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92권, 선조 30년 9월 12일 기해 2/5 기사 /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경리 양호가 동작진으로 행차해 서울 고수의 의지를 보이다
국역
경리(經理)가 문을 닫고 행장을 꾸리면서 가는 곳을 말하지 아니하니, 어떤 사람은 강화(江華)로 간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수원(水原)으로 간다고 하며 어떤 사람은 군사를 철수하여 서쪽으로 돌아간다고 하여, 인심이 흉흉하고 두려워하여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대신들이 청대(請對)하여 정지시키는 일을 의논하였는데 끝날 무렵에 경리가 이미 말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자 상이 바로 거둥하였다. 경리가 수원으로 가려고 하자 제독이 남대문 밖으로 뒤쫓아 와 행차를 정지시키기를 강청하면서 말하기를,
"적병이 가까이 다가왔는데 노야(老爺)께서 뜻을 결정하여 앞으로 나아가시니, 왜적이 만약 다른 지름길을 경유하여 뒤로 돌아 나오게 되면, 나아가도 갈 데가 없고 물러날 수도 없어 다만 성위(聲威)만 손상시켜 해만 있고 이익은 없을 것입니다. 노야께서 만약 가신다면 늙은 이 마귀(麻貴)가 감히 여기에 편안히 앉아 있겠습니까. 외로운 군대가 앞으로 나아가면 변고를 예측할 수가 없으니, 노야께서는 상량(商量)하십시오."
하자, 경리가 말하기를,
"나대로 방법이 있다."
하고, 이어 동작진(銅雀津)으로 향하니, 제독이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갔다. 상이 뒤쫓아 둔지산(屯地山)에 이르자, 경리가 사람을 보내 말하기를,
"국왕께서는 고취(鼓吹)를 하지 말고 두세 배신(陪臣)만 거느리고 달려와 함께 이야기하기를 바랍니다."
하니, 상이 승지에게 이르기를,
"내가 일찍이 말하지 않았는가. 강화(江華)로 간다고 말한 것은 잘못이다. 어찌 그럴 리가 있겠는가."
하고, 동작진 가로 달려가 경리·제독과 더불어 말을 나란히 하고 갔다. 임해군(臨海君)이 어가(御鴐)를 호종하여 뒤에 있었는데 마침 말이 거세게 날뛰어 경리의 앞으로 나가자, 경리가 그를 앞으로 오도록 하고 묻기를,
"이 사람은 누구인가?"
하니, 통관(通官)이 대답하기를,
"국왕의 아들 임해군입니다."
하자, 경리가 그대로 뒤따라 오도록 하였다. 강어귀 부교(浮橋)에 도달하였는데 다리 노폭이 좁아 중국 병사로 꽉 메워져 사람이 통행할 수 없으므로 시종한 신하와 호위한 관원들은 모두 뒤에 떨어지고 오직 선전관(宣傳官) 정호(鄭護)·유영서(柳永瑞) 및 내관(內官) 몇 사람만 호종하였다. 상이 경리·제독과 더불어 강을 건너 그쪽 산 능선으로 올라가니 제관(諸官)들이 뒤따라 이르렀다. 경리와 제독이 수하의 군사 1천여 기(騎)를 나눠 보내 양쪽 산봉우리에 대진(對陣)을 치고 선회하면서 말을 달리게 하였는데 위세를 뽐내기 위해서인 듯하였다. 이어 영의정 유성룡(柳成龍) 등을 불러 남쪽으로 내려갈 때 경유하는 도로의 원근(遠近)을 물어보고, 멀리 바라보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기를,
"저기는 어느 곳입니까?"
하자, 대답하기를,
"바로 남한 산성(南漢山城)입니다."
하니, 다시 묻기를,
"그 지역에 군량(軍糧)과 기계(器械)가 있어 파수(把守)할 만합니까? 형세는 또 어떠합니까?"
