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67권, 선조 28년 9월 22일 신묘 2/3 기사 /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신속히 왜적을 축출할 것을 건의하는 총독 군문 표하 도지휘사사 장홍유의 첩문
국역
의주 부윤 황진(黃璡)의 장계는 총독 군문 표하 도지휘사사(總督軍門標下都指揮使司) 장홍유(張鴻儒)의 품첩(稟帖)을 올려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장홍유의 첩문(帖文)은 다음과 같다.
"총독 군문 요섭 요해 등처 어왜 제조 도지휘사사(總督軍門繞攝遼海等處禦倭提調都指揮司使) 장홍유는 돈수 재배(頓首再拜)하고 조선 국왕 전하께 삼가 아룁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전하의 덕은 온 천하에 떨치고 인(仁)은 두 나라를 풍화(風化)하였으며, 성스러움은 신화(神化)를 모두 겸하였고 은택은 만민에게 미쳤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요사한 기운이 사라지지 않아 아직까지 왜적이 번병(藩屛)을 점거하고 있는 것입니까. 전하께서 매양 동쪽의 왜를 염려하는 근심을 지니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어느 때에나 안정되어 태평가(太平歌)를 부르게 되겠습니까. 홍유는 간절한 생각에 아침 저녁으로 밥먹는 것도 잊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간절히 생각하고 있는데 어찌 차마 잊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해 가을에 동쪽으로 와서 전하께서 종시 잘 돌보아주심을 힘입어 공을 이루었습니다. 그때 돌아와서 곧 당도(當道)에 자세히 보고하였더니, 당도는 묘당(廟堂)에 자문으로 보고하였으므로 계속하여 이 공에 대해서 이미 기록하여 발탁됨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전하를 하직하고 왕경(王京)을 떠나 10월 무렵에야 요양(遼陽)에 도착하여 손은주(孫恩主)에게 가서 사정의 시말 연유와 왜적의 뿌리가 깊고 단단한 실정을 토로하면서 기관(機關)에 대해 철저히 말하였더니 손은대(孫恩臺)는 머리를 끄덕이며 소청대로 따르지 않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곧 요진(要鎭)에 격문을 보내고 계획을 세워 계책을 도모하고 사방에 두루 포고하여 각성(各省)에서 군량을 운반하고 군사를 조발(曹發)하여 귀국을 구원하려고 일체를 자세히 핵실하여 하나도 준비 정돈하여 미리 완전히 헤아리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보기에 오직 왜를 봉하는 일에 대한 정확한 소식과 사정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왜가 봉해주는 것을 믿고 소굴을 떠나 저희 나라로 돌아간다면 무엇 때문에 기치(旗幟)를 다시 흔들 필요가 있겠습니까마는 왜노(倭奴)가 이랬다 저랬다하는 마음으로 봉하는 일을 타결하지 않고 여전히 웅거하고 있으면서 옮겨가지 않는다면 손경대(孫經臺)는 반드시 제청(題請)하여 대병을 조발해 거느리고 수륙(水陸)으로 아울러 진군하여 힘을 다해 무찔러서 그 일을 끝내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에 한번 결판을 않는다면 끝내 왜를 무찔러 일을 마칠 시기가 없을 것이니 손은대가 어찌 속수 무책(束手無策)으로 가만히 있겠습니까. 몹시 우습습니다. 이 한 가지 일은 이홍유가 손은대와 같이 참작 의논하여 행하려는 것이고, 실없이 입만 놀리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께서는 본디 이홍유의 진위(眞僞)를 모르시는데 더구나 동정도 보지 못하였는 데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성실하게 이홍유의 비결(秘訣)을 다시 간절히 진정하는 바이니 전하께서는 자세히 살피소서. 이번 초가을에 경략(經略)이 위임하여 보내온 관원 호성(胡姓)·신성(愼姓) 2인이 왜인의 일을 탐지하기 위하여 곧장 부산으로 갔는데, 이들 또한 손야(孫爺)296) 의 심복 중에서 차출된 것이며 또한 나의 천거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심유경(沈惟敬)이 거짓말로 호도하고 위조하여 주상의 뜻을 가리워서 큰일을 그르칠까 염려스럽습니다. 쉽게 저들이 떠드는 말에 전염되어 무단히 파병하면 국가 대사를 그르칠 것이지만 이홍유의 소견대로 하면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반드시 도총병(都摠兵) 권율(權慄)·이순신(李舜臣)에게 명하여, 쓸 만한 인원을 차임하여 급히 저들의 소굴에 나아가서 분명한 사실을 탐지하도록 하소서. 혹 왜이(倭夷)가 과연 진심으로 봉함을 받고 돌아가려 하거나 혹은 교사스러운 점이 많거나 혹은 동지(動止)를 청하고자 하거나를 체탐하는 것이 모두 이번의 한번 거사에 달려 있으니, 호(胡)·신(愼) 두 관원이 돌아올 때 사연을 적어 믿을 수 있는 손은대(孫恩臺)에게 비밀히 부치소서. 만일 다시 어물어물하고 사실대로 고하지 않을면 손야(孫爺)가 마음을 쓰지 않으 뿐 아니라 귀국의 일에 크게 잘못되어 부질없이 생령(生靈)이 도탄에 빠지고 사직(社稷)이 폐허가 될 것이니 어찌 마음 아프지 않겠습니까. 삼가 밀서(密書)를 올려 진섭(珍攝)하시기 바랄 뿐입니다. 정 통사(丁通事)가 복명하는 편을 인하여 이 짧은 소장(疏狀)을 올리니,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살펴주소서. 이만 줄입니다. 늦가을 초5일"
- [註 296] 손야(孫爺) : 시랑(侍郞) 손광(孫鑛).
