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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71권, 선조 29년 1월 3일 경오 3/4 기사 /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심유경이 보낸 자문에 대하여 2품 이상의 관리들에게 헌의하게 하다

국역

심 유격(沈遊擊)이 보내온 자문을 의논하여 조처할 일로 2품(品) 이상에게 헌의(獻議)하게 하니, 유성룡(柳成龍)은 의논드리기를,

"신은 병중에 있어 정신이 혼미하고 생각이 착란하므로 군국(軍國)의 중대사를 의논하지 못하겠고, 또 심무시(沈懋時)가 입국한 후에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듣지 못하였으니, 그 중에 있었던 사정을 진실로 측량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전후의 장계(狀啓)를 볼 때 몹시 걱정스러우며 밤낮으로 반복해 생각하여 보아도 어떻게 조치해야 마땅한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은 전부터 늘 이 적(賊)이 끝내는 따르기 어려운 요청을 하여 사단을 일으킬 것이라고 의심하여 왔는데, 지금의 사세가 점차 그렇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신의 우매한 생각에는 지금 조신(調信)이 다시 돌아온 것이 의심스럽습니다. 그가 요구하는 바는 통사(通使)에 그치지 않고 약속을 위배하려고 특별히 이것을 빌어서 꼬투리를 잡는 것인 듯합니다. 심유경(沈惟敬) 역시 그 일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을 알고 계책이 궁해지자 도리어 그 허물을 다른 곳으로 돌리어 스스로 변명할 계책을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평수길(平秀吉)이 중국 사신을 환영하고 또 우리 나라 사신이 함께 오기를 요구할 뿐이라면 평조신이 어찌하여 연일 그들과 은밀히 의논한 후에야 비로소 유격(遊擊)을 보았겠습니까. 또 유격은 어찌하여 문을 닫고 병을 핑계대면서 사신을 직접 보지 않고 하인만을 시켜서 알릴 뿐이겠습니까. 이러한 태도가 극히 의심스럽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이 적(賊)이 이 일을 가탁하여 말하고 있으나 그 흉모는 실제로 다른 데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제 이 자문을 직선적인 말로 거절해 버린다면 바로 유격의 농간 속에 빠지게 되는 것으로 유격은 이것을 핑계로 중국에 치보하기를 ‘봉사(封事)는 이루어져 가는데 사신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조선에서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왜적이 물러가지 않는다.’라고 할 것이며, 그의 말을 따르려고 한다면 또한 인정과 의리상 차마 할 일이 아닙니다. 비록 사신 보내는 것을 허락하더라도 왜적의 철수는 기필할 수 없는 일이니, 이것이 난처한 까닭입니다. 부득이하다면 마땅히 회답하기를, ‘폐방(弊邦)은 일본과 가까이 인접해 있으면서 애초 조그마한 원한도 없었는데, 뜻밖에 일본이 천리(天理)를 어기고 까닭없이 군사를 일으켜 우리의 백성을 살해하고 우리의 묘사(廟社)를 불지르고 우리의 능묘를 발굴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 사람들은 삼척동자라도 피눈물을 머금고서 「차라리 죽음이 있을지언정 어찌 감히 강화를 말할 수 있으랴. 」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지금 중국이 널리 함육(涵育)하여 남북의 백성을 겸애(兼愛)함으로써 훈척 대신(勳戚大臣)을 이 불측한 땅에 오게 하는 은혜를 입었으니, 그 의도는 난을 해소하고 군사를 휴식하는 데에 있다. 대인은 지금 이 중대한 사명을 띤 당사자로서 우리 나라에 교계(敎戒)하기를 이와 같이 하여 심지어는 배신(陪臣)이 중국 사신을 따라 바다를 건너는 것이 예의의 당연한 것이라고 견책하는데, 이는 실로 중국의 체면에 관계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사람은 일을 함에 있어 반복이 심하여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다. 전후로 마음이 변하니 비록 조사(詔使)가 황명(皇命)으로 임하였어도 아직 그 요령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기장(機張)·죽도(竹島)·안골(安骨)의 왜적이 여전히 결진하여 바다를 건너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또 다시 우리 나라에 무슨 요구할 것이 있어 하나의 사신으로 경중을 삼는단 말인가. 이와 같이 한다면 우리 나라는 치욕만 더하게 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요, 대인이 힘써 노력하며 담당한 일도 끝내 헛일이 되고 말 것이다. 오직 바라건대 대인은 다시 저들의 정상을 조사하여 책사(冊使)와 함께 의논해 결정하되 구차히 목전의 일만 미봉하지 말고 장원한 계책을 도모하라. 이와 같이 하여 우리 나라로 하여금 오늘날에 와서 거듭 속지 않게 해주면 몹시 다행이겠다.’고 하여, 그들이 어떻게 답하는가를 보고 근일 왜적의 동태를 더욱 살펴서 타당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요, 말 한마디로 경홀히 허락하거나 허락하지 않아 수습하기 어렵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신이 이 대사를 당하여 생각을 다해 보았으나 생각이 겨우 여기에 그칠 뿐이라 채용(採用)에 불가할 것으로 봅니다. 이는 극히 중대한 일이니, 바라건대 널리 조정의 의논을 모아 절충하시어 후회가 없도록 하소서.

또 신이 생각나는 일이 있어 아울러 언급합니다. 금년 봄에 방어하고 수비할 계책을 시급히 조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임진년에 왜적이 또한 멀리서 헛된 말로 우리를 해이하게 하여 세견선(歲遣船)이 곧 이를 것이라고 말하더니, 대적(大賊)이 갑자기 이르렀습니다. 금년 일 또한 어찌 그렇지 않다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곳은 다 거론할 수 없거니와 제주(濟州)가 특별히 염려됩니다. 이곳은 서남쪽으로 바다를 정면하고 있고 또 중국과 서로 가깝습니다. 왜적이 만약 이곳을 점거하게 되면 비록 천하의 힘으로 탈취하려 하여도 탈취하지 못할 것입니다. 전일에 적사(賊使) 요시라(要時羅)가 장차 제주를 침범하겠다고 분명히 말하였는데 본주에는 마침 전염병이 돌고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사망하니 또한 불행할 것 같습니다. 기타의 모든 일은 비변사(備邊司)와 함께 주야를 가리지 않고 적절히 조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고, 심수경(沈守慶)은 의논드리기를,

"신이 심 유격(心遊擊)의 자문(咨文)과 황신(黃愼)의 전후 장계를 보건대, 배신(陪臣)을 대동하려는 일은 아마도 현소(玄蘇)·평행장(平行長)·평조신(平調信) 등이 심 유격과 의논하여 관백(關白)으로부터 자신들의 공로를 인정받으려는 계책에서 나온 것 같은데, 그 간사함이 헤아릴 수 없어 실로 염려됩니다. 단 배신을 딸려보내는 일이 본래 황제의 명령이 아니라는 것은 유격도 말했다고 합니다. 이미 황제의 명령이 아니고 병부(兵部)의 지시도 아니며 또 중국 사신의 본의도 아닌데, 단지 유격의 자문에만 의해 배신을 딸려 보내는 것은 실로 명분이 없는 일입니다. 이런 내용으로 답사를 만들어 유격의 자문에 회답하는 것이 아마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하고, 최흥원(崔興源)은 의논드리기를,

"우리 나라는 왜노(倭奴)에 대하여 조금도 싸움을 일으킬 만한 일이 없었는데, 그들은 함부로 쳐들어와 독해를 자행하여 우리의 삼경(三京)을 함락하여 그 화가 능침(陵寢)에까지 미쳤으니, 이는 실로 한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전쟁이 일어난 지 4년이나 되어서 군사는 쇠약하고 양식은 탕갈되었으니 비록 흉적을 소탕하지는 못하나 아픈 마음은 뼈를 깎는 듯한데 어찌 하루인들 이 흉적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저 흉적이 통신하자는 말로 조정의 의중을 시험하고자 하니, 더욱 통탄할 일입니다. 이제 만약 경솔히 허락한다면 후일의 요청이 이에 그치지 않을 것이니 앞으로 조처하기 어려운 걱정이 오늘보다 더 극심할까 염려됩니다. 신은 해가 넘도록 병에 시달려 정신이 혼미하므로 생각이 헛갈립니다. 지금 하문을 받고 감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기에 대략 우매한 소견을 진술하니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윤두수(尹斗壽)는 의논드리기를,

"당초 책봉 사신(冊封使臣)이 우리 나라에 들어올 때 식자(識者)들은 모두 난처한 일이 있을까 염려하였는데, 다행히도 사신이 일국의 사정을 청취하여 신사(信使)의 행함을 책하지 않음으로 해서, 창을 베고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복수할 날을 눈을 부릅뜨고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 책사는 무관심한데 심 유격이 중간에서 농간을 부려 이에까지 이르니, 일국의 신민이 한 하늘 밑에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를 갚을 날이 없으며, 훗날 종종 따르기 어려운 요청을 어찌 이루 다 형언할 수 있겠습니까. 종사(宗社)와 생민(生民)의 화가 이로 말미암아 더욱 심할 것입니다. 신은 감히 눈물을 흘리면서 딸을 오(吳)나라로 보내듯이006) 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엄격한 말과 완곡한 뜻으로 자문을 써서 회답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김응남(金應南)은 의논드리기를,

"이 왜적은 우리 나라가 언제고 반드시 복수해야 할 원수입니다. 지금 병력이 미약함으로 인해 그 죄를 다스려 토멸하지 못하나, 대의(大義)로 볼 때는 단연코 하루도 한 하늘 밑에 같이 살 수 없습니다. 당초에 통신사를 거론한 것도 오히려 불가한 일이었는데, 하물며 오늘날에 있어서 차마 이 일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설사 마지 못해 따른다 하더라도 이미 따른 뒤에 왜적이 우리에게 또 결코 따를 수 없는 일을 요구하게 된다면 장차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따른 뒤에 난처한 일을 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지금 따르지 않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이것이 신이 크게 걱정하는 일입니다. 단 지난해에 조정이 호택(胡澤)에게 핍박당하여 이미 기미책(羈縻策)에 대한 말을 따라 황상에게 주달하여 책사(冊使)가 적의 진영에 들어가기까지 하였는데, 유격은 신사(信使)를 얻어 봉사(封事)의 성취를 도우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 만약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음으로 해서 적이 약속을 어기고 물러가지 않는다면 유격은 필시 이를 이유로 하여 우리 나라에 허물을 돌릴 것이니, 이것이 더욱 걱정거리 중에 큰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의심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책사가 서울에 있을 때에는 굳이 신사(信使)를 대동하겠다고 청하다가 지금 적의 진영에 있으면서는 일면 배신(陪臣)이 가는 것은 유격이 농간하는 것이라고 하며, 일면 사리에 부당하다고 하며, 일면 배신을 대동하여도 특별히 할 일이 없다고 하니, 그 말이 반드시 소견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왜적이 통신사를 요구하는 것은 실정에서 나오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일들이 극히 수상합니다. 비록 유격의 말을 듣고 바로 그의 요청을 따라주더라도 후회가 있을까 염려됩니다. 이 사실을 갖추어 주달하여 천조의 조처를 기다리는 것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신의 우매한 의견은 이와 같으나 또한 반드시 옳은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성상께서는 재량하소서."

하고, 정탁(鄭琢)은 의논드리기를,

"신이 심 유격이 보내온 자문을 보니 말이 몹시 장황합니다. 본국의 배신을 반드시 대동하고자 하니, 그에 대한 회답의 말은 충분히 참작하여 미진한 뜻이 없게 해야 합니다. 그에 대한 회답의 말은, 대개 ‘족하는 작은 나라를 사랑하는 성천자(聖天子)의 어짐을 본받고 소국의 절박한 걱정을 두루 염려하여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십분 안전함을 도모하기를 진실로 부족한 점이 없게 하였다. 지금 이 자문에 또 속마음을 다 쏟아 거듭 성대한 염려를 하여 주니 감히 그 감사함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리고 적정(賊情)을 보이기 위하여 배신과 함께 왜국에 들어가고자 하는 것에서 소국을 위해 주선하는 성의가 이에 이르러 더할 수 없음을 보았다. 과인 또한 어찌 살피지 못하겠는가. 과인의 천박한 소견에는 적의 간교함을 종시 믿기 어렵다고 본다. 지금 군사를 철수하는 것은 실로 황군의 위덕(威德)을 족하가 잘 받들어 선포하고 칙명(勅命)을 받든 두 대인이 잇따라 이르러 그 성대한 위세가 몹시 엄격하기 때문이다. 소국의 배신이 가고 안 가는 것이 어찌 그 사이에 조금인들 영향이 있겠는가. 그러나 배신의 가는 것이 부당함은 거듭 논변할 필요도 없다. 적이 배신이 가는 것을 요청하는 그 의도를 헤아리기 어렵거니와 적의 교활함은 타고난 천성이다. 지금 항복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실로 대국의 위엄을 두려워하기 때문인데, 철수하여 돌아갈 임시에 감히 소국이 따를 수 없는 일을 가지고 계속 전언하여 소국의 뜻을 시험하려 하니, 애초부터 진실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또한 이것으로 꼬투리를 잡아 다시 뜻밖의 흉모를 도발하는 일이 꼭 없으리라는 것은 보장하기 어렵다. 지난번에 까닭없이 군사를 일으켜 성시(城市)를 도륙하여 그 욕이 선왕의 능묘에까지 미쳤으니, 이 적은 실로 소국에 있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원수이다. 지금 그 분을 꾹 참고 지내는 것은 힘이 부족해서일 뿐이다. 소국이 그들과 더불어 수호(修好)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왜적 역시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배신의 동행을 요구하니 이것이 흉모가 아니고 무엇인가. 또 황제의 명령은 오로지 소국을 위해 철병(撤兵)을 급히 서두르게 하려는 것으로, 황제의 명이 몹시 엄격하고 두 대인의 행차도 이미 이르렀으니, 진실로 명을 받들어 시행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오랫동안 머뭇거리고 또 배신의 동행을 요구하면서 저희들 마음대로 조종하며 조사(詔使)의 말을 듣지 않으니, 이것이 과연 무슨 작태인가. 소국의 배신이 동행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황제의 칙명이야 감히 어길 수 있겠는가. 그들의 교만하고 패역한 태도는 참으로 말할 것이 없거니와 유독 황조의 지엄한 체면이야 생각지 않겠는가. 또 한 가지 말이 있다. 대개 천하의 열국(列國)이 되어서는 그 멀고 가까움을 막론하고 각각 정해진 강토를 지켜 왕국(王國)의 울타리가 되어 서로 사사로이 국교를 맺지 않는 것이 고금의 공통된 의리이다. 비록 왕화를 입는 이외의 나라와 혹 서로 통호(通好)하는 것이 진실로 회유하여 항거하지 못하게 하는 의도가 없지는 않으나, 이를 왕법(王法)으로 다스린다면 실로 사사로이 서로 국교를 맺은 죄를 범한 것이다. 황조(皇朝)의 명령이 있지 않은데 마음대로 배신을 보내는 것은 현연히 크게 사체를 해치는 처사로써 실로 상형(常刑)을 범하는 것이라 결코 무릅쓰고 행할 수 없다. 족하의 널리 포용하는 도량으로 치지도외한다고 하더라도 소국이 또한 어찌 반드시 불법을 행할 수 있겠는가. 대개 이 적의 정상은 헤아려 알 수 없다. 오직 바라는 것은 족하가 끝까지 심력을 다해 주선하여 흉모를 제거하고 다시 소국을 살려줌에 있다. 그렇게 된다면 무슨 은덕인들 이보다 더 크겠는가.’라고 해야 합니다. 이런 뜻으로 말을 꾸며 회답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또 일종의 말은 ‘이 적이 물러가지 않으면 일이 장차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유격의 말이 범연치 않다. 천심(天心)이 화란을 뉘우쳐 이 적이 철수해 돌아간다면 장래 국사를 오히려 도모할 수 있다. 나라를 도모하는 방도에 있어서는 부득이 변통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 옛날의 제왕(帝王)도 이를 행하였다. 지금 국세는 조금도 여유없는 위급한 고비인데 능히 이를 참아 내지 못하면 나라를 도모하는 방도가 아니다. 또 유격이 보내온 자문에 몹시 깊은 계략이 있으니, 만약 그를 대처함에 마땅함을 잃어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게 된다면, 유격은 도리어 스스로 꼬투리를 잡아 본국에 허물을 돌릴 것이다. 또한 이런 일이 없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다.’라고 합니다. 이 말이 비록 그럴 듯하긴 하나 실로 경험한 것이 아니므로 진실로 오늘날에 마땅히 말할 것이 못 됩니다. 아울러 기록하여 아뢰어서 참고에 대비할 뿐이오니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정곤수(鄭崑壽)는 의논드리기를,

"삼가 생각건대, 만세의 원수는 잊어서는 안 되고, 끝없는 원한의 대상은 놓아주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적의 소행이 어떠하였는데 ‘구호(舊好)’의 두 글자가 적추(賊酋)의 입에서 나온단 말입니까. 이는 우리 나라 신자(臣子)로서는 차마 들을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심 유격의 자문 속에 이를 말한 것은 심 유격의 소관이 편의에 따라 강화를 맺어 수습하는 데에 있으니, 그의 생각에는 필시 ‘일에는 이치와 형세가 있고 도에는 상도(常道)와 권도(權道)가 있는 것이므로 예로부터 「토지 때문에 사람을 해칠 수 없다. 」 또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기가 어렵다. 」는 말이 있는 것이다.’라고 여긴 것입니다. 지금 중국 조정이 주선하는 것은 화해하는 일인데 적추(賊酋)의 하고자 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차라리 월왕(越王)이 오(吳)나라에 강화를 요청하고서 백성을 모으고 가르친 것007) 과 같이 하면 그런 뒤에는 이 봉사(封事)가 중국으로부터 나오더라도 우리가 참여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배신이 봉사(封使)를 따라가는 것에 대해서는 또한 황조의 명령이 없는데, 우리가 어찌 감히 마음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내용으로 자문에 회답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윤근수(尹根壽)는 의논드리기를,

"이 적이 온갖 흉계를 꾸며 책사(冊使)가 바다를 건널 임시에 배신을 딸려 보내 달라는 말을 하자, 심 유격은 그를 위해 주선하여 자문을 보내기까지 하였고, 또 적승(賊僧)은 못하는 말이 없이 공갈하니 극히 통탄할 일입니다. 그 간교한 꾀가 범연치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가 만일 이를 허락하지 않음으로 해서 적추가 곧 이것으로 꼬투리를 잡게 된다면 앞으로 닥쳐올 걱정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적이 요구하는 것이 어찌 통신사 하나에 있을 뿐이겠습니까. 만약 한번 허락하면 또다시 따를 수 없는 일을 차례로 말할 것이니, 우리 나라가 장차 어떻게 이에 대응하겠습니까. 만세의 원수일 뿐만 아니라 대의에 있어 결코 우호를 맺을 수 없는데 한번 통신사를 허락한 후에는 앞으로 더욱 자립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연전에 우호를 맺은 것이 어찌 우리 나라의 뜻이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오히려 꾹 참고 우호를 맺은 것은 그들을 노하게 아니함으로써 혹시라도 전단(戰端)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이처럼 전고에 없었던 병화(兵禍)를 일으켰으니 우호를 맺음의 무익한 것은 이미 지난 일로 분명 징험할 수 있습니다. 또 두 책사(冊使)가 모두 왜영(倭營)에 있으니 응당 사세를 익히 알 것인데 그들의 생각은 모두 배신을 대동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찌 다만 유격의 자문으로 인하여 허락할 수 있겠습니까.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심희수(沈喜壽)는 의논드리기를,

