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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82권, 선조 29년 11월 9일 신축 5/7 기사 /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해평 부원군 윤근수가 왜적 침입에 대한 대비책을 아뢰다

국역

해평 부원군(海平府院君) 윤근수(尹根壽)가 아뢰기를,

"신이 황신(黃愼)의 장계(狀啓) 가운데에 있는 사연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가슴을 치며 스스로 안정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어찌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가 욕되고 임금이 욕되면 신하가 죽는다는 경우에 그칠 뿐이겠습니까. 저 적이 방자하게도 침범한다는 말을 하여 조금도 꺼리는 것이 없으니, 대개 우리를 주머니 속의 물건처럼 보아서 스스로 반드시 이길 형세라 생각하여 다시는 먼저 말이 퍼지는 것을 꺼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적이 다시 온다면, 전일 익히 패하여 흩어지던 군졸로 맞설 것인데, 어찌 다시 지탱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감히 생각한 것으로 함부로 어리석은 말을 하여 묘당(廟堂)의 계책에 만분의 일이라도 우러러 도우려고 삼가 아래에 조목조목 적으니 성명(聖明)께서 재단하여 취택하시기 바랍니다.

신이 접때 원균(元均)을 도로 경상 우수사(慶尙右水使)로 삼아 주사(舟師)를 다시 거느려 적이 오는 데에 미리 대비하기를 청하였으나, 원균이 현재 맡은 병사(兵使)를 대신할 자를 얻기가 어렵다는 것을 드디어 알려 왔습니다. 신이 전에 《일본고(日本考)》를 보니, 근일 임회 후(臨淮侯) 이언공(李言恭)이 지은 것인데, 왜적은 육투(陸鬪)를 잘하고 수전(水戰)을 잘못한다고 분명히 말한 것이 있습니다. 또 임진년의 병화(兵禍) 이후로 저들의 예봉(銳鋒)을 크게 꺾은 것은 주사(舟師)만이 그러하였을 뿐이고 육전(陸戰)은 다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또 듣건대 적은 주사를 특히 심하게 두려워하여 피하고 감히 접근하지 못하나 우리 육군은 어린아이처럼 생각한다 합니다.

임진년에 수전한 장수들 중에서 공이 있는 자는 손꼽아 셀 수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원균이 가장 우직하여 제몸을 잊고 용맹을 떨치며 죽음을 피하지 않아서 공적이 매우 뚜렷합니다. 또 수전에 익숙하여 적을 보는 대로 나아가 이기기만 하고 지는 일이 없으므로 군졸이 믿어서 두려워하지 않는데, 이제 주사를 버리고 기보(騎步)를 거느리니, 병사(兵使)가 수사(水使)보다 높기는 하나, 이것은 옛사람이 이른바, 그 잘하는 것을 버려두고 그 재주를 못 쓰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제 다섯 적장(賊將)과 큰 군사가 겨울이나 봄에 올 것이라는 신보(申報)를 들었으니, 우리 나라에서는 서둘러 바다 가운데에서 막아 죽일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혹 조금이라도 늦추어서 적이 뭍에 내릴 수 있게 한다면, 뒤에 보기(步騎) 수만 명이 있더라도 어찌 선풍처럼 빨리 오는 예봉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임진년의 일을 경계해야 합니다.

바다 가운데에서 막아 죽여서 적이 감히 언덕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오늘날 적을 막는 첫째 방책이라면, 주사의 장수는 본디 과거에 싸워서 여러 번 이긴자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원균이 수군을 거느리면 반드시 이길 도리가 있음을 기대할 수 있겠으나, 마땅하지 않은 사람으로 담당하게 하여 적에게 대항하지 못함으로써 적이 혹 호남으로 가는 길을 한번 범하면 원균이 한 도의 기보 군졸을 거느려 대장(大將)이 되더라도 결코 수전에서처럼 뜻대로 싸우지 못할 것이니, 다시 수사를 삼아서 전일에 싸웠던 장기(長技)를 쓰게 하지 않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육군의 장수로 말하면 마땅한 사람이 있을 것이니, 어찌 원균을 대신하여 감당할 자가 없겠습니까.