원문
○義州府尹黃璡狀啓, 總督軍門標下都指揮司使張鴻儒, 稟帖上送事。 其帖曰:
總督軍門(繞)〔統〕 攝遼海等處禦倭提調都指揮司使張鴻儒, 頓首再拜, 奉啓朝鮮國王殿下。 恭惟殿下, 德振(孔)〔乾〕 坤, 仁風兩國; 聖總神化, 澤及萬民。 胡遭妖氛之未蕩, 尙據藩籬? 知殿下每擔東顧之憂, 何時寧謐, 作(大)〔太〕 平一歌章詞賦矣? 儒切切下懷, 忘飱朝夕, 臥寐反側, 惓惓在念, 豈忍忘情? 上年秋哨東來, 賴蒙殿下終始美就功成。 彼時回魯卽詳之, 當道咨聞廟堂, 繼將斯功, 已蒙紀錄擢之耳。 去歲拜違殿下, 回離王京, 於十月間, 方抵遼陽, 赴見孫恩主, 輒以吐露情事, 始末緣由, 根深蔕固之情, 痛言徹底機關, 蒙孫恩臺惟(搖)〔肯〕 首, (糜)〔靡〕 不依從所請。 彼卽移檄要鎭, 設計圖策, 多方遍布, 各省運糧、調兵, 援於貴國, 一切眞覈眞詳, 無一不準備整飭, 預行全料矣。 竊觀目下, 惟待封事消息的礭, 情由爲度。 倘信封洗巢, 回還該國, 則旗幟何用再搖? 若倭奴二意三心, 封事不妥, 仍前盤據不移, 孫經臺必至題請, 調統大兵, 水陸竝進, 秉力鏖戰, 以絶其事。 且今時不一決裂, 則將來終無了期, 而孫恩臺, 豈惟束手無策也? 呵呵。 此一節, 乃儒同孫臺, 酌議候行, 非搖唇皷舌之句。 殿下固不知儒之眞謬, 矧未觀動靜? 實儒之秘訣, 陳情更切, 伏惟殿下詳之亮之。 玆者孟秋, 奉有經略所(妥)〔委〕 來官二員, 胡姓、(愼性)〔愼姓〕 者, 前往探體倭事, 直抵釜山, 亦出孫爺腹心之差, 亦出微生之擧。 但恐沈惟敬之僞, 糊塗影射, 蒙蔽上意, 致悞大事焉。 輕染等之謠詞, 則偰然而罷兵, 有誤國家大事矣, 依儒愚見, 未之有也。 仰惟殿下, 必命都總兵權慄、李舜臣二處, 同差得用者人員, 急進彼巢, 體訪的實。 或倭夷, 果有實意, 受封而去, 或狡詐不一, 或欲請理動止, 皆在時今此一擧也。 可待胡、愼二官回日, 急密付恃覆之孫臺。 倘再含糊不實, 非孫爺之不用心, 而大誤於貴國, 空遭生靈塗炭, 社稷丘墟, 寧不傷心者乎? 謹奉密(褚)〔楮〕 , 惟冀珍攝爲要。 今因丁通事旋命之便, 肅此短疏。 伏乞玉趾鑑亮。 不宣。 季秋初有五日。
선조실록67권, 선조 28년 9월 22일 신묘 2/3 기사 /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신속히 왜적을 축출할 것을 건의하는 총독 군문 표하 도지휘사사 장홍유의 첩문
국역
의주 부윤 황진(黃璡)의 장계는 총독 군문 표하 도지휘사사(總督軍門標下都指揮使司) 장홍유(張鴻儒)의 품첩(稟帖)을 올려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장홍유의 첩문(帖文)은 다음과 같다.
