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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82권, 선조 29년 11월 19일 신해 6/7 기사 /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홍문관이 파천에 대한 논의보다는 힘껏 싸울 계책을 세우는 것이 옳다고 아뢰다

국역

홍문관(弘文館)이 【부제학 윤승훈(尹承勳), 응교 윤돈(尹暾), 부응교 권협(權悏), 부교리 남이공(南以恭), 수찬 신설(申渫). 】 상차(上箚)하기를,

"생각건대, 신들의 직임이 근밀(近密)한 관계상 나라의 일이 날로 글러가고 백성의 마음이 날로 흩어져 가는 것을 목격하고 매우 근심되고 답답해 못 견디어 다시 천혼(天閽)에서 부르짖게 되었으니, 성명(聖明)께서는 살피소서. 신들이 생각건대, 이 적이 필시 움직일 형세가 있다고는 하나. 아직 움직이는 형상이 보이지는 않고, 두려워할 만한 소문이 들린다고는 하나 아직 두려워할 만한 사실은 없습니다. 황신(黃愼)이 한 번 신보한 것밖에는 소식이 끊어져서 적의 동정을 알 수 없습니다. 적이 움직이더라도 아득히 천리 밖에 있어서 영향도 미치지 않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그런데도 원근(遠近)이 소연하고 그중에서도 도하(都下)가 더욱 심하여 물끊듯 물결치듯 창황히 달아나고 피하다가 도둑에게 겁탈당하고 길에 쓰러지는 자까지 있으니 이것이 참으로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참으로 전하의 마음이 한번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전하께서 일월(日月)처럼 밝으시나 점점 어두워지고, 굳센 결단이 있으시나 날로 연약해져 분발하여 힘쓰려는 뜻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묘당(廟堂)에서도 기상이 쓸쓸하여 감개(感慨)하고 격앙(激昻)하는 기풍이 없어져 서로 대계(大計)를 강론한다고 해도 어찌 할 수 없다느니 어느 곳이 피할 만하다느니 하는 데에 지나지 않고 있습니다. 아, 이것이 어찌 대계이겠습니까. 적이 오지도 않았는데 방비할 방책을 강구하지는 않고 먼저 물러가 피할 곳을 의논하는데도 대계라고 한다는 것은 신들이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신들이 비변사(備邊司)에 내린 분부를 보건대, 전하께서도 물러가 피하는 것을 대계로 여기시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신들은 미안하게 여깁니다. 이 설(說)은 다만 이미 그렇게 될 조짐이 있으므로 행여 그 망하여 가는 데에서 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논하는 것일 뿐입니다. 어찌 단단히 지키면 망하고 달아나 피하면 흥할 수가 있기에 본받아 경계로 삼을 수 있단 말입니까. 삼국(三國)이 흥하고 망한 자취가 서적에 분명히 실려 있으니,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그 설이 그른 줄 아시면서 도리어 이를 취하시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전하의 마음이 너무 동요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의 이른바 대계라는 것에 반드시 망할 형세가 있는 것은 낱낱이 말하지 않아도 넉넉하니, 무슨 이유에서이겠습니까? 경성(京城)에서 한 걸음 물러가면 해서(海西)로 갈 뿐이고, 해서에서 어쩔 수 없이 물러가게 되면 관서(關西)로 갈 뿐이고, 관서에서 부득이 물러가게 되면 요(遼)가 있을 뿐인데, 전하께서 어찌 요로 건너가실 수 있겠습니까. 신들이 듣건대, 적이 말하기를 ‘왕년에 뜻대로 된 것은 저들이 태평하였기 때문이나, 이제는 군사가 길들고 싸움에 익숙하여 도모하기 쉽지 않다.’ 하니, 이것은 방비가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형세에 따라 이롭게 유도하고 스스로 강해지도록 힘쓴다면, 적이 강하더라도 승패에 대해 염려할 것이니, 어찌 감히 쉽사리 전진하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서 먼저 스스로 물러가 움츠려서 그들이 마음대로 장구(長驅)하게 한다면 또한 위태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의 인심은 병란이 일어난 처음과는 달라서 삼군(三軍)·만성(萬姓)이 다 싸우고 지키기를 바라니, 이것이 하늘의 뜻이기는 하나 또한 이해(利害)를 헤아리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전하께서 이 뜻에 따라 쓰신다면 충의(忠義)를 극진히 이룰 것이므로 난리가 일어나도 걱정할 것이 없겠으나, 이 뜻을 거스르고서 버리신다면 민심이 변해 적을 따르게 되어 내환(內患)이 당장 닥치게 될 것입니다.