"대의로 볼 때 통분한 마음이 뼈에 사무쳐 지금 말할 여념도 없습니다. 우선 눈앞의 사세를 가지고 말하겠습니다. 적이 해변에 주둔한 지 벌써 4년이 되었습니다. 지금 철수하고 싶으면 스스로 마땅히 철수할 것이지, 우리 나라의 사신이 또 무슨 상관이 있다고 반드시 함께 가고자 합니까. 신의 우매한 생각에는 배신을 보내고 보내지 않는 것은 적이 철수하고 철수하지 않는 것에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봅니다. 적승(賊僧) 현소(玄蘇)는 우리 나라를 몹시 멸시하는 까닭으로 이런 말을 만들어 내서 우롱하는 것이며, 심 유격은 적이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을 알고 또 우리 나라가 그들과 우호(友好)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뜻을 헤아려 알고는 훗날 구실을 삼아 허물을 모면할 소지를 만들고자 하여 감히 마음을 떠보며 힘써 요청하는 것으로, 아마도 관백(關白)의 본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조신(調信)이 돌아와 즉시 이 말을 하지 않고 여러 날 동안 은밀히 의논한 후에 비로소 말하니 이것이 하나의 분명한 증거입니다. 그 자문의 내용을 보니 반복 유도하여 그 본심을 엄폐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중국 사신의 행차에 수행시키려 하나 사신은 실로 이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데 이것 또한 알기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 자문의 회답 내용에 있어서는 십분 완곡히 하여 의리만을 따져 너무 엄격하게 거절하지 말고 은근히 따르기 어렵다는 의도를 보일 것이며, 우리도 또한 저들의 실정을 탐지하여 저들이 강경하게 나올 때를 기다려서 서서히 의논하거나 혹은 황제의 명을 받은 이후에 부득이 준행한다면, 점점 더 심하게 요구하면서 갈수록 심해지는 무함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봄이 박두하였으므로 적의 흉모를 헤아리기 어려우니 매우 궁박하며 촌각이 시급합니다. 만약에 국가의 존망이 이 한 가지 일의 처리에 달렸다고 이른다면 우매한 소신이 그 사이에 의논드릴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이덕형(李德馨)은 의논드리기를,

"천하의 일은 형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법입니다. 지금 사세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조종하여 결정하는 권한은 아마도 우리가 마음대로 할 바가 아닌 것 같습니다. 중조(中朝)에서는 오직 구차히 일을 마무리하려고만 할 뿐이요, 허다한 사체에 대해서는 전연 이해하지 못하므로 아마 흉적의 능모(陵侮)하는 마음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만약 우리 나라 배신이 경솔히 일본으로 들어가면 적은 지극히 난처한 일로 우리에게 요구해 올 것이며, 중조에서는 우리 나라의 일이 이미 완결되었다고 하여 다시 우리 나라의 환란을 돌아보지 않을 것입니다. 이때에는 장차 어찌하겠습니까. 중조의 처사가 모두 잘못이거니와, 심유경(沈惟敬)의 계책 또한 그 일의 성취를 요할 뿐이라, 후일의 환란을 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일이 한번 잘못된다면 분개하여도 어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득이하다면 근일의 적정(賊情)과 이 중대하고 난처한 연유를 들어 명백하게 황조에 주달해서 처리하면 후일의 계책에 있어서도 무익함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신점(申點)은 의논드리기를,

"이 적은 우리 나라로서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원수입니다. 사신을 보내 통정(通情)하는 것은 의리상 차마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중조의 명령도 없고, 또 책사(冊使)의 자문도 없는데 유격의 한마디 말에 어찌 경솔히 따를 수 있겠습니까.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홍진(洪進)은 의논드리기를,

"대의로 보면 영원토록 우리 나라 신자로서는 이 적을 잊을 수 없는데, 더구나 감히 그들과 더불어 우호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나라 국력으로 보면 지금 목전의 장병(將兵)으로서는 이 적을 당해낼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만약 유격이 이것을 가지고 구실을 삼아 훌쩍 돌아가 버리면 존망은 결판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중국 조정에서 주장한 것이요, 우리 나라는 애초부터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사신은 배신을 대동할 생각이 없는데 경솔히 유격의 말을 따르게 되면 훗날 난처한 일이 아마도 지금보다 심함이 있을 것입니다. 시험삼아 의리상 불가하다는 뜻으로 사신에게 알리고 유격에게 이해시킨 연후에 다시 의논하여 조처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신은 병중에 있어 정신이 혼매하므로 아뢸 바를 모르겠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이헌국(李憲國)은 의논드리기를,

"대대로 내려오는 원수의 나라이므로 의리상 통신할 수 없습니다. 결코 따를 수 없다는 뜻으로 완곡하면서도 엄격하게 말을 하여 속히 심유경한테 회답하고 일이 만약 난처하게 될 때 다시 의논하는 것이 아마 마땅할 것 같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였다.

권율(權慄)은 의논드리기를,

"신이 삼가 심 유격의 자문을 보건대, 유도하고 협박하는 뜻이 없지 않으나 예의(禮義)로 헤아려 보면 또한 의거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더구나 배신(陪臣)을 차임해 보내어 중국 사신을 따라가게 하면 특별히 통신사의 명칭이 없을 것이요, 배신이 임시하여 잘 말해서 수길(秀吉)로 하여금 스스로 잘못을 알아 그 흉악한 생각을 버리게 한다면 그리 수치스러울 일도 없을 것이니, 힘을 길러 복수의 시기를 기다리는 일에 반드시 여유있는 기간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신잡(申磼)은 의논드리기를,

"이 적은 우리 나라에 대하여 더없이 원망스럽고 통분한 원수입니다. 통신(通信)의 한마디 말은 입으로 차마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귀로도 차마 들을 수 없습니다. 지금 만약 위급함에 핍박되어 그들의 요청을 들어준다면 끝내는 반드시 따를 수 없는 말로 번번이 변환할 것이니, 어떻게 이에 대응할 것인지를 모르겠으며, 국서(國書)와 예폐(禮幣)를 또한 차마 어떻게 교환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우리 나라 뭇 신하들이 만약 복수할 뜻을 견고히 한다면 절치 부심하며 협심으로 게을리 아니하여 백성을 가르치고 모으는 일밖에 다른 뜻이 없습니다. 훗날 반드시 종사(宗社)의 치욕을 씻기를 기약한다면, 거짓 화친을 허락하여 적의 동태를 정탐하는 것 또한 병가(兵家)의 기정(奇正)008) 의 술책에 해됨이 없겠습니다만, 이것으로 적을 물리치는 양책(良策)을 삼는 것은 신이 알지 못합니다. 이 적은 흉악하고도 교활하여 비록 황제의 명령이 있었으나 그 말을 교묘히 변조하여 오늘날까지 지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 나라가 통신사를 보낸다고 해서 모두 철수하여 바다를 건너겠습니까. 신은 이 논의가 앉아서 심 유격의 간사한 농간에 빠져 들어가는 것인가 염려스럽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송찬(宋贊)은 의논드리기를,

"화의(和議)가 무익한 것은 지난 역사에 밝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수와 강화를 하는 것에 대해선 송(宋)나라의 신하 정호(程顥)의 봉사(封事)가 더욱 근엄하여, 변할 수 없는 천경(天經) 지기(地紀)이니 다시 논할 여지가 없습니다. 중국 조정에서 사신을 파견하여 왕으로 책봉하는 것은 곧 동일하게 보아 똑같이 사랑하려는 의도이니, 어찌 추악한 오랑캐와 화친을 약속하겠습니까. 다만 병가(兵家)에는 임시응변의 계략이 있어, 병력이 혹 곤경에 빠지게 되면 먼저 반드시 이길 수 있는 형세를 위해 남몰래 병력을 양성하여 변란을 모면할 대책을 만드니, 이것 또한 하나의 계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 논의만 고집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통신사를 보내면 환란이 더디 올 것이요, 통신사를 보내지 않으면 화란이 빨리 올 것입니다. 진실로 멀리서 헤아리기는 어렵거니와, 해구(海寇)는 마치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쏘아 죽이려고 모래를 머금고 있는 역귀(蜮鬼)와 같아서 길을 빌려 경사(京師)로 향하려는 흉계는 비록 통신사를 보낸다 하더라도 반드시 변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통신사를 보내거나 보내지 않거나 끝내는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는 처지로 돌아가고 말 것인데, 어찌 유세하는 한 사람의 자문(咨文) 때문에 경솔히 허락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번의 황윤길(黃允吉)의 사행(使行)을 거울삼을 수 있습니다. 성상께서는 재량하소서."

하고, 윤자신(尹自新)은 의논드리기를,

"복수할 계책도 세울 겨를이 없는데 먼저 통신사를 보낸다는 것은 의리로 보아 차마 못할 일입니다. 이것이 비록 책사(冊使)의 뜻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실로 힘써 부응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유격의 한마디 말에 따라 또다시 왜노(倭奴)의 술책에 빠져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결코 이행할 수 없습니다. 기타 사세의 이해(利害)에 대해서는 신이 실로 우매하여 감히 알 수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김명원(金命元)·유영경(柳永慶)·강신(姜紳)은 의논드리기를,

"흉적은 우리와 더불어 처음부터 원수를 맺은 것이 아닌데, 무단히 군사를 일으켜 묘사(廟社)를 불사르고 백성들을 도륙하여 그 불측한 화가 선왕의 능묘에까지 미쳤습니다. 그러므로 이 적은 우리 나라에 있어 언제고 반드시 보복해야 할 원수인데, 어찌 다시 통신사를 보낼 수 있겠습니까. 다만 애초 우리 나라가 자강(自强)하지 못하여 중조(中朝)에 구원을 요구하자 중조는 끝까지 구제해 주었는데, 불행하게도 기미(羈縻)의 설이 나오자 굳이 고집하지 못하고 결국 황상에게 주달해서 지금 책사(冊使)가 이미 적의 진영에 들어가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적은 오히려 물러가지 않고 우리에게 통신사를 요구합니다. 우리가 만약 따라 주지 않으면 적은 필시 이를 핑계로 지류(遲留)할 것이요, 끝내는 유경(惟敬)이 이것을 꼬투리로 잡아 허물을 전가하려 할 것이니, 이 점이 몹시 염려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의심스러운 적의 동태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봉사(封事)의 성패가 만약 배신이 가고 안 가는 것에 달려 있다면 책사가 어찌 요청하지 않고서 ‘유격의 농간이다.’ ‘별로 볼 일이 없다.’고 말하겠습니까. 그 사이의 실정은 실로 알 수 없는 바입니다. 더구나 천조가 약속을 정할 때 우리 나라의 통신사는 그 속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과연 공순하다면 어찌 통신사 한 가지 일로 인하여 철수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허락하지 않는 데에 대해 할 말이 없음을 염려할 게 없습니다. 신들의 우매한 생각에는 의리를 따져 논변하여 유격에게 회자(回咨)하는 한편 적의 정세를 갖추어 진술하여 하루 속히 중국에 주달하는 것이 사리에 마땅할 것 같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이증(李增)은 의논드리기를,

"우리 나라가 흉적과 함께 지금까지 한 하늘 아래 살고 있으나, 혈기(血氣)를 가진 자는 모두들 복수를 위해 한번 죽을 것을 결심하고 있습니다. 통신(通信)이란 이 두 글자는 비록 백세 후라도 의리상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오늘날에 있어서이겠습니까. 다만 의리를 생각할 뿐이지, 훗날의 이해와 화복이야 어찌 생각할 겨를이 있겠습니까. 설사 이해로 말한다 하더라도, 적정(賊情)의 흉측한 계략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비록 그들과 통화(通和)하더라도 후환이 꼭 없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날의 일로 충분히 징험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이 비록 황제의 명령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결코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인데 어찌 유경(惟敬)이 보낸 한 장의 글을 가지고 경홀히 의논할 수 있습니까. 다만 생각건대 황조가 적을 책봉하는 의도도 또한 우리 나라의 화란을 완화시키는 데에 있습니다. 만약 혹시라도 적의 무리가 이를 이유로 즉시 철수하지 않고 사신이 여기에 구애받아 복명할 기약이 없어 낭패하여 처리하기 어려운 사세가 있게 되어 황조로부터 품명(稟命)이 있게 된다면 그때에 가서 다시 의논할 단서가 없지 않을 듯싶습니다. 지금은 우선 의리의 불가함을 가지고 준엄한 말과 부드러운 말을 겸해 갖추어서 회자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박충간(朴忠侃)은 의논드리기를,

"흉적은 우리 나라에 있어 영원한 원수인지라 하늘에 사무치는 원한은 상하가 일반입니다. 황조(皇朝)가 책봉 사신(冊封使臣)을 보내서 이미 강화를 허락하였는데 저 적의 오만무례한 마음은 전일에 비해 더욱 극심하여 통신사를 보내라는 말이 또한 천만 뜻밖에서 나왔습니다. 이러고서야 우리 나라가 고통을 극복하고 인내심을 길러서 복수할 날이 그 언제 있겠습니까. 신은 몹시 마음이 아픕니다. 신의 우매한 생각에는 5년 동안 대치하면서 적을 토벌하지 못한 것은 모두가 황조의 명령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이제 이 통신사의 일 또한 황조의 명령이 아니니 결코 준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심 유격이 주선하여 통신사의 명칭을 없애버리고 두 사신이 일본으로 들어갈 때 수행하는 것으로 호칭한다면 품계가 낮은 한 관원을 차임해 보내는 것도 이치에 그리 불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권징(權徵)은 의논드리기를,

"신은 질병으로 해를 넘기며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 있으므로 조보(朝報)009) 와 조정 의논을 전혀 들어 아는 바 없으니 나라의 위태함을 부지하고 적에게 원수를 갚을 만한 무슨 기이한 모책과 깊은 계략이 있겠습니까. 생각건대 남의 백성을 도륙하고 남의 종사를 폐허로 만든 자가 어찌 한량이 있으리오마는 이 적과 같이 극심한 자는 있지 않았습니다. 능묘(陵墓)를 파헤쳐 불질러서 옥체(玉體)가 어지러이 흩어졌으니 아득한 구원(九原)에 위문할 길조차 없습니다. 온 나라의 신민(臣民)이 어찌 차마 하루인들 함께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임금의 복수는 필부와 다름이 있습니다. 이미 성(城)을 의지해 한바탕 싸워 존망을 결판하지 못하였으니, 구천(句踐)이 회계산(會稽山)에서 살다가 20년 후에 복수한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또 우리 동쪽 한 나라는 이미 중국의 속국이 되었으니 모든 명령과 시행하는 바가 비록 우리에게 불편하더라도 마땅히 뜻을 굽히고 따라야 합니다. 더구나 지금 백성이 궁지에 빠지고 재력이 탕진되어 국세가 위급한 데이겠습니까. 우선 권모(權謀)를 써서 적의 마음을 꾀이는 것 또한 한 가지 방책일 것입니다. 신의 우매한 뜻을 삼가 진술하겠습니다. 일찍이 두 능묘가 파헤쳐진 형상을 보니, 실로 우리 나라 사람이 지휘한 바가 있었습니다. 어찌 그로 하여금 왜적과 함께 천지 사이에 숨을 쉬며 살게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사신 보내는 것을 아니할 수 없다면, 능묘를 범하고서도 목숨을 부지하여 섬에 숨어 있는 우리 나라 백성과 이 계획을 주창한 적장(賊將)을 함께 묶어 보내게 하고, 또 관백(關白)을 회유하여 사죄하는 글을 보내오게 한 연후에야 비로소 다시 두 나라의 우호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구사맹(具思孟)은 의논드리기를,

"삼가 심 유격의 자문을 보건대, 우리 나라의 통신사와 함께 동행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생각건대 강화의 일은 상국에서 나온 것이요, 본래 우리 나라가 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책봉 사신이 오자 적은 온갖 교활한 짓을 자아내며 철병(撤兵)에 관한 일에 대해 자주 그 말을 변조하였습니다. 두 사신이 이미 그 진영으로 들어 갔으니 의당 물러가야 할 것인데, 끝내는 또다시 따르기 어려운 요청을 해오니 그 간교한 계략이 너무도 다양합니다. 오늘날의 사세로 말한다면 우리의 병력이 능히 흉적을 소탕할 수 없습니다. 지금 만약에 그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적은 반드시 이것을 구실로 삼아 끝내 철수해 물러가는 날이 없을 것이며, 유격 역시 우리에게 허물을 돌려 조선이 통신사를 보내지 않은 소치라고 할 것이니, 실로 작은 걱정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적은 심상히 국경을 범하여 노략질한 것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묘사(廟社)를 불지르고 우리의 능묘를 파헤친 적이니, 만세를 두고라도 반드시 복수해야 할 원수입니다. 그런데 어찌 그 원한을 잊고 친목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우매한 신의 얕은 소견으로는 통신사를 보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이희득(李希得)은 의논드리기를,

"왜노(倭奴)는 우리 나라와 한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통신사를 보내 우호를 맺는 것은 신자(臣子)로서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인데, 지금 전교(傳敎)를 받들어 심 유격이 보낸 자문의 내용을 보니 분통한 마음을 견딜 수 없습니다. 단 중국에서 사신(使臣)을 보냈으므로 이미 허화(許和)의 길은 열린 것이니, 우리 나라가 따르지 않으려 하여도 사세로 보아 불가능합니다. 우선 그들의 말을 따라 잠시나마 눈앞의 다급한 것을 늦추고 훗날의 복수책(復讐策)을 도모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권응복(權應福)은 의논드리기를,

"오늘날의 사세 조종은 한결같이 적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중국의 봉사(封使)가 이미 적의 진영으로 들어갔으니, 탐욕스런 흉적이 무슨 짓인들 하지 않겠습니까. 적과 우리는 이미 깊은 원수를 맺고 있으니 교활한 적이 어찌 우리 나라의 상하가 모두 조석으로 와신 상담하면서 복수심에 통분해 있음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이것이 감히 적이 스스로 통하지 못하고 중국 관원의 입을 빌어 협박을 가하는 이유입니다. 우호를 맺자는 말은 변사(變詐)를 부릴 단서를 만들려는 속셈에 불과한 것이니, 지금 이해를 돌아보지 않고 경솔히 그들의 소청을 허락하면 후일에는 반드시 지금보다 더 따르기 곤란한 요청을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적은 화란을 뉘우치는 날이 없고, 나라는 원수를 망각하는 수치를 만세에 전해 보이게 될 것이니 신은 차마 할 수 없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곽영(郭嶸)·조경(趙儆)·여림(汝霖)·조대곤(曺大坤)·사직(思稷) 등은 의논드리기를,

"우리 나라와 이 적은 영원히 한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지간으로, 혈기를 가진 자는 통분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더구나 배신을 대동하는 일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중국 사신도 또한 별로 할 일이 없다고 하였는데, 유격이 자기의 뜻을 성취하고자 흉적의 세력을 끼고 만단으로 변환하여 그 말이 몹시 패려하니 참혹하여 차마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신들은 무인(武人)이라 오직 창을 베고 쓸개를 맛보면서 국치(國恥)를 설분할 생각만 할 뿐, 통신사의 일에 이르러서는 감히 함부로 의논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윤선각(尹先覺)은 의논드리기를,

"이 적이 중국에 화친을 요청한 이후 여러 차례 그 말을 변경하면서 온갖 간교를 자아내었고, 오늘날 두 사신이 왜영(倭營)에 들어감에 이르러서는 또 통신사를 요구하는 말을 계속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비록 이에 그치고 말더라도 의리상 따를 수 없는 것인데, 더구나 그들의 한량없는 요구가 또 이보다 큼이 있을 것이니 장차 어떻게 그 뒷감당을 잘 하겠습니까. 또 더구나 이 일은 이미 중국의 명령도 아니고 사신의 뜻도 아니며 다만 유격의 말에서 나온 것이니, 그 사이의 사정을 더욱 요량할 수 없는 일이라 함부로 허락할 수 없음이 또한 분명합니다. 다만 우리 나라는 능히 자강(自强)하지 못하여 보존을 도모하는 모든 계책을 한결같이 중국에게 들어왔으므로, 그 신축 조종(伸縮操縱)하는 일도 우리의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유격이 옴으로 인해 갑자기 원수인 적과 서로 통하는 것은 실로 차마 못할 일입니다. 종전에 의리를 들어 어렵게 중국에 간쟁하던 것이 끝내는 또한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마땅히 따를 수 없다는 뜻으로 반복해 논변하여 유격의 자문에 회답할 것이며, 또 적의 정세를 갖추어 중국에 주달하는 것이 무방할 것 같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최입(崔岦)은 의논드리기를,

"통신사에 관한 일은 본래 의논할 일이 못 되는 것인데, 널리 자문(諮問)함에 이르러서는 또한 그 의논을 용인하는 자도 있으니, 신은 감히 모르겠습니다. 또한 두 사신이 오히려 차송(差送)을 요구하지 않았으니, 사세가 비록 급박하더라도 오늘날 의논하는 것은 경솔한 처사인 듯합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이노(李輅)는 의논드리기를,

"우리 나라와 왜노는 언제고 반드시 보복해야 할 원수지간이니, 그들에게 통신사를 보내 강화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더구나 중국에서 강화하는 것은 애초부터 우리 나라와 관계가 없는 것이니, 사신에게 배신을 딸려 보내는 것이 일에 있어서 무익할 뿐만 아니라 또한 사리를 해칠까 염려되므로 진실로 경홀히 의논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비록 황제의 명령이 있더라도 또한 마땅히 반복해 논주(論奏)하여 부득이한 연후에 서서히 다시 의논할 일입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김우옹(金宇顒)은 의논드리기를,