"총독 군문 요섭 요해 등처 어왜 제조 도지휘사사(總督軍門繞攝遼海等處禦倭提調都指揮司使) 장홍유는 돈수 재배(頓首再拜)하고 조선 국왕 전하께 삼가 아룁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전하의 덕은 온 천하에 떨치고 인(仁)은 두 나라를 풍화(風化)하였으며, 성스러움은 신화(神化)를 모두 겸하였고 은택은 만민에게 미쳤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요사한 기운이 사라지지 않아 아직까지 왜적이 번병(藩屛)을 점거하고 있는 것입니까. 전하께서 매양 동쪽의 왜를 염려하는 근심을 지니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어느 때에나 안정되어 태평가(太平歌)를 부르게 되겠습니까. 홍유는 간절한 생각에 아침 저녁으로 밥먹는 것도 잊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간절히 생각하고 있는데 어찌 차마 잊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해 가을에 동쪽으로 와서 전하께서 종시 잘 돌보아주심을 힘입어 공을 이루었습니다. 그때 돌아와서 곧 당도(當道)에 자세히 보고하였더니, 당도는 묘당(廟堂)에 자문으로 보고하였으므로 계속하여 이 공에 대해서 이미 기록하여 발탁됨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전하를 하직하고 왕경(王京)을 떠나 10월 무렵에야 요양(遼陽)에 도착하여 손은주(孫恩主)에게 가서 사정의 시말 연유와 왜적의 뿌리가 깊고 단단한 실정을 토로하면서 기관(機關)에 대해 철저히 말하였더니 손은대(孫恩臺)는 머리를 끄덕이며 소청대로 따르지 않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곧 요진(要鎭)에 격문을 보내고 계획을 세워 계책을 도모하고 사방에 두루 포고하여 각성(各省)에서 군량을 운반하고 군사를 조발(曹發)하여 귀국을 구원하려고 일체를 자세히 핵실하여 하나도 준비 정돈하여 미리 완전히 헤아리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보기에 오직 왜를 봉하는 일에 대한 정확한 소식과 사정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왜가 봉해주는 것을 믿고 소굴을 떠나 저희 나라로 돌아간다면 무엇 때문에 기치(旗幟)를 다시 흔들 필요가 있겠습니까마는 왜노(倭奴)가 이랬다 저랬다하는 마음으로 봉하는 일을 타결하지 않고 여전히 웅거하고 있으면서 옮겨가지 않는다면 손경대(孫經臺)는 반드시 제청(題請)하여 대병을 조발해 거느리고 수륙(水陸)으로 아울러 진군하여 힘을 다해 무찔러서 그 일을 끝내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에 한번 결판을 않는다면 끝내 왜를 무찔러 일을 마칠 시기가 없을 것이니 손은대가 어찌 속수 무책(束手無策)으로 가만히 있겠습니까. 몹시 우습습니다. 이 한 가지 일은 이홍유가 손은대와 같이 참작 의논하여 행하려는 것이고, 실없이 입만 놀리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께서는 본디 이홍유의 진위(眞僞)를 모르시는데 더구나 동정도 보지 못하였는 데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성실하게 이홍유의 비결(秘訣)을 다시 간절히 진정하는 바이니 전하께서는 자세히 살피소서. 이번 초가을에 경략(經略)이 위임하여 보내온 관원 호성(胡姓)·신성(愼姓) 2인이 왜인의 일을 탐지하기 위하여 곧장 부산으로 갔는데, 이들 또한 손야(孫爺)296) 의 심복 중에서 차출된 것이며 또한 나의 천거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심유경(沈惟敬)이 거짓말로 호도하고 위조하여 주상의 뜻을 가리워서 큰일을 그르칠까 염려스럽습니다. 쉽게 저들이 떠드는 말에 전염되어 무단히 파병하면 국가 대사를 그르칠 것이지만 이홍유의 소견대로 하면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반드시 도총병(都摠兵) 권율(權慄)·이순신(李舜臣)에게 명하여, 쓸 만한 인원을 차임하여 급히 저들의 소굴에 나아가서 분명한 사실을 탐지하도록 하소서. 혹 왜이(倭夷)가 과연 진심으로 봉함을 받고 돌아가려 하거나 혹은 교사스러운 점이 많거나 혹은 동지(動止)를 청하고자 하거나를 체탐하는 것이 모두 이번의 한번 거사에 달려 있으니, 호(胡)·신(愼) 두 관원이 돌아올 때 사연을 적어 믿을 수 있는 손은대(孫恩臺)에게 비밀히 부치소서. 만일 다시 어물어물하고 사실대로 고하지 않을면 손야(孫爺)가 마음을 쓰지 않으 뿐 아니라 귀국의 일에 크게 잘못되어 부질없이 생령(生靈)이 도탄에 빠지고 사직(社稷)이 폐허가 될 것이니 어찌 마음 아프지 않겠습니까. 삼가 밀서(密書)를 올려 진섭(珍攝)하시기 바랄 뿐입니다. 정 통사(丁通事)가 복명하는 편을 인하여 이 짧은 소장(疏狀)을 올리니,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살펴주소서. 이만 줄입니다. 늦가을 초5일"
- [註 296] 손야(孫爺) : 시랑(侍郞) 손광(孫鑛).