아, 존망(存亡)의 기틀이 전하의 한 동정(動靜)에서 결정되는데, 민간에서 전하는 말에 의하면, 중전(中殿)께서는 날을 잡아 떠나실 것이고, 다시 경보(警報)가 있으면 대가(大駕)도 이어서 움직일 것이라 합니다. 신들이 처음에는 그렇게 여기지 않았으나, 부마(夫馬)를 정리하여 해서(海西)로 나르느라고 길에 잇달았다는 말을 듣고서는 의혹하게 되었습니다. 진언(進言)하는 자가 다들 경성을 지킬 수 있다고는 말하나 그 지키는 방도를 말하지 않으므로, 전하께서 믿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신들은 반드시 적이 성 밑에 오고 나서야 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집에 견주면 울타리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 집을 지키는 방도입니다. 하삼도(下三道)는 경성의 울타리인데, 탕잔(蕩殘)하다고는 하나 정병(精兵) 수만을 얻을 수 있고, 양식이 적다고는 하나 몇 달을 지탱하기에 충분하며, 장재(將材)가 모자란다고는 하나 그래도 힘껏 싸울 군사가 있으니, 나누어 요해지를 차지하고 서로 성원한다면 어찌 전수(戰守)하는 계책이 될 수 없겠습니까.

경성으로 말하면 성안의 민호(民戶)가 1만이 넘고 포수(砲手)·살수(殺手)가 1천이 넘습니다. 여기에 관서·해서·경기의 군졸을 더하고 중국에서 온 3만의 군사를 합하면 군사가 적다고 할 수 없을 것이고, 태창(太倉)의 곡식 5만에 중국에서 보내온 10만의 곡식을 더하면 양식도 적다고 할 수 없을 것이며, 그 밖에 공격하여 찌르고 쏘는 기구가 다 갖추어져서 기계(器械)도 풍부하니, 위아래가 의리를 떨치고 장상(將相)이 힘을 합하여 전하의 신무(神武)로 진압한다면, 경성을 어찌 지킬 수 없겠습니까. 전하께서 전국을 돌아보시더라도, 무릇 성지(城池)가 튼튼하고 군량이 모여 있고 기계가 많은 것이 경성과 같은 데가 다시 어디에 있기에 경성을 반드시 버릴 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중국에서 들으면 또한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작은 나라를 돌보는 마음이 게을러질는지도 모르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신들은 이 두어 가지 일로써 전하의 마음이 한결같이 동요되기만 하고 나라의 일은 어찌할 수 없다고 포기하셨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이런 위망(危亡)한 때를 당해서는 편전(便殿)에 나아가 대신과 뭇 신하들이 자주 진대(進對)하도록 허락하여 대계(大計)를 면전에서 결정하기도 하고 군책(群策)을 널리 듣기도 하여 어려움을 구제하기에 겨를이 없으셔야 할텐데, 구중 궁궐에 깊이 들어앉으신 채 합문(閤門)을 오랫동안 닫아 걸고는 긴급한 일이 있어도 문서에만 의지하시니, 신들은 괴이하게 여깁니다. 대각(臺閣)의 차(箚)와 중외(中外)의 소(疏)가 잇따라 올라와도 여유있게 받아들이는 말씀이 글에 나타나지 않고 재량하여 취택하시는 뜻이 명령에 보이지 않아서, 충직한 말과 지극한 계책을 마침내 헛된 곳으로 돌아가게 하니, 신들은 한탄스럽습니다.