"원수의 흉적은 의리로 보아 한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으니, 우호를 맺을 수 없는 그 의리가 이미 분명하여 다시 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유도하는 자가 있어 말하기를 ‘형세에는 강약이 있고 일에는 경권(經權)이 있으니, 자신을 굽혀 우선 적을 물러가게 하고 훗날의 일을 도모하는 것 또한 시기를 가늠하고 나라를 보존하는 하나의 계책이다.’라고 합니다. 이 말이 그럴 듯하기는 하나, 오늘날의 형세로 볼 때 또한 그렇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조신(調信)이 돌아오자 서로 모여 은밀히 의논하면서도 오히려 사신을 보려 하지 않으니, 섬 오랑캐가 지니고 있는 그 다양한 간교를 진실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현소(玄蘇)의 그 공갈 조종하는 말이 극히 흉악 패려하니, 그 반복 무상한 간교한 계책을 어찌 쉽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두 사신은 한마디도 통신사에 대해 언급이 없었는데 심 유격의 입에서 나온 말을 어찌 신빙하여 갑자기 교활한 오랑캐에게 통신사를 보내어 모욕을 자초하고 피해가 점점 깊어지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아마도 나라를 도모하는 적절한 묘책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신의 우매한 생각에는 원칙을 따르고 정의를 지켜 천명(天命)을 기다리는 것이 후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황우한(黃佑漢)은 의논드리기를,

"흉적은 의리로 보아 한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이니, 통신사를 파견하여 결코 오늘날 재차 과오를 범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시세가 어쩔 수 없어 보내야만 한다면 혹시 변통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는 오직 성상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이제민(李齊閔)은 의논드리기를,

"원수의 나라와 더불어 우호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은 대의(大義)가 분명하여 진실로 함부로 의논드릴 수 없습니다. 더구나 적이 교활하여 신의가 없다는 것은 이미 징험하여 드러난 사실인데, 이제 어찌 또다시 과오를 범하겠습니까.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유자신(柳自新)은 의논드리기를,

"지금 우리 나라와 왜노(倭奴)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원수지간입니다. 지금 저들이 감히 통신사를 요청하는 것은 모두가 우리 나라를 멸시하는 것으로 조종하는 권한이 그들의 손에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의 말을 들어주면 통신사의 왕래에 그치지 않고 끝내는 눈물을 흘리면서 딸을 오(吳)나라에 보내는 모욕이 이를 것이니, 결코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상처를 입고 일어나지 못하며, 병력이 탕진되어 전연 지탱할 형세가 없으니, 거절하고 따르지 않으면 저들은 병세(兵勢)가 강성한 터이라 생각건대 필시 독을 부림이 지난날보다 극심할 것입니다. 미천한 신의 우매한 생각에는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의리로 중국에 주달하여 외교(外交)하지 말라는 칙서를 받아, 한편으로는 그들의 흉모(凶謀)를 깨뜨리고 한편으로는 우리의 약세를 보이지 않는 것이 아마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하고, 허진(許晉)은 의논드리기를,

"적의 동태를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온갖 흉계로 세월을 지연하면서 지금까지 바다를 건너지 않더니, 지금에 와서 심 유격이 감히 궤설을 늘어놓으며 자문을 보내어 배신을 사신에게 딸려 보내 우호를 다지도록 하라고 청하였습니다. 설사 이 말이 사신에게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중대한 일이라 오히려 경홀히 따르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유격이 떠벌리는 말인 데이겠습니까. 이는 더욱 취신(取信)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찌 그의 자청(咨請)으로 인해 사리를 그르치겠습니까. 결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선 적이 분명히 철수할 것을 보고 난 다음에 참작하여 조처하는 것이 무방할 것 같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윤인함(尹仁涵)은 의논드리기를,

"심 유격이 통신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은 현소(玄蘇)의 말에 의해 한 것입니다. 만약 한 번 사신을 보내서 영원히 화란이 없게 된다면 조신(朝臣) 한 사람을 택하여 보내는 것도 진실로 불가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강화의 말이 나온 지 이미 오래되었고 사신이 남하한 지도 또한 오래 되었습니다. 지금 바다를 건널 때가 임박하여 갑자기 신사(信使)에 대한 말을 만들어 지연시키니, 그 사이의 간교한 변사(變詐)는 실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오늘날 신사를 보내더라도 후일 계속하여 다른 요청이 있게 된다면 그것을 다 따를 수 있겠습니까. 신의 생각에는 현소의 교활한 말과 유격의 일시적 요청으로서는 신사를 보낼 수 없다고 여깁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최원(崔遠)은 의논드리기를,

"신이 삼가 심 유격의 첩문(牒文) 1통을 보고 반복하여 생각해 보니, 이는 진실로 사세의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인유(引諭)한 말도 지극히 간절하여 한두 가지가 아니니, 이 역시 소견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로(賊虜)와 우리 나라는 망극한 원한만이 있을 뿐, 한 하늘을 같이 이고 살 의리가 없습니다. 설사 배신을 보내면 즉시 우호를 이룰 수 있다고 하더라도 쉽게 단행할 수 없을 것인데, 더구나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 데이겠습니까. 반드시 보내야 한다고 한다면 신은 그것이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이 일은 조정의 막대한 조치이므로 자연 묘당(廟堂)의 치밀한 계책이 있을 것인데, 신이 어찌 감히 그 사이에 군더더기 말을 하겠습니까.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노직(盧稷)은 의논드리기를,

"이 일은 대의로 판단하면 진실로 다른 말이 용납될 수 없고, 비록 이해로 말한다고 하더라도 신은 과연 유익이 있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적은 이미 ‘책사(冊使)가 경성(京城)에 이르면 철수하겠다.’고 말하였는데, 책사가 정작 왜영(倭營)에 들어감에 이르러서도 미적거리고 핑계하며 온갖 변사를 부립니다. 또 ‘행장(行長)이 일본에 다녀온 뒤에 철수하겠다.’고 하였는데, 지금 조신(調信)이 돌아옴에 이르러도 함께 어울려 밀의(密議)만 하고 있으니, 또한 헤아리지 못할 동태가 많습니다. 배신이 간다면 그 후에는 또다시 무슨 말을 할런지 모르겠습니다. 그 정세를 탐지해 볼 때 이것이 수길(秀吉)의 뜻이 아니고 유경(惟敬)행장(行長) 등과 함께 이것으로 자신들의 공로를 꾀하는 소지로 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책사(冊使)가 이미 수길의 요구하는 바가 아니니, 비록 배신이 가더라도 부드러운 말로 인사 치레나 하는 하나의 예물이 될 뿐, 국사의 성패에는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가령 저 왜적은 실로 이러한 심산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한 가지 일로 인해 위급해진 뒤에 보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면 옛사람들도 또한 임기응변의 부득이한 처사가 있었을 것이니, 구구한 혐의에 구애되어 기회를 잃는 것은 불가한 것 같습니다. 다만 오늘날의 일은 성취를 중국에 기대할 뿐 우리 나라는 애초부터 그 사이에 간여하지 않았습니다. 근거할 만한 성지(聖旨)도 없고 사신의 분부도 없는데, 단지 유경의 말 한마디로 경솔하게 막중한 일을 거행한다면 훗날 난처한 걱정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박충원(朴忠元)은 의논드리기를,

"왜노(倭奴)는 전연 신의가 없습니다. 지금 신사(信使)를 요구하는 것은 우리 나라의 실정을 탐색하려는 행위입니다. 만약 그들의 말을 따른다면 또다시 그들의 술책에 떨어지는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설사 훗날 이를 꼬투리 잡아 우리에게 큰소리를 친다하더라도 보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지난 사실로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신의 우매한 생각에는 결코 따를 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하고, 한효순(韓孝純)은 의논드리기를,

"신은 생각건대 이 적은 오랫동안 유지해 온 우호를 저버리고 명분없는 군사를 일으켜 우리의 종묘 사직을 폐허로 만들었고 우리의 백성을 도륙하였으며, 우리 선왕의 능묘를 파헤쳤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곧 만세 신민이 반드시 갚아야 할 원수로서 하루라도 하늘을 같이 이고 살 수 없는 자이니, 거듭 우호를 펴며 왕래할 수 없음은 사리가 아주 분명하여 지혜롭지 못한 자라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건대 중국이 주선하는 강화의 성취가 이미 8∼9분의 지경에 이르렀으니 우리 나라의 신사를 보내더라도 또한 성취될 것이요, 보내지 않더라도 또한 성취될 것인즉 결코 보낼 수 없습니다. 만약 적이 가고 안 감이 이 사신을 보내는 한 가지 일에 달려 있어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 원인이 된다면 어찌 보내지 않겠습니까. 이는 성패가 매였고 대계(大計)가 있는 바이니 획일적으로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신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우선 결단코 불가하다는 말로 반복해 회자(回咨)하여 그 기미가 어떠한가를 살피고 끝내 부득이한 지경에 이를 경우에는 황조(皇朝)의 자칙(咨勅)을 받아 조처함이 무방할 것 같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희림(希霖)이관(李瓘)은 의논드리기를,

"우리 나라에서는 조금도 언짢게 한 일이 없었는데도 흉적은 우리의 종묘 사직을 불지르고 그 욕이 우리 능묘에까지 미치게 하였으니, 이는 영원히 하늘을 같이 이고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지금 복수하는 일은 거론하지 않고 경솔히 통신의 일을 의논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흉측하게 간교를 부리는 적이 다시 따라줄 수 없는 말을 내어 요구해 온다면 그를 다 따라줄 수 있겠습니까. 신들의 생각에는 통신사에 대한 한 가지 일은 결코 따를 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니, 상이 답하기를,

"비변사(備邊司)로 하여금 좋은 의논을 따라 조처하게 하라."

하였다.

  • [註 006] 눈물을 흘리면서 딸을 오(吳)나라로 보내듯이 : 남방 오랑캐인 오(吳)나라 왕 합려(闔閭)가 제(齊)나라를 치고자 하므로 제 경공(齊景公)이 그 강함을 두려워하여 딸[女]을 인질로 보냈는데, 끝내는 오왕(吳王)이 며느리로 삼았다. 《오월춘추(吳越春秋)》 합려내전(闔閭內傳).
  • [註 007] 월왕(越王)이 오(吳)나라에 강화를 요청하고서 백성을 모으고 가르친 것 : 월왕 구천(越王句踐)이 오 나라에 패배한 뒤 회계산(會稽山)으로 들어가 오왕 부차(吳王夫差)에게 화친을 청한 다음, 10년 동안 백성을 안집시키고 산업을 일으켜 끝내 오를 멸하고 원수를 갚았다. 《사기(史記)》 권41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
  • [註 008] 기정(奇正) : 병가(兵家)의 말. 비상(非常)을 기(奇)라 하고, 평직(平直)을 정(正)이라 한다. 《손자(孫子)》 병세편(兵勢篇).
  • [註 009] 조보(朝報) : 승정원에서 처리한 사항을 매일 아침에 기록하여 반포하는 관보.

원문

○以沈遊擊移咨議處事, 二品以上獻議。

成龍議: "臣, 病中精神昏耗, 思慮顚錯, 不堪議軍國重事。 且不聞沈懋時入來後所言云何。 其中事情, 固難料測, 但因前後狀啓, 不勝憂慮。 反覆思度, 夜以繼日, 而未得其所處之宜。 臣從前每疑此賊, 末(捎)〔梢〕 必爲難從之請, 以起釁端, 今之事勢, 駸駸近之。 以臣愚料, 今此調信之回, 形色可疑。 恐其所要, 不止於通使, 亦或欲爲背約, 而特假此爲辭, 沈惟敬, 亦自知其事不了, 計窮反欲歸過於他地, 而爲自解之計。 如使平秀吉, 欣迎天使, 且要我國使臣, 同來而已, 則平調信何以連日與其類密議, 然後始見遊擊? 遊擊亦何以稱病閉門, 不面見天使, 而但使下人, 傳報耶? 此等形色, 極爲可疑。 臣意此賊, 雖假此爲言, 而其兇謀, 實在於他也。 今此咨文, 若以直辭拒之, 則正墜於遊擊作弄之中, 而執此馳報天朝曰: ‘封事將成, 而朝鮮不許遣使之請, 故賊未退。’ 若欲順其所言, 則亦非人情、義理之所忍爲。 雖許遣使, 之去否, 尤未可必, 此其所以難處者也。 無已則當答之曰: ‘弊邦與日本比隣, 初無毫髮怨隙, 不意, 日本逆天悖理, 無故興兵, 虔(刈)〔劉〕 我生民, 焚夷我廟社, (拔)〔發〕 掘我丘陵, 弊邦之人, 雖三尺童子, 無不沫血飮泣, 以爲: 「有死而已。 豈敢言和?」 今蒙天朝天涵海育, 兼愛南北之民, 勞勳戚大臣, 涉不測之地, 要在解棼息兵。 大人以當事銜命之重, 敎戒小邦如此, 至以陪臣, 隨天使渡海, 禮義當然見責, 此亦實關於天朝大體。 第以日本之人, 所在反覆, 不可憑信。 前後情節變遷, 雖詔使以皇靈臨之, 尙未得其要領。 機張竹島安骨之賊, 屯結如舊, 未聞渡海之期。 更亦何有於小邦, 而以一使爲重輕哉? 若是則小邦, 徒爲益重恥辱, 而爲天下笑, 大人之勤勤惓惓, 終始擔當者, 竟歸於虛地也。 唯望大人, 更査彼中情形, 竝與冊使, 商確定奪, 毋苟完目前, 而爲長遠之圖, 使小邦, 得免再悞於今日, 幸甚云云’, 以觀其所答如何, 而益察近日賊動靜而更之, 以爲宜當。 不可於一言之間, 輕爲許與不許, 更難收拾。 臣當此大事, 竭其心思, 而思慮所及, 僅止於此, 不可採用。 此乃極重機關, 伏望廣收廷議, 裁自聖衷, 俾無後悔。 且臣又有所慮, 故竝及之。 今春防守之計, 不可不急急措置。 往在壬辰, 賊亦(遠)〔每〕 以虛語, 往來懈我, 言歲遣船, 朝夕將至, 而大賊突至。 今年之事, 亦安知其不出於此乎? 他處不可槪擧, 濟州尤甚可憂。 此地正當西南海, 且與中國相近, 若據之, 則雖欲以天下之力, 取之不(可)〔能〕 。 前日賊使要時羅, 明言將犯濟州, 而本州適癘疫、飢饉, 人民死亡, 亦似不幸。 其他事, 竝與備邊司, 不分晝夜措置宜當。"

守慶議: "臣伏覩沈遊擊移咨及黃愼前後狀啓: ‘陪臣率去之事, 似是出於玄蘇平行長平調信等, 與沈遊擊同議, 要功於關白之計也, 其詐譎叵測, 誠爲可慮。 但陪臣起送, 本非帝命, 遊擊亦言之’ 云。 旣非帝命, 又非兵部之敎, 又非天使之意, 則只依遊擊之咨, 陪臣起送, 實是無名之擧。 以此爲辭, 答遊擊之咨, 恐或無妨。"

興源議: "我國於倭奴, 少無開釁之事, 而入寇肆毒, 陷我三京, 禍及陵寢。 此誠不共戴天之讎也。 兵興四載, 師老、糧竭, 雖未勦滅兇賊, 痛心如割, 豈一日忘此賊乎? 彼賊以通信之言, 欲試朝廷深淺, 尤爲痛惋。 今若輕許, 他日之請, 不止於此, 則前頭難處之患, 恐有甚於今日也。 臣經年患病, 精神昏憒, 料事顚錯, 今承下問, 不敢含默, 略陳愚見。 伏惟上裁。" ○臣斗壽議: "當初冊封天使之入境也, 識者固慮有難處之事, 而幸天使, 聽採一國事情, 不責信使之行, 其於枕戈嘗膽之事, 得有以張目而待矣。 今者冊使則不與較, 而沈遊擊中間弄壞至此, 一國臣民, 不共戴天之冤, 無時可雪, 後日種種難從之請, 何可勝言? 宗社、生民之禍, 由此益滋。 臣不敢有涕出女之意。 宜以嚴辭婉意, 修咨回送, 何如? 伏惟上裁。" ○臣應南議: "此賊於我國, 有萬世必報之讎。 只緣兵力單弱, 未能聲罪討滅, 而斷以大義, 不可一日共戴天。 當初通信之擧論者, 猶以爲不可。 況在今日, 其可忍言此事哉? 設令不得已從之, 旣從之後, 賊之所要於我者, 又有決不可從之事, 則未知將何以處之? 與其難處於旣從之後, 曷若不從於今日之爲愈? 此臣之所以大憂者也。 但上年朝廷, 爲胡澤所迫, 旣從羈縻之說, 奏達皇聽, 至令冊使, 入來於賊營, 而遊擊欲得信使, 以助封事之成。 今若不從其言, 而賊終敗約不退, 則遊擊必執此歸咎於我國, 此尤可憂之大者也。 第有一事可疑。 冊使在京時, 固請信使率去, 而今在賊中, 一則曰: ‘陪臣之去, 遊擊所弄。’ 一則曰: ‘事體不當。’ 一則曰: ‘陪臣帶去, 沒有所幹。’ 其言必有所見, 安知此賊之要求通信, 或非出於實情哉? 此間事狀, 極爲殊常。 雖信遊擊之言, 遽從其請, 恐有後悔。 具奏以聞, 以待天朝處置似當。 臣之愚見如此, 而亦未知其必是。 伏惟上裁。" ○臣鄭琢議: "臣就審沈遊擊呈咨, 語涉張皇。 本國陪臣, 必欲偕行, 酬答之辭, 切宜十分商確, 俾無未盡之意。 其所答之辭, 大槪若曰: ‘足下能體聖天子字小之仁, 偏念小邦切迫之患, 冒涉寒暑, 圖濟十全, 固無餘欠。 今此移咨, 傾倒備悉, 重荷盛念, 敢不知感? 第以賊情見示, 欲與陪臣, 必與從行, 俱入倭國, 亦見爲小國周旋之意, 至此而無以加矣。 寡人, 亦豈不諒? 寡人淺見以爲, 此賊兇詐, 終始難信。 今者撤兵, 實荷皇朝威德, 足下奉宣得宜, 而奉勑兩大人繼臨, 休勢孔嚴。 小邦陪臣, 往與不往, 有何些少輕重於其間乎? 陪臣不宜攸往, 不待重辨。 賊之請行, 意固難測, 賊情譎詐, 得於天性。 今似納款, 實畏大國威靈, 而撤歸臨時, 敢以小邦必不從之事, 連臂傳語, 欲試弊邦之意, 初非誠意所發, 亦或因此托言, 復(桃)〔挑〕 意外兇謀, 難保其必無。 昨者無故動兵, 屠戮城市, 辱及先陵, 此賊誠於小邦, 百世難忘之讎。 隱忍經過, 顧力不及耳。 小邦之不與修好, 賊亦自知, 而敢要陪臣之偕行, 非有凶謀而何? 且皇勑欽旨, 全爲小邦, 欲其撤兵之急, 而皇勑甚嚴, 兩大人之行, 亦已來臨。 固當承受奉行之不暇, 而盤回遲久, 又要陪臣, 操縱由己, 無復聽行於詔使, 此果何等作爲耶? 小邦陪臣, 雖不得行, 皇勑其敢違耶? 其桀傲、悖慢之狀, 固不足道, 獨不念皇朝體面至嚴耶?’ 且有一說焉。 ‘凡爲天下列國, 無有遠邇, 各守封疆, 作藩王國, 無相私結, 此古今之通義也。 雖在化外之國, 或相通好, 固不無羈縻不拒之意, 律以王法, 則實犯私交之罪。 非有皇朝欽旨, 而擅遣陪臣, 有若顯然大傷事體, 實犯常刑, 固不可冒行。 以足下弘量包荒, 雖置度外, 亦豈小邦, 必行勿違耶? 大抵此賊情形, 固難測知。 惟冀足下, 終始殫誠, 曲加周旋, 陰折兇謀, 再造小邦, 何德如之?’ 以此爲措辭, 答之似當。 又有一種之說, 以爲: ‘此賊不退, 則事將難知, 遊擊之言, 恐非偶然。 天心悔禍, 此賊撤歸, 則將來國事, 猶或可爲。 謀國之道, 或有不得已變通之時, 古之帝王, 猶或行之。 國勢危如一髮, 而不能忍耐, 非所以謀國之道也。 且遊擊送咨, 甚有機關, 如或處之失宜, 萬一事或不諧, 則遊擊反自有辭, 歸咎本國, 亦不可謂無是事。’ 云。 此論雖則然矣, 實非經據, 固非今日所當言者也。 竝錄以啓, 以備參考, 伏惟上裁。" ○臣崑壽議: "伏以, 萬世之仇, 不可忘; 窮天之怨, 不可釋。 賊之所爲何如, 而舊好二字, 乃出於賊酋之口乎? 此我國臣子, 所不忍聞, 而沈遊擊咨內云云者, 之所管, 旣是便宜調戢, 則其意必以爲事有理勢, 道有經權, 故不以害人, 難於絶物, 古有是言。 今天朝所爲者和事, 而賊酋所欲如此, 無寧如越王請成於, 而生聚之, 敎訓之, 然後玆封事, 出於天朝, 而我則不與焉。 陪臣之跟隨封使, 又無欽降聖旨, 在我又安敢自擅? 以此意回咨, 恐或爲當。 伏惟上裁。" ○臣根壽議: "此賊兇詐百出, 冊使臨當過海, 乃發陪臣隨往之語, 而沈遊擊爲之主張, 至於移咨。 且賊僧恐喝之語, 無所不至, 極爲痛心。 其奸謀似不徒然。 我國若不許, 而賊酋將執此以爲辭, 則將來之憂, 有不容言者。 且賊之要刦者, 豈在於通信一事而已乎? 若一許此, 則又將以決不可從之語, 次第言之, 我國, 將何以應之? 不但萬世之仇, 在人義, 決不可通好, 而一許信使之後, 則將來尤不能自樹立矣。 曩年通好, 豈我國之意, 而猶隱忍爲之者, 擬可以不觸其怒, 或息兵端, 而曾未幾時, 乃有此開闢所無之兵禍, 則通好之無益, 已事之明驗也。 且兩冊使, 俱在倭營, 應必稔知事勢, 而其意皆以爲不須帶去。 豈可只因遊擊之咨, 而輒許之乎? 伏惟上裁。" ○臣喜壽議: "直截大義, 憤惋至痛, 今不暇言。 姑以目前事勢言之, 賊屯海邊, 已及四年。 今欲撤去, 則自當去矣, 有何緊要於朝鮮使臣, 而必欲與俱也? 臣之愚意, 送不送, 無關於去不去也。 賊僧玄蘇, 蔑我之甚, 做出此說, 而愚弄之。 沈遊擊熟知賊情, 未易退去, 又揣我國羞與通好之意, 欲爲他日藉口免罪之地, 敢爲試探(勤)〔勒〕 要之計, 恐非關白賊之本意也。 調信回來, 不卽發此言, 累日密議, 然後始言之, 似是一明驗。 觀其咨意, 反復調誘, 其情不可掩。 今欲其跟伴天使之行, 而天使實不欲焉, 此亦不難知之事也。 回咨之意, 須十分婉曲, 不甚據理嚴絶, 微示以難準。 我亦試探彼情, 待彼之强, 然後徐議之, 或至於奉聖旨, 然後不得已而遵行, 則庶或免(伊)〔彼〕 漸加要索, 一節深一節之誣陷也。 但春汛已迫, 賊謀難測, 窮蹙之甚, 寸刻爲急。 若謂國家存亡, 在此一擧云爾, 則非愚陋小臣, 所得容議於其間也。 伏惟上裁。" ○臣德馨議: "天下之事, 不出於勢而已。 事勢至於此, 則操縱定奪之權, 恐非在我之所自由也。 朝唯欲苟且完事, 而許多事體, 都沒理會, 想凶賊陵侮之心, 愈益甚矣。 若我國陪臣, 遽爾入歸, 而賊以重大至難之事, 刦要于我, 朝以爲東事已完, 而不暇顧我國之憂, 則此時將若之何? 觀朝處事, 節節差誤, 則沈惟敬之計, 亦要成就其事, 日後之患, 有難勝言。 事機一失, 徒憤奈何? 無已, 則將近日賊情及此重難緣由, 明白奏聞而處之, 其於後計, 恐不爲無益。 上裁。" ○臣申點議: "此賊於我國, 乃萬世不忘之讎也。 遣使通情, 理所不忍爲, 而況旣無天朝命令, 又無冊使移咨, 遊擊一言, 何可遽從? 上裁。" ○臣洪進議: "以大義, 則萬世臣子, 不可忘此賊, 況敢與之通信乎? 以國力, 則目前兵將, 無人辦此賊。 若遊擊執此爲說而遽還, 則存亡決矣。 但此事, 天朝主張, 我國初不與焉。 今天使無帶率陪臣之意, 而遽從遊擊之言, 日後難處, 恐有甚於今日。 試以義不可之意, 告于天使, 而會于遊擊, 然後更議處之, 何如? 臣在病中, 神識昏昧, 不知所達。 上裁。" ○臣憲國議: "世讎之國, 義難通信。 以決不可從之意, 辭兼婉峻, 從速回咨於沈惟敬處, 而事若出於難處, 則更議恐或似當。 伏惟上裁。"