원문
○義州府尹黃璡狀啓, 總督軍門標下都指揮司使張鴻儒, 稟帖上送事。 其帖曰:
總督軍門(繞)〔統〕 攝遼海等處禦倭提調都指揮司使張鴻儒, 頓首再拜, 奉啓朝鮮國王殿下。 恭惟殿下, 德振(孔)〔乾〕 坤, 仁風兩國; 聖總神化, 澤及萬民。 胡遭妖氛之未蕩, 尙據藩籬? 知殿下每擔東顧之憂, 何時寧謐, 作(大)〔太〕 平一歌章詞賦矣? 儒切切下懷, 忘飱朝夕, 臥寐反側, 惓惓在念, 豈忍忘情? 上年秋哨東來, 賴蒙殿下終始美就功成。 彼時回魯卽詳之, 當道咨聞廟堂, 繼將斯功, 已蒙紀錄擢之耳。 去歲拜違殿下, 回離王京, 於十月間, 方抵遼陽, 赴見孫恩主, 輒以吐露情事, 始末緣由, 根深蔕固之情, 痛言徹底機關, 蒙孫恩臺惟(搖)〔肯〕 首, (糜)〔靡〕 不依從所請。 彼卽移檄要鎭, 設計圖策, 多方遍布, 各省運糧、調兵, 援於貴國, 一切眞覈眞詳, 無一不準備整飭, 預行全料矣。 竊觀目下, 惟待封事消息的礭, 情由爲度。 倘信封洗巢, 回還該國, 則旗幟何用再搖? 若倭奴二意三心, 封事不妥, 仍前盤據不移, 孫經臺必至題請, 調統大兵, 水陸竝進, 秉力鏖戰, 以絶其事。 且今時不一決裂, 則將來終無了期, 而孫恩臺, 豈惟束手無策也? 呵呵。 此一節, 乃儒同孫臺, 酌議候行, 非搖唇皷舌之句。 殿下固不知儒之眞謬, 矧未觀動靜? 實儒之秘訣, 陳情更切, 伏惟殿下詳之亮之。 玆者孟秋, 奉有經略所(妥)〔委〕 來官二員, 胡姓、(愼性)〔愼姓〕 者, 前往探體倭事, 直抵釜山, 亦出孫爺腹心之差, 亦出微生之擧。 但恐沈惟敬之僞, 糊塗影射, 蒙蔽上意, 致悞大事焉。 輕染等之謠詞, 則偰然而罷兵, 有誤國家大事矣, 依儒愚見, 未之有也。 仰惟殿下, 必命都總兵權慄、李舜臣二處, 同差得用者人員, 急進彼巢, 體訪的實。 或倭夷, 果有實意, 受封而去, 或狡詐不一, 或欲請理動止, 皆在時今此一擧也。 可待胡、愼二官回日, 急密付恃覆之孫臺。 倘再含糊不實, 非孫爺之不用心, 而大誤於貴國, 空遭生靈塗炭, 社稷丘墟, 寧不傷心者乎? 謹奉密(褚)〔楮〕 , 惟冀珍攝爲要。 今因丁通事旋命之便, 肅此短疏。 伏乞玉趾鑑亮。 不宣。 季秋初有五日。