하고서, 이어 휘하의 장관(將官)으로 하여금 찬획사(贊劃使) 한준겸(韓浚謙)을 대동하고서 군병(軍兵)·양초(糧草)·기계 및 산성(山城)의 형세가 유리한지의 여부를 조사하여 돌아와 보고하도록 하였다. 한동안 머무르다가 도로 산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 동작진 이쪽에 이르러, 경리가 상(上) 및 제독과 더불어 말에서 내려 앉았다. 경리가 말하기를,
"임해군을 불러와 함께 앉아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하니, 상이 그러할 수 없다고 사양하였으나 경리가 강청하므로 상이 들어와 참석하도록 명하였다. 임해군이 땅에서 재배(再拜)하니 경리와 제독이 평상에서 내려와 부축하여 일으켜 올라와 앉도록 하였다. 임해군이 굳이 사양하였으나 경리가 강청하자 임해군이 애써 따랐다가, 얼마 후에 임해군이 감당할 수 없다고 사양하면서 재배하고 물러나왔다. 경리가 검열(檢閱) 정홍익(鄭弘翼)을 불러 말하기를,
"그대는 활을 잘 쏘는가?"
하니, 상이 말하기를,
"그 사람은 서생(書生)으로서 본시 활쏘는 것을 배우지 아니하여 잘 못합니다."
하였다. 경리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어째서 활과 화살을 차고 있습니까?"
하자, 상이 말하기를,
"다만 위의(威儀)의 도구일 뿐입니다."
하니, 경리가 웃으면서 나가도록 명하였다. 또 내관(內官) 등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이들은 활을 잘 쏩니까?"
하자, 상이 말하기를,
"조금은 쏠 줄 알고 있습니다."
하니, 경리가 과녁을 설치하도록 하여 중국 사람과 우리 나라 사람들이 활쏘기를 겨누도록 하였다. 경리가 우리 나라 사람의 활쏘는 법을 보고 말하기를,
"아주 좋습니다. 중국 병사는 화살의 힘이 강력하지 못한데, 귀국은 화살을 발사하는 것이 용맹스럽고 날카롭습니다. 이와 같은데 어찌 왜적을 두려워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고, 이어 묻기를,
"남방(南方) 사람들도 이처럼 잘 쏩니까?"
하다, 상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다. 경리가 말하기를,
"이처럼 활을 잘 쏘면서 어떻게 왜적으로 하여금 마구 쳐들어오게 하였습니까?"
하니, 상이 말하기를,
"평소에 싸움을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겁부터 내어 이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하자, 경리가 말하기를,
"담력(膽力)을 크게 길러야 하겠습니다."
하였다. 활쏘기가 끝나자 각각 은전(銀錢)을 차등 있게 주었다. 또 중국 병사로 하여금 호준포(虎蹲砲)를 강가에서 쏘도록 하였는데, 호각을 한 번 불자 각각 포 한 발씩을 쏘니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이에 경리가 말하기를,
"이것은 어떻습니까?"
하니, 상이 말하기를,
"오늘에 이르러 중국의 웅장한 위력을 보니, 왜적쯤이야 평정할 것도 없겠습니다. 매우 다행스럽습니다."
하니, 경리가 말하기를,
"만약 이러한 포를 이쪽 강가에 많이 설치해 놓으면 왜적이 어떻게 감히 건널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날이 저물자 상이 경리·제독과 더불어 앞뒤로 성 안으로 들어왔다. 이 날 상이 도로에서 호곡(號哭)하면서 상이 서쪽으로 거둥할까 두려워하는 백성들을 만날 때마다 바로 친히 효유(曉諭)하기를,
"내가 중국 장수를 따라 강가에까지 갔다가 올 것이니, 너희 백성들은 내가 떠나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염려하지 말고 각각 생업에 안정하라."
하니, 그 말을 듣고 서로 조아리며 감격하여 울지 않는 백성이 없었다. 이때에 여러 장관(將官)들이 왜적의 경보(警報)가 몹시 급박함을 듣고 군세(軍勢)가 외롭고 약하다고 핑계하면서 모두 철수하여 돌아가려고 했으므로, 경리가 물러나 움츠려서는 안 된다는 뜻을 보여준 것이다.