일개 저자의 백성은 다 말쌀[斗米]을 내어서라도 군수(軍需)를 돕는 판에 내수사(內需司)의 면포(綿布)는 관은(官銀)으로 바꾸라고 명하시니, 신들은 이 일이 과연 성지(聖旨)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만일에 외간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면, 전하께서는 군수에 쓰지 않고 은을 사서 무엇에 쓰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아, 전하의 한 마음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에서 움직이자마자 만사가 와해하여 수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위망의 화(禍)가 적이 오기 전에 이른다는 것을 전하께서도 어찌 듣지 않으셨겠습니까. 참으로 통탄스럽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가벼이 움직이려는 생각을 먼저 진정하여 만백성을 진정하는 근본으로 삼고, 구차히 피하려는 사심을 먼저 이겨서 어지러움을 다스리고 적을 치는 기본으로 삼으며, 환하게 다시 도모하고 꿋꿋하게 분발하여 빨리 대계를 정해 진취할 방책을 계획하고, 성지(聖志)를 확고히 지켜서 후인(後人)의 논(論)에 현혹되지 말며, 인심을 반드시 따라야 할 것으로 여겨 물러가 보전할 것을 생각하지 말고, 경성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으로 여겨 안팎을 수선하며, 마음을 트고 정성을 보여 삼가서 깊게 품은 속 마음을 넓히고, 속을 비우고 간언(諫言)을 받아들여 막힌 언로(言路)를 열며, 내탕(內帑)을 풀어 양식을 보태 재물을 탐내는 데에 대한 경계를 깊이 간직하여 온 백성으로 하여금 성심(聖心)이 어디에 있는지를 환히 알게 하소서. 그러면 어느 누가 감동하고 고무하여 나아가 죽는 것을 영화롭게 여기고 물러가 사는 것을 욕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바라건대, 성명은 유의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차자를 살펴봤다. 참으로 아름답게 여긴다. 다만 우리 나라의 일은 문사(文士)의 오활한 생각에서 그르쳐지는 것이 많거니와, 국가의 대계는 자연 묘당(廟堂)에서 처리해야 할 것이니,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원문

○弘文館箚 【副提學尹承勳、應敎尹暾、副應敎權悏、副校理南以恭、修撰申渫。】 曰:

伏以, 臣等職在近密, 目擊國事之日非, 民心之日散, 不勝憂遑憫迫之至, 須至再叫天閽, 惟聖明垂察焉。 臣等竊惟, 此賊雖有必動之勢, 而未見必動之形, 雖聞可懼之聲, 而未有可懼之實。 黃愼一報之外, 消息斷絶, 賊之動靜, 未可知也。 假使賊動, 邈在千里, 影響不及, 尙何懼哉, 而遠近騷然, 都下益甚, 湯沸波拆, 蒼黃奔避, 至有被盜刦掠, 顚仆道路者, 是誠何哉? 良由殿下之心一動故也。 是故殿下有日月之明, 而漸至闇昧, 有乾剛之斷, 而日就荏弱, 莫有奮發砥礪之志, 以至廟堂之上, 氣象蕭然, 未見感慨激昻之風, 相與講論大計者, 不過曰無可奈何, 曰某地可避。 嗚呼! 是豈大計也哉? 賊未至矣, 不講備禦之策, 先議退避之地, 而曰大計者, 臣等未之聞也。 臣等伏覩下備邊司之敎, 有以知殿下, 亦以退避爲大計也。 臣等竊以爲未安也。 是說也, 但據已然之跡, 幸其興於其亡而論耳。 豈有膠守而亡, 出避而興, 而可爲法戒哉? 三國興亡之跡, 昭載于籍, 焉可誣也? 殿下知其說之非, 而反有取焉, 何哉? 殿下之心, 無乃過動乎? 今日之所謂大計, 有必亡之勢, 不一而足, 何也? 退京城一步, 則海西而已; 退海西不已, 則關西而已; 退關西不已, 則惟有遼耳。 殿下其可度遼乎? 臣等聞賊言, 往歲之得志, 以彼之恬憘也, 今則兵鍊戰習, 未易圖也。 是畏其有備也。 若因勢利導, 懋爲自强, 則賊雖强, 亦有勝敗之慮, 何敢輕進? 不然而先自退縮, 任其長驅, 則不亦殆哉? 今日人心, 異於變初, 三軍、萬姓, 咸願戰守, 是雖天意, 亦出於利害之心也。 殿下順而用之, 則盡成忠義, 亂不足(定)〔憂〕 也, 逆而棄之, 則運而徇賊, 內患立至矣。 嗚呼! 存亡之幾, 決於殿下之一動靜, 而民間傳言, 中殿卜日將發, 再有警報, 大駕亦將繼動。 臣等初不以爲然也, 及聞整理夫馬, 轉輸海西, 相屬於道, 臣等竊惑焉。 進言者皆曰京城可守, 而不言其所以守, 故殿下不信也。 臣等以爲, 非必賊至城下, 然後方爲守城。 譬之於家, 固藩籬, 所以守家也。 下三道, 京城之藩籬也。 雖曰蕩殘, 精兵可得數萬, 糧食雖少, 足支數月, 將材雖乏, 猶有力戰之士。 若使分據要害, 互爲聲援, 則豈不可爲戰守之計哉? 至於京城, 則城中民戶萬餘, 砲、殺手千有餘人。 添之關西、海西、京畿之卒, 合之以天朝三萬之兵, 則兵不爲少; 太倉之粟五萬, 繼之以天朝十萬之穀, 則食不爲少; 其他攻擊刺射之具皆備, 器械又富也。 如使上下奮義, 將相協力, 鎭之以殿下之神武, 則京城豈可不守乎? 殿下環顧域中, 凡城池之固, 兵糧之聚, 器械之多, 更有如京城者, 而以爲必棄之地乎? 天朝聞之, 亦且以爲如何, 而字小之心, 或幾於怠矣, 豈不寒心哉? 臣等且以數事, 知殿下之心一於動, 而付國事於無可奈何之地也。 當此危亡之時, 正宜出御便殿, 大臣群僚, 頻許進對, 或面決大計, 或延攬群策, 以濟艱難之不暇, 而深居九重, 久閉閤門, 雖有緊急, 只憑文書, 臣等竊怪焉。 臺閣之箚, 中外之疏, 相繼沓至, 優納之辭, 不形於筆札, 裁擇之意, 不見於命令, 忠言至計, 竟歸虛地, 臣等竊嘆焉。 一廛之氓, 皆出斗米, 以助軍興, 而內需綿布, 命易官銀, 臣等未知此事, 果出於聖旨, 而萬分有一如外間之云云, 則殿下不爲軍需之用而奚有於貿銀哉? 嗚呼! 殿下一心, 乍動於冥冥之中, 而萬事瓦裂, 莫可收拾。 危亡之禍, 不待賊至, 殿下亦豈不聞? 誠可痛哉! 伏願殿下, 先定輕動之一念, 以爲鎭靜萬民之本, 先勝苟避之私心, 以爲撥亂討賊之基, 皎然改圖, 毅然奮發, 亟定大計, 規畫進取之策, 確守聖志, 毋惑後人之論, 以人心爲必可順, 而勿思退保, 以京城爲必可守, 而繕修內外, 開心見誠, 以恢恭默之淵衷, 虛懷納諫, 以闡閉塞之言路, 發帑助糧, 深存殉貨之戒, 使一國之民, 曉然知聖心之所在, 則孰不感動鼓舞, 榮於進死, 辱於退生哉? 伏惟聖明留意焉。