權慄議: "臣伏見沈遊擊咨文, 不無誘脅之意, 而揆之禮義, 則亦有可據。 況差遣陪臣, 追隨天使而去, 則別無通信使之名, 而爲陪臣臨時善爲說辭, 使秀吉自知其非, 而若回兇念, 則恐無羞恥之事, 而其於修鍊待時之擧, 必有有裕之期矣。 伏惟上裁。" ○臣申磼議: "此賊於我國, 極冤極痛之讎, 則通信一言, 非惟口不可言, 耳亦不忍聞也。 今若迫於危亡, 姑聽其請, 則終必以不可從之言, 節節變(幼)〔幻〕 , 未知何以應之, 而國書禮幣, 亦可忍爲乎? 但我國群臣, 若能於復讎之義, 腐心苦志, 協心不怠, 敎訓生聚之外, 更無他意。 期於異日, 必雪宗社之辱, 則佯爲許和, 以探賊情, 似亦不害於兵家奇正之術, 而倘以是爲退賊之良策, 則臣未知之也。 伊賊兇狡, 雖有天子之明命, 而要變其說, 遲延到今, 則果以我國之通信, 而盡撤渡海乎? 臣恐此論, 坐陷於沈惟敬之所詐也。 伏惟上裁。" ○臣宋賛議: "和議無益, 前史備焉。 與讎爲和, 程顥封事, 尤爲謹嚴, 委係天經地紀, 不可更論。 天朝遣使封王, 乃一視同仁之意, 豈與醜虜約和哉? 但兵家有奇正之略, 兵力或困, 則先爲不可勝之勢, 潛養兵力, 以爲應變之地, 亦一機也。 似不可執一論焉。 送信使, 則禍遲; 不送, 則禍速。 固難遙度, 而海寇之如蜮, 長含射影之沙, 其爲假途向京之凶計, 雖送信使, 必不少變。 送與不送, 終歸於無補, 豈可以遊說一夫之移咨, 輕易準之乎? 頃年黃允吉之行, 可以鑑矣。 伏惟上裁。" ○臣自新議: "未遑復讎之策, 先遣通信之使, 義所不忍。 雖出於冊使之意, 固難勉副。 遽從遊擊一言, 再陷倭奴術中, 決不可爲。 其他事勢利害, 臣誠愚昧, 不敢知也。 伏惟上裁。" ○臣命元、臣永慶、臣姜紳議: "兇賊與我, 初無搆怨之人, 而無端動兵, 燒毁廟社, 殺戮生靈, 不測之禍, 延及於先陵。 此賊之於我國, 乃萬世必報之讎。 豈有復通信使之理乎? 但當初, 我國不能自强, 求救於天朝, 天朝終始拯濟, 不幸而羈縻之說出, 而不得堅執, 至於奏達皇聽。 今者冊使, 已入於賊營, 而賊猶不退, 要我以通信。 我若不從, 則賊必托此遲留, 而終爲惟敬執言歸咎之地, 此甚可慮者也。 然近日賊情之可疑者, 不一而足。 封事之成否, 若係於陪臣之去不去, 則冊使何獨不請, 而一曰遊擊所弄, 一曰沒有所幹, 其間事情, 實所未曉。 況天朝定約之時, 我國通信, 不在其中。 伊情果爾恭順, 則豈因信使一事, 而不爲撤回乎? 我之不許, 不患無辭。 臣等愚意, 據理論辨, 回咨於遊擊, 一邊具陳賊情, 急急馳奏天朝, 似合事宜。 伏惟上裁。" ○臣李增議: "我國與凶賊, 尙戴一天, 有血氣者, 咸懷一死。 通信二字, 雖在百世之後, 義不忍出諸口。 況於今日乎? 只有義理。 他日之利害禍福, 何暇恤乎? 設若以利害言之, 賊情之兇謀叵測, 雖與之通和, 能保其必無後禍乎? 往日之事, 亶可懲矣。 此事雖或出於皇命, 決不可容易承之。 豈可憑惟敬一紙之書, 而遽議之乎? 第念皇朝封賊, 亦在於紓緩我國之患。 如或賊衆, 執此不卽撤還, 天使拘此, 復命無期, 有狼狽難處之勢, 而自皇朝有稟命, 則恐不無隨時更議之端。 今以義理之不可, 兼備峻婉之辭, 回咨似當。 伏惟上裁。" ○臣忠侃議: "兇賊於我國, 有萬世之讎。 通天憤痛, 上下皆然。 皇朝遽遣準封天使, 已爲講和, 彼賊桀驁, 驕傲之心, 比前日益熾。 許遣通信使之言, 亦出於千萬意外。 我國枕戈嘗膽, 復讎之日, 在於何時耶? 臣竊痛心焉。 臣之愚意, 五年對壘, 不得討賊者, 皆是皇朝命令。 今此通信之事, 亦非皇朝之命, 則決不可遵行。 設若沈遊擊周旋, 滌去通信使之號, 以兩天使入日本之時, 跟隨稱號, 則秩卑一員差送, 於理不甚無謂。 伏惟上裁。" ○臣(權懲)〔權徵〕 議: "臣疾病經年, 長伏枕席, 朝報廷議, 都未聞知, 有何奇謀深計, 可以扶國危復賊讎者乎? 第惟屠人生靈, 墟人宗社者何限, 而未有如此賊之甚。 掘燒仙寢, 玉體亂眞, 茫茫九原, 欲問無路。 擧國臣民, 豈忍一日俱生? 然而人主之報讎, 與匹夫有異。 旣不能背城一戰, 以決存亡, 則句踐之栖會稽, 能復讎於二十年之後, 亦可踵也。 且我東一邦, 旣爲天朝屬國, 凡所號令施爲, 雖或不便於我者, 猶當屈意而從之。 況民窮財盡, 國勢(捏扤)〔杌隉〕 ? 姑行權謀, 以誘賊心, 此亦一策。 臣之愚意, 竊有所(布)〔希〕 。 曾觀兩陵掘破之形, 實是我國之人, 有所指揮。 豈令與賊, 假息於覆載之間乎? 今日之遣使, 旣不可得已, 則我民之犯於陵寢, 偸生在島者及賊將之首倡是計者, 幷使之械送, 又諭關白, 俾致謝罪之書, 然後方可復修兩國之好矣。 伏惟上裁。" ○臣思孟議: "伏覩沈遊擊咨內, 要與我國通信使偕行。 竊念講和一事, 出於上國, 本非我國所願。 今此冊封天使之來, 賊之狡詐百出, 撤兵一款, 屢變其說。 兩使旣入其營, 當卽退去, 而末梢又發難從之請, 其爲奸計, 不一而足。 以今日事勢言之, 我之兵力, 不能蕩平兇醜。 今若不從其言, 則賊必執此爲辭, 終無退撤之日, 而遊擊亦必歸咎於我, 以爲: ‘朝鮮不遣通信使所致’, 誠非細慮。 然而此賊, 非尋常犯境殺掠之比。 焚燒我廟社, 掘發我陵寢, 此正萬世必報之讎。 豈有釋怨修睦之理乎? 愚臣淺見, 通信使不當送也。 伏惟上裁。" ○臣李希得議: "我國與倭奴, 不共戴天之讎。 通信修好, 臣子所不忍言, 而今承傳敎, 伏審沈遊擊咨內之辭, 不勝痛惋之至。 但天朝委遣天使, 已開許和之路。 我國雖欲不從, 勢所難能。 姑從其言, 少紓目前之急, 以圖後日復讎之策, 何如?" ○臣應福議: "今日事勢操縱, 一任賊手。 天朝封使, 旣入賊營, 則朶頤之兇, 何所不至? 第賊與我, 已結深讎, 以賊兇狡, 豈不知我國上下朝夕臥薪不共一天之痛哉? 此賊所以不敢自通, 借官之口, 行誘脅之計也。 隣好之說, 不過爲遷就變詐之端, 而今者不顧利害, 遽許其所請, 則他日難從之請, 必且有甚於今日。 賊無悔禍之日, 而國有釋怨之恥, 傳示萬世, 臣所不忍。 伏惟上裁。" ○臣郭嶸、臣趙儆、臣汝霖、臣大坤、臣思稷等議: "我國與此賊, 萬世不共戴天之讎, 凡有血氣者, 莫不痛憤, 況陪臣帶去之事, 天使亦以爲沒有所幹, 而遊擊欲圖濟己意, 挾兇賊之勢, 變幻百端, 其說極悖, 慘不忍言。 臣等武人, 惟知枕戈嘗膽, 思雪 國恥而已, 至於通信一款, 不敢容議。 伏惟上裁。" ○臣先覺議: "此賊, 自請款天朝以後, 屢變其說, 奸狡百出, 而至於今日, 兩使入營, 則又以信使之說繼之。 其所要我者, 雖止於此, 義不可從。 況彼無厭之求, 又有大於此者, 則將何以善其後乎? 又況此事, 旣非天朝之命, 又非天使之意, 而只出於遊擊之言, 則其間事情, 尤難揣知, 其不可輕許也, 亦明矣。 但我國, 旣不能自强, 凡所以圖存之計, 一聽於天朝, 雖其伸縮操縱, 有不得以由我者。 然只因遊擊之至, 遽與讎賊相通, 實所不忍, 而從前據義苦爭於天朝者, 竟亦何居? 今當以不可從之意, 反覆論辨, 回咨於遊擊, 且具賊情, 聞奏天朝, 似爲無妨。 伏惟上裁。" ○臣崔岦議: "通信一事, 本不當議, 而至於廣詢, 則亦有容議者, 臣不敢知。 抑兩天使, 尙未要差送, 事勢雖蹙急, 今日議之, 恐其遽也。 伏惟上裁。" ○臣李輅議: "我國與倭奴, 有萬世必報之讎, 不可與通信講和決矣。 況天朝之講和, 初不與於我國, 則隨天使遣陪臣, 非徒無益於事, 而亦恐有害於事理, 固不容輕議也。 雖有皇命, 亦當反覆論奏, 迫於不得已, 然後徐當更議。 伏惟上裁。" ○臣宇顒議: "仇讎之賊, 義不共一天, 則其不可通好, 義理已明, 更無可言。 第有可誘者, 以爲勢有强弱, 事有經權, 屈己退寇, 以圖後擧, 亦權時保國之一策也。 此語似矣, 而看今日之勢, 又有不然者。 調信之回, 相聚密議, 猶不肯卽見天使。 夷情多詐, 固難料度, 而玄蘇之辭, 恐喝操縱, 極爲凶悖。 此其奸計反覆, 豈易可測? 況兩天使, 旣無一語及於通使, 則沈遊擊說出之言, 豈止憑信, 而遽遣信使於狡夷, 祗取侮辱, 而貽害轉深? 恐非謀國之宜。 臣愚以爲, 不如據經守正, 以待天命之爲無愧也。" ○臣佑漢議: "兇賊, 義不當共戴一天。 通信使之遣, 決不容再誤於今日, 而若出於時勢之使然, 則似或可以變而通之。 斯二者, 惟在聖斷。" ○臣齊閔議: "仇讎之國, 不可與通信, 大義截然, 固不可容議。 況狡詐無信, 曾有已試之效, 今豈可再誤? 伏惟上裁。" ○臣柳自新議: "今我國家, 與倭奴, 有窮天極地之讎, 而今者彼敢要請信使, 此無非凌侮我邦, 伸縮在其手然也。 若聽從其言, 不止信使往來, 將至於涕出女之辱矣。 斷不可爲之。 第今瘡痍未起, 兵力已竭, 萬無支吾之勢, 拒而不從, 彼賊兵勢方張, 慮必肆毒, 有甚於前日。 微臣愚意, 以不共戴天之義, 奏聞天朝, 受無外交之勑, 一以折破兇謀, 一以免我示弱, 恐或無妨。" ○臣許晋議: "賊情叵測, 凶狡百出, 遲延歲月, 迄未渡海。 今者沈遊擊, 敢爲詭辨, 咨請陪臣, 跟隨天使, 以修隣好云云。 設或此言, 出於天使, 事機甚重, 猶未敢遽然從之。 況遊擊(濤)〔譸〕 濤張之說, 尤不足取信。 豈可因其咨請, 以誤事宜? 決不可容易爲之。 姑觀賊勢, 分明退撤, 商量處置, 恐或無妨。 伏惟上裁。" ○臣仁涵議: "沈遊擊請遣通信使, 因玄蘇之言, 有是說。 若一遣信使, 永世無患, 則擇遣一臣, 固無不可, 但講和之說, 出之已久 天使南下, 亦已久矣。 今將渡海, 便作信使之說, 以退其行, 其間變詐, 誠不可測。 今日遣使, 而明日繼有他請, 則其可盡從乎? 臣意, 以玄蘇詐譎之言, 因遊擊一時之要, 恐不可遣使也。 伏惟上裁。" ○臣崔遠議: "臣伏覩沈遊擊牒文一通, 反覆思惟, 則此誠出於事勢之不得已者也。 引諭切至, 不一而足。 此亦不可無所見矣。 但賊虜與我國, 有罔極之怨, 無共戴之義。 設遣陪臣, 有所便好, 未可容易斷行。 況未必然者乎? 謂之必遣, 則臣不敢知。 且此事, 朝廷莫大措置, 自有廟堂成算, 臣何敢容贅於其間哉? 伏惟上裁。" ○臣盧稷議: "此事, 斷之以大義, 則固不容他說, 而雖以利害言之, 臣未知其果有所益也。 旣曰冊使到京城, 則當撤, 而至於入營之後, 遷延退托, 變詐百出; 又曰行長往來後當撤, 而至於調信之回, 綢繆密議, 亦多叵測之形。 陪臣旣去, 則亦未知復有何說也。 究厥情勢, 則安知此非秀吉之意, 而惟敬與其行長等, 執此而爲自謀之地耶? 冊使旣非秀吉之所要, 則陪臣雖往, 只爲緩頰之一(贄)〔資〕 , 恐無益於國事之成敗。 設若彼賊, 實有是計, 而因此一事, 或可圖存於旣危之後, 則古人亦或有權宜不得已之擧。 區區之嫌, 似不可以拘失事機, 而但今日之事, 只仰成於天朝, 我國則初不干與於其間, 未有聖旨之可據、天使之分付, 而只以惟敬之一言, 輕擧莫重之事, 則恐不無後日難處之患。 伏惟上裁。" ○臣忠元議: "倭奴之無信義甚矣。 今要信使, 探我深淺也。 若從其言, 則恐又墜於術中也。 假曰後日, 執此而哄我, 往者之事, 亦可(懲)〔徵〕 也。 臣愚以爲, 決不可從。" ○臣孝純議: "臣伏以此賊, 棄百年之好, 興無名之師, 墟我宗社, 屠我生靈, 發我先王之陵寢。 此乃萬世臣民必報之讎, 不可一日共戴天者。 其不可重申前好, 信使來往, 事理較然, 不待智者而決也。 第竊惟念, 天朝和事之成, 已到八九分地, 而我國使臣, 遣之亦成, 不遣亦成, 則決不可遣也。 如使賊之去留, 繫于 此事, 遣使一節, 或爲輕重於國家之存亡, 則安可不遣乎? 機關所係, 大計所在, 似不可畫一而言也。 臣之妄料, 先以必不可之議, 反覆移咨, 以觀其機之如何, 至於終不獲已, 或俟皇朝咨勑而處之, 恐或無妨。 伏惟上裁。" ○臣希霖、臣李瓘議: "兇賊於我, 少無釁隙, 而焚蕩我宗社, 辱及我陵寢, 此乃萬世不共天之讎。 復讎不擧, 而其可輕議通信事乎? 況兇詐之賊, 更發不可從之言以要之, 則其可盡從之乎? 臣等之意, 通信一事, 決不可從也。 伏惟上裁。" 上答曰: "令備邊司, 從長處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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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71권, 선조 29년 1월 3일 경오 3/4 기사 /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심유경이 보낸 자문에 대하여 2품 이상의 관리들에게 헌의하게 하다