원문
○經理閉門治行, 不言所向, 或云向江華, 或云往水原, 或以爲撤兵西還, 人心洶懼, 莫知所措。 大臣請對, 講論停留之事, 將罷, 聞經理已爲上馬, 上卽動駕。 經理將向水原, 提督追及南大門外, 勒馬强請曰: "賊兵迫近, 而老爺決意前進, 賊若由他徑路, 遶出於後, 則進無所歸, 退不可得, 徒損聲威, 有害無益。 而老爺若往, 則老此麻貴, 其敢安坐於此乎? 孤軍前進, 變不可測。 請老爺商量焉。" 經理曰: "自有道理。" 因向銅雀江路, 提督不得已隨之。 上追至屯地山, 經理送人告曰: "請國王不須鼓吹, 只率二三陪臣赶來, 要與之講話" 云。 上謂承旨曰: "予曾不言乎? 江華之語, 非矣。 豈有是理哉?" 上赶到銅雀江邊, 與經理、提督,竝馬而行。 臨海君扈駕在後, 適馬驕逸, 出經理之前, 經理使之前來曰: ‘此是何人?’ 通官曰: " 國王子臨海君也。" 經理因使跟行。 遂行到江口浮橋, 橋路狹隘, 而天兵塡塞,人不得通。 侍從之臣、扈衛之官, 皆落後, 惟宣傳官鄭護、柳永瑞及內官數人從焉。 上與經理、提督渡江, 因上那邊山脊, 諸官追及焉。 經理與提督, 派送手下軍千有餘騎, 分作對陣于兩邊峯上, 盤旋馳騁, 似若揚威之爲者。 仍招領議政柳成龍等, 訪問南下經由道路遠近, 遙望指點曰: "此是何地?" 對曰: "乃南漢山城也。" "此地有軍糧、器械, 可以把守否? 形勢亦何如?" 因使標下將官, 帶同贊畫使韓浚謙, 査考軍兵、糧草、器械及山城形勢便否而回報云。 駐馬良久, 還下山渡江, 到銅雀這邊, 經理與上及提督, 下馬而坐。 經理曰: "請招臨海君來, 同坐講話。" 上辭以不敢當,經理强之, 上命入參。 臨海君再拜于地, 經理、提督下床扶起, 使之上坐。 臨海固辭, 經理强要, 臨海勉從之, 俄而臨海辭以不敢當, 再拜而退。 經理招出檢閱鄭弘翼曰: "爾能射否?" 上曰: "此是書生, 素不學射, 無能爲也。" 經理曰: "然則何佩弓箭爲?" 上曰: "只爲威儀之具耳。" 經理笑而命出。 又指內官等曰: "此輩亦能射乎?" 上曰: "粗能矣。" 經理遂令張帿, 命唐人及我國人等較射。 經理見我國人射法曰: "好好。 天兵則矢力不緊, 而貴國則發矢猛利。 若是則何畏乎賊?" 仍問曰: "南方之人, 亦能如此乎?" 上曰: "然矣。" 經理曰: "如此善射, 而何使賊攔入乎?" 上曰: "素不習戰, 故恇怯至此矣。" 經理曰: "令養大其膽氣, 可也。" 射畢, 各給銀錢有差。 又令天兵, 試放虎蹲砲於江邊, 吹角一聲, 各放一砲, 聲震天地。 經理曰: "此何如?" 上曰: "至於今日, 得見天威之雄壯。 彼賊不足平。 深幸。" 經理曰: "若多設這樣砲子於此邊, 則賊何敢得渡乎?" 日暮上與經理、提督, 先後入城。 是日也, 上每逢百姓, 號哭於道, 恐上之西幸者, 輒卽親諭曰: "予隨天將, 往來江上, 爾等毌慮予之去不反也, 各安其業焉。" 百姓聞之, 無不相稽感泣。 時經理以諸將官聞賊報甚迫, 托以軍勢孤弱, 皆欲撤還, 故以示不可退縮之意。
선조실록92권, 선조 30년 9월 12일 기해 2/5 기사 /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경리 양호가 동작진으로 행차해 서울 고수의 의지를 보이다
국역
