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87권, 선조 30년 4월 1일 신유 3/3 기사 /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접반사 황신이 송운의 환보와 양 포정의 일로 서장을 올리다
국역
접반사(接伴使) 황신(黃愼) 【간교한 정철(鄭澈)을 아첨하여 섬겼고 마음가짐이 자못 편벽하여 덕보다 재주가 낫다고는 하나 볼 만한 것은 없었다. 】 의 서장(書狀)에,
"당일 책사(冊使)가 역관(譯官) 문응추(文應樞)를 시켜 신에게 전하기를 ‘우리가 여기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송운(松雲)의 환보(還報)를 기다려 조처를 취하기 위해서인데, 이제 듣건대 송운은 왕경(王京)을 향하여 떠날 것이라 하니, 우리를 와서 만나보려 하지 않고 이 체찰사(李體察使)의 보고도 자세하지 않으면 우리가 무엇에 근거하여 계획을 시행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귀국에서 각기 자기의 뜻만을 주장하니 우리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가 양 포정(楊布政)이 나오기를 기다려 왕경에서 만난 뒤 다시 상의하려고 하였으나 양 포정이 지금 부모상을 당하여 돌아갔으니, 어느 사람이 그를 대신하여 나올런지 모르겠다. 설혹 나온다 하여도 오기가 퍽 더딜 것이다. 양야(楊爺)는 귀국의 사정을 본래 잘 알고 있으므로 처치를 반드시 알맞게 할 것인데, 이제 다시 사람을 바꾼다면 과연 기대에 부응할런지 모르겠다.’ 하고, 또 ‘정성(正成)이 떠날 적에 4월 20일 이후에 회보하기로 하였으니, 앞으로 20일이 남았을 뿐이다. 그대가 미리 속히 처치하지 않았다가는 반드시 기회를 놓칠 것이다’ 하였습니다. 책사의 말을 살펴보니, 송운이 돌아와서 한 얘기가 자세하지 않아서 마치 자기들을 상관하지 못하게 하는 듯한 눈치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 듯합니다. 양 포정은 이미 나오지 않는다 했고, 책사도 특별히 북쪽으로 올라간다는 기별이 없습니다."
하였는데, 비변사(備邊司)에 계하(啓下)하였다.
원문
○接伴使黃愼 【媚事奸澈, 秉心頗僻, 雖有勝德之才, 無足可觀者。】 書狀:
當日冊使, 使譯官文應 樞, 傳語於臣曰: "我之留此, 欲待松雲之還報, 有所處置, 而今聞松雲, 且向王京, 不肯來見我, 李體察所報, 亦不仔細, 我何所據而行計耶? 此是爾國各主意, 我亦沒奈何。 且我欲俟楊布政出來, 相見於王京後, 再回商量, 而楊布政今又丁憂回去, 不知誰人替他出來。 設或出來, 其來必遲。 楊爺則素知爾國事情, 處置必能得宜, 今若再換人, 則未知果副所望耳。" 又曰: "正成之行, 約以四月念後回報, 前頭只有二十日字。 其前倘不急處置, 則必失機會矣。" 觀冊使之語, 則蓋以松雲回話, 不爲仔細, 有若使己不相干預, 故有此說話矣。 楊布政旣不出來, 冊使別無北上之奇事。
啓下備邊司。
선조 30년 (1597) 4월 1일
선조실록87권, 선조 30년 4월 1일 신유 3/3 기사 /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접반사 황신이 송운의 환보와 양 포정의 일로 서장을 올리다
국역
접반사(接伴使) 황신(黃愼) 【간교한 정철(鄭澈)을 아첨하여 섬겼고 마음가짐이 자못 편벽하여 덕보다 재주가 낫다고는 하나 볼 만한 것은 없었다. 】 의 서장(書狀)에,
"당일 책사(冊使)가 역관(譯官) 문응추(文應樞)를 시켜 신에게 전하기를 ‘우리가 여기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송운(松雲)의 환보(還報)를 기다려 조처를 취하기 위해서인데, 이제 듣건대 송운은 왕경(王京)을 향하여 떠날 것이라 하니, 우리를 와서 만나보려 하지 않고 이 체찰사(李體察使)의 보고도 자세하지 않으면 우리가 무엇에 근거하여 계획을 시행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귀국에서 각기 자기의 뜻만을 주장하니 우리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가 양 포정(楊布政)이 나오기를 기다려 왕경에서 만난 뒤 다시 상의하려고 하였으나 양 포정이 지금 부모상을 당하여 돌아갔으니, 어느 사람이 그를 대신하여 나올런지 모르겠다. 설혹 나온다 하여도 오기가 퍽 더딜 것이다. 양야(楊爺)는 귀국의 사정을 본래 잘 알고 있으므로 처치를 반드시 알맞게 할 것인데, 이제 다시 사람을 바꾼다면 과연 기대에 부응할런지 모르겠다.’ 하고, 또 ‘정성(正成)이 떠날 적에 4월 20일 이후에 회보하기로 하였으니, 앞으로 20일이 남았을 뿐이다. 그대가 미리 속히 처치하지 않았다가는 반드시 기회를 놓칠 것이다’ 하였습니다. 책사의 말을 살펴보니, 송운이 돌아와서 한 얘기가 자세하지 않아서 마치 자기들을 상관하지 못하게 하는 듯한 눈치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 듯합니다. 양 포정은 이미 나오지 않는다 했고, 책사도 특별히 북쪽으로 올라간다는 기별이 없습니다."
하였는데, 비변사(備邊司)에 계하(啓下)하였다.
원문
○接伴使黃愼 【媚事奸澈, 秉心頗僻, 雖有勝德之才, 無足可觀者。】 書狀:
當日冊使, 使譯官文應 樞, 傳語於臣曰: "我之留此, 欲待松雲之還報, 有所處置, 而今聞松雲, 且向王京, 不肯來見我, 李體察所報, 亦不仔細, 我何所據而行計耶? 此是爾國各主意, 我亦沒奈何。 且我欲俟楊布政出來, 相見於王京後, 再回商量, 而楊布政今又丁憂回去, 不知誰人替他出來。 設或出來, 其來必遲。 楊爺則素知爾國事情, 處置必能得宜, 今若再換人, 則未知果副所望耳。" 又曰: "正成之行, 約以四月念後回報, 前頭只有二十日字。 其前倘不急處置, 則必失機會矣。" 觀冊使之語, 則蓋以松雲回話, 不爲仔細, 有若使己不相干預, 故有此說話矣。 楊布政旣不出來, 冊使別無北上之奇事。
啓下備邊司。
원본
선조 30년 (1597) 4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