答曰: "省箚。 良用嘉焉。 但我國之事, 誤於文士之迂計者多矣。 國家大計, 自有廟堂, 從當議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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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82권, 선조 29년 11월 19일 신해 6/7 기사 /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홍문관이 파천에 대한 논의보다는 힘껏 싸울 계책을 세우는 것이 옳다고 아뢰다

국역

홍문관(弘文館)이 【부제학 윤승훈(尹承勳), 응교 윤돈(尹暾), 부응교 권협(權悏), 부교리 남이공(南以恭), 수찬 신설(申渫). 】 상차(上箚)하기를,

"생각건대, 신들의 직임이 근밀(近密)한 관계상 나라의 일이 날로 글러가고 백성의 마음이 날로 흩어져 가는 것을 목격하고 매우 근심되고 답답해 못 견디어 다시 천혼(天閽)에서 부르짖게 되었으니, 성명(聖明)께서는 살피소서. 신들이 생각건대, 이 적이 필시 움직일 형세가 있다고는 하나. 아직 움직이는 형상이 보이지는 않고, 두려워할 만한 소문이 들린다고는 하나 아직 두려워할 만한 사실은 없습니다. 황신(黃愼)이 한 번 신보한 것밖에는 소식이 끊어져서 적의 동정을 알 수 없습니다. 적이 움직이더라도 아득히 천리 밖에 있어서 영향도 미치지 않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그런데도 원근(遠近)이 소연하고 그중에서도 도하(都下)가 더욱 심하여 물끊듯 물결치듯 창황히 달아나고 피하다가 도둑에게 겁탈당하고 길에 쓰러지는 자까지 있으니 이것이 참으로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참으로 전하의 마음이 한번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전하께서 일월(日月)처럼 밝으시나 점점 어두워지고, 굳센 결단이 있으시나 날로 연약해져 분발하여 힘쓰려는 뜻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묘당(廟堂)에서도 기상이 쓸쓸하여 감개(感慨)하고 격앙(激昻)하는 기풍이 없어져 서로 대계(大計)를 강론한다고 해도 어찌 할 수 없다느니 어느 곳이 피할 만하다느니 하는 데에 지나지 않고 있습니다. 아, 이것이 어찌 대계이겠습니까. 적이 오지도 않았는데 방비할 방책을 강구하지는 않고 먼저 물러가 피할 곳을 의논하는데도 대계라고 한다는 것은 신들이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신들이 비변사(備邊司)에 내린 분부를 보건대, 전하께서도 물러가 피하는 것을 대계로 여기시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신들은 미안하게 여깁니다. 이 설(說)은 다만 이미 그렇게 될 조짐이 있으므로 행여 그 망하여 가는 데에서 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논하는 것일 뿐입니다. 어찌 단단히 지키면 망하고 달아나 피하면 흥할 수가 있기에 본받아 경계로 삼을 수 있단 말입니까. 삼국(三國)이 흥하고 망한 자취가 서적에 분명히 실려 있으니,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그 설이 그른 줄 아시면서 도리어 이를 취하시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전하의 마음이 너무 동요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의 이른바 대계라는 것에 반드시 망할 형세가 있는 것은 낱낱이 말하지 않아도 넉넉하니, 무슨 이유에서이겠습니까? 경성(京城)에서 한 걸음 물러가면 해서(海西)로 갈 뿐이고, 해서에서 어쩔 수 없이 물러가게 되면 관서(關西)로 갈 뿐이고, 관서에서 부득이 물러가게 되면 요(遼)가 있을 뿐인데, 전하께서 어찌 요로 건너가실 수 있겠습니까. 신들이 듣건대, 적이 말하기를 ‘왕년에 뜻대로 된 것은 저들이 태평하였기 때문이나, 이제는 군사가 길들고 싸움에 익숙하여 도모하기 쉽지 않다.’ 하니, 이것은 방비가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형세에 따라 이롭게 유도하고 스스로 강해지도록 힘쓴다면, 적이 강하더라도 승패에 대해 염려할 것이니, 어찌 감히 쉽사리 전진하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서 먼저 스스로 물러가 움츠려서 그들이 마음대로 장구(長驅)하게 한다면 또한 위태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의 인심은 병란이 일어난 처음과는 달라서 삼군(三軍)·만성(萬姓)이 다 싸우고 지키기를 바라니, 이것이 하늘의 뜻이기는 하나 또한 이해(利害)를 헤아리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전하께서 이 뜻에 따라 쓰신다면 충의(忠義)를 극진히 이룰 것이므로 난리가 일어나도 걱정할 것이 없겠으나, 이 뜻을 거스르고서 버리신다면 민심이 변해 적을 따르게 되어 내환(內患)이 당장 닥치게 될 것입니다.