경리(經理)가 문을 닫고 행장을 꾸리면서 가는 곳을 말하지 아니하니, 어떤 사람은 강화(江華)로 간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수원(水原)으로 간다고 하며 어떤 사람은 군사를 철수하여 서쪽으로 돌아간다고 하여, 인심이 흉흉하고 두려워하여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대신들이 청대(請對)하여 정지시키는 일을 의논하였는데 끝날 무렵에 경리가 이미 말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자 상이 바로 거둥하였다. 경리가 수원으로 가려고 하자 제독이 남대문 밖으로 뒤쫓아 와 행차를 정지시키기를 강청하면서 말하기를,
"적병이 가까이 다가왔는데 노야(老爺)께서 뜻을 결정하여 앞으로 나아가시니, 왜적이 만약 다른 지름길을 경유하여 뒤로 돌아 나오게 되면, 나아가도 갈 데가 없고 물러날 수도 없어 다만 성위(聲威)만 손상시켜 해만 있고 이익은 없을 것입니다. 노야께서 만약 가신다면 늙은 이 마귀(麻貴)가 감히 여기에 편안히 앉아 있겠습니까. 외로운 군대가 앞으로 나아가면 변고를 예측할 수가 없으니, 노야께서는 상량(商量)하십시오."
하자, 경리가 말하기를,
"나대로 방법이 있다."
하고, 이어 동작진(銅雀津)으로 향하니, 제독이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갔다. 상이 뒤쫓아 둔지산(屯地山)에 이르자, 경리가 사람을 보내 말하기를,
"국왕께서는 고취(鼓吹)를 하지 말고 두세 배신(陪臣)만 거느리고 달려와 함께 이야기하기를 바랍니다."
하니, 상이 승지에게 이르기를,
"내가 일찍이 말하지 않았는가. 강화(江華)로 간다고 말한 것은 잘못이다. 어찌 그럴 리가 있겠는가."
하고, 동작진 가로 달려가 경리·제독과 더불어 말을 나란히 하고 갔다. 임해군(臨海君)이 어가(御鴐)를 호종하여 뒤에 있었는데 마침 말이 거세게 날뛰어 경리의 앞으로 나가자, 경리가 그를 앞으로 오도록 하고 묻기를,
"이 사람은 누구인가?"
하니, 통관(通官)이 대답하기를,
"국왕의 아들 임해군입니다."
하자, 경리가 그대로 뒤따라 오도록 하였다. 강어귀 부교(浮橋)에 도달하였는데 다리 노폭이 좁아 중국 병사로 꽉 메워져 사람이 통행할 수 없으므로 시종한 신하와 호위한 관원들은 모두 뒤에 떨어지고 오직 선전관(宣傳官) 정호(鄭護)·유영서(柳永瑞) 및 내관(內官) 몇 사람만 호종하였다. 상이 경리·제독과 더불어 강을 건너 그쪽 산 능선으로 올라가니 제관(諸官)들이 뒤따라 이르렀다. 경리와 제독이 수하의 군사 1천여 기(騎)를 나눠 보내 양쪽 산봉우리에 대진(對陣)을 치고 선회하면서 말을 달리게 하였는데 위세를 뽐내기 위해서인 듯하였다. 이어 영의정 유성룡(柳成龍) 등을 불러 남쪽으로 내려갈 때 경유하는 도로의 원근(遠近)을 물어보고, 멀리 바라보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기를,
"저기는 어느 곳입니까?"
하자, 대답하기를,
"바로 남한 산성(南漢山城)입니다."
하니, 다시 묻기를,
"그 지역에 군량(軍糧)과 기계(器械)가 있어 파수(把守)할 만합니까? 형세는 또 어떠합니까?"