국역

심 유격(沈遊擊)이 보내온 자문을 의논하여 조처할 일로 2품(品) 이상에게 헌의(獻議)하게 하니, 유성룡(柳成龍)은 의논드리기를,

"신은 병중에 있어 정신이 혼미하고 생각이 착란하므로 군국(軍國)의 중대사를 의논하지 못하겠고, 또 심무시(沈懋時)가 입국한 후에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듣지 못하였으니, 그 중에 있었던 사정을 진실로 측량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전후의 장계(狀啓)를 볼 때 몹시 걱정스러우며 밤낮으로 반복해 생각하여 보아도 어떻게 조치해야 마땅한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은 전부터 늘 이 적(賊)이 끝내는 따르기 어려운 요청을 하여 사단을 일으킬 것이라고 의심하여 왔는데, 지금의 사세가 점차 그렇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신의 우매한 생각에는 지금 조신(調信)이 다시 돌아온 것이 의심스럽습니다. 그가 요구하는 바는 통사(通使)에 그치지 않고 약속을 위배하려고 특별히 이것을 빌어서 꼬투리를 잡는 것인 듯합니다. 심유경(沈惟敬) 역시 그 일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을 알고 계책이 궁해지자 도리어 그 허물을 다른 곳으로 돌리어 스스로 변명할 계책을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평수길(平秀吉)이 중국 사신을 환영하고 또 우리 나라 사신이 함께 오기를 요구할 뿐이라면 평조신이 어찌하여 연일 그들과 은밀히 의논한 후에야 비로소 유격(遊擊)을 보았겠습니까. 또 유격은 어찌하여 문을 닫고 병을 핑계대면서 사신을 직접 보지 않고 하인만을 시켜서 알릴 뿐이겠습니까. 이러한 태도가 극히 의심스럽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이 적(賊)이 이 일을 가탁하여 말하고 있으나 그 흉모는 실제로 다른 데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제 이 자문을 직선적인 말로 거절해 버린다면 바로 유격의 농간 속에 빠지게 되는 것으로 유격은 이것을 핑계로 중국에 치보하기를 ‘봉사(封事)는 이루어져 가는데 사신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조선에서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왜적이 물러가지 않는다.’라고 할 것이며, 그의 말을 따르려고 한다면 또한 인정과 의리상 차마 할 일이 아닙니다. 비록 사신 보내는 것을 허락하더라도 왜적의 철수는 기필할 수 없는 일이니, 이것이 난처한 까닭입니다. 부득이하다면 마땅히 회답하기를, ‘폐방(弊邦)은 일본과 가까이 인접해 있으면서 애초 조그마한 원한도 없었는데, 뜻밖에 일본이 천리(天理)를 어기고 까닭없이 군사를 일으켜 우리의 백성을 살해하고 우리의 묘사(廟社)를 불지르고 우리의 능묘를 발굴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 사람들은 삼척동자라도 피눈물을 머금고서 「차라리 죽음이 있을지언정 어찌 감히 강화를 말할 수 있으랴. 」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지금 중국이 널리 함육(涵育)하여 남북의 백성을 겸애(兼愛)함으로써 훈척 대신(勳戚大臣)을 이 불측한 땅에 오게 하는 은혜를 입었으니, 그 의도는 난을 해소하고 군사를 휴식하는 데에 있다. 대인은 지금 이 중대한 사명을 띤 당사자로서 우리 나라에 교계(敎戒)하기를 이와 같이 하여 심지어는 배신(陪臣)이 중국 사신을 따라 바다를 건너는 것이 예의의 당연한 것이라고 견책하는데, 이는 실로 중국의 체면에 관계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사람은 일을 함에 있어 반복이 심하여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다. 전후로 마음이 변하니 비록 조사(詔使)가 황명(皇命)으로 임하였어도 아직 그 요령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기장(機張)·죽도(竹島)·안골(安骨)의 왜적이 여전히 결진하여 바다를 건너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또 다시 우리 나라에 무슨 요구할 것이 있어 하나의 사신으로 경중을 삼는단 말인가. 이와 같이 한다면 우리 나라는 치욕만 더하게 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요, 대인이 힘써 노력하며 담당한 일도 끝내 헛일이 되고 말 것이다. 오직 바라건대 대인은 다시 저들의 정상을 조사하여 책사(冊使)와 함께 의논해 결정하되 구차히 목전의 일만 미봉하지 말고 장원한 계책을 도모하라. 이와 같이 하여 우리 나라로 하여금 오늘날에 와서 거듭 속지 않게 해주면 몹시 다행이겠다.’고 하여, 그들이 어떻게 답하는가를 보고 근일 왜적의 동태를 더욱 살펴서 타당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요, 말 한마디로 경홀히 허락하거나 허락하지 않아 수습하기 어렵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신이 이 대사를 당하여 생각을 다해 보았으나 생각이 겨우 여기에 그칠 뿐이라 채용(採用)에 불가할 것으로 봅니다. 이는 극히 중대한 일이니, 바라건대 널리 조정의 의논을 모아 절충하시어 후회가 없도록 하소서.

또 신이 생각나는 일이 있어 아울러 언급합니다. 금년 봄에 방어하고 수비할 계책을 시급히 조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임진년에 왜적이 또한 멀리서 헛된 말로 우리를 해이하게 하여 세견선(歲遣船)이 곧 이를 것이라고 말하더니, 대적(大賊)이 갑자기 이르렀습니다. 금년 일 또한 어찌 그렇지 않다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곳은 다 거론할 수 없거니와 제주(濟州)가 특별히 염려됩니다. 이곳은 서남쪽으로 바다를 정면하고 있고 또 중국과 서로 가깝습니다. 왜적이 만약 이곳을 점거하게 되면 비록 천하의 힘으로 탈취하려 하여도 탈취하지 못할 것입니다. 전일에 적사(賊使) 요시라(要時羅)가 장차 제주를 침범하겠다고 분명히 말하였는데 본주에는 마침 전염병이 돌고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사망하니 또한 불행할 것 같습니다. 기타의 모든 일은 비변사(備邊司)와 함께 주야를 가리지 않고 적절히 조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고, 심수경(沈守慶)은 의논드리기를,

"신이 심 유격(心遊擊)의 자문(咨文)과 황신(黃愼)의 전후 장계를 보건대, 배신(陪臣)을 대동하려는 일은 아마도 현소(玄蘇)·평행장(平行長)·평조신(平調信) 등이 심 유격과 의논하여 관백(關白)으로부터 자신들의 공로를 인정받으려는 계책에서 나온 것 같은데, 그 간사함이 헤아릴 수 없어 실로 염려됩니다. 단 배신을 딸려보내는 일이 본래 황제의 명령이 아니라는 것은 유격도 말했다고 합니다. 이미 황제의 명령이 아니고 병부(兵部)의 지시도 아니며 또 중국 사신의 본의도 아닌데, 단지 유격의 자문에만 의해 배신을 딸려 보내는 것은 실로 명분이 없는 일입니다. 이런 내용으로 답사를 만들어 유격의 자문에 회답하는 것이 아마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하고, 최흥원(崔興源)은 의논드리기를,

"우리 나라는 왜노(倭奴)에 대하여 조금도 싸움을 일으킬 만한 일이 없었는데, 그들은 함부로 쳐들어와 독해를 자행하여 우리의 삼경(三京)을 함락하여 그 화가 능침(陵寢)에까지 미쳤으니, 이는 실로 한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전쟁이 일어난 지 4년이나 되어서 군사는 쇠약하고 양식은 탕갈되었으니 비록 흉적을 소탕하지는 못하나 아픈 마음은 뼈를 깎는 듯한데 어찌 하루인들 이 흉적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저 흉적이 통신하자는 말로 조정의 의중을 시험하고자 하니, 더욱 통탄할 일입니다. 이제 만약 경솔히 허락한다면 후일의 요청이 이에 그치지 않을 것이니 앞으로 조처하기 어려운 걱정이 오늘보다 더 극심할까 염려됩니다. 신은 해가 넘도록 병에 시달려 정신이 혼미하므로 생각이 헛갈립니다. 지금 하문을 받고 감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기에 대략 우매한 소견을 진술하니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윤두수(尹斗壽)는 의논드리기를,

"당초 책봉 사신(冊封使臣)이 우리 나라에 들어올 때 식자(識者)들은 모두 난처한 일이 있을까 염려하였는데, 다행히도 사신이 일국의 사정을 청취하여 신사(信使)의 행함을 책하지 않음으로 해서, 창을 베고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복수할 날을 눈을 부릅뜨고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 책사는 무관심한데 심 유격이 중간에서 농간을 부려 이에까지 이르니, 일국의 신민이 한 하늘 밑에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를 갚을 날이 없으며, 훗날 종종 따르기 어려운 요청을 어찌 이루 다 형언할 수 있겠습니까. 종사(宗社)와 생민(生民)의 화가 이로 말미암아 더욱 심할 것입니다. 신은 감히 눈물을 흘리면서 딸을 오(吳)나라로 보내듯이006) 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엄격한 말과 완곡한 뜻으로 자문을 써서 회답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김응남(金應南)은 의논드리기를,

"이 왜적은 우리 나라가 언제고 반드시 복수해야 할 원수입니다. 지금 병력이 미약함으로 인해 그 죄를 다스려 토멸하지 못하나, 대의(大義)로 볼 때는 단연코 하루도 한 하늘 밑에 같이 살 수 없습니다. 당초에 통신사를 거론한 것도 오히려 불가한 일이었는데, 하물며 오늘날에 있어서 차마 이 일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설사 마지 못해 따른다 하더라도 이미 따른 뒤에 왜적이 우리에게 또 결코 따를 수 없는 일을 요구하게 된다면 장차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따른 뒤에 난처한 일을 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지금 따르지 않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이것이 신이 크게 걱정하는 일입니다. 단 지난해에 조정이 호택(胡澤)에게 핍박당하여 이미 기미책(羈縻策)에 대한 말을 따라 황상에게 주달하여 책사(冊使)가 적의 진영에 들어가기까지 하였는데, 유격은 신사(信使)를 얻어 봉사(封事)의 성취를 도우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 만약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음으로 해서 적이 약속을 어기고 물러가지 않는다면 유격은 필시 이를 이유로 하여 우리 나라에 허물을 돌릴 것이니, 이것이 더욱 걱정거리 중에 큰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의심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책사가 서울에 있을 때에는 굳이 신사(信使)를 대동하겠다고 청하다가 지금 적의 진영에 있으면서는 일면 배신(陪臣)이 가는 것은 유격이 농간하는 것이라고 하며, 일면 사리에 부당하다고 하며, 일면 배신을 대동하여도 특별히 할 일이 없다고 하니, 그 말이 반드시 소견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왜적이 통신사를 요구하는 것은 실정에서 나오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일들이 극히 수상합니다. 비록 유격의 말을 듣고 바로 그의 요청을 따라주더라도 후회가 있을까 염려됩니다. 이 사실을 갖추어 주달하여 천조의 조처를 기다리는 것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신의 우매한 의견은 이와 같으나 또한 반드시 옳은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성상께서는 재량하소서."

하고, 정탁(鄭琢)은 의논드리기를,

"신이 심 유격이 보내온 자문을 보니 말이 몹시 장황합니다. 본국의 배신을 반드시 대동하고자 하니, 그에 대한 회답의 말은 충분히 참작하여 미진한 뜻이 없게 해야 합니다. 그에 대한 회답의 말은, 대개 ‘족하는 작은 나라를 사랑하는 성천자(聖天子)의 어짐을 본받고 소국의 절박한 걱정을 두루 염려하여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십분 안전함을 도모하기를 진실로 부족한 점이 없게 하였다. 지금 이 자문에 또 속마음을 다 쏟아 거듭 성대한 염려를 하여 주니 감히 그 감사함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리고 적정(賊情)을 보이기 위하여 배신과 함께 왜국에 들어가고자 하는 것에서 소국을 위해 주선하는 성의가 이에 이르러 더할 수 없음을 보았다. 과인 또한 어찌 살피지 못하겠는가. 과인의 천박한 소견에는 적의 간교함을 종시 믿기 어렵다고 본다. 지금 군사를 철수하는 것은 실로 황군의 위덕(威德)을 족하가 잘 받들어 선포하고 칙명(勅命)을 받든 두 대인이 잇따라 이르러 그 성대한 위세가 몹시 엄격하기 때문이다. 소국의 배신이 가고 안 가는 것이 어찌 그 사이에 조금인들 영향이 있겠는가. 그러나 배신의 가는 것이 부당함은 거듭 논변할 필요도 없다. 적이 배신이 가는 것을 요청하는 그 의도를 헤아리기 어렵거니와 적의 교활함은 타고난 천성이다. 지금 항복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실로 대국의 위엄을 두려워하기 때문인데, 철수하여 돌아갈 임시에 감히 소국이 따를 수 없는 일을 가지고 계속 전언하여 소국의 뜻을 시험하려 하니, 애초부터 진실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또한 이것으로 꼬투리를 잡아 다시 뜻밖의 흉모를 도발하는 일이 꼭 없으리라는 것은 보장하기 어렵다. 지난번에 까닭없이 군사를 일으켜 성시(城市)를 도륙하여 그 욕이 선왕의 능묘에까지 미쳤으니, 이 적은 실로 소국에 있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원수이다. 지금 그 분을 꾹 참고 지내는 것은 힘이 부족해서일 뿐이다. 소국이 그들과 더불어 수호(修好)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왜적 역시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배신의 동행을 요구하니 이것이 흉모가 아니고 무엇인가. 또 황제의 명령은 오로지 소국을 위해 철병(撤兵)을 급히 서두르게 하려는 것으로, 황제의 명이 몹시 엄격하고 두 대인의 행차도 이미 이르렀으니, 진실로 명을 받들어 시행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오랫동안 머뭇거리고 또 배신의 동행을 요구하면서 저희들 마음대로 조종하며 조사(詔使)의 말을 듣지 않으니, 이것이 과연 무슨 작태인가. 소국의 배신이 동행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황제의 칙명이야 감히 어길 수 있겠는가. 그들의 교만하고 패역한 태도는 참으로 말할 것이 없거니와 유독 황조의 지엄한 체면이야 생각지 않겠는가. 또 한 가지 말이 있다. 대개 천하의 열국(列國)이 되어서는 그 멀고 가까움을 막론하고 각각 정해진 강토를 지켜 왕국(王國)의 울타리가 되어 서로 사사로이 국교를 맺지 않는 것이 고금의 공통된 의리이다. 비록 왕화를 입는 이외의 나라와 혹 서로 통호(通好)하는 것이 진실로 회유하여 항거하지 못하게 하는 의도가 없지는 않으나, 이를 왕법(王法)으로 다스린다면 실로 사사로이 서로 국교를 맺은 죄를 범한 것이다. 황조(皇朝)의 명령이 있지 않은데 마음대로 배신을 보내는 것은 현연히 크게 사체를 해치는 처사로써 실로 상형(常刑)을 범하는 것이라 결코 무릅쓰고 행할 수 없다. 족하의 널리 포용하는 도량으로 치지도외한다고 하더라도 소국이 또한 어찌 반드시 불법을 행할 수 있겠는가. 대개 이 적의 정상은 헤아려 알 수 없다. 오직 바라는 것은 족하가 끝까지 심력을 다해 주선하여 흉모를 제거하고 다시 소국을 살려줌에 있다. 그렇게 된다면 무슨 은덕인들 이보다 더 크겠는가.’라고 해야 합니다. 이런 뜻으로 말을 꾸며 회답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또 일종의 말은 ‘이 적이 물러가지 않으면 일이 장차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유격의 말이 범연치 않다. 천심(天心)이 화란을 뉘우쳐 이 적이 철수해 돌아간다면 장래 국사를 오히려 도모할 수 있다. 나라를 도모하는 방도에 있어서는 부득이 변통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 옛날의 제왕(帝王)도 이를 행하였다. 지금 국세는 조금도 여유없는 위급한 고비인데 능히 이를 참아 내지 못하면 나라를 도모하는 방도가 아니다. 또 유격이 보내온 자문에 몹시 깊은 계략이 있으니, 만약 그를 대처함에 마땅함을 잃어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게 된다면, 유격은 도리어 스스로 꼬투리를 잡아 본국에 허물을 돌릴 것이다. 또한 이런 일이 없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다.’라고 합니다. 이 말이 비록 그럴 듯하긴 하나 실로 경험한 것이 아니므로 진실로 오늘날에 마땅히 말할 것이 못 됩니다. 아울러 기록하여 아뢰어서 참고에 대비할 뿐이오니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정곤수(鄭崑壽)는 의논드리기를,

"삼가 생각건대, 만세의 원수는 잊어서는 안 되고, 끝없는 원한의 대상은 놓아주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적의 소행이 어떠하였는데 ‘구호(舊好)’의 두 글자가 적추(賊酋)의 입에서 나온단 말입니까. 이는 우리 나라 신자(臣子)로서는 차마 들을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심 유격의 자문 속에 이를 말한 것은 심 유격의 소관이 편의에 따라 강화를 맺어 수습하는 데에 있으니, 그의 생각에는 필시 ‘일에는 이치와 형세가 있고 도에는 상도(常道)와 권도(權道)가 있는 것이므로 예로부터 「토지 때문에 사람을 해칠 수 없다. 」 또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기가 어렵다. 」는 말이 있는 것이다.’라고 여긴 것입니다. 지금 중국 조정이 주선하는 것은 화해하는 일인데 적추(賊酋)의 하고자 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차라리 월왕(越王)이 오(吳)나라에 강화를 요청하고서 백성을 모으고 가르친 것007) 과 같이 하면 그런 뒤에는 이 봉사(封事)가 중국으로부터 나오더라도 우리가 참여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배신이 봉사(封使)를 따라가는 것에 대해서는 또한 황조의 명령이 없는데, 우리가 어찌 감히 마음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내용으로 자문에 회답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윤근수(尹根壽)는 의논드리기를,

"이 적이 온갖 흉계를 꾸며 책사(冊使)가 바다를 건널 임시에 배신을 딸려 보내 달라는 말을 하자, 심 유격은 그를 위해 주선하여 자문을 보내기까지 하였고, 또 적승(賊僧)은 못하는 말이 없이 공갈하니 극히 통탄할 일입니다. 그 간교한 꾀가 범연치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가 만일 이를 허락하지 않음으로 해서 적추가 곧 이것으로 꼬투리를 잡게 된다면 앞으로 닥쳐올 걱정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적이 요구하는 것이 어찌 통신사 하나에 있을 뿐이겠습니까. 만약 한번 허락하면 또다시 따를 수 없는 일을 차례로 말할 것이니, 우리 나라가 장차 어떻게 이에 대응하겠습니까. 만세의 원수일 뿐만 아니라 대의에 있어 결코 우호를 맺을 수 없는데 한번 통신사를 허락한 후에는 앞으로 더욱 자립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연전에 우호를 맺은 것이 어찌 우리 나라의 뜻이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오히려 꾹 참고 우호를 맺은 것은 그들을 노하게 아니함으로써 혹시라도 전단(戰端)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이처럼 전고에 없었던 병화(兵禍)를 일으켰으니 우호를 맺음의 무익한 것은 이미 지난 일로 분명 징험할 수 있습니다. 또 두 책사(冊使)가 모두 왜영(倭營)에 있으니 응당 사세를 익히 알 것인데 그들의 생각은 모두 배신을 대동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찌 다만 유격의 자문으로 인하여 허락할 수 있겠습니까.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심희수(沈喜壽)는 의논드리기를,