아, 존망(存亡)의 기틀이 전하의 한 동정(動靜)에서 결정되는데, 민간에서 전하는 말에 의하면, 중전(中殿)께서는 날을 잡아 떠나실 것이고, 다시 경보(警報)가 있으면 대가(大駕)도 이어서 움직일 것이라 합니다. 신들이 처음에는 그렇게 여기지 않았으나, 부마(夫馬)를 정리하여 해서(海西)로 나르느라고 길에 잇달았다는 말을 듣고서는 의혹하게 되었습니다. 진언(進言)하는 자가 다들 경성을 지킬 수 있다고는 말하나 그 지키는 방도를 말하지 않으므로, 전하께서 믿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신들은 반드시 적이 성 밑에 오고 나서야 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집에 견주면 울타리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 집을 지키는 방도입니다. 하삼도(下三道)는 경성의 울타리인데, 탕잔(蕩殘)하다고는 하나 정병(精兵) 수만을 얻을 수 있고, 양식이 적다고는 하나 몇 달을 지탱하기에 충분하며, 장재(將材)가 모자란다고는 하나 그래도 힘껏 싸울 군사가 있으니, 나누어 요해지를 차지하고 서로 성원한다면 어찌 전수(戰守)하는 계책이 될 수 없겠습니까.

경성으로 말하면 성안의 민호(民戶)가 1만이 넘고 포수(砲手)·살수(殺手)가 1천이 넘습니다. 여기에 관서·해서·경기의 군졸을 더하고 중국에서 온 3만의 군사를 합하면 군사가 적다고 할 수 없을 것이고, 태창(太倉)의 곡식 5만에 중국에서 보내온 10만의 곡식을 더하면 양식도 적다고 할 수 없을 것이며, 그 밖에 공격하여 찌르고 쏘는 기구가 다 갖추어져서 기계(器械)도 풍부하니, 위아래가 의리를 떨치고 장상(將相)이 힘을 합하여 전하의 신무(神武)로 진압한다면, 경성을 어찌 지킬 수 없겠습니까. 전하께서 전국을 돌아보시더라도, 무릇 성지(城池)가 튼튼하고 군량이 모여 있고 기계가 많은 것이 경성과 같은 데가 다시 어디에 있기에 경성을 반드시 버릴 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중국에서 들으면 또한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작은 나라를 돌보는 마음이 게을러질는지도 모르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신들은 이 두어 가지 일로써 전하의 마음이 한결같이 동요되기만 하고 나라의 일은 어찌할 수 없다고 포기하셨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이런 위망(危亡)한 때를 당해서는 편전(便殿)에 나아가 대신과 뭇 신하들이 자주 진대(進對)하도록 허락하여 대계(大計)를 면전에서 결정하기도 하고 군책(群策)을 널리 듣기도 하여 어려움을 구제하기에 겨를이 없으셔야 할텐데, 구중 궁궐에 깊이 들어앉으신 채 합문(閤門)을 오랫동안 닫아 걸고는 긴급한 일이 있어도 문서에만 의지하시니, 신들은 괴이하게 여깁니다. 대각(臺閣)의 차(箚)와 중외(中外)의 소(疏)가 잇따라 올라와도 여유있게 받아들이는 말씀이 글에 나타나지 않고 재량하여 취택하시는 뜻이 명령에 보이지 않아서, 충직한 말과 지극한 계책을 마침내 헛된 곳으로 돌아가게 하니, 신들은 한탄스럽습니다.