하고서, 이어 휘하의 장관(將官)으로 하여금 찬획사(贊劃使) 한준겸(韓浚謙)을 대동하고서 군병(軍兵)·양초(糧草)·기계 및 산성(山城)의 형세가 유리한지의 여부를 조사하여 돌아와 보고하도록 하였다. 한동안 머무르다가 도로 산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 동작진 이쪽에 이르러, 경리가 상(上) 및 제독과 더불어 말에서 내려 앉았다. 경리가 말하기를,
"임해군을 불러와 함께 앉아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하니, 상이 그러할 수 없다고 사양하였으나 경리가 강청하므로 상이 들어와 참석하도록 명하였다. 임해군이 땅에서 재배(再拜)하니 경리와 제독이 평상에서 내려와 부축하여 일으켜 올라와 앉도록 하였다. 임해군이 굳이 사양하였으나 경리가 강청하자 임해군이 애써 따랐다가, 얼마 후에 임해군이 감당할 수 없다고 사양하면서 재배하고 물러나왔다. 경리가 검열(檢閱) 정홍익(鄭弘翼)을 불러 말하기를,
"그대는 활을 잘 쏘는가?"
하니, 상이 말하기를,
"그 사람은 서생(書生)으로서 본시 활쏘는 것을 배우지 아니하여 잘 못합니다."
하였다. 경리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어째서 활과 화살을 차고 있습니까?"
하자, 상이 말하기를,
"다만 위의(威儀)의 도구일 뿐입니다."
하니, 경리가 웃으면서 나가도록 명하였다. 또 내관(內官) 등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이들은 활을 잘 쏩니까?"
하자, 상이 말하기를,
"조금은 쏠 줄 알고 있습니다."
하니, 경리가 과녁을 설치하도록 하여 중국 사람과 우리 나라 사람들이 활쏘기를 겨누도록 하였다. 경리가 우리 나라 사람의 활쏘는 법을 보고 말하기를,
"아주 좋습니다. 중국 병사는 화살의 힘이 강력하지 못한데, 귀국은 화살을 발사하는 것이 용맹스럽고 날카롭습니다. 이와 같은데 어찌 왜적을 두려워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고, 이어 묻기를,
"남방(南方) 사람들도 이처럼 잘 쏩니까?"
하다, 상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다. 경리가 말하기를,
"이처럼 활을 잘 쏘면서 어떻게 왜적으로 하여금 마구 쳐들어오게 하였습니까?"
하니, 상이 말하기를,
"평소에 싸움을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겁부터 내어 이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하자, 경리가 말하기를,
"담력(膽力)을 크게 길러야 하겠습니다."
하였다. 활쏘기가 끝나자 각각 은전(銀錢)을 차등 있게 주었다. 또 중국 병사로 하여금 호준포(虎蹲砲)를 강가에서 쏘도록 하였는데, 호각을 한 번 불자 각각 포 한 발씩을 쏘니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이에 경리가 말하기를,
"이것은 어떻습니까?"
하니, 상이 말하기를,
"오늘에 이르러 중국의 웅장한 위력을 보니, 왜적쯤이야 평정할 것도 없겠습니다. 매우 다행스럽습니다."
하니, 경리가 말하기를,
"만약 이러한 포를 이쪽 강가에 많이 설치해 놓으면 왜적이 어떻게 감히 건널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날이 저물자 상이 경리·제독과 더불어 앞뒤로 성 안으로 들어왔다. 이 날 상이 도로에서 호곡(號哭)하면서 상이 서쪽으로 거둥할까 두려워하는 백성들을 만날 때마다 바로 친히 효유(曉諭)하기를,
"내가 중국 장수를 따라 강가에까지 갔다가 올 것이니, 너희 백성들은 내가 떠나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염려하지 말고 각각 생업에 안정하라."
하니, 그 말을 듣고 서로 조아리며 감격하여 울지 않는 백성이 없었다. 이때에 여러 장관(將官)들이 왜적의 경보(警報)가 몹시 급박함을 듣고 군세(軍勢)가 외롭고 약하다고 핑계하면서 모두 철수하여 돌아가려고 했으므로, 경리가 물러나 움츠려서는 안 된다는 뜻을 보여준 것이다.