"대의로 볼 때 통분한 마음이 뼈에 사무쳐 지금 말할 여념도 없습니다. 우선 눈앞의 사세를 가지고 말하겠습니다. 적이 해변에 주둔한 지 벌써 4년이 되었습니다. 지금 철수하고 싶으면 스스로 마땅히 철수할 것이지, 우리 나라의 사신이 또 무슨 상관이 있다고 반드시 함께 가고자 합니까. 신의 우매한 생각에는 배신을 보내고 보내지 않는 것은 적이 철수하고 철수하지 않는 것에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봅니다. 적승(賊僧) 현소(玄蘇)는 우리 나라를 몹시 멸시하는 까닭으로 이런 말을 만들어 내서 우롱하는 것이며, 심 유격은 적이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을 알고 또 우리 나라가 그들과 우호(友好)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뜻을 헤아려 알고는 훗날 구실을 삼아 허물을 모면할 소지를 만들고자 하여 감히 마음을 떠보며 힘써 요청하는 것으로, 아마도 관백(關白)의 본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조신(調信)이 돌아와 즉시 이 말을 하지 않고 여러 날 동안 은밀히 의논한 후에 비로소 말하니 이것이 하나의 분명한 증거입니다. 그 자문의 내용을 보니 반복 유도하여 그 본심을 엄폐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중국 사신의 행차에 수행시키려 하나 사신은 실로 이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데 이것 또한 알기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 자문의 회답 내용에 있어서는 십분 완곡히 하여 의리만을 따져 너무 엄격하게 거절하지 말고 은근히 따르기 어렵다는 의도를 보일 것이며, 우리도 또한 저들의 실정을 탐지하여 저들이 강경하게 나올 때를 기다려서 서서히 의논하거나 혹은 황제의 명을 받은 이후에 부득이 준행한다면, 점점 더 심하게 요구하면서 갈수록 심해지는 무함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봄이 박두하였으므로 적의 흉모를 헤아리기 어려우니 매우 궁박하며 촌각이 시급합니다. 만약에 국가의 존망이 이 한 가지 일의 처리에 달렸다고 이른다면 우매한 소신이 그 사이에 의논드릴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이덕형(李德馨)은 의논드리기를,

"천하의 일은 형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법입니다. 지금 사세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조종하여 결정하는 권한은 아마도 우리가 마음대로 할 바가 아닌 것 같습니다. 중조(中朝)에서는 오직 구차히 일을 마무리하려고만 할 뿐이요, 허다한 사체에 대해서는 전연 이해하지 못하므로 아마 흉적의 능모(陵侮)하는 마음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만약 우리 나라 배신이 경솔히 일본으로 들어가면 적은 지극히 난처한 일로 우리에게 요구해 올 것이며, 중조에서는 우리 나라의 일이 이미 완결되었다고 하여 다시 우리 나라의 환란을 돌아보지 않을 것입니다. 이때에는 장차 어찌하겠습니까. 중조의 처사가 모두 잘못이거니와, 심유경(沈惟敬)의 계책 또한 그 일의 성취를 요할 뿐이라, 후일의 환란을 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일이 한번 잘못된다면 분개하여도 어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득이하다면 근일의 적정(賊情)과 이 중대하고 난처한 연유를 들어 명백하게 황조에 주달해서 처리하면 후일의 계책에 있어서도 무익함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신점(申點)은 의논드리기를,

"이 적은 우리 나라로서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원수입니다. 사신을 보내 통정(通情)하는 것은 의리상 차마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중조의 명령도 없고, 또 책사(冊使)의 자문도 없는데 유격의 한마디 말에 어찌 경솔히 따를 수 있겠습니까.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홍진(洪進)은 의논드리기를,

"대의로 보면 영원토록 우리 나라 신자로서는 이 적을 잊을 수 없는데, 더구나 감히 그들과 더불어 우호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나라 국력으로 보면 지금 목전의 장병(將兵)으로서는 이 적을 당해낼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만약 유격이 이것을 가지고 구실을 삼아 훌쩍 돌아가 버리면 존망은 결판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중국 조정에서 주장한 것이요, 우리 나라는 애초부터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사신은 배신을 대동할 생각이 없는데 경솔히 유격의 말을 따르게 되면 훗날 난처한 일이 아마도 지금보다 심함이 있을 것입니다. 시험삼아 의리상 불가하다는 뜻으로 사신에게 알리고 유격에게 이해시킨 연후에 다시 의논하여 조처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신은 병중에 있어 정신이 혼매하므로 아뢸 바를 모르겠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이헌국(李憲國)은 의논드리기를,

"대대로 내려오는 원수의 나라이므로 의리상 통신할 수 없습니다. 결코 따를 수 없다는 뜻으로 완곡하면서도 엄격하게 말을 하여 속히 심유경한테 회답하고 일이 만약 난처하게 될 때 다시 의논하는 것이 아마 마땅할 것 같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였다.

권율(權慄)은 의논드리기를,

"신이 삼가 심 유격의 자문을 보건대, 유도하고 협박하는 뜻이 없지 않으나 예의(禮義)로 헤아려 보면 또한 의거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더구나 배신(陪臣)을 차임해 보내어 중국 사신을 따라가게 하면 특별히 통신사의 명칭이 없을 것이요, 배신이 임시하여 잘 말해서 수길(秀吉)로 하여금 스스로 잘못을 알아 그 흉악한 생각을 버리게 한다면 그리 수치스러울 일도 없을 것이니, 힘을 길러 복수의 시기를 기다리는 일에 반드시 여유있는 기간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신잡(申磼)은 의논드리기를,

"이 적은 우리 나라에 대하여 더없이 원망스럽고 통분한 원수입니다. 통신(通信)의 한마디 말은 입으로 차마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귀로도 차마 들을 수 없습니다. 지금 만약 위급함에 핍박되어 그들의 요청을 들어준다면 끝내는 반드시 따를 수 없는 말로 번번이 변환할 것이니, 어떻게 이에 대응할 것인지를 모르겠으며, 국서(國書)와 예폐(禮幣)를 또한 차마 어떻게 교환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우리 나라 뭇 신하들이 만약 복수할 뜻을 견고히 한다면 절치 부심하며 협심으로 게을리 아니하여 백성을 가르치고 모으는 일밖에 다른 뜻이 없습니다. 훗날 반드시 종사(宗社)의 치욕을 씻기를 기약한다면, 거짓 화친을 허락하여 적의 동태를 정탐하는 것 또한 병가(兵家)의 기정(奇正)008) 의 술책에 해됨이 없겠습니다만, 이것으로 적을 물리치는 양책(良策)을 삼는 것은 신이 알지 못합니다. 이 적은 흉악하고도 교활하여 비록 황제의 명령이 있었으나 그 말을 교묘히 변조하여 오늘날까지 지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 나라가 통신사를 보낸다고 해서 모두 철수하여 바다를 건너겠습니까. 신은 이 논의가 앉아서 심 유격의 간사한 농간에 빠져 들어가는 것인가 염려스럽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송찬(宋贊)은 의논드리기를,

"화의(和議)가 무익한 것은 지난 역사에 밝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수와 강화를 하는 것에 대해선 송(宋)나라의 신하 정호(程顥)의 봉사(封事)가 더욱 근엄하여, 변할 수 없는 천경(天經) 지기(地紀)이니 다시 논할 여지가 없습니다. 중국 조정에서 사신을 파견하여 왕으로 책봉하는 것은 곧 동일하게 보아 똑같이 사랑하려는 의도이니, 어찌 추악한 오랑캐와 화친을 약속하겠습니까. 다만 병가(兵家)에는 임시응변의 계략이 있어, 병력이 혹 곤경에 빠지게 되면 먼저 반드시 이길 수 있는 형세를 위해 남몰래 병력을 양성하여 변란을 모면할 대책을 만드니, 이것 또한 하나의 계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 논의만 고집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통신사를 보내면 환란이 더디 올 것이요, 통신사를 보내지 않으면 화란이 빨리 올 것입니다. 진실로 멀리서 헤아리기는 어렵거니와, 해구(海寇)는 마치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쏘아 죽이려고 모래를 머금고 있는 역귀(蜮鬼)와 같아서 길을 빌려 경사(京師)로 향하려는 흉계는 비록 통신사를 보낸다 하더라도 반드시 변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통신사를 보내거나 보내지 않거나 끝내는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는 처지로 돌아가고 말 것인데, 어찌 유세하는 한 사람의 자문(咨文) 때문에 경솔히 허락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번의 황윤길(黃允吉)의 사행(使行)을 거울삼을 수 있습니다. 성상께서는 재량하소서."

하고, 윤자신(尹自新)은 의논드리기를,

"복수할 계책도 세울 겨를이 없는데 먼저 통신사를 보낸다는 것은 의리로 보아 차마 못할 일입니다. 이것이 비록 책사(冊使)의 뜻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실로 힘써 부응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유격의 한마디 말에 따라 또다시 왜노(倭奴)의 술책에 빠져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결코 이행할 수 없습니다. 기타 사세의 이해(利害)에 대해서는 신이 실로 우매하여 감히 알 수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김명원(金命元)·유영경(柳永慶)·강신(姜紳)은 의논드리기를,

"흉적은 우리와 더불어 처음부터 원수를 맺은 것이 아닌데, 무단히 군사를 일으켜 묘사(廟社)를 불사르고 백성들을 도륙하여 그 불측한 화가 선왕의 능묘에까지 미쳤습니다. 그러므로 이 적은 우리 나라에 있어 언제고 반드시 보복해야 할 원수인데, 어찌 다시 통신사를 보낼 수 있겠습니까. 다만 애초 우리 나라가 자강(自强)하지 못하여 중조(中朝)에 구원을 요구하자 중조는 끝까지 구제해 주었는데, 불행하게도 기미(羈縻)의 설이 나오자 굳이 고집하지 못하고 결국 황상에게 주달해서 지금 책사(冊使)가 이미 적의 진영에 들어가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적은 오히려 물러가지 않고 우리에게 통신사를 요구합니다. 우리가 만약 따라 주지 않으면 적은 필시 이를 핑계로 지류(遲留)할 것이요, 끝내는 유경(惟敬)이 이것을 꼬투리로 잡아 허물을 전가하려 할 것이니, 이 점이 몹시 염려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의심스러운 적의 동태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봉사(封事)의 성패가 만약 배신이 가고 안 가는 것에 달려 있다면 책사가 어찌 요청하지 않고서 ‘유격의 농간이다.’ ‘별로 볼 일이 없다.’고 말하겠습니까. 그 사이의 실정은 실로 알 수 없는 바입니다. 더구나 천조가 약속을 정할 때 우리 나라의 통신사는 그 속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과연 공순하다면 어찌 통신사 한 가지 일로 인하여 철수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허락하지 않는 데에 대해 할 말이 없음을 염려할 게 없습니다. 신들의 우매한 생각에는 의리를 따져 논변하여 유격에게 회자(回咨)하는 한편 적의 정세를 갖추어 진술하여 하루 속히 중국에 주달하는 것이 사리에 마땅할 것 같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이증(李增)은 의논드리기를,

"우리 나라가 흉적과 함께 지금까지 한 하늘 아래 살고 있으나, 혈기(血氣)를 가진 자는 모두들 복수를 위해 한번 죽을 것을 결심하고 있습니다. 통신(通信)이란 이 두 글자는 비록 백세 후라도 의리상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오늘날에 있어서이겠습니까. 다만 의리를 생각할 뿐이지, 훗날의 이해와 화복이야 어찌 생각할 겨를이 있겠습니까. 설사 이해로 말한다 하더라도, 적정(賊情)의 흉측한 계략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비록 그들과 통화(通和)하더라도 후환이 꼭 없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날의 일로 충분히 징험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이 비록 황제의 명령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결코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인데 어찌 유경(惟敬)이 보낸 한 장의 글을 가지고 경홀히 의논할 수 있습니까. 다만 생각건대 황조가 적을 책봉하는 의도도 또한 우리 나라의 화란을 완화시키는 데에 있습니다. 만약 혹시라도 적의 무리가 이를 이유로 즉시 철수하지 않고 사신이 여기에 구애받아 복명할 기약이 없어 낭패하여 처리하기 어려운 사세가 있게 되어 황조로부터 품명(稟命)이 있게 된다면 그때에 가서 다시 의논할 단서가 없지 않을 듯싶습니다. 지금은 우선 의리의 불가함을 가지고 준엄한 말과 부드러운 말을 겸해 갖추어서 회자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박충간(朴忠侃)은 의논드리기를,

"흉적은 우리 나라에 있어 영원한 원수인지라 하늘에 사무치는 원한은 상하가 일반입니다. 황조(皇朝)가 책봉 사신(冊封使臣)을 보내서 이미 강화를 허락하였는데 저 적의 오만무례한 마음은 전일에 비해 더욱 극심하여 통신사를 보내라는 말이 또한 천만 뜻밖에서 나왔습니다. 이러고서야 우리 나라가 고통을 극복하고 인내심을 길러서 복수할 날이 그 언제 있겠습니까. 신은 몹시 마음이 아픕니다. 신의 우매한 생각에는 5년 동안 대치하면서 적을 토벌하지 못한 것은 모두가 황조의 명령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이제 이 통신사의 일 또한 황조의 명령이 아니니 결코 준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심 유격이 주선하여 통신사의 명칭을 없애버리고 두 사신이 일본으로 들어갈 때 수행하는 것으로 호칭한다면 품계가 낮은 한 관원을 차임해 보내는 것도 이치에 그리 불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권징(權徵)은 의논드리기를,

"신은 질병으로 해를 넘기며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 있으므로 조보(朝報)009) 와 조정 의논을 전혀 들어 아는 바 없으니 나라의 위태함을 부지하고 적에게 원수를 갚을 만한 무슨 기이한 모책과 깊은 계략이 있겠습니까. 생각건대 남의 백성을 도륙하고 남의 종사를 폐허로 만든 자가 어찌 한량이 있으리오마는 이 적과 같이 극심한 자는 있지 않았습니다. 능묘(陵墓)를 파헤쳐 불질러서 옥체(玉體)가 어지러이 흩어졌으니 아득한 구원(九原)에 위문할 길조차 없습니다. 온 나라의 신민(臣民)이 어찌 차마 하루인들 함께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임금의 복수는 필부와 다름이 있습니다. 이미 성(城)을 의지해 한바탕 싸워 존망을 결판하지 못하였으니, 구천(句踐)이 회계산(會稽山)에서 살다가 20년 후에 복수한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또 우리 동쪽 한 나라는 이미 중국의 속국이 되었으니 모든 명령과 시행하는 바가 비록 우리에게 불편하더라도 마땅히 뜻을 굽히고 따라야 합니다. 더구나 지금 백성이 궁지에 빠지고 재력이 탕진되어 국세가 위급한 데이겠습니까. 우선 권모(權謀)를 써서 적의 마음을 꾀이는 것 또한 한 가지 방책일 것입니다. 신의 우매한 뜻을 삼가 진술하겠습니다. 일찍이 두 능묘가 파헤쳐진 형상을 보니, 실로 우리 나라 사람이 지휘한 바가 있었습니다. 어찌 그로 하여금 왜적과 함께 천지 사이에 숨을 쉬며 살게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사신 보내는 것을 아니할 수 없다면, 능묘를 범하고서도 목숨을 부지하여 섬에 숨어 있는 우리 나라 백성과 이 계획을 주창한 적장(賊將)을 함께 묶어 보내게 하고, 또 관백(關白)을 회유하여 사죄하는 글을 보내오게 한 연후에야 비로소 다시 두 나라의 우호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구사맹(具思孟)은 의논드리기를,

"삼가 심 유격의 자문을 보건대, 우리 나라의 통신사와 함께 동행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생각건대 강화의 일은 상국에서 나온 것이요, 본래 우리 나라가 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책봉 사신이 오자 적은 온갖 교활한 짓을 자아내며 철병(撤兵)에 관한 일에 대해 자주 그 말을 변조하였습니다. 두 사신이 이미 그 진영으로 들어 갔으니 의당 물러가야 할 것인데, 끝내는 또다시 따르기 어려운 요청을 해오니 그 간교한 계략이 너무도 다양합니다. 오늘날의 사세로 말한다면 우리의 병력이 능히 흉적을 소탕할 수 없습니다. 지금 만약에 그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적은 반드시 이것을 구실로 삼아 끝내 철수해 물러가는 날이 없을 것이며, 유격 역시 우리에게 허물을 돌려 조선이 통신사를 보내지 않은 소치라고 할 것이니, 실로 작은 걱정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적은 심상히 국경을 범하여 노략질한 것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묘사(廟社)를 불지르고 우리의 능묘를 파헤친 적이니, 만세를 두고라도 반드시 복수해야 할 원수입니다. 그런데 어찌 그 원한을 잊고 친목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우매한 신의 얕은 소견으로는 통신사를 보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이희득(李希得)은 의논드리기를,

"왜노(倭奴)는 우리 나라와 한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통신사를 보내 우호를 맺는 것은 신자(臣子)로서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인데, 지금 전교(傳敎)를 받들어 심 유격이 보낸 자문의 내용을 보니 분통한 마음을 견딜 수 없습니다. 단 중국에서 사신(使臣)을 보냈으므로 이미 허화(許和)의 길은 열린 것이니, 우리 나라가 따르지 않으려 하여도 사세로 보아 불가능합니다. 우선 그들의 말을 따라 잠시나마 눈앞의 다급한 것을 늦추고 훗날의 복수책(復讐策)을 도모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권응복(權應福)은 의논드리기를,

"오늘날의 사세 조종은 한결같이 적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중국의 봉사(封使)가 이미 적의 진영으로 들어갔으니, 탐욕스런 흉적이 무슨 짓인들 하지 않겠습니까. 적과 우리는 이미 깊은 원수를 맺고 있으니 교활한 적이 어찌 우리 나라의 상하가 모두 조석으로 와신 상담하면서 복수심에 통분해 있음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이것이 감히 적이 스스로 통하지 못하고 중국 관원의 입을 빌어 협박을 가하는 이유입니다. 우호를 맺자는 말은 변사(變詐)를 부릴 단서를 만들려는 속셈에 불과한 것이니, 지금 이해를 돌아보지 않고 경솔히 그들의 소청을 허락하면 후일에는 반드시 지금보다 더 따르기 곤란한 요청을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적은 화란을 뉘우치는 날이 없고, 나라는 원수를 망각하는 수치를 만세에 전해 보이게 될 것이니 신은 차마 할 수 없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곽영(郭嶸)·조경(趙儆)·여림(汝霖)·조대곤(曺大坤)·사직(思稷) 등은 의논드리기를,

"우리 나라와 이 적은 영원히 한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지간으로, 혈기를 가진 자는 통분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더구나 배신을 대동하는 일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중국 사신도 또한 별로 할 일이 없다고 하였는데, 유격이 자기의 뜻을 성취하고자 흉적의 세력을 끼고 만단으로 변환하여 그 말이 몹시 패려하니 참혹하여 차마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신들은 무인(武人)이라 오직 창을 베고 쓸개를 맛보면서 국치(國恥)를 설분할 생각만 할 뿐, 통신사의 일에 이르러서는 감히 함부로 의논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윤선각(尹先覺)은 의논드리기를,

"이 적이 중국에 화친을 요청한 이후 여러 차례 그 말을 변경하면서 온갖 간교를 자아내었고, 오늘날 두 사신이 왜영(倭營)에 들어감에 이르러서는 또 통신사를 요구하는 말을 계속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비록 이에 그치고 말더라도 의리상 따를 수 없는 것인데, 더구나 그들의 한량없는 요구가 또 이보다 큼이 있을 것이니 장차 어떻게 그 뒷감당을 잘 하겠습니까. 또 더구나 이 일은 이미 중국의 명령도 아니고 사신의 뜻도 아니며 다만 유격의 말에서 나온 것이니, 그 사이의 사정을 더욱 요량할 수 없는 일이라 함부로 허락할 수 없음이 또한 분명합니다. 다만 우리 나라는 능히 자강(自强)하지 못하여 보존을 도모하는 모든 계책을 한결같이 중국에게 들어왔으므로, 그 신축 조종(伸縮操縱)하는 일도 우리의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유격이 옴으로 인해 갑자기 원수인 적과 서로 통하는 것은 실로 차마 못할 일입니다. 종전에 의리를 들어 어렵게 중국에 간쟁하던 것이 끝내는 또한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마땅히 따를 수 없다는 뜻으로 반복해 논변하여 유격의 자문에 회답할 것이며, 또 적의 정세를 갖추어 중국에 주달하는 것이 무방할 것 같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최입(崔岦)은 의논드리기를,

"통신사에 관한 일은 본래 의논할 일이 못 되는 것인데, 널리 자문(諮問)함에 이르러서는 또한 그 의논을 용인하는 자도 있으니, 신은 감히 모르겠습니다. 또한 두 사신이 오히려 차송(差送)을 요구하지 않았으니, 사세가 비록 급박하더라도 오늘날 의논하는 것은 경솔한 처사인 듯합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이노(李輅)는 의논드리기를,

"우리 나라와 왜노는 언제고 반드시 보복해야 할 원수지간이니, 그들에게 통신사를 보내 강화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더구나 중국에서 강화하는 것은 애초부터 우리 나라와 관계가 없는 것이니, 사신에게 배신을 딸려 보내는 것이 일에 있어서 무익할 뿐만 아니라 또한 사리를 해칠까 염려되므로 진실로 경홀히 의논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비록 황제의 명령이 있더라도 또한 마땅히 반복해 논주(論奏)하여 부득이한 연후에 서서히 다시 의논할 일입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김우옹(金宇顒)은 의논드리기를,