일개 저자의 백성은 다 말쌀[斗米]을 내어서라도 군수(軍需)를 돕는 판에 내수사(內需司)의 면포(綿布)는 관은(官銀)으로 바꾸라고 명하시니, 신들은 이 일이 과연 성지(聖旨)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만일에 외간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면, 전하께서는 군수에 쓰지 않고 은을 사서 무엇에 쓰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아, 전하의 한 마음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에서 움직이자마자 만사가 와해하여 수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위망의 화(禍)가 적이 오기 전에 이른다는 것을 전하께서도 어찌 듣지 않으셨겠습니까. 참으로 통탄스럽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가벼이 움직이려는 생각을 먼저 진정하여 만백성을 진정하는 근본으로 삼고, 구차히 피하려는 사심을 먼저 이겨서 어지러움을 다스리고 적을 치는 기본으로 삼으며, 환하게 다시 도모하고 꿋꿋하게 분발하여 빨리 대계를 정해 진취할 방책을 계획하고, 성지(聖志)를 확고히 지켜서 후인(後人)의 논(論)에 현혹되지 말며, 인심을 반드시 따라야 할 것으로 여겨 물러가 보전할 것을 생각하지 말고, 경성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으로 여겨 안팎을 수선하며, 마음을 트고 정성을 보여 삼가서 깊게 품은 속 마음을 넓히고, 속을 비우고 간언(諫言)을 받아들여 막힌 언로(言路)를 열며, 내탕(內帑)을 풀어 양식을 보태 재물을 탐내는 데에 대한 경계를 깊이 간직하여 온 백성으로 하여금 성심(聖心)이 어디에 있는지를 환히 알게 하소서. 그러면 어느 누가 감동하고 고무하여 나아가 죽는 것을 영화롭게 여기고 물러가 사는 것을 욕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바라건대, 성명은 유의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차자를 살펴봤다. 참으로 아름답게 여긴다. 다만 우리 나라의 일은 문사(文士)의 오활한 생각에서 그르쳐지는 것이 많거니와, 국가의 대계는 자연 묘당(廟堂)에서 처리해야 할 것이니,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원문

○弘文館箚 【副提學尹承勳、應敎尹暾、副應敎權悏、副校理南以恭、修撰申渫。】 曰:

伏以, 臣等職在近密, 目擊國事之日非, 民心之日散, 不勝憂遑憫迫之至, 須至再叫天閽, 惟聖明垂察焉。 臣等竊惟, 此賊雖有必動之勢, 而未見必動之形, 雖聞可懼之聲, 而未有可懼之實。 黃愼一報之外, 消息斷絶, 賊之動靜, 未可知也。 假使賊動, 邈在千里, 影響不及, 尙何懼哉, 而遠近騷然, 都下益甚, 湯沸波拆, 蒼黃奔避, 至有被盜刦掠, 顚仆道路者, 是誠何哉? 良由殿下之心一動故也。 是故殿下有日月之明, 而漸至闇昧, 有乾剛之斷, 而日就荏弱, 莫有奮發砥礪之志, 以至廟堂之上, 氣象蕭然, 未見感慨激昻之風, 相與講論大計者, 不過曰無可奈何, 曰某地可避。 嗚呼! 是豈大計也哉? 賊未至矣, 不講備禦之策, 先議退避之地, 而曰大計者, 臣等未之聞也。 臣等伏覩下備邊司之敎, 有以知殿下, 亦以退避爲大計也。 臣等竊以爲未安也。 是說也, 但據已然之跡, 幸其興於其亡而論耳。 豈有膠守而亡, 出避而興, 而可爲法戒哉? 三國興亡之跡, 昭載于籍, 焉可誣也? 殿下知其說之非, 而反有取焉, 何哉? 殿下之心, 無乃過動乎? 今日之所謂大計, 有必亡之勢, 不一而足, 何也? 退京城一步, 則海西而已; 退海西不已, 則關西而已; 退關西不已, 則惟有遼耳。 殿下其可度遼乎? 臣等聞賊言, 往歲之得志, 以彼之恬憘也, 今則兵鍊戰習, 未易圖也。 是畏其有備也。 若因勢利導, 懋爲自强, 則賊雖强, 亦有勝敗之慮, 何敢輕進? 不然而先自退縮, 任其長驅, 則不亦殆哉? 今日人心, 異於變初, 三軍、萬姓, 咸願戰守, 是雖天意, 亦出於利害之心也。 殿下順而用之, 則盡成忠義, 亂不足(定)〔憂〕 也, 逆而棄之, 則運而徇賊, 內患立至矣。 嗚呼! 存亡之幾, 決於殿下之一動靜, 而民間傳言, 中殿卜日將發, 再有警報, 大駕亦將繼動。 臣等初不以爲然也, 及聞整理夫馬, 轉輸海西, 相屬於道, 臣等竊惑焉。 進言者皆曰京城可守, 而不言其所以守, 故殿下不信也。 臣等以爲, 非必賊至城下, 然後方爲守城。 譬之於家, 固藩籬, 所以守家也。 下三道, 京城之藩籬也。 雖曰蕩殘, 精兵可得數萬, 糧食雖少, 足支數月, 將材雖乏, 猶有力戰之士。 若使分據要害, 互爲聲援, 則豈不可爲戰守之計哉? 至於京城, 則城中民戶萬餘, 砲、殺手千有餘人。 添之關西、海西、京畿之卒, 合之以天朝三萬之兵, 則兵不爲少; 太倉之粟五萬, 繼之以天朝十萬之穀, 則食不爲少; 其他攻擊刺射之具皆備, 器械又富也。 如使上下奮義, 將相協力, 鎭之以殿下之神武, 則京城豈可不守乎? 殿下環顧域中, 凡城池之固, 兵糧之聚, 器械之多, 更有如京城者, 而以爲必棄之地乎? 天朝聞之, 亦且以爲如何, 而字小之心, 或幾於怠矣, 豈不寒心哉? 臣等且以數事, 知殿下之心一於動, 而付國事於無可奈何之地也。 當此危亡之時, 正宜出御便殿, 大臣群僚, 頻許進對, 或面決大計, 或延攬群策, 以濟艱難之不暇, 而深居九重, 久閉閤門, 雖有緊急, 只憑文書, 臣等竊怪焉。 臺閣之箚, 中外之疏, 相繼沓至, 優納之辭, 不形於筆札, 裁擇之意, 不見於命令, 忠言至計, 竟歸虛地, 臣等竊嘆焉。 一廛之氓, 皆出斗米, 以助軍興, 而內需綿布, 命易官銀, 臣等未知此事, 果出於聖旨, 而萬分有一如外間之云云, 則殿下不爲軍需之用而奚有於貿銀哉? 嗚呼! 殿下一心, 乍動於冥冥之中, 而萬事瓦裂, 莫可收拾。 危亡之禍, 不待賊至, 殿下亦豈不聞? 誠可痛哉! 伏願殿下, 先定輕動之一念, 以爲鎭靜萬民之本, 先勝苟避之私心, 以爲撥亂討賊之基, 皎然改圖, 毅然奮發, 亟定大計, 規畫進取之策, 確守聖志, 毋惑後人之論, 以人心爲必可順, 而勿思退保, 以京城爲必可守, 而繕修內外, 開心見誠, 以恢恭默之淵衷, 虛懷納諫, 以闡閉塞之言路, 發帑助糧, 深存殉貨之戒, 使一國之民, 曉然知聖心之所在, 則孰不感動鼓舞, 榮於進死, 辱於退生哉? 伏惟聖明留意焉。

答曰: "省箚。 良用嘉焉。 但我國之事, 誤於文士之迂計者多矣。 國家大計, 自有廟堂, 從當議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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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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