어떤 이는 말하기를 ‘원균은 이순신(李舜臣)과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이순신이 통제사(統制使)이므로 원균을 절제(節制)할 것인데, 원균이 그 아래에 있는 것을 감수하지 못하여 두 장수가 화합되지 않을 것이니, 일이 성공될 리가 없을 듯하다.’ 하나, 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통제사란 직임은 한때의 필요에서 생긴 것이어서 그대로 둘 수도 있고 없앨 수도 있으므로, 이순신의 통제사라는 직명도 오히려 낮출 수 있고 혹 원균을 경상도 통제사라 칭하여 이순신과 명위(名位)가 대등하게 할 수도 있으니, 신축자재하게 임의로 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습니다. 이는 대개 원균의 자급(資級)이 본디 이순신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국가의 존망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감히 다시 아뢰어 번거롭게 하는 혐의를 피할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신은 지난번 또 한산(閑山)의 주사(舟師)를 빨리 거제(巨濟)의 장문포(場門浦)444) 에 진주하게 할 것을 아뢰었습니다. 이제는 저 적이 와서 침범할 형상이 이미 드러나 눈앞에 닥친 일이라 매우 급박하므로 조금도 늦출 수 없으니, 죄다 거제에 진주하여 수로(水路)를 제압하고 있다가 책사(冊使)가 나온 뒤에는 모든 오가는 적의 배를 곧 주사로 막아서 잡아 죽임으로써 적이 오는 길을 끊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혹 적의 장수가 나오는데 주사의 장수들이 전쟁을 꺼려서 미처 막지 못하였다고 핑계하거든 곧 군법으로 처리하여 군율(軍律)을 엄하게 해야 합니다. 바라건대 속히 하서(下書)하여 이순신 등이 급히 진주하도록 엄히 신칙(申勑)하여 다른 말로 핑계하지 못하게 하소서.

신은 전에 경상 감사(慶尙監司)가 되어 좌도(左道)·우도(右道)의 바닷가에 있는 각 진포(鎭浦)를 두루 다녔는데, 좌도의 개운포(開雲浦) 이북으로 말하면, 판옥선(板屋船)을 부리는 데에 익숙하지 않고 제도가 어긋나서 작전하기에 어려우므로, 바닷길이 조금만 멀면 바다로 나가는 데에는 문득 작은 배를 쓰고 판옥선은 헛되이 만들어서 매어 둘 뿐입니다. 또 좌수사(左水使)의 본영(本營)은 본디 동래(東萊) 지역에 있어서 부산(釜山)에서 매우 가까웠는데, 이제는 적을 피해 멀리 옮겨 장기(長鬐) 같은 곳에 주재하므로, 우도의 주사와 성세(聲勢)가 아득하여 서로 닿지 않습니다. 이것은 병란을 피하려는 생각이니, 급할 때에 어떻게 힘입겠습니까. 좌수사도 판옥 주사(板屋舟師)를 정제하여, 책사가 돌아와 부산에 닿거든 곧 우도의 주사가 주재한 곳에 옮기게 하여 합해서 좌우의 형세를 만들어 기각(掎角)의 계책을 삼아야 합니다. 그러면 군용(軍容)이 조금 씩씩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개운포 이북의 판옥선도 수를 줄여서 그 줄인 배의 격군(格軍)·수졸(水卒)을 좌수사가 옮겨 주재할 때에 거느리고 와서 주사가 모자라는 곳에 채워야 합니다. 개운포 이북의 판옥선이 헛된 것으로 쓸데없는 것이라면, 주사가 모자라 한 군졸이라도 매우 중요한 이때에 어찌 앉아서 보기만 하고 갈 데가 없게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크게 걱정할 것은 판옥선의 수가 적은 것이 아니라 오직 배마다 격군이 모자라는 것이니, 빨리 좌수사에게 하유하여 미리 장속(裝束)해서 시기에 맞춰 곧 봉행하게 하소서.

병화가 발생한 이후로 우리 나라의 장사(將士)는 적을 보면 곧 달아나서 혹 미처 교전하기도 전에 먼저 무너진 자도 있는데, 군졸은 ‘장수가 먼저 달아났는데 우리들만이 어찌 남아서 적봉(賊鋒)을 감당하겠는가.’ 하고, 장수가 된 자는 ‘관하의 군졸이 흩어졌는데 나만이 어찌 적을 감당하겠는가.’ 하여, 패하여 달아난 장졸(將卒)이 빈번이 서로 송사하는 자와 같으니, 먼저 달아난 자가 장수인지 군졸인지 모를 지경입니다. 이같은 짓을 그만두지 않고 적을 대하게 하면, 어찌 싸워 이겨 적을 물리칠 날이 있겠습니까. 이는 적이 다시 침입하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이미 간담이 서늘해지는 한심한 문제인 것입니다.