"원수의 흉적은 의리로 보아 한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으니, 우호를 맺을 수 없는 그 의리가 이미 분명하여 다시 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유도하는 자가 있어 말하기를 ‘형세에는 강약이 있고 일에는 경권(經權)이 있으니, 자신을 굽혀 우선 적을 물러가게 하고 훗날의 일을 도모하는 것 또한 시기를 가늠하고 나라를 보존하는 하나의 계책이다.’라고 합니다. 이 말이 그럴 듯하기는 하나, 오늘날의 형세로 볼 때 또한 그렇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조신(調信)이 돌아오자 서로 모여 은밀히 의논하면서도 오히려 사신을 보려 하지 않으니, 섬 오랑캐가 지니고 있는 그 다양한 간교를 진실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현소(玄蘇)의 그 공갈 조종하는 말이 극히 흉악 패려하니, 그 반복 무상한 간교한 계책을 어찌 쉽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두 사신은 한마디도 통신사에 대해 언급이 없었는데 심 유격의 입에서 나온 말을 어찌 신빙하여 갑자기 교활한 오랑캐에게 통신사를 보내어 모욕을 자초하고 피해가 점점 깊어지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아마도 나라를 도모하는 적절한 묘책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신의 우매한 생각에는 원칙을 따르고 정의를 지켜 천명(天命)을 기다리는 것이 후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황우한(黃佑漢)은 의논드리기를,

"흉적은 의리로 보아 한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이니, 통신사를 파견하여 결코 오늘날 재차 과오를 범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시세가 어쩔 수 없어 보내야만 한다면 혹시 변통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는 오직 성상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이제민(李齊閔)은 의논드리기를,

"원수의 나라와 더불어 우호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은 대의(大義)가 분명하여 진실로 함부로 의논드릴 수 없습니다. 더구나 적이 교활하여 신의가 없다는 것은 이미 징험하여 드러난 사실인데, 이제 어찌 또다시 과오를 범하겠습니까.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유자신(柳自新)은 의논드리기를,

"지금 우리 나라와 왜노(倭奴)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원수지간입니다. 지금 저들이 감히 통신사를 요청하는 것은 모두가 우리 나라를 멸시하는 것으로 조종하는 권한이 그들의 손에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의 말을 들어주면 통신사의 왕래에 그치지 않고 끝내는 눈물을 흘리면서 딸을 오(吳)나라에 보내는 모욕이 이를 것이니, 결코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상처를 입고 일어나지 못하며, 병력이 탕진되어 전연 지탱할 형세가 없으니, 거절하고 따르지 않으면 저들은 병세(兵勢)가 강성한 터이라 생각건대 필시 독을 부림이 지난날보다 극심할 것입니다. 미천한 신의 우매한 생각에는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의리로 중국에 주달하여 외교(外交)하지 말라는 칙서를 받아, 한편으로는 그들의 흉모(凶謀)를 깨뜨리고 한편으로는 우리의 약세를 보이지 않는 것이 아마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하고, 허진(許晉)은 의논드리기를,

"적의 동태를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온갖 흉계로 세월을 지연하면서 지금까지 바다를 건너지 않더니, 지금에 와서 심 유격이 감히 궤설을 늘어놓으며 자문을 보내어 배신을 사신에게 딸려 보내 우호를 다지도록 하라고 청하였습니다. 설사 이 말이 사신에게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중대한 일이라 오히려 경홀히 따르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유격이 떠벌리는 말인 데이겠습니까. 이는 더욱 취신(取信)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찌 그의 자청(咨請)으로 인해 사리를 그르치겠습니까. 결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선 적이 분명히 철수할 것을 보고 난 다음에 참작하여 조처하는 것이 무방할 것 같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윤인함(尹仁涵)은 의논드리기를,

"심 유격이 통신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은 현소(玄蘇)의 말에 의해 한 것입니다. 만약 한 번 사신을 보내서 영원히 화란이 없게 된다면 조신(朝臣) 한 사람을 택하여 보내는 것도 진실로 불가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강화의 말이 나온 지 이미 오래되었고 사신이 남하한 지도 또한 오래 되었습니다. 지금 바다를 건널 때가 임박하여 갑자기 신사(信使)에 대한 말을 만들어 지연시키니, 그 사이의 간교한 변사(變詐)는 실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오늘날 신사를 보내더라도 후일 계속하여 다른 요청이 있게 된다면 그것을 다 따를 수 있겠습니까. 신의 생각에는 현소의 교활한 말과 유격의 일시적 요청으로서는 신사를 보낼 수 없다고 여깁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최원(崔遠)은 의논드리기를,

"신이 삼가 심 유격의 첩문(牒文) 1통을 보고 반복하여 생각해 보니, 이는 진실로 사세의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인유(引諭)한 말도 지극히 간절하여 한두 가지가 아니니, 이 역시 소견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로(賊虜)와 우리 나라는 망극한 원한만이 있을 뿐, 한 하늘을 같이 이고 살 의리가 없습니다. 설사 배신을 보내면 즉시 우호를 이룰 수 있다고 하더라도 쉽게 단행할 수 없을 것인데, 더구나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 데이겠습니까. 반드시 보내야 한다고 한다면 신은 그것이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이 일은 조정의 막대한 조치이므로 자연 묘당(廟堂)의 치밀한 계책이 있을 것인데, 신이 어찌 감히 그 사이에 군더더기 말을 하겠습니까.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노직(盧稷)은 의논드리기를,

"이 일은 대의로 판단하면 진실로 다른 말이 용납될 수 없고, 비록 이해로 말한다고 하더라도 신은 과연 유익이 있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적은 이미 ‘책사(冊使)가 경성(京城)에 이르면 철수하겠다.’고 말하였는데, 책사가 정작 왜영(倭營)에 들어감에 이르러서도 미적거리고 핑계하며 온갖 변사를 부립니다. 또 ‘행장(行長)이 일본에 다녀온 뒤에 철수하겠다.’고 하였는데, 지금 조신(調信)이 돌아옴에 이르러도 함께 어울려 밀의(密議)만 하고 있으니, 또한 헤아리지 못할 동태가 많습니다. 배신이 간다면 그 후에는 또다시 무슨 말을 할런지 모르겠습니다. 그 정세를 탐지해 볼 때 이것이 수길(秀吉)의 뜻이 아니고 유경(惟敬)행장(行長) 등과 함께 이것으로 자신들의 공로를 꾀하는 소지로 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책사(冊使)가 이미 수길의 요구하는 바가 아니니, 비록 배신이 가더라도 부드러운 말로 인사 치레나 하는 하나의 예물이 될 뿐, 국사의 성패에는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가령 저 왜적은 실로 이러한 심산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한 가지 일로 인해 위급해진 뒤에 보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면 옛사람들도 또한 임기응변의 부득이한 처사가 있었을 것이니, 구구한 혐의에 구애되어 기회를 잃는 것은 불가한 것 같습니다. 다만 오늘날의 일은 성취를 중국에 기대할 뿐 우리 나라는 애초부터 그 사이에 간여하지 않았습니다. 근거할 만한 성지(聖旨)도 없고 사신의 분부도 없는데, 단지 유경의 말 한마디로 경솔하게 막중한 일을 거행한다면 훗날 난처한 걱정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박충원(朴忠元)은 의논드리기를,

"왜노(倭奴)는 전연 신의가 없습니다. 지금 신사(信使)를 요구하는 것은 우리 나라의 실정을 탐색하려는 행위입니다. 만약 그들의 말을 따른다면 또다시 그들의 술책에 떨어지는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설사 훗날 이를 꼬투리 잡아 우리에게 큰소리를 친다하더라도 보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지난 사실로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신의 우매한 생각에는 결코 따를 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하고, 한효순(韓孝純)은 의논드리기를,

"신은 생각건대 이 적은 오랫동안 유지해 온 우호를 저버리고 명분없는 군사를 일으켜 우리의 종묘 사직을 폐허로 만들었고 우리의 백성을 도륙하였으며, 우리 선왕의 능묘를 파헤쳤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곧 만세 신민이 반드시 갚아야 할 원수로서 하루라도 하늘을 같이 이고 살 수 없는 자이니, 거듭 우호를 펴며 왕래할 수 없음은 사리가 아주 분명하여 지혜롭지 못한 자라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건대 중국이 주선하는 강화의 성취가 이미 8∼9분의 지경에 이르렀으니 우리 나라의 신사를 보내더라도 또한 성취될 것이요, 보내지 않더라도 또한 성취될 것인즉 결코 보낼 수 없습니다. 만약 적이 가고 안 감이 이 사신을 보내는 한 가지 일에 달려 있어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 원인이 된다면 어찌 보내지 않겠습니까. 이는 성패가 매였고 대계(大計)가 있는 바이니 획일적으로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신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우선 결단코 불가하다는 말로 반복해 회자(回咨)하여 그 기미가 어떠한가를 살피고 끝내 부득이한 지경에 이를 경우에는 황조(皇朝)의 자칙(咨勅)을 받아 조처함이 무방할 것 같습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고, 희림(希霖)이관(李瓘)은 의논드리기를,

"우리 나라에서는 조금도 언짢게 한 일이 없었는데도 흉적은 우리의 종묘 사직을 불지르고 그 욕이 우리 능묘에까지 미치게 하였으니, 이는 영원히 하늘을 같이 이고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지금 복수하는 일은 거론하지 않고 경솔히 통신의 일을 의논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흉측하게 간교를 부리는 적이 다시 따라줄 수 없는 말을 내어 요구해 온다면 그를 다 따라줄 수 있겠습니까. 신들의 생각에는 통신사에 대한 한 가지 일은 결코 따를 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성상께서는 참작하소서."

하니, 상이 답하기를,

"비변사(備邊司)로 하여금 좋은 의논을 따라 조처하게 하라."

하였다.

  • [註 006] 눈물을 흘리면서 딸을 오(吳)나라로 보내듯이 : 남방 오랑캐인 오(吳)나라 왕 합려(闔閭)가 제(齊)나라를 치고자 하므로 제 경공(齊景公)이 그 강함을 두려워하여 딸[女]을 인질로 보냈는데, 끝내는 오왕(吳王)이 며느리로 삼았다. 《오월춘추(吳越春秋)》 합려내전(闔閭內傳).
  • [註 007] 월왕(越王)이 오(吳)나라에 강화를 요청하고서 백성을 모으고 가르친 것 : 월왕 구천(越王句踐)이 오 나라에 패배한 뒤 회계산(會稽山)으로 들어가 오왕 부차(吳王夫差)에게 화친을 청한 다음, 10년 동안 백성을 안집시키고 산업을 일으켜 끝내 오를 멸하고 원수를 갚았다. 《사기(史記)》 권41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
  • [註 008] 기정(奇正) : 병가(兵家)의 말. 비상(非常)을 기(奇)라 하고, 평직(平直)을 정(正)이라 한다. 《손자(孫子)》 병세편(兵勢篇).
  • [註 009] 조보(朝報) : 승정원에서 처리한 사항을 매일 아침에 기록하여 반포하는 관보.

원문

○以沈遊擊移咨議處事, 二品以上獻議。

成龍議: "臣, 病中精神昏耗, 思慮顚錯, 不堪議軍國重事。 且不聞沈懋時入來後所言云何。 其中事情, 固難料測, 但因前後狀啓, 不勝憂慮。 反覆思度, 夜以繼日, 而未得其所處之宜。 臣從前每疑此賊, 末(捎)〔梢〕 必爲難從之請, 以起釁端, 今之事勢, 駸駸近之。 以臣愚料, 今此調信之回, 形色可疑。 恐其所要, 不止於通使, 亦或欲爲背約, 而特假此爲辭, 沈惟敬, 亦自知其事不了, 計窮反欲歸過於他地, 而爲自解之計。 如使平秀吉, 欣迎天使, 且要我國使臣, 同來而已, 則平調信何以連日與其類密議, 然後始見遊擊? 遊擊亦何以稱病閉門, 不面見天使, 而但使下人, 傳報耶? 此等形色, 極爲可疑。 臣意此賊, 雖假此爲言, 而其兇謀, 實在於他也。 今此咨文, 若以直辭拒之, 則正墜於遊擊作弄之中, 而執此馳報天朝曰: ‘封事將成, 而朝鮮不許遣使之請, 故賊未退。’ 若欲順其所言, 則亦非人情、義理之所忍爲。 雖許遣使, 之去否, 尤未可必, 此其所以難處者也。 無已則當答之曰: ‘弊邦與日本比隣, 初無毫髮怨隙, 不意, 日本逆天悖理, 無故興兵, 虔(刈)〔劉〕 我生民, 焚夷我廟社, (拔)〔發〕 掘我丘陵, 弊邦之人, 雖三尺童子, 無不沫血飮泣, 以爲: 「有死而已。 豈敢言和?」 今蒙天朝天涵海育, 兼愛南北之民, 勞勳戚大臣, 涉不測之地, 要在解棼息兵。 大人以當事銜命之重, 敎戒小邦如此, 至以陪臣, 隨天使渡海, 禮義當然見責, 此亦實關於天朝大體。 第以日本之人, 所在反覆, 不可憑信。 前後情節變遷, 雖詔使以皇靈臨之, 尙未得其要領。 機張竹島安骨之賊, 屯結如舊, 未聞渡海之期。 更亦何有於小邦, 而以一使爲重輕哉? 若是則小邦, 徒爲益重恥辱, 而爲天下笑, 大人之勤勤惓惓, 終始擔當者, 竟歸於虛地也。 唯望大人, 更査彼中情形, 竝與冊使, 商確定奪, 毋苟完目前, 而爲長遠之圖, 使小邦, 得免再悞於今日, 幸甚云云’, 以觀其所答如何, 而益察近日賊動靜而更之, 以爲宜當。 不可於一言之間, 輕爲許與不許, 更難收拾。 臣當此大事, 竭其心思, 而思慮所及, 僅止於此, 不可採用。 此乃極重機關, 伏望廣收廷議, 裁自聖衷, 俾無後悔。 且臣又有所慮, 故竝及之。 今春防守之計, 不可不急急措置。 往在壬辰, 賊亦(遠)〔每〕 以虛語, 往來懈我, 言歲遣船, 朝夕將至, 而大賊突至。 今年之事, 亦安知其不出於此乎? 他處不可槪擧, 濟州尤甚可憂。 此地正當西南海, 且與中國相近, 若據之, 則雖欲以天下之力, 取之不(可)〔能〕 。 前日賊使要時羅, 明言將犯濟州, 而本州適癘疫、飢饉, 人民死亡, 亦似不幸。 其他事, 竝與備邊司, 不分晝夜措置宜當。"

守慶議: "臣伏覩沈遊擊移咨及黃愼前後狀啓: ‘陪臣率去之事, 似是出於玄蘇平行長平調信等, 與沈遊擊同議, 要功於關白之計也, 其詐譎叵測, 誠爲可慮。 但陪臣起送, 本非帝命, 遊擊亦言之’ 云。 旣非帝命, 又非兵部之敎, 又非天使之意, 則只依遊擊之咨, 陪臣起送, 實是無名之擧。 以此爲辭, 答遊擊之咨, 恐或無妨。"

興源議: "我國於倭奴, 少無開釁之事, 而入寇肆毒, 陷我三京, 禍及陵寢。 此誠不共戴天之讎也。 兵興四載, 師老、糧竭, 雖未勦滅兇賊, 痛心如割, 豈一日忘此賊乎? 彼賊以通信之言, 欲試朝廷深淺, 尤爲痛惋。 今若輕許, 他日之請, 不止於此, 則前頭難處之患, 恐有甚於今日也。 臣經年患病, 精神昏憒, 料事顚錯, 今承下問, 不敢含默, 略陳愚見。 伏惟上裁。" ○臣斗壽議: "當初冊封天使之入境也, 識者固慮有難處之事, 而幸天使, 聽採一國事情, 不責信使之行, 其於枕戈嘗膽之事, 得有以張目而待矣。 今者冊使則不與較, 而沈遊擊中間弄壞至此, 一國臣民, 不共戴天之冤, 無時可雪, 後日種種難從之請, 何可勝言? 宗社、生民之禍, 由此益滋。 臣不敢有涕出女之意。 宜以嚴辭婉意, 修咨回送, 何如? 伏惟上裁。" ○臣應南議: "此賊於我國, 有萬世必報之讎。 只緣兵力單弱, 未能聲罪討滅, 而斷以大義, 不可一日共戴天。 當初通信之擧論者, 猶以爲不可。 況在今日, 其可忍言此事哉? 設令不得已從之, 旣從之後, 賊之所要於我者, 又有決不可從之事, 則未知將何以處之? 與其難處於旣從之後, 曷若不從於今日之爲愈? 此臣之所以大憂者也。 但上年朝廷, 爲胡澤所迫, 旣從羈縻之說, 奏達皇聽, 至令冊使, 入來於賊營, 而遊擊欲得信使, 以助封事之成。 今若不從其言, 而賊終敗約不退, 則遊擊必執此歸咎於我國, 此尤可憂之大者也。 第有一事可疑。 冊使在京時, 固請信使率去, 而今在賊中, 一則曰: ‘陪臣之去, 遊擊所弄。’ 一則曰: ‘事體不當。’ 一則曰: ‘陪臣帶去, 沒有所幹。’ 其言必有所見, 安知此賊之要求通信, 或非出於實情哉? 此間事狀, 極爲殊常。 雖信遊擊之言, 遽從其請, 恐有後悔。 具奏以聞, 以待天朝處置似當。 臣之愚見如此, 而亦未知其必是。 伏惟上裁。" ○臣鄭琢議: "臣就審沈遊擊呈咨, 語涉張皇。 本國陪臣, 必欲偕行, 酬答之辭, 切宜十分商確, 俾無未盡之意。 其所答之辭, 大槪若曰: ‘足下能體聖天子字小之仁, 偏念小邦切迫之患, 冒涉寒暑, 圖濟十全, 固無餘欠。 今此移咨, 傾倒備悉, 重荷盛念, 敢不知感? 第以賊情見示, 欲與陪臣, 必與從行, 俱入倭國, 亦見爲小國周旋之意, 至此而無以加矣。 寡人, 亦豈不諒? 寡人淺見以爲, 此賊兇詐, 終始難信。 今者撤兵, 實荷皇朝威德, 足下奉宣得宜, 而奉勑兩大人繼臨, 休勢孔嚴。 小邦陪臣, 往與不往, 有何些少輕重於其間乎? 陪臣不宜攸往, 不待重辨。 賊之請行, 意固難測, 賊情譎詐, 得於天性。 今似納款, 實畏大國威靈, 而撤歸臨時, 敢以小邦必不從之事, 連臂傳語, 欲試弊邦之意, 初非誠意所發, 亦或因此托言, 復(桃)〔挑〕 意外兇謀, 難保其必無。 昨者無故動兵, 屠戮城市, 辱及先陵, 此賊誠於小邦, 百世難忘之讎。 隱忍經過, 顧力不及耳。 小邦之不與修好, 賊亦自知, 而敢要陪臣之偕行, 非有凶謀而何? 且皇勑欽旨, 全爲小邦, 欲其撤兵之急, 而皇勑甚嚴, 兩大人之行, 亦已來臨。 固當承受奉行之不暇, 而盤回遲久, 又要陪臣, 操縱由己, 無復聽行於詔使, 此果何等作爲耶? 小邦陪臣, 雖不得行, 皇勑其敢違耶? 其桀傲、悖慢之狀, 固不足道, 獨不念皇朝體面至嚴耶?’ 且有一說焉。 ‘凡爲天下列國, 無有遠邇, 各守封疆, 作藩王國, 無相私結, 此古今之通義也。 雖在化外之國, 或相通好, 固不無羈縻不拒之意, 律以王法, 則實犯私交之罪。 非有皇朝欽旨, 而擅遣陪臣, 有若顯然大傷事體, 實犯常刑, 固不可冒行。 以足下弘量包荒, 雖置度外, 亦豈小邦, 必行勿違耶? 大抵此賊情形, 固難測知。 惟冀足下, 終始殫誠, 曲加周旋, 陰折兇謀, 再造小邦, 何德如之?’ 以此爲措辭, 答之似當。 又有一種之說, 以爲: ‘此賊不退, 則事將難知, 遊擊之言, 恐非偶然。 天心悔禍, 此賊撤歸, 則將來國事, 猶或可爲。 謀國之道, 或有不得已變通之時, 古之帝王, 猶或行之。 國勢危如一髮, 而不能忍耐, 非所以謀國之道也。 且遊擊送咨, 甚有機關, 如或處之失宜, 萬一事或不諧, 則遊擊反自有辭, 歸咎本國, 亦不可謂無是事。’ 云。 此論雖則然矣, 實非經據, 固非今日所當言者也。 竝錄以啓, 以備參考, 伏惟上裁。" ○臣崑壽議: "伏以, 萬世之仇, 不可忘; 窮天之怨, 不可釋。 賊之所爲何如, 而舊好二字, 乃出於賊酋之口乎? 此我國臣子, 所不忍聞, 而沈遊擊咨內云云者, 之所管, 旣是便宜調戢, 則其意必以爲事有理勢, 道有經權, 故不以害人, 難於絶物, 古有是言。 今天朝所爲者和事, 而賊酋所欲如此, 無寧如越王請成於, 而生聚之, 敎訓之, 然後玆封事, 出於天朝, 而我則不與焉。 陪臣之跟隨封使, 又無欽降聖旨, 在我又安敢自擅? 以此意回咨, 恐或爲當。 伏惟上裁。" ○臣根壽議: "此賊兇詐百出, 冊使臨當過海, 乃發陪臣隨往之語, 而沈遊擊爲之主張, 至於移咨。 且賊僧恐喝之語, 無所不至, 極爲痛心。 其奸謀似不徒然。 我國若不許, 而賊酋將執此以爲辭, 則將來之憂, 有不容言者。 且賊之要刦者, 豈在於通信一事而已乎? 若一許此, 則又將以決不可從之語, 次第言之, 我國, 將何以應之? 不但萬世之仇, 在人義, 決不可通好, 而一許信使之後, 則將來尤不能自樹立矣。 曩年通好, 豈我國之意, 而猶隱忍爲之者, 擬可以不觸其怒, 或息兵端, 而曾未幾時, 乃有此開闢所無之兵禍, 則通好之無益, 已事之明驗也。 且兩冊使, 俱在倭營, 應必稔知事勢, 而其意皆以爲不須帶去。 豈可只因遊擊之咨, 而輒許之乎? 伏惟上裁。" ○臣喜壽議: "直截大義, 憤惋至痛, 今不暇言。 姑以目前事勢言之, 賊屯海邊, 已及四年。 今欲撤去, 則自當去矣, 有何緊要於朝鮮使臣, 而必欲與俱也? 臣之愚意, 送不送, 無關於去不去也。 賊僧玄蘇, 蔑我之甚, 做出此說, 而愚弄之。 沈遊擊熟知賊情, 未易退去, 又揣我國羞與通好之意, 欲爲他日藉口免罪之地, 敢爲試探(勤)〔勒〕 要之計, 恐非關白賊之本意也。 調信回來, 不卽發此言, 累日密議, 然後始言之, 似是一明驗。 觀其咨意, 反復調誘, 其情不可掩。 今欲其跟伴天使之行, 而天使實不欲焉, 此亦不難知之事也。 回咨之意, 須十分婉曲, 不甚據理嚴絶, 微示以難準。 我亦試探彼情, 待彼之强, 然後徐議之, 或至於奉聖旨, 然後不得已而遵行, 則庶或免(伊)〔彼〕 漸加要索, 一節深一節之誣陷也。 但春汛已迫, 賊謀難測, 窮蹙之甚, 寸刻爲急。 若謂國家存亡, 在此一擧云爾, 則非愚陋小臣, 所得容議於其間也。 伏惟上裁。" ○臣德馨議: "天下之事, 不出於勢而已。 事勢至於此, 則操縱定奪之權, 恐非在我之所自由也。 朝唯欲苟且完事, 而許多事體, 都沒理會, 想凶賊陵侮之心, 愈益甚矣。 若我國陪臣, 遽爾入歸, 而賊以重大至難之事, 刦要于我, 朝以爲東事已完, 而不暇顧我國之憂, 則此時將若之何? 觀朝處事, 節節差誤, 則沈惟敬之計, 亦要成就其事, 日後之患, 有難勝言。 事機一失, 徒憤奈何? 無已, 則將近日賊情及此重難緣由, 明白奏聞而處之, 其於後計, 恐不爲無益。 上裁。" ○臣申點議: "此賊於我國, 乃萬世不忘之讎也。 遣使通情, 理所不忍爲, 而況旣無天朝命令, 又無冊使移咨, 遊擊一言, 何可遽從? 上裁。" ○臣洪進議: "以大義, 則萬世臣子, 不可忘此賊, 況敢與之通信乎? 以國力, 則目前兵將, 無人辦此賊。 若遊擊執此爲說而遽還, 則存亡決矣。 但此事, 天朝主張, 我國初不與焉。 今天使無帶率陪臣之意, 而遽從遊擊之言, 日後難處, 恐有甚於今日。 試以義不可之意, 告于天使, 而會于遊擊, 然後更議處之, 何如? 臣在病中, 神識昏昧, 不知所達。 上裁。" ○臣憲國議: "世讎之國, 義難通信。 以決不可從之意, 辭兼婉峻, 從速回咨於沈惟敬處, 而事若出於難處, 則更議恐或似當。 伏惟上裁。"