원문
○經理閉門治行, 不言所向, 或云向江華, 或云往水原, 或以爲撤兵西還, 人心洶懼, 莫知所措。 大臣請對, 講論停留之事, 將罷, 聞經理已爲上馬, 上卽動駕。 經理將向水原, 提督追及南大門外, 勒馬强請曰: "賊兵迫近, 而老爺決意前進, 賊若由他徑路, 遶出於後, 則進無所歸, 退不可得, 徒損聲威, 有害無益。 而老爺若往, 則老此麻貴, 其敢安坐於此乎? 孤軍前進, 變不可測。 請老爺商量焉。" 經理曰: "自有道理。" 因向銅雀江路, 提督不得已隨之。 上追至屯地山, 經理送人告曰: "請國王不須鼓吹, 只率二三陪臣赶來, 要與之講話" 云。 上謂承旨曰: "予曾不言乎? 江華之語, 非矣。 豈有是理哉?" 上赶到銅雀江邊, 與經理、提督,竝馬而行。 臨海君扈駕在後, 適馬驕逸, 出經理之前, 經理使之前來曰: ‘此是何人?’ 通官曰: " 國王子臨海君也。" 經理因使跟行。 遂行到江口浮橋, 橋路狹隘, 而天兵塡塞,人不得通。 侍從之臣、扈衛之官, 皆落後, 惟宣傳官鄭護、柳永瑞及內官數人從焉。 上與經理、提督渡江, 因上那邊山脊, 諸官追及焉。 經理與提督, 派送手下軍千有餘騎, 分作對陣于兩邊峯上, 盤旋馳騁, 似若揚威之爲者。 仍招領議政柳成龍等, 訪問南下經由道路遠近, 遙望指點曰: "此是何地?" 對曰: "乃南漢山城也。" "此地有軍糧、器械, 可以把守否? 形勢亦何如?" 因使標下將官, 帶同贊畫使韓浚謙, 査考軍兵、糧草、器械及山城形勢便否而回報云。 駐馬良久, 還下山渡江, 到銅雀這邊, 經理與上及提督, 下馬而坐。 經理曰: "請招臨海君來, 同坐講話。" 上辭以不敢當,經理强之, 上命入參。 臨海君再拜于地, 經理、提督下床扶起, 使之上坐。 臨海固辭, 經理强要, 臨海勉從之, 俄而臨海辭以不敢當, 再拜而退。 經理招出檢閱鄭弘翼曰: "爾能射否?" 上曰: "此是書生, 素不學射, 無能爲也。" 經理曰: "然則何佩弓箭爲?" 上曰: "只爲威儀之具耳。" 經理笑而命出。 又指內官等曰: "此輩亦能射乎?" 上曰: "粗能矣。" 經理遂令張帿, 命唐人及我國人等較射。 經理見我國人射法曰: "好好。 天兵則矢力不緊, 而貴國則發矢猛利。 若是則何畏乎賊?" 仍問曰: "南方之人, 亦能如此乎?" 上曰: "然矣。" 經理曰: "如此善射, 而何使賊攔入乎?" 上曰: "素不習戰, 故恇怯至此矣。" 經理曰: "令養大其膽氣, 可也。" 射畢, 各給銀錢有差。 又令天兵, 試放虎蹲砲於江邊, 吹角一聲, 各放一砲, 聲震天地。 經理曰: "此何如?" 上曰: "至於今日, 得見天威之雄壯。 彼賊不足平。 深幸。" 經理曰: "若多設這樣砲子於此邊, 則賊何敢得渡乎?" 日暮上與經理、提督, 先後入城。 是日也, 上每逢百姓, 號哭於道, 恐上之西幸者, 輒卽親諭曰: "予隨天將, 往來江上, 爾等毌慮予之去不反也, 各安其業焉。" 百姓聞之, 無不相稽感泣。 時經理以諸將官聞賊報甚迫, 托以軍勢孤弱, 皆欲撤還, 故以示不可退縮之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