병법(兵法)에 ‘군사 중에 선봉(選鋒)445) 이 없으면 패한다.’ 하였습니다. 반드시 여러번 싸움을 겪어서 적을 보아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버리고 돌진하여 싸울 수 있어야 적과 혈전(血戰)하여 패배하게 되지 않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평안도·황해도·경기 등의 고을에서는 왜적이 두루 찼을 때에도 혹 여러날 동안 고전하거나 성을 지키면서 역전(力戰)한 자가 고을마다 있다 하니, 세 도에 하유하여 잘 가려 뽑아 정예하고 용맹한 자를 얻도록 힘쓰게 하여 모두 3∼4백명이나 5∼6백 명을 얻어 경중(京中)에 모아 양료(糧料)를 넉넉히 주고 말이 없는 자에게는 전마(戰馬)를 주어 나가 싸우게 하소서. 그러면 매복하였다가 차단하여 사살하기를 바랄 수 있고 맨 먼저 오르기를 책임지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신이 또 듣건대 적이 함경남도에 들어왔을 때에 강찬(姜燦)이 군사를 내어 적을 맞아 싸워서 크게 전승(全勝)을 얻고 참괵(斬馘)한 것이 매우 많았는데, 보고 들은 자가 모두 ‘이 싸움에서 군졸이 용맹을 떨치니 적은 그 위세에 눌려 마치 질풍이 가을 낙엽을 쓰는 듯하였다.’ 했습니다. 북도(北道)의 토병(土兵)으로 말하면 여러번 전투를 겪어서 사람들이 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을 보면 곧 용맹을 떨치니, 이들 3∼4백 명을 징발하여 경중(京中)에 올려와서 특별히 돌보아 남방의 적이 오는 길의 요충지에 내려보내 각자 스스로 싸우게 하여 그 치돌(馳突)하는 장기(長技)를 펼 수 있게 하면, 조금 적의 형세를 막아서 감히 뜻대로 장구(長驅)하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북도에는 접경하고 있는 호로(胡虜)가 있으므로 그 방수(防守)하는 군사를 거두어 다른 데에 쓸 수 없다.’ 하나 적들이 육진(六鎭)에 꽉 차 백성을 마구 살육하고 나온 뒤에도 호로가 끝내 우리 한 진(鎭)을 빼앗아 가지지 못하였으니, 두려울 바가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군사 3∼4백 명을 뽑아 내더라도 어찌 그 진을 비우게야 되겠습니까. 혹 호로의 환란을 염려한다면, 호로가 특히 두려워하는 것이 화포(火砲)이니, 포수(砲手)를 내려보내어 토병과 바꾸되, 그 정예한 군사를 빨리 뽑아서 왜적을 막는 데 쓰는 것이 또한 눈앞의 환란을 늦추는 데에 급히 힘쓸 일입니다.

또 사람들이 흔히 ‘포수와 살수(殺手)를 양성하는 아동대(兒童隊)는 그 의도가 뒷날의 급할 때 쓰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 환란이 눈앞에 닥쳐 있고 투사(鬪士)의 양식도 모자라는 판에 아동의 무리들까지 양식을 대줄 수 없는 형편이니, 임시로 폐지해야 한다.’ 합니다. 이 말이 조리가 있는 듯하니, 상의하여 처치하도록 아울러 명하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이렇게 써서 아뢰니, 매우 아름답고 기쁘다."

하였다.

  • [註 444] 장문포(場門浦) : 장문포(長門浦).
  • [註 445] 선봉(選鋒) : 정예한 군사.