權慄議: "臣伏見沈遊擊咨文, 不無誘脅之意, 而揆之禮義, 則亦有可據。 況差遣陪臣, 追隨天使而去, 則別無通信使之名, 而爲陪臣臨時善爲說辭, 使秀吉自知其非, 而若回兇念, 則恐無羞恥之事, 而其於修鍊待時之擧, 必有有裕之期矣。 伏惟上裁。" ○臣申磼議: "此賊於我國, 極冤極痛之讎, 則通信一言, 非惟口不可言, 耳亦不忍聞也。 今若迫於危亡, 姑聽其請, 則終必以不可從之言, 節節變(幼)〔幻〕 , 未知何以應之, 而國書禮幣, 亦可忍爲乎? 但我國群臣, 若能於復讎之義, 腐心苦志, 協心不怠, 敎訓生聚之外, 更無他意。 期於異日, 必雪宗社之辱, 則佯爲許和, 以探賊情, 似亦不害於兵家奇正之術, 而倘以是爲退賊之良策, 則臣未知之也。 伊賊兇狡, 雖有天子之明命, 而要變其說, 遲延到今, 則果以我國之通信, 而盡撤渡海乎? 臣恐此論, 坐陷於沈惟敬之所詐也。 伏惟上裁。" ○臣宋賛議: "和議無益, 前史備焉。 與讎爲和, 程顥封事, 尤爲謹嚴, 委係天經地紀, 不可更論。 天朝遣使封王, 乃一視同仁之意, 豈與醜虜約和哉? 但兵家有奇正之略, 兵力或困, 則先爲不可勝之勢, 潛養兵力, 以爲應變之地, 亦一機也。 似不可執一論焉。 送信使, 則禍遲; 不送, 則禍速。 固難遙度, 而海寇之如蜮, 長含射影之沙, 其爲假途向京之凶計, 雖送信使, 必不少變。 送與不送, 終歸於無補, 豈可以遊說一夫之移咨, 輕易準之乎? 頃年黃允吉之行, 可以鑑矣。 伏惟上裁。" ○臣自新議: "未遑復讎之策, 先遣通信之使, 義所不忍。 雖出於冊使之意, 固難勉副。 遽從遊擊一言, 再陷倭奴術中, 決不可爲。 其他事勢利害, 臣誠愚昧, 不敢知也。 伏惟上裁。" ○臣命元、臣永慶、臣姜紳議: "兇賊與我, 初無搆怨之人, 而無端動兵, 燒毁廟社, 殺戮生靈, 不測之禍, 延及於先陵。 此賊之於我國, 乃萬世必報之讎。 豈有復通信使之理乎? 但當初, 我國不能自强, 求救於天朝, 天朝終始拯濟, 不幸而羈縻之說出, 而不得堅執, 至於奏達皇聽。 今者冊使, 已入於賊營, 而賊猶不退, 要我以通信。 我若不從, 則賊必托此遲留, 而終爲惟敬執言歸咎之地, 此甚可慮者也。 然近日賊情之可疑者, 不一而足。 封事之成否, 若係於陪臣之去不去, 則冊使何獨不請, 而一曰遊擊所弄, 一曰沒有所幹, 其間事情, 實所未曉。 況天朝定約之時, 我國通信, 不在其中。 伊情果爾恭順, 則豈因信使一事, 而不爲撤回乎? 我之不許, 不患無辭。 臣等愚意, 據理論辨, 回咨於遊擊, 一邊具陳賊情, 急急馳奏天朝, 似合事宜。 伏惟上裁。" ○臣李增議: "我國與凶賊, 尙戴一天, 有血氣者, 咸懷一死。 通信二字, 雖在百世之後, 義不忍出諸口。 況於今日乎? 只有義理。 他日之利害禍福, 何暇恤乎? 設若以利害言之, 賊情之兇謀叵測, 雖與之通和, 能保其必無後禍乎? 往日之事, 亶可懲矣。 此事雖或出於皇命, 決不可容易承之。 豈可憑惟敬一紙之書, 而遽議之乎? 第念皇朝封賊, 亦在於紓緩我國之患。 如或賊衆, 執此不卽撤還, 天使拘此, 復命無期, 有狼狽難處之勢, 而自皇朝有稟命, 則恐不無隨時更議之端。 今以義理之不可, 兼備峻婉之辭, 回咨似當。 伏惟上裁。" ○臣忠侃議: "兇賊於我國, 有萬世之讎。 通天憤痛, 上下皆然。 皇朝遽遣準封天使, 已爲講和, 彼賊桀驁, 驕傲之心, 比前日益熾。 許遣通信使之言, 亦出於千萬意外。 我國枕戈嘗膽, 復讎之日, 在於何時耶? 臣竊痛心焉。 臣之愚意, 五年對壘, 不得討賊者, 皆是皇朝命令。 今此通信之事, 亦非皇朝之命, 則決不可遵行。 設若沈遊擊周旋, 滌去通信使之號, 以兩天使入日本之時, 跟隨稱號, 則秩卑一員差送, 於理不甚無謂。 伏惟上裁。" ○臣(權懲)〔權徵〕 議: "臣疾病經年, 長伏枕席, 朝報廷議, 都未聞知, 有何奇謀深計, 可以扶國危復賊讎者乎? 第惟屠人生靈, 墟人宗社者何限, 而未有如此賊之甚。 掘燒仙寢, 玉體亂眞, 茫茫九原, 欲問無路。 擧國臣民, 豈忍一日俱生? 然而人主之報讎, 與匹夫有異。 旣不能背城一戰, 以決存亡, 則句踐之栖會稽, 能復讎於二十年之後, 亦可踵也。 且我東一邦, 旣爲天朝屬國, 凡所號令施爲, 雖或不便於我者, 猶當屈意而從之。 況民窮財盡, 國勢(捏扤)〔杌隉〕 ? 姑行權謀, 以誘賊心, 此亦一策。 臣之愚意, 竊有所(布)〔希〕 。 曾觀兩陵掘破之形, 實是我國之人, 有所指揮。 豈令與賊, 假息於覆載之間乎? 今日之遣使, 旣不可得已, 則我民之犯於陵寢, 偸生在島者及賊將之首倡是計者, 幷使之械送, 又諭關白, 俾致謝罪之書, 然後方可復修兩國之好矣。 伏惟上裁。" ○臣思孟議: "伏覩沈遊擊咨內, 要與我國通信使偕行。 竊念講和一事, 出於上國, 本非我國所願。 今此冊封天使之來, 賊之狡詐百出, 撤兵一款, 屢變其說。 兩使旣入其營, 當卽退去, 而末梢又發難從之請, 其爲奸計, 不一而足。 以今日事勢言之, 我之兵力, 不能蕩平兇醜。 今若不從其言, 則賊必執此爲辭, 終無退撤之日, 而遊擊亦必歸咎於我, 以爲: ‘朝鮮不遣通信使所致’, 誠非細慮。 然而此賊, 非尋常犯境殺掠之比。 焚燒我廟社, 掘發我陵寢, 此正萬世必報之讎。 豈有釋怨修睦之理乎? 愚臣淺見, 通信使不當送也。 伏惟上裁。" ○臣李希得議: "我國與倭奴, 不共戴天之讎。 通信修好, 臣子所不忍言, 而今承傳敎, 伏審沈遊擊咨內之辭, 不勝痛惋之至。 但天朝委遣天使, 已開許和之路。 我國雖欲不從, 勢所難能。 姑從其言, 少紓目前之急, 以圖後日復讎之策, 何如?" ○臣應福議: "今日事勢操縱, 一任賊手。 天朝封使, 旣入賊營, 則朶頤之兇, 何所不至? 第賊與我, 已結深讎, 以賊兇狡, 豈不知我國上下朝夕臥薪不共一天之痛哉? 此賊所以不敢自通, 借官之口, 行誘脅之計也。 隣好之說, 不過爲遷就變詐之端, 而今者不顧利害, 遽許其所請, 則他日難從之請, 必且有甚於今日。 賊無悔禍之日, 而國有釋怨之恥, 傳示萬世, 臣所不忍。 伏惟上裁。" ○臣郭嶸、臣趙儆、臣汝霖、臣大坤、臣思稷等議: "我國與此賊, 萬世不共戴天之讎, 凡有血氣者, 莫不痛憤, 況陪臣帶去之事, 天使亦以爲沒有所幹, 而遊擊欲圖濟己意, 挾兇賊之勢, 變幻百端, 其說極悖, 慘不忍言。 臣等武人, 惟知枕戈嘗膽, 思雪 國恥而已, 至於通信一款, 不敢容議。 伏惟上裁。" ○臣先覺議: "此賊, 自請款天朝以後, 屢變其說, 奸狡百出, 而至於今日, 兩使入營, 則又以信使之說繼之。 其所要我者, 雖止於此, 義不可從。 況彼無厭之求, 又有大於此者, 則將何以善其後乎? 又況此事, 旣非天朝之命, 又非天使之意, 而只出於遊擊之言, 則其間事情, 尤難揣知, 其不可輕許也, 亦明矣。 但我國, 旣不能自强, 凡所以圖存之計, 一聽於天朝, 雖其伸縮操縱, 有不得以由我者。 然只因遊擊之至, 遽與讎賊相通, 實所不忍, 而從前據義苦爭於天朝者, 竟亦何居? 今當以不可從之意, 反覆論辨, 回咨於遊擊, 且具賊情, 聞奏天朝, 似爲無妨。 伏惟上裁。" ○臣崔岦議: "通信一事, 本不當議, 而至於廣詢, 則亦有容議者, 臣不敢知。 抑兩天使, 尙未要差送, 事勢雖蹙急, 今日議之, 恐其遽也。 伏惟上裁。" ○臣李輅議: "我國與倭奴, 有萬世必報之讎, 不可與通信講和決矣。 況天朝之講和, 初不與於我國, 則隨天使遣陪臣, 非徒無益於事, 而亦恐有害於事理, 固不容輕議也。 雖有皇命, 亦當反覆論奏, 迫於不得已, 然後徐當更議。 伏惟上裁。" ○臣宇顒議: "仇讎之賊, 義不共一天, 則其不可通好, 義理已明, 更無可言。 第有可誘者, 以爲勢有强弱, 事有經權, 屈己退寇, 以圖後擧, 亦權時保國之一策也。 此語似矣, 而看今日之勢, 又有不然者。 調信之回, 相聚密議, 猶不肯卽見天使。 夷情多詐, 固難料度, 而玄蘇之辭, 恐喝操縱, 極爲凶悖。 此其奸計反覆, 豈易可測? 況兩天使, 旣無一語及於通使, 則沈遊擊說出之言, 豈止憑信, 而遽遣信使於狡夷, 祗取侮辱, 而貽害轉深? 恐非謀國之宜。 臣愚以爲, 不如據經守正, 以待天命之爲無愧也。" ○臣佑漢議: "兇賊, 義不當共戴一天。 通信使之遣, 決不容再誤於今日, 而若出於時勢之使然, 則似或可以變而通之。 斯二者, 惟在聖斷。" ○臣齊閔議: "仇讎之國, 不可與通信, 大義截然, 固不可容議。 況狡詐無信, 曾有已試之效, 今豈可再誤? 伏惟上裁。" ○臣柳自新議: "今我國家, 與倭奴, 有窮天極地之讎, 而今者彼敢要請信使, 此無非凌侮我邦, 伸縮在其手然也。 若聽從其言, 不止信使往來, 將至於涕出女之辱矣。 斷不可爲之。 第今瘡痍未起, 兵力已竭, 萬無支吾之勢, 拒而不從, 彼賊兵勢方張, 慮必肆毒, 有甚於前日。 微臣愚意, 以不共戴天之義, 奏聞天朝, 受無外交之勑, 一以折破兇謀, 一以免我示弱, 恐或無妨。" ○臣許晋議: "賊情叵測, 凶狡百出, 遲延歲月, 迄未渡海。 今者沈遊擊, 敢爲詭辨, 咨請陪臣, 跟隨天使, 以修隣好云云。 設或此言, 出於天使, 事機甚重, 猶未敢遽然從之。 況遊擊(濤)〔譸〕 濤張之說, 尤不足取信。 豈可因其咨請, 以誤事宜? 決不可容易爲之。 姑觀賊勢, 分明退撤, 商量處置, 恐或無妨。 伏惟上裁。" ○臣仁涵議: "沈遊擊請遣通信使, 因玄蘇之言, 有是說。 若一遣信使, 永世無患, 則擇遣一臣, 固無不可, 但講和之說, 出之已久 天使南下, 亦已久矣。 今將渡海, 便作信使之說, 以退其行, 其間變詐, 誠不可測。 今日遣使, 而明日繼有他請, 則其可盡從乎? 臣意, 以玄蘇詐譎之言, 因遊擊一時之要, 恐不可遣使也。 伏惟上裁。" ○臣崔遠議: "臣伏覩沈遊擊牒文一通, 反覆思惟, 則此誠出於事勢之不得已者也。 引諭切至, 不一而足。 此亦不可無所見矣。 但賊虜與我國, 有罔極之怨, 無共戴之義。 設遣陪臣, 有所便好, 未可容易斷行。 況未必然者乎? 謂之必遣, 則臣不敢知。 且此事, 朝廷莫大措置, 自有廟堂成算, 臣何敢容贅於其間哉? 伏惟上裁。" ○臣盧稷議: "此事, 斷之以大義, 則固不容他說, 而雖以利害言之, 臣未知其果有所益也。 旣曰冊使到京城, 則當撤, 而至於入營之後, 遷延退托, 變詐百出; 又曰行長往來後當撤, 而至於調信之回, 綢繆密議, 亦多叵測之形。 陪臣旣去, 則亦未知復有何說也。 究厥情勢, 則安知此非秀吉之意, 而惟敬與其行長等, 執此而爲自謀之地耶? 冊使旣非秀吉之所要, 則陪臣雖往, 只爲緩頰之一(贄)〔資〕 , 恐無益於國事之成敗。 設若彼賊, 實有是計, 而因此一事, 或可圖存於旣危之後, 則古人亦或有權宜不得已之擧。 區區之嫌, 似不可以拘失事機, 而但今日之事, 只仰成於天朝, 我國則初不干與於其間, 未有聖旨之可據、天使之分付, 而只以惟敬之一言, 輕擧莫重之事, 則恐不無後日難處之患。 伏惟上裁。" ○臣忠元議: "倭奴之無信義甚矣。 今要信使, 探我深淺也。 若從其言, 則恐又墜於術中也。 假曰後日, 執此而哄我, 往者之事, 亦可(懲)〔徵〕 也。 臣愚以爲, 決不可從。" ○臣孝純議: "臣伏以此賊, 棄百年之好, 興無名之師, 墟我宗社, 屠我生靈, 發我先王之陵寢。 此乃萬世臣民必報之讎, 不可一日共戴天者。 其不可重申前好, 信使來往, 事理較然, 不待智者而決也。 第竊惟念, 天朝和事之成, 已到八九分地, 而我國使臣, 遣之亦成, 不遣亦成, 則決不可遣也。 如使賊之去留, 繫于 此事, 遣使一節, 或爲輕重於國家之存亡, 則安可不遣乎? 機關所係, 大計所在, 似不可畫一而言也。 臣之妄料, 先以必不可之議, 反覆移咨, 以觀其機之如何, 至於終不獲已, 或俟皇朝咨勑而處之, 恐或無妨。 伏惟上裁。" ○臣希霖、臣李瓘議: "兇賊於我, 少無釁隙, 而焚蕩我宗社, 辱及我陵寢, 此乃萬世不共天之讎。 復讎不擧, 而其可輕議通信事乎? 況兇詐之賊, 更發不可從之言以要之, 則其可盡從之乎? 臣等之意, 通信一事, 決不可從也。 伏惟上裁。" 上答曰: "令備邊司, 從長處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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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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