 지키는 주장(主將)이 된 자이다. 】 벌써 도피하였으므로 다시 곽준(郭䞭)을 남문으로 찾아가서 손을 잡고 말하기를 ‘형세가 이미 여기에 이르렀으니 죽음이 있을 뿐이다.’ 하고, 드디어 그의 아들 조영혼(趙英混) 및 곽준과 함께 모두 피살당하였습니다. 이상의 사람들은 다 죽음을 제 갈 길로 여기고 조용히 자처하였으니, 각별히 포장하여 풍화(風化)의 근본을 삼아야 합니다."
- 【태백산사고본】 61책 94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339면
- 【분류】외교-왜(倭) / 호구-이동(移動)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원문
○辛丑/慶尙觀察使李用淳馳啓曰: "黃石山城敗沒時, 居昌縣監韓詗, 以募軍事在外, 妻李氏 【李廷馣之女弟也。】 在城中時, 賊已犯城, 寄書于韓詗曰: ‘今我猶可出避, 但城中之人, 以居昌軍民之潰散, 歸罪於郞君, 至以婢代妻, 入城爲言, 妾若先出, 則累必及郞君, 妾當死於此, 以報郞君。 郞君若不及來而城已陷, 則勢必奔竄, 玆將白金數兩, 以爲救急之資。’ 城將陷, 知不可守, 與其女韓氏, 自刎同死, 侍婢一人, 亦自刎以從之。 咸陽郡守趙宗道, 挈妻子, 入守山城, 賊勢已急, 城中潰散, 宗道馳往白士霖, 要有講議, 【士霖, 以金海府使, 爲守城主將者也。】 已爲逃避, 往見郭䞭於南門, 執手相告曰: ‘勢已至此, 有死而已。’ 遂與其子英混及郭䞭, 皆被殺。 右人等, 皆視死如歸, 從容自處, 各別褒崇, 以爲風化之本。"
- 【태백산사고본】 61책 94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339면
- 【분류】외교-왜(倭) / 호구-이동(移動)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선조실록94권, 선조 30년 11월 14일 신축 1/4 기사 /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감사 이용순이 한형의 처 이씨, 조종도의 죽음을 포장하도록 건의하다
국역
경상도 관찰사 이용순(李用淳)이 치계하였다.
"황석 산성(黃石山城)이 패몰될 적에 거창 현감(居昌縣監) 한형(韓詗)이 군병을 모집하는 일로 밖에 나가 있고 아내 이씨(李氏)는 【이정암(李廷馣)의 누이동생. 】 성 안에 있었는데 이때 적이 이미 성을 침범하자, 한형에게 편지를 띄우기를 ‘지금 나는 그래도 피해 나갈 수 있으나 다만 성 안의 사람들이 거창의 군민(軍民)이 붕괴된 것을 낭군의 죄로 돌려서 여종을 아내 대신으로 성 안에 들여보내야 한다고까지 말하니, 만약 첩이 먼저 나간다면 그 누(累)가 반드시 낭군께 미칠 것이기에, 첩은 여기에서 죽는 것으로써 낭군께 보답하겠다. 만약 낭군이 미처 오기전에 성이 함락된다면 형세가 반드시 붕괴될 것이기에, 이에 백금 두어 냥을 가지고 구급의 도움을 삼을까 한다.’ 하고, 성이 함락되려고 하자 지키지 못할 것을 알고 그의 딸 한씨와 함께 스스로 목을 찔러 같이 죽었으며, 시비(侍婢) 한 사람도 스스로 목을 찔러 따라 죽었습니다. 함양 군수(咸陽郡守) 조종도(趙宗道)는 처자를 이끌고 산성(山城)에 들어가서 지키다가 적의 형세가 다급해져 성 안이 붕괴되자, 종도가 백사림(白士霖)에게로 달려가서 방책을 논의하려고 하였는데, 【사림은 김해 부사(金海府使)로서 성을 지키는 주장(主將)이 된 자이다. 】 벌써 도피하였으므로 다시 곽준(郭䞭)을 남문으로 찾아가서 손을 잡고 말하기를 ‘형세가 이미 여기에 이르렀으니 죽음이 있을 뿐이다.’ 하고, 드디어 그의 아들 조영혼(趙英混) 및 곽준과 함께 모두 피살당하였습니다. 이상의 사람들은 다 죽음을 제 갈 길로 여기고 조용히 자처하였으니, 각별히 포장하여 풍화(風化)의 근본을 삼아야 합니다."
- 【태백산사고본】 61책 94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339면
- 【분류】외교-왜(倭) / 호구-이동(移動)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원문
○辛丑/慶尙觀察使李用淳馳啓曰: "黃石山城敗沒時, 居昌縣監韓詗, 以募軍事在外, 妻李氏 【李廷馣之女弟也。】 在城中時, 賊已犯城, 寄書于韓詗曰: ‘今我猶可出避, 但城中之人, 以居昌軍民之潰散, 歸罪於郞君, 至以婢代妻, 入城爲言, 妾若先出, 則累必及郞君, 妾當死於此, 以報郞君。 郞君若不及來而城已陷, 則勢必奔竄, 玆將白金數兩, 以爲救急之資。’ 城將陷, 知不可守, 與其女韓氏, 自刎同死, 侍婢一人, 亦自刎以從之。 咸陽郡守趙宗道, 挈妻子, 入守山城, 賊勢已急, 城中潰散, 宗道馳往白士霖, 要有講議, 【士霖, 以金海府使, 爲守城主將者也。】 已爲逃避, 往見郭䞭於南門, 執手相告曰: ‘勢已至此, 有死而已。’ 遂與其子英混及郭䞭, 皆被殺。 右人等, 皆視死如歸, 從容自處, 各別褒崇, 以爲風化之本。"
- 【태백산사고본】 61책 94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339면
- 【분류】외교-왜(倭) / 호구-이동(移動)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