원문

○海平府院君 尹根壽啓曰: "臣伏見黃愼狀啓中之辭, 痛心拊胸, 不能自定。 此豈特主憂臣辱, 主辱臣死而止哉? 彼賊肆然有侵犯之言, 略無顧忌, 蓋視我爲囊中物, 而自謂有必勝之勢, 不復諱其先聲之播耳。 賊若再來, 則以前日狃於敗散之卒當之, 寧復可以支吾? 臣敢以意見, 妄爲瞽說, 仰裨廟謨之萬一。 謹逐條錄於左方, 惟聖明之裁擇焉。 臣頃日請以元均, 還爲慶尙右水使, 復領舟師, 以待賊至而預備之, 乃以得元均見任兵使之代爲難, 遂至報聞。 臣曾見《日本考》, 則近日臨淮侯 李言恭所撰, 而謂倭賊長於陸鬪, 短於水戰, 明有其言。 且自壬辰兵禍之後, 大挫彼鋒者, 唯舟師爲然, 而陸戰則皆不如也。 又聞賊畏舟師特甚, 避不敢近, 而嬰視我陸軍云。 壬辰水戰, 諸將之有功者, 可指數, 而其中元均, 最戇直, 忘身奮勇, 不避死, 功績甚著。 又慣於水戰, 見賊輒前, 有勝無敗, 士卒恃而無恐, 今乃捨舟師, 領騎步。 雖兵使高於水使, 而斯乃古人所謂捨其所長, 用違其才者也。 況今五賊將及大兵之來, 當在冬春。 聞有其報, 在我國, 當汲汲爲截殺於海中之計。 如或小緩, 而使賊得以下陸, 則後雖有步騎累萬, 豈能遏其猋至之銳耶? 壬辰之事, 可以戒矣。 截殺於海中, 使賊不敢登岸, 爲今日禦賊第一策, 則其舟師之將, 固當擇其已戰而屢勝者。 均領水軍, 則可期其有必勝之理。 若以非人者當之, 不能抗賊, 賊或一犯湖南之路, 則均雖率一道騎步之卒, 而爲大將, 決不及水戰之得志也。 恐不可不更爲水使, 而用前日已戰之長技也。 至於陸軍之將, 宜有其人, 豈無堪爲均代者乎? 或謂均與李舜臣不相能。 舜臣爲統制使, 當節制元均, 均不能甘爲其下, 而兩將不和, 事恐無成, 臣則以爲不然。 統制之任, 出於一時, 可以或仍或革。 舜臣統制職名, 猶可減下, 或元均稱爲慶尙道統制使, 得以與舜臣名位相埒, 伸縮任意, 無所不可。 蓋以元均資級, 本與舜臣等也。 此乃國家存亡所係, 敢更陳達, 而煩瀆之嫌, 有不暇避者也。 臣頃日又以閑山舟師, 速進駐巨濟之場門浦陳啓矣。 今則彼賊來侵之形已著, 事迫燃眉, 不容少緩。 宜盡令進駐巨濟, 以控扼水路, 冊使出來之後, 則凡賊船往來者, 卽以舟師, 遏截捕殺, 以絶賊路。 如或賊將出來, 而舟師諸將憚於厮殺, 以未及攔截爲辭, 則輒以軍法從事, 以嚴軍律。願亟下書, 嚴勑李舜臣等, 急急進駐, 不許托以他辭。 臣前爲慶尙監司, 凡左、右道海邊各鎭浦, 曾已遍歷。 如左道開雲浦以北, 則板屋船不慣於行使, 制度齟齬, 難作戰用。 凡海路稍遠, 則下海輒用小船, 板屋船則只虛造張掛而已。 且左水使之本營, 原在東萊地, 去釜山甚近。 今乃避賊遠移, 駐在長鬐等處, 與右道舟師, 聲勢邈不相接。 此乃避亂之計, 於緩急何賴焉? 左水使亦當整飭板屋舟師, 待冊使還泊釜山, 卽使移駐于右道舟師所駐之處, 合作左右之勢, 以爲掎角之計, 則軍容可以稍壯矣。 其開雲浦以北板屋船, 亦可減數, 而其所減之船格軍、水卒, 則左水使移駐之時, 統率而來, 以補舟師不足之處也。 開雲以北之板屋, 虛張無用, 則當此舟師缺乏之時, 一率有關。 豈容坐視而莫之所乎? 今日之所大患者, 不患板屋之數少, 而唯患每船格軍之缺乏也。 請亟下諭左水使, 預爲裝束, 臨時劃卽奉行。 自兵火之後, 我國壯士, 見賊輒北, 或有未及交鋒而先潰者。 軍卒則曰: ‘將旣先遁, 我輩豈能獨存, 以當賊鋒乎?’ 爲將者則曰: ‘管下之卒旣散, 我豈獨能身當賊乎?’ 敗遁將卒, 每若相訟者, 然未知先遁者是將是卒乎。 若此不已而使之臨敵, 則寧有戰勝却敵之日乎? 此不待賊之再犯, 而已可爲澟然而寒心者。 兵法曰: ‘軍無選鋒則敗。’ 須得屢經戰陣, 見賊不懼, 忘生突戰, 然後可望其與賊血戰, 而不至於敗衂也。 平安、黃海、京畿等邑, 倭賊遍滿之時, 或苦戰累日, 或守城力戰者, 邑各有之云。 請下諭三道, 十分精抽, 務得精勇。 若通得三四百名, 或五六百名, 聚之京中, 優其糧料, 而無馬者給戰馬, 使之赴敵, 則可望其埋伏截殺, 而亦可責其先登也。 臣又聞賊入咸鏡南道, 姜燦出兵迎敵, 大獲全勝, 折馘甚多得之。 見聞者, 皆謂: ‘此戰, 士卒奮勇, 賊徒披靡, 有如疾風之掃秋葉’ 云。 至於北道土兵, 屢經戰鬪, 人不畏賊, 見賊輒奮。 若調發此輩三四百名, 上來京中, 特加存撫, 仍下送南方賊路要衝之處, 使之人自爲戰, 得展其馳突之長技, 則可以小沮賊勢, 不敢任意長驅也。 人或謂北道有接壤之胡虜, 不可撤其防守之兵而他用, 當賊遍六鎭, 血肉我民, 而出來之後, 胡虜終不奪我一鎭而有之, 其不足畏, 明矣。 雖抽出土兵三四百名, 豈止於空其鎭乎? 如或慮胡患, 則胡虜之所特畏者火砲, 下送砲手, 以換土兵。 速抽其兵之精銳者, 用以禦倭賊, 亦目前紓患之急務也。 且人多謂砲ㆍ殺手、兒童隊, 雖擬日後緩急之用, 而方今患在目前, 鬪士之餉亦匱, 未可餉及兒童之隊, 此則可以權罷云。 此言似有理。 請幷命商議處之何如?" 答曰: "如是書啓, 極爲嘉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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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82권, 선조 29년 11월 9일 신축 5/7 기사 /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해평 부원군 윤근수가 왜적 침입에 대한 대비책을 아뢰다

국역

해평 부원군(海平府院君) 윤근수(尹根壽)가 아뢰기를,

"신이 황신(黃愼)의 장계(狀啓) 가운데에 있는 사연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가슴을 치며 스스로 안정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어찌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가 욕되고 임금이 욕되면 신하가 죽는다는 경우에 그칠 뿐이겠습니까. 저 적이 방자하게도 침범한다는 말을 하여 조금도 꺼리는 것이 없으니, 대개 우리를 주머니 속의 물건처럼 보아서 스스로 반드시 이길 형세라 생각하여 다시는 먼저 말이 퍼지는 것을 꺼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적이 다시 온다면, 전일 익히 패하여 흩어지던 군졸로 맞설 것인데, 어찌 다시 지탱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감히 생각한 것으로 함부로 어리석은 말을 하여 묘당(廟堂)의 계책에 만분의 일이라도 우러러 도우려고 삼가 아래에 조목조목 적으니 성명(聖明)께서 재단하여 취택하시기 바랍니다.

신이 접때 원균(元均)을 도로 경상 우수사(慶尙右水使)로 삼아 주사(舟師)를 다시 거느려 적이 오는 데에 미리 대비하기를 청하였으나, 원균이 현재 맡은 병사(兵使)를 대신할 자를 얻기가 어렵다는 것을 드디어 알려 왔습니다. 신이 전에 《일본고(日本考)》를 보니, 근일 임회 후(臨淮侯) 이언공(李言恭)이 지은 것인데, 왜적은 육투(陸鬪)를 잘하고 수전(水戰)을 잘못한다고 분명히 말한 것이 있습니다. 또 임진년의 병화(兵禍) 이후로 저들의 예봉(銳鋒)을 크게 꺾은 것은 주사(舟師)만이 그러하였을 뿐이고 육전(陸戰)은 다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또 듣건대 적은 주사를 특히 심하게 두려워하여 피하고 감히 접근하지 못하나 우리 육군은 어린아이처럼 생각한다 합니다.

임진년에 수전한 장수들 중에서 공이 있는 자는 손꼽아 셀 수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원균이 가장 우직하여 제몸을 잊고 용맹을 떨치며 죽음을 피하지 않아서 공적이 매우 뚜렷합니다. 또 수전에 익숙하여 적을 보는 대로 나아가 이기기만 하고 지는 일이 없으므로 군졸이 믿어서 두려워하지 않는데, 이제 주사를 버리고 기보(騎步)를 거느리니, 병사(兵使)가 수사(水使)보다 높기는 하나, 이것은 옛사람이 이른바, 그 잘하는 것을 버려두고 그 재주를 못 쓰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제 다섯 적장(賊將)과 큰 군사가 겨울이나 봄에 올 것이라는 신보(申報)를 들었으니, 우리 나라에서는 서둘러 바다 가운데에서 막아 죽일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혹 조금이라도 늦추어서 적이 뭍에 내릴 수 있게 한다면, 뒤에 보기(步騎) 수만 명이 있더라도 어찌 선풍처럼 빨리 오는 예봉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임진년의 일을 경계해야 합니다.

바다 가운데에서 막아 죽여서 적이 감히 언덕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오늘날 적을 막는 첫째 방책이라면, 주사의 장수는 본디 과거에 싸워서 여러 번 이긴자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원균이 수군을 거느리면 반드시 이길 도리가 있음을 기대할 수 있겠으나, 마땅하지 않은 사람으로 담당하게 하여 적에게 대항하지 못함으로써 적이 혹 호남으로 가는 길을 한번 범하면 원균이 한 도의 기보 군졸을 거느려 대장(大將)이 되더라도 결코 수전에서처럼 뜻대로 싸우지 못할 것이니, 다시 수사를 삼아서 전일에 싸웠던 장기(長技)를 쓰게 하지 않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육군의 장수로 말하면 마땅한 사람이 있을 것이니, 어찌 원균을 대신하여 감당할 자가 없겠습니까.

어떤 이는 말하기를 ‘원균은 이순신(李舜臣)과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이순신이 통제사(統制使)이므로 원균을 절제(節制)할 것인데, 원균이 그 아래에 있는 것을 감수하지 못하여 두 장수가 화합되지 않을 것이니, 일이 성공될 리가 없을 듯하다.’ 하나, 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통제사란 직임은 한때의 필요에서 생긴 것이어서 그대로 둘 수도 있고 없앨 수도 있으므로, 이순신의 통제사라는 직명도 오히려 낮출 수 있고 혹 원균을 경상도 통제사라 칭하여 이순신과 명위(名位)가 대등하게 할 수도 있으니, 신축자재하게 임의로 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습니다. 이는 대개 원균의 자급(資級)이 본디 이순신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국가의 존망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감히 다시 아뢰어 번거롭게 하는 혐의를 피할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신은 지난번 또 한산(閑山)의 주사(舟師)를 빨리 거제(巨濟)의 장문포(場門浦)444) 에 진주하게 할 것을 아뢰었습니다. 이제는 저 적이 와서 침범할 형상이 이미 드러나 눈앞에 닥친 일이라 매우 급박하므로 조금도 늦출 수 없으니, 죄다 거제에 진주하여 수로(水路)를 제압하고 있다가 책사(冊使)가 나온 뒤에는 모든 오가는 적의 배를 곧 주사로 막아서 잡아 죽임으로써 적이 오는 길을 끊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혹 적의 장수가 나오는데 주사의 장수들이 전쟁을 꺼려서 미처 막지 못하였다고 핑계하거든 곧 군법으로 처리하여 군율(軍律)을 엄하게 해야 합니다. 바라건대 속히 하서(下書)하여 이순신 등이 급히 진주하도록 엄히 신칙(申勑)하여 다른 말로 핑계하지 못하게 하소서.

신은 전에 경상 감사(慶尙監司)가 되어 좌도(左道)·우도(右道)의 바닷가에 있는 각 진포(鎭浦)를 두루 다녔는데, 좌도의 개운포(開雲浦) 이북으로 말하면, 판옥선(板屋船)을 부리는 데에 익숙하지 않고 제도가 어긋나서 작전하기에 어려우므로, 바닷길이 조금만 멀면 바다로 나가는 데에는 문득 작은 배를 쓰고 판옥선은 헛되이 만들어서 매어 둘 뿐입니다. 또 좌수사(左水使)의 본영(本營)은 본디 동래(東萊) 지역에 있어서 부산(釜山)에서 매우 가까웠는데, 이제는 적을 피해 멀리 옮겨 장기(長鬐) 같은 곳에 주재하므로, 우도의 주사와 성세(聲勢)가 아득하여 서로 닿지 않습니다. 이것은 병란을 피하려는 생각이니, 급할 때에 어떻게 힘입겠습니까. 좌수사도 판옥 주사(板屋舟師)를 정제하여, 책사가 돌아와 부산에 닿거든 곧 우도의 주사가 주재한 곳에 옮기게 하여 합해서 좌우의 형세를 만들어 기각(掎角)의 계책을 삼아야 합니다. 그러면 군용(軍容)이 조금 씩씩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개운포 이북의 판옥선도 수를 줄여서 그 줄인 배의 격군(格軍)·수졸(水卒)을 좌수사가 옮겨 주재할 때에 거느리고 와서 주사가 모자라는 곳에 채워야 합니다. 개운포 이북의 판옥선이 헛된 것으로 쓸데없는 것이라면, 주사가 모자라 한 군졸이라도 매우 중요한 이때에 어찌 앉아서 보기만 하고 갈 데가 없게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크게 걱정할 것은 판옥선의 수가 적은 것이 아니라 오직 배마다 격군이 모자라는 것이니, 빨리 좌수사에게 하유하여 미리 장속(裝束)해서 시기에 맞춰 곧 봉행하게 하소서.

병화가 발생한 이후로 우리 나라의 장사(將士)는 적을 보면 곧 달아나서 혹 미처 교전하기도 전에 먼저 무너진 자도 있는데, 군졸은 ‘장수가 먼저 달아났는데 우리들만이 어찌 남아서 적봉(賊鋒)을 감당하겠는가.’ 하고, 장수가 된 자는 ‘관하의 군졸이 흩어졌는데 나만이 어찌 적을 감당하겠는가.’ 하여, 패하여 달아난 장졸(將卒)이 빈번이 서로 송사하는 자와 같으니, 먼저 달아난 자가 장수인지 군졸인지 모를 지경입니다. 이같은 짓을 그만두지 않고 적을 대하게 하면, 어찌 싸워 이겨 적을 물리칠 날이 있겠습니까. 이는 적이 다시 침입하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이미 간담이 서늘해지는 한심한 문제인 것입니다.

병법(兵法)에 ‘군사 중에 선봉(選鋒)445) 이 없으면 패한다.’ 하였습니다. 반드시 여러번 싸움을 겪어서 적을 보아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버리고 돌진하여 싸울 수 있어야 적과 혈전(血戰)하여 패배하게 되지 않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평안도·황해도·경기 등의 고을에서는 왜적이 두루 찼을 때에도 혹 여러날 동안 고전하거나 성을 지키면서 역전(力戰)한 자가 고을마다 있다 하니, 세 도에 하유하여 잘 가려 뽑아 정예하고 용맹한 자를 얻도록 힘쓰게 하여 모두 3∼4백명이나 5∼6백 명을 얻어 경중(京中)에 모아 양료(糧料)를 넉넉히 주고 말이 없는 자에게는 전마(戰馬)를 주어 나가 싸우게 하소서. 그러면 매복하였다가 차단하여 사살하기를 바랄 수 있고 맨 먼저 오르기를 책임지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신이 또 듣건대 적이 함경남도에 들어왔을 때에 강찬(姜燦)이 군사를 내어 적을 맞아 싸워서 크게 전승(全勝)을 얻고 참괵(斬馘)한 것이 매우 많았는데, 보고 들은 자가 모두 ‘이 싸움에서 군졸이 용맹을 떨치니 적은 그 위세에 눌려 마치 질풍이 가을 낙엽을 쓰는 듯하였다.’ 했습니다. 북도(北道)의 토병(土兵)으로 말하면 여러번 전투를 겪어서 사람들이 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을 보면 곧 용맹을 떨치니, 이들 3∼4백 명을 징발하여 경중(京中)에 올려와서 특별히 돌보아 남방의 적이 오는 길의 요충지에 내려보내 각자 스스로 싸우게 하여 그 치돌(馳突)하는 장기(長技)를 펼 수 있게 하면, 조금 적의 형세를 막아서 감히 뜻대로 장구(長驅)하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북도에는 접경하고 있는 호로(胡虜)가 있으므로 그 방수(防守)하는 군사를 거두어 다른 데에 쓸 수 없다.’ 하나 적들이 육진(六鎭)에 꽉 차 백성을 마구 살육하고 나온 뒤에도 호로가 끝내 우리 한 진(鎭)을 빼앗아 가지지 못하였으니, 두려울 바가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군사 3∼4백 명을 뽑아 내더라도 어찌 그 진을 비우게야 되겠습니까. 혹 호로의 환란을 염려한다면, 호로가 특히 두려워하는 것이 화포(火砲)이니, 포수(砲手)를 내려보내어 토병과 바꾸되, 그 정예한 군사를 빨리 뽑아서 왜적을 막는 데 쓰는 것이 또한 눈앞의 환란을 늦추는 데에 급히 힘쓸 일입니다.

또 사람들이 흔히 ‘포수와 살수(殺手)를 양성하는 아동대(兒童隊)는 그 의도가 뒷날의 급할 때 쓰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 환란이 눈앞에 닥쳐 있고 투사(鬪士)의 양식도 모자라는 판에 아동의 무리들까지 양식을 대줄 수 없는 형편이니, 임시로 폐지해야 한다.’ 합니다. 이 말이 조리가 있는 듯하니, 상의하여 처치하도록 아울러 명하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이렇게 써서 아뢰니, 매우 아름답고 기쁘다."

하였다.

  • [註 444] 장문포(場門浦) : 장문포(長門浦).
  • [註 445] 선봉(選鋒) : 정예한 군사.

원문

○海平府院君 尹根壽啓曰: "臣伏見黃愼狀啓中之辭, 痛心拊胸, 不能自定。 此豈特主憂臣辱, 主辱臣死而止哉? 彼賊肆然有侵犯之言, 略無顧忌, 蓋視我爲囊中物, 而自謂有必勝之勢, 不復諱其先聲之播耳。 賊若再來, 則以前日狃於敗散之卒當之, 寧復可以支吾? 臣敢以意見, 妄爲瞽說, 仰裨廟謨之萬一。 謹逐條錄於左方, 惟聖明之裁擇焉。 臣頃日請以元均, 還爲慶尙右水使, 復領舟師, 以待賊至而預備之, 乃以得元均見任兵使之代爲難, 遂至報聞。 臣曾見《日本考》, 則近日臨淮侯 李言恭所撰, 而謂倭賊長於陸鬪, 短於水戰, 明有其言。 且自壬辰兵禍之後, 大挫彼鋒者, 唯舟師爲然, 而陸戰則皆不如也。 又聞賊畏舟師特甚, 避不敢近, 而嬰視我陸軍云。 壬辰水戰, 諸將之有功者, 可指數, 而其中元均, 最戇直, 忘身奮勇, 不避死, 功績甚著。 又慣於水戰, 見賊輒前, 有勝無敗, 士卒恃而無恐, 今乃捨舟師, 領騎步。 雖兵使高於水使, 而斯乃古人所謂捨其所長, 用違其才者也。 況今五賊將及大兵之來, 當在冬春。 聞有其報, 在我國, 當汲汲爲截殺於海中之計。 如或小緩, 而使賊得以下陸, 則後雖有步騎累萬, 豈能遏其猋至之銳耶? 壬辰之事, 可以戒矣。 截殺於海中, 使賊不敢登岸, 爲今日禦賊第一策, 則其舟師之將, 固當擇其已戰而屢勝者。 均領水軍, 則可期其有必勝之理。 若以非人者當之, 不能抗賊, 賊或一犯湖南之路, 則均雖率一道騎步之卒, 而爲大將, 決不及水戰之得志也。 恐不可不更爲水使, 而用前日已戰之長技也。 至於陸軍之將, 宜有其人, 豈無堪爲均代者乎? 或謂均與李舜臣不相能。 舜臣爲統制使, 當節制元均, 均不能甘爲其下, 而兩將不和, 事恐無成, 臣則以爲不然。 統制之任, 出於一時, 可以或仍或革。 舜臣統制職名, 猶可減下, 或元均稱爲慶尙道統制使, 得以與舜臣名位相埒, 伸縮任意, 無所不可。 蓋以元均資級, 本與舜臣等也。 此乃國家存亡所係, 敢更陳達, 而煩瀆之嫌, 有不暇避者也。 臣頃日又以閑山舟師, 速進駐巨濟之場門浦陳啓矣。 今則彼賊來侵之形已著, 事迫燃眉, 不容少緩。 宜盡令進駐巨濟, 以控扼水路, 冊使出來之後, 則凡賊船往來者, 卽以舟師, 遏截捕殺, 以絶賊路。 如或賊將出來, 而舟師諸將憚於厮殺, 以未及攔截爲辭, 則輒以軍法從事, 以嚴軍律。願亟下書, 嚴勑李舜臣等, 急急進駐, 不許托以他辭。 臣前爲慶尙監司, 凡左、右道海邊各鎭浦, 曾已遍歷。 如左道開雲浦以北, 則板屋船不慣於行使, 制度齟齬, 難作戰用。 凡海路稍遠, 則下海輒用小船, 板屋船則只虛造張掛而已。 且左水使之本營, 原在東萊地, 去釜山甚近。 今乃避賊遠移, 駐在長鬐等處, 與右道舟師, 聲勢邈不相接。 此乃避亂之計, 於緩急何賴焉? 左水使亦當整飭板屋舟師, 待冊使還泊釜山, 卽使移駐于右道舟師所駐之處, 合作左右之勢, 以爲掎角之計, 則軍容可以稍壯矣。 其開雲浦以北板屋船, 亦可減數, 而其所減之船格軍、水卒, 則左水使移駐之時, 統率而來, 以補舟師不足之處也。 開雲以北之板屋, 虛張無用, 則當此舟師缺乏之時, 一率有關。 豈容坐視而莫之所乎? 今日之所大患者, 不患板屋之數少, 而唯患每船格軍之缺乏也。 請亟下諭左水使, 預爲裝束, 臨時劃卽奉行。 自兵火之後, 我國壯士, 見賊輒北, 或有未及交鋒而先潰者。 軍卒則曰: ‘將旣先遁, 我輩豈能獨存, 以當賊鋒乎?’ 爲將者則曰: ‘管下之卒旣散, 我豈獨能身當賊乎?’ 敗遁將卒, 每若相訟者, 然未知先遁者是將是卒乎。 若此不已而使之臨敵, 則寧有戰勝却敵之日乎? 此不待賊之再犯, 而已可爲澟然而寒心者。 兵法曰: ‘軍無選鋒則敗。’ 須得屢經戰陣, 見賊不懼, 忘生突戰, 然後可望其與賊血戰, 而不至於敗衂也。 平安、黃海、京畿等邑, 倭賊遍滿之時, 或苦戰累日, 或守城力戰者, 邑各有之云。 請下諭三道, 十分精抽, 務得精勇。 若通得三四百名, 或五六百名, 聚之京中, 優其糧料, 而無馬者給戰馬, 使之赴敵, 則可望其埋伏截殺, 而亦可責其先登也。 臣又聞賊入咸鏡南道, 姜燦出兵迎敵, 大獲全勝, 折馘甚多得之。 見聞者, 皆謂: ‘此戰, 士卒奮勇, 賊徒披靡, 有如疾風之掃秋葉’ 云。 至於北道土兵, 屢經戰鬪, 人不畏賊, 見賊輒奮。 若調發此輩三四百名, 上來京中, 特加存撫, 仍下送南方賊路要衝之處, 使之人自爲戰, 得展其馳突之長技, 則可以小沮賊勢, 不敢任意長驅也。 人或謂北道有接壤之胡虜, 不可撤其防守之兵而他用, 當賊遍六鎭, 血肉我民, 而出來之後, 胡虜終不奪我一鎭而有之, 其不足畏, 明矣。 雖抽出土兵三四百名, 豈止於空其鎭乎? 如或慮胡患, 則胡虜之所特畏者火砲, 下送砲手, 以換土兵。 速抽其兵之精銳者, 用以禦倭賊, 亦目前紓患之急務也。 且人多謂砲ㆍ殺手、兒童隊, 雖擬日後緩急之用, 而方今患在目前, 鬪士之餉亦匱, 未可餉及兒童之隊, 此則可以權罷云。 此言似有理。 請幷命商議處之何如?" 答曰: "如是書啓, 極爲嘉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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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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