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92권, 선조 30년 9월 8일 을미 2/4 기사 /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직산 부근에서 중국군이 올린 전과를 접대 도감이 보고하다
국역
접대 도감(接待都監)이 아뢰었다.
"방금 당보(塘報)가 경리 아문(經理衙門)에 들어왔습니다. 전일에 떠난 중국 군대가 직산(稷山) 남쪽 10리쯤 되는 지역의 험하고 좁은 데가 많은 곳에 매복해 있다가, 어떤 장수의 수하인지 모르는 왜적의 선봉을 만나 말에서 내려 시살(廝殺)하다가 잠시 서로 물러났습니다. 중국 병사들이 급한 나머지 수급을 벨 겨를도 없이 마구 죽이자 나머지 왜적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어제 떠나 보낸 3천 군사가 이미 도착하여 추격 중이라 합니다. 이것은 바로 오늘의 소식입니다.
또 중국 병사가 진중(陣中)에서 달려와 구두로 보고하기를 ‘적의 머리 30급을 베었고 총에 맞아 죽은 자는 부지 기수이다. 오후에 각각 수습하여 진을 쳤는데 벤 수급(首級) 중에는 금회(金盔)와 금갑(金甲)을 입은 자가 몇 명 있었다. 이들은 필시 왜적의 우두머리일 것이다.’ 하였습니다."
원문
선조실록92권, 선조 30년 9월 8일 을미 2/4 기사 /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직산 부근에서 중국군이 올린 전과를 접대 도감이 보고하다
국역
접대 도감(接待都監)이 아뢰었다.
"방금 당보(塘報)가 경리 아문(經理衙門)에 들어왔습니다. 전일에 떠난 중국 군대가 직산(稷山) 남쪽 10리쯤 되는 지역의 험하고 좁은 데가 많은 곳에 매복해 있다가, 어떤 장수의 수하인지 모르는 왜적의 선봉을 만나 말에서 내려 시살(廝殺)하다가 잠시 서로 물러났습니다. 중국 병사들이 급한 나머지 수급을 벨 겨를도 없이 마구 죽이자 나머지 왜적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어제 떠나 보낸 3천 군사가 이미 도착하여 추격 중이라 합니다. 이것은 바로 오늘의 소식입니다.
또 중국 병사가 진중(陣中)에서 달려와 구두로 보고하기를 ‘적의 머리 30급을 베었고 총에 맞아 죽은 자는 부지 기수이다. 오후에 각각 수습하여 진을 쳤는데 벤 수급(首級) 중에는 금회(金盔)와 금갑(金甲)을 입은 자가 몇 명 있었다. 이들은 필시 왜적의 우두머리일 것